2부 226화.
“상처를…… 입혔다고?”
“어떻게?”
그에 유저들이 기함을 토했다.
줄곧 공격이 막혔기에 누구보다 단단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건, 유저들이 아닌 적들이었다.
-……뭐? 쟤가 상처를?
-잉?
-저 녀석이 피를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이야? 단신으로 한 종족을 멸망시킬 때도 피 한 방울 안 흘리던 놈인데…….
일행이기에 누구보다 저 괴물에 대해 잘 알던 그들로서는, 어지간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오죽하면 전장에 순간이나마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이다! 전부 공격해라!”
“아.”
“멸살! 멸살이 능력을 썼다!”
“죽여! 일단 죽이고 생각해!”
“으아아아!!”
멸살의 호령에 금방 정신을 차린 유저들이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겨우 잡은 기회를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푸욱! 촤악-!
“효과가 있어!”
“공격이 통한다고! 저놈들이 돕기 전에 빨리 죽여!”
“이 새끼, 공격 기술도 없나 봐. 몸만 튼튼한 샌드백이야.”
“샌드백? 아스트?”
“이 상황에 드립 치는 새끼 누구야!?”
피가 튄다.
견고한 철옹성 같던 놈의 거대한 몸에 하나둘 상처가 늘어난다.
그에 유저들이 힘입어 텐션을 끌어올렸고,
-뭐야, 진짜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호오? 상식 개변이라…… 저놈이 단장이 말했던 네 명의 요주의 인물 중 하나인가 본데.
-뭘 감탄하고 있어. 도와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나서지.
놈들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인외의 검객이 검 손잡이를 쥐며 자세를 낮추는 게 보였다.
그걸 도현이 그냥 보고 있을 리 만무.
[소드 오러의 쿨타임이 돌아왔습니다.]
[소드 오러를 시전합니다.]
[소드 오러가 어둠 두르기에 영향을 받아 어둠 특성을 갖습니다.]
[어둠 특성의 효과가 추가로 적용됩니다.]
[타이틀, ‘어둠 파괴자’가 발동합니다.]
………
‘늦었어.’
진작에 준비를 마친 도현이, 놈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검을 휘둘렀다.
[소드 오러 – 참격을 시전합니다.]
[바이란 검술 제4초식, 일검(一劍)을 시전합니다.]
—-!!
검 끝에 모든 기운이 밀집된 일검이, 벌어진 옆구리 상처를 향해 쇄도했고.
촤아아악-!!
이내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베었다기보다는, 찢었다는 표현이 더 걸맞은 모습.
상처로 벌어져 있던 옆구리부터, 반대쪽 골반 밑까지 솜이 터진 곰 인형처럼 찢겨져 나간 것이다.
타앗!
그 뒤를 이어 달려든 멸살이, 검끝을 찔러온다.
이대로 확정타를 가하면 끝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뇌리 한 켠을 차지한 순간.
꾸륵-
‘재생…… 되고 있어?’
놈의 상처가 급격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위화감.
‘기세가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결코 무너트릴 수 없는 성처럼 느껴지긴 해도, 위험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죽이진 못하더라도, 반대로 죽을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하나, 지금은 다르다.
[대상이 혈통인자를 강제로 일깨웁니다.]
[일시적으로 대상의 육신이 진정한 형태로 거듭납니다.]
[위험! 압도적인 격이 느껴집니다.]
꾸드득, 꾸득-
놈의 신체가 꿈틀거리며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전신의 피부가 경직되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본능이 전해오는 위험 경고 신호.
마용종? 심연의 마수? 그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물러나!”
더 접근하면 위험하다는 것.
멸살도 같은 판단이었는지, 휘두르던 검을 손에서 놓은 채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몸을 피하기 위한 대처.
그러나 늦었다.
온통 검었던 눈이, 붉게 물든 채 두 사람을 향한 순간.
[경고! 생명의 위협이 느껴집니다.]
[피하십시오!]
놈의 입에서 검붉은 빛이 번쩍이고 있었으니까.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알림을 볼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저거…… 맞으면 골로 간다.’
그때였다.
[그만.]
어디선가 묵직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겨우 이런 곳에서 그 힘을 꺼내지 마라.]
