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28화.
[지금의 격으로 감당할 수 없는 힘입니다.]
[강한 부작용으로 마나 회로가 꼬입니다.]
[마도왕(魔道王)의 마나 회로가 치명적인 부작용을 막아냅니다.]
콰드득! 우득!
몸 내부의 마나는 뒤죽박죽 엉키는 느낌과 함께, 이질적인 기운이 솟구치더니 하늘을 검게 물들였고.
[대상에게 뇌룡강림을 시전할 시 내리꽂히는 뇌룡의 777%에 해당하는 데미지를 입힙니다.]
[흑룡의 고유 특성 ‘이질적인 마나’가 마나로 이루어진 모든 방어체계를 꿰뚫습니다.]
[어둠 특성이 방어력을 일부 무시합니다.]
[농도 깊은 마나가 일시적으로 대상의 마나 회로를 마비시킵니다.]
[흑룡의 분노에 적중당한 대상은 7초간 스킬과 특수 옵션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대상의 마나 회로의 질에 따라서 마나를 2~5초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물감을 부은 듯 어두워진 하늘에서 검은 낙뢰가 내리꽂혔다.
[경고! 압도적인 격의 차이를 지닌 존재의 힘을 허락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흑룡에게 적발될 수 있습니다.]
[주의! 발각될 시 생존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워낙 살벌한 문구 때문에 사실상 봉인해두었던 흑룡의 힘.
그것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다시 봐도 위력 하나는 확실하네.’
방어력을 무시하는 번개로, 상대를 죽기 직전까지 지져버리는 극악무도한 기술.
그야말로 용의 분노라는 이름에 걸맞은 능력이다.
[강화된 아비손의 악세사리 세트 효과 ‘효과 지속’이 발동 중입니다.]
[발동 중인 효과의 지속시간이 1.5배로 늘어납니다.]
[흑룡의 분노의 발동 시간이 늘어나 적중 시간이 늘어납니다.]
[일정량의 추가 데미지가 들어갑니다.]
심지어 악세사리 세트 효과 덕에 뻥튀기된 위력.
그래도 저 괴물 같은 놈이 여태 보여준 게 있기에, 혹여나 통하지 않을 일을 대비해 단검을 꽉 쥐고 있었으나…….
콰아아아아아-!!!!
……번개에 지져지지 않기 위해, 양손을 펼쳐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다행히 통하는 듯했다.
심지어 꽤나 팽팽해 보인다.
그 어떤 공격들조차 닿기도 전에 사라졌던 이전과 달리, 제대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방어체계를 무시하는 효과 때문에 순수 마력으로 버틸 수밖에 없기 때문.
‘흑룡 본체는 얼마나 셀지 상상도 안 되네.’
이게 겨우 흑룡의 힘 일부를 빌려온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현은 마음 편히 있지 못했다.
언뜻 팽팽해 보이는 힘겨루기가, 사실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저울이란 걸 알고 있는 탓이었다.
‘단월((斷月) 효과가 발동되지 않아. 이렇게까지 해도 치명상을 입힐 수가 없다고?’
범상치 않아 보이는 능력을 얻었건만, 정작 한 번도 발동시키질 못하고 있는 꼴이라니.
이래서야 악연의 장이고, 카운터고 다 뭔 소용이란 말인가.
[경고! 마나 회로에 심각한 손상이 인지됩니다.]
[마나 회로가 더는 버티지 못합니다.]
[마나 회로가 타버릴 시 24시간 동안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주의하십시오.]
설상가상으로 마나 회로가 타들어 가다 못해, 끊어지기 직전인 게 느껴진다.
마도왕의 마나 회로로 억누르고 있다지만, 길어봐야 5초가 한계.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 건가.’
정녕 숙적이라는 말을 해도 될까 싶을 만큼 압도적인 격차.
문득 옆을 스쳐 가는 유저들의 얼굴이 보인다.
절망감과 무력감이 가득하다.
