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18

818화 세계 회의 (2)

전염병의 확산을 저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매개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피울음 역병의 경우에는 호흡, 본질적으로 사람.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차단하면 더 이상 역병은 퍼질 수 없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 도시, 국가에서 개인의 행동을 완전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잠복기도 있으니 매번 감염 여부를 구분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격리…… 위정자는 더 나아가 처분을 대응법의 하나로 염두하게 된다. 맞불을 놓아 산불의 규모를 축소하듯이.

물론 강대국은 고려하지 않는 방법이다. 힘에는 위엄이 있다. 끝끝내 전역병을 감당하지 못해 국민을 살처분하는 건 격 떨어지는 짓이다.

팔뚝의 썩은 살점만 도려내면 될 것을 무식하게 팔을 아예 잘라 버리다니?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그래서 아르나크 제국, 가르간트, 이데라트 연맹, 에온, 하이랜디아, 아케나드 마도국 등은 나름 여파를 최소화해 역병을 막아 냈다.
루아스교는 말할 것도 없다.
프로하스는 환경적 특성 덕분에 피해가 전무할 정도고, 델하룬도 타 대륙의 왕래가 적은 편이기에 덩달아 피해도 적었다.

반면에 초월자의 권역에 속하지 못한, 대들보가 연약한 국가 중 일부는 구국의 결단으로 혹은 안일한 마음으로 해당 조치를 취했다.

역병은 인간의 육신에 머문 채 전파되고, 그 몸은 불길을 견디지 못하니까.

“이번에 전염병 감당 못 해서 감염자든 아니든 간에 몰래 죽이고 태워 버렸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사실이니?”
“그렇습니다, 이그나시아 님. 그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처리당했는지 모르겠지만 정황으로 보아 적지는 않을 겁니다.”

펠디안느의 즉답에 하원 측에 기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로니아 국왕은 뒷목이 조금씩 축축해지는 걸 느끼고 몰래 뒤로 손짓했다.
로니아 국왕을 보좌하는 여인이 제 손톱을 작게 깨물고는 손수건을 건넸다.

“헤에, 피울음 역병 전용 매직 아이템을 제작해 파느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그 와중에 그런 것까지 확인한 거야?”
“호호호, 아티슨 마탑이지 않습니까? 다른 9개의 마탑의 도움도 받았고요. 여기 구체적인 자료를 가져왔으니 공유하겠습니다, 의장님.”

섭리자의 허락을 받은 펠디안느가 <염동력>으로 인드렌과 자신을 제외한 52인에게 관련 자료를 건네주었다.
종이가 펄럭인다.
가볍게 자료를 훑고, 상원에서 하원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늘어났다.

붉은 화산 클랜장, 아르쿨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많이도 죽여 댔군.”
“어떤 때는 끈질기게 맺으려 하면서도, 어떤 때는 간단히 끊어 버리는 것. 그게 바로 인간의 습성이자, 장점이며 단점이죠.”

세계수의 관리자, 세렌디아가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견해를 내놓았다. 일반적인 엘프보다 훨씬 더 미려한 목소리였다.
수왕도 입을 열었다.

“감당할 수 없는 건 잘라 내야지. 인간의 나약한 몸뚱이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리고 여기에 적힌 걸 보면 피울음 역병이란 건 육체가 강인할수록 효과가 떨어진다고 적혀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수인과 인간의 사고방식은 다르다.

“어차피 도태될 약자들이 자연스럽게 걸러진 것이니. 그런 역병이 있으면 수인족에도 퍼뜨리고 싶을 지경이군.”

……꽈악.

성자, 레온하르트가 테이블 아래로 몰래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견디기 어려웠다.
반쯤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에 희미하게 핏줄이 불거졌다.

마울러가 말했다.

“지성의 존엄을 훼손하지 마라, 자유를 제한하지 마라, 책임을 인식하라. 신성의 3계명이라지? 그럼 여기 자료에 실린 국가들 전부 처단 대상이란 뜻으로 해석해도 되나?”

……!

에온의 규율에 저촉된, 그리고 반발한 뒷세계가 어떻게 됐는지 이미 널리 퍼졌다.
혈맹의 수뇌부가 한곳에 모여 있다가 일거에 목이 떨어졌다고.

테르네티아 연방 대표들이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일부 도시가 멋대로 역병 정화를 빌미 삼아 학살을 벌인 탓이다.

테르테니아 연방은 국가 특성상 영지마다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하기에 영주와 시장의 결단을 발 빠르게 막을 수가 없었다.

그때, 베르덴이 대답했다.

“아니. 이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사람을 산 채로 태워 죽였는데. 이게 존엄이란 걸 훼손하지 않은 거다?”
“그건 존엄이 아닌 윤리 문제다. 사람을 태워 죽인 것 자체를 문제 삼는다면 화염계 마법은 금지해야 할 거다. 다른 원소 마법만이 아니라 정신계 마법은 더욱 그래야 할 테지. 흑마법 또한.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관망할 생각은 없다.”

그가 펠디안느가 준 자료를 짚었다.

“어디까지나 판단을 내리기 이를 뿐 계명 위반의 소지는 있으니까. 이 건은 철저하게 조사해서 결론 내릴 예정이다.”
“타국의 영역까지 침범해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거냐. 그러다 내 델하룬까지 넘보겠군.”
“국가나 권역에 예외를 둔다고 내가 말한 적이 있었나?”

베르덴이 단언했다.

“성역은 없다.”

자신의 권역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규율을 강요하는 건 이례적인 선포였다. 그와 가장 비슷한 사례는 종교의 ‘교리’다.
루아스교의 가르침은 교국을 넘어 인류가 닿아 있는 전 세계에 뻗어 있다.

“미친 새끼.”
“…….”
“음.”
“역시.”

마울러는 어이가 없다며 헛웃음을 지었고.
성녀는 말없이 눈가를 씰룩였으며.
관제하는 인드렌은 급격한 변화가 초래될 것을 예상해 우려를 표했고.
반젤리스는 대견하다는 듯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베르덴이 말했다.

“본의 아니게 방해해서 미안하군, 아티슨 마탑주.”
“호호호, 괜찮습니다. 베르덴 님. 자, 그럼 이어서 하겠습──”
“계명이니 뭐니. 초월자란 자들이 하잘것없는 피식자들 따위에 번잡스럽게 굴기는. 종을 벗어난 존재라고 하나 결국 인간인가.”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마저 하십시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요. 잘 듣고 있겠습니다.”

펠디안느가 과장스럽게 예의를 취하며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섭리자도 자유 발언을 허락했기에 끼어들지 않았다.

수왕이 콧김을 내뿜었다.

“세상은 항상 과정보다 결과다. 이것저것 따지다 죽은 짐승과 악착같이 살아남은 짐승. 둘 중 무엇이 옳은가. 오직 생존만이 옳다. 삶은 강함의 증명이며, 죽음은 열등의 상징이지.”

베르덴이 수왕을 마주 바라봤다.

들어 본 적 있는 사상이다.

───드래곤은 독립적인 개체들이야. 상하 관계는 있어도, 동료 의식은 없지. 그리고 사체에는 어떠한 뜻도 두지 않아. 죽음은 도태다. 근데 죽은 것에 대한 존중이니 뭐니…… 생명체의 몸은 살아 숨 쉬고 있을 때나 중요한 거야. 그렇기에 죽으면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지. 드래곤의 사체? 그걸 남이 먹든 해체해서 사용하든 무슨