담담한 어조.
하나 그 안에는 거부하기 힘든 위엄이 담겨 있었다.
-……예.
그러자 거짓말처럼 공격을 멈추고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검은 괴물.
괴물뿐만이 아니었다.
꾸벅.
달려들기 일보 직전이었던 인외의 검객과, 줄곧 여유롭게 구경하던 사자 갈기와 육감적인 몸매의 여인까지.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경외를 표하고 있었다.
그 이질적인 모습에 유저들마저 하던 것을 멈추고, 숨죽이며 바라보았고.
저벅. 저벅.
일순 조용해진 경기장을, 한 남자가 걸어왔다.
목덜미를 덮는 흑색 장발 머리.
뱀파이어처럼 새하얀 피부와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생기 없는 눈동자와 옅게 피어난 다크서클이 귀신처럼 보이기도, 귀공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나, 전해지는 기세는 그런 고귀한 존재가 아니었다.
저벅.
그저 천천히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전신을 짓누르는 위압감.
세포 하나하나가 위험을 알려온다.
심기를 잘못 거스르면 죽을 수도 있다는, 본능에 새겨진 원초적인 공포.
그건 귀족 같은 것보다는 왕.
더 나아가 절대자로 군림하던 자에 가까웠으니까.
[경고! 압도적인 격을 지닌 존재입니다.]
[피하십시오.]
시스템 또한, 모든 유저를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하나 도현은 그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
[다섯 번째 운명의 조각의 열쇠 ‘용맹과 신념의 금색 휘장’이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용맹과 신념의 증표’를 발견하였습니다.]
[소유하고 있던 다섯 번째 운명의 조각의 이면에 해당하는 조각입니다.]
[두 조각을 소유할 시 여섯 번째 운명의 조각이 탄생합니다.]
‘……뭐?’
그도 그럴 게…… 믿을 수 없는 메시지가 떠 있었으니까.
‘운명의 조각이라고?’
다섯 번째 조각의 열쇠였던 휘장은 왜 조각을 찾을 때 쓰이지 않나 의문이 들긴 했었다만, 이런 전개는 상상도 못 했다.
아니, 다 떠나서.
조각이 대체 왜 저 남자의 손에 있단 말인가!
그 의문에 답하듯, 불현듯 눈이 마주친 남자가 손을 뻗었다.
촤락-
그러자 손안에 쥐고 있던 것들이 떨어졌다.
한데 바닥에 나뒹구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둥실 뜬 채 머물러있었다.
덕분에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그것들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구태여 힘겹게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일곱 번째 운명의 조각 ‘군주의 수(手)’를 발견하였습니다.]
[여덟 번째 운명의 조각 ‘고귀한 결속(結束)’을 발견하였습니다.]
[아홉 번째 운명의 조각 ‘등가교환의 추(錘)’를 발견하였습니다.]
체스 말, 브로치, 동전.
각기 다른 형태의 조각들이 뒤엉키며 허공을 떠다닌다.
그리고……
[열 번째 운명의 조각 ‘운명의 지침(指針)’을 발견하였습니다.]
“……미친.”
나침반의 형상을 한 마지막 조각까지 확인한 도현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적을 앞에 두고도, 반쯤 넋을 놓은 채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
[놀라운가? 내가 조각들을 지니고 있는 게.]
“…….”
[그대에겐 그럴지도 모르겠군. 조각을 찾을 수 있는 게 그대밖에 없을 거라 여겼을 테니. 약속의 날보다 3년이나 빨리 움직였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하나 아니었다.
금기의 대상이 되는 건 약조에 얽힌 자들뿐.
[그렇다면, 직접 거두지만 않으면 될 일.]
잠들어 있는 왕들과 달리, 그들은 역사의 여러 주요 인물들을 포섭하여 오랜 시간 조각을 찾아왔다.
그 시간만 해도 수백 년에 달할 정도.
그 결과 무려 절반에 달하는 조각을 모으는 것에 성공했으나, 나머지 절반은 건드리기 까다로운 곳에 있었다.
정해진 약속에 직접적으로 묶여 있는 곳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예언의 남자가 나타나, 인류의 희망을 계승하고 조각을 모아주기를.]