도망치지 않은 이들을 이해할 수 없는지, 힐끔 쳐다보다 떠나는 이들도 보였다.
이곳에 보이는 이들은 쓰러진 자와 도망친 자. 다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뿐이었다.
하지만.
[역천기(逆天期) 제1초식, 시(始)를 시전합니다.]
터벅,
도현은 나아갔다.
마나 회로가 바싹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전신에 태산의 기운을 억지로 욱여넣듯 순환시키며.
어김없이 나아갔다.
‘녀석의 발이 묶인 지금…….’
그리고 아직 마나 회로가 버텨주는 지금.
지금만이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게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몇 걸음이나 나아갔을까.
이윽고 놈을 사정거리에 둔 것과 동시에, 기운이 모두 모였고.
[역천기(逆天期) 제 2초식, 파(始)를 사용합니다]
[투신(鬪神)의 영향으로 2초식 파(始)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도현이 참아왔던 기운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모든 걸 쏟아부은 최후의 일격이었으나…….
파앙-!
[흑룡(黑龍)의 분노가 상쇄되었습니다.]
[반발력으로 인해 마나 회로의 부작용이 더욱 거세집니다.]
‘이런 젠장……!’
애석하게도, 같은 타이밍에 힘겨루기를 끝낸 단장이 곧장 도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2초식 파(破)의 사정거리에 두기 위해 거리를 좁힌 게 독이 된 상황.
저대로 직선으로 돌격하면, 놈의 속도를 생각하면 반응할 틈도 없이 숨통이 끊어질 게 틀림없었다.
휙-
‘……? 피했다?’
한데 예상과 달리, 단장은 직선으로 달려오지 않고 우회했다.
다른 유저들의 공격을 미동도 없이 지워버렸던 전과 달리, 정확히 사정거리를 벗어날 만큼 빠르게 움직여 피한 것이다.
물론 의문인 것과 별개로,
파앗! 턱.
그 속도가 여전히 육안에 담기지도 않을 만큼 빨랐기에, 사실상 눈 깜짝할 새 도현의 앞에 도달하는 건 같았다.
[흑뢰전(黑雷電)을 사용…….]
반사적으로 이동기를 사용해봤지만…….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시야에 그림자가 지더니, 몸이 붕 뜨며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콰아아아앙!!
[경고! 생명력이 2% 이하입니다.]
녀석이 얼굴을 잡아 바닥에 꽂아버린 것.
정확히 2%에서 멈춘 걸 보면, 딱 죽기 직전에서 멈추게 힘 조절을 한 게 분명했다.
[체력을 모두 소진하여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주인!
-주구우운!!!
-리자! 리자리자!
기겁한 가디언들이 단원들의 공격에 휩쓸려, 상처투성이가 된 와중에도 허겁지겁 달려오는 게 보인다.
특히 찰리의 경우 스치기만 해도 죽을 판이면서,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오는 것이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도현도 마음 같아선 저 말을 들어주고 싶으나,
‘손 하나 까딱 못하겠네.’
길드전부터 시작해서 다칸이라 불린 사자 갈기 괴한과 블랙 일족의 괴물.
마지막으로 이 괴물 같은 단장 새끼까지.
쉬지 않고 릴레이로 싸우니, 최근 들어 바닥을 보인 적 없던 체력이 방전되어버린 것이다.
생명력과 체력 무엇 하나 남아나지 않는 최악의 상황.
[알고 있나? 운명의 조각은 모든 조각이 한 곳에 모일 때, 하나의 ‘운명’의 결정으로 합쳐진다는 것을.]
“……뭐?”
순간 머리가 하얘졌지만, 반론할 시간 따위 없었다.
[모든 운명의 조각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인벤토리에 보관된 다섯 개의 운명의 조각이 반응합니다.]
[하나의 운명이 만들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위험! 조각을 넘기게 될 시 메인 퀘스트에 실패합니다.]
‘이런 씨X.’
놈의 말대로.
정말 보관해둔 조각들이 번쩍거리더니, 스스로 인벤토리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으니까.