“……넌 누구냐.”
도현의 얼굴은 더 이상 벙쪄 있지 않았다.
적의 가득한 눈이, 놈을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듯이 날카롭게 번뜩일 뿐.
“……아니, 누구인지 알겠다.”
남자를 중심으로 모이는 괴한들을 한 눈에 담은 도현의 눈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렇게 보니 알겠다.
오히려 왜 여태 눈치채지 못했는가 싶다.
‘한 쌍의 날개를 지닌 2m가 훌쩍 넘어가는 거한, 잊혀진 고대의 역사가 끝나고 등장한 다섯 명의 단체.’
다섯 개의 태양이자 달.
어디서든 존재하며 누군가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되었던 악몽이자, 누군가에겐 메시아로 불리었던 자들.
그리고,
제국을 파멸로 몰아붙이고, 잊혀진 왕을 무덤 밑에 가두어 사념을 옮겨낸 자들.
“……월령단, 맞지?”
-오, 이걸 알아보네? 우리가 잊히진 않았나 봐?
-조용히 해. 단장께서 상대하고 계시잖아.
-……다칸, 눈치가 없다.
-그래, 또 내가 문제지.
단원들의 반응에 쐐기를 박듯, 단장이라 불린 남자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웃지도, 그렇다고 일그러졌다고 보기도 힘든 표정.
더 없이 인위적이었고, 그렇기에 더 소름이 끼치는 얼굴로 그가 말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그래, 오늘 길었던 아브타르텔의 운명은 종점을 맞이한다.]
도현과 인류, 그리고 아브타르텔에게 내리는 종말의 선언.
그리고 그에 반응하듯 알림이 떠올랐다.
[월령단(月令團)과 조우하였습니다.]
[메인 퀘스트에 관련된 이들입니다.]
[돌발 퀘스트 ‘운명의 조각을 지켜라’가 발생합니다.]
[운명의 조각을 지켜라]
-등급 : 돌발 퀘스트
-설명 : 조각을 모으는 또 다른 세력과 조우하였습니다.
강대한 힘을 지닌 그들의 손에 운명의 조각이 넘어가지 않게 지켜내십시오. 그들의 손에 운명의 조각이 넘어갈 시 멸망급 대륙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성공 시 : 월령단(月令團)에 대한 정보, 유예 기간, 메인 퀘스트
남은 반쪽 열쇠의 결정적인 단서, 하늘을 집어삼킨 눈과 관련된 단서, 연계 퀘스트.
-퀘스트 실패 시 : 메인 퀘스트 삭제, 전 대륙에 멸망급 대륙 퀘스트 발생
‘……하아, 요즘 좀 평화롭다 싶더라니.’
모처럼의 대형 이벤트라 할 수 있는 길드전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떨어진 대형 폭탄…….
아니, 핵폭탄에 도현이 단전 밑에서부터 끓어 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버릴 것 같지만, 그냥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이거 모은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걸 날름 가져가겠다?”
그건 염치가 없다 못해 양심이 뒈져버린 행동이었다.
고대 이후 가장 큰 재앙이었던 저들을 상대로 이길 확률은 적겠으나, 도현이 해야 할 건 승리가 아닌 생존.
[악연을 맺은 대상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카이저 님과 대상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악연 관계입니다.]
[조건을 충족하여 ‘악연의 장’이 펼쳐집니다.]
[거역의 서(書)가 적합한 힘을 탐색하기 위해 시전자와 대상에 얽힌 서사를 읽고 있습니다.]
[악연의 정도가 기준을 초월하였습니다.]
[초월된 반항의 연(緣)이 발동됩니다.]
[운명에 강하게 저항하여 상대에게 죽을 확률이 가능 높은 운명을 거스를 힘이 주어집니다.]
[단월자(斷月者)를 시전합니다.]
[월령단(月令團)에 한하여 모든 공격의 위력이 200% 상승하며, 대상에게 치명상을 입힐 시 단월(斷月) 효과를 부여합니다.]
게다가 거역의 서(書)까지 발동되었다.
‘그럼 해 볼 만하지.’
천변을 쥔 손에 힘을 주자, 의지에 반응하듯 새하얀 빛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