[이것은 정해진 운명의 법칙. 그대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조각은 잘 받아가지…… 그대와는 이번이 마지막이겠군.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나?]
“X같은 게임.”
[유언치고는 투박하군. 사도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감상도 다른 건가.]
아무렴 상관없겠지. 이제 볼 일 없는 사이이니.
그리 말을 덧붙인 녀석이 허공에 배회하는 조각들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자, 인벤토리에 든 조각들이 점점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조각들이, 한곳에 뭉쳐 형체를 잡아간다.
—!
그렇게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가는 걸 보며 도현이 탄식했다.
‘……정말 끝이라고? 이렇게 허무하게?’
족히 몇 년은 더 구를지언정, 이런 결말을 예상한 적은 없었는데.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 정신이 멍해지려 할 때마다, 주옥같이 번쩍거리는 조각들이 일깨워준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최강의 플레이어 자리를 차지하자마자, 이렇게 다 끝난다고?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독기에 가까운 집념이, 젖은 솜이불을 덮은 듯 무거운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꿈틀,
“이렇게 되면…… 나도 생각이 있거든.”
[의미 없는 발버둥이다, 계승자여.]
담담하게 묵살하는 녀석이지만, 도현의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그 안에 담긴 건 발악이나 미련보다는…… 결연함과 희망에 가까웠다.
“아직 신의 눈물은 끝나지 않았거든.”
이게 정말 될까 싶긴 하지만…… 충분히 도박을 걸어볼 만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긴 하나, 이게 성공한다면 어쩌면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무엇보다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헛소리가 아니군.]
왠지 모를 싸함을 느낀 것일까.
[먼저 팔다리를 끊어놔야겠어.]
녀석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순식간에 손끝으로 거센 기운이 맺힐 그때.
도현의 눈동자가 커졌다.
도박이 성공해서? 아니면 점점 가까워지는 녀석의 기운에 기겁해서?
둘 다 아니었다.
번쩍-!
놈의 등 뒤 펼쳐진 광활한 하늘.
흑룡의 기운으로 어두워졌던 하늘이 어느덧 걷히고, 푸르게 변해가던 하늘 위로 무언가 번쩍인 것이다.
그에 도현이 발동하려던 것을 멈추고 눈매를 좁혔다.
‘……사람?’
그렇게 흐릿한 실루엣의 형태로나마 파악한 것과 동시에,
[방해꾼이 왔군.]
도현의 팔을 끊기 직전이었던 단장이 곧장 손을 회수하곤 뒤를 돌았다.
무언가가 부딪힌 건 그때였다.
콰아아앙!!
바로 위에서 공격을 막은 단장의 손바닥에서 내려온 충격이, 지면을 타고 도현에게까지 전해진다.
쩌저적-!
한 합을 주고받은 것만으로 하늘이 갈라지는 기현상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아득한 괴물들의 격돌.
[체력이 1%로 회복되었습니다.]
[움직임 제한이 적어집니다.]
그 틈에 자리를 벗어난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스으.
보라아재를 아득히 뛰어넘는 근육질을 한 거구의 노인이.
상의가 찢어진 듯 밑면만 뾰족하게 남은 채였고, 전신은 붉게 달아올라 기이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드러난 상체에 가득한 흉터와 야생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뾰족하게 넘겨진 백발.
그 특징을 하나씩 눈에 담던 단장이 이상하다는 듯 담담하게 물었다.
[수인족의 땅에 있어야 할 그대가, 왜 이곳에 있지?]
“…….”
[현 인류의 정점에 이른 일곱 별 중 하나여.]
칠강(七强)의 일원이자 현존하는 대륙 최강의 무투가.
“거, 약속이 깨지자마자 날아온 녀석도 있는데, 내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할 게 있는가. 내가 아니면 누가 너희를 막겠나. 뭣보다…….”
[…….]
“저놈이, 일단은 내 사제(師弟)라서 말이야.”
권왕(拳王), 드란 그라디트.
그가 난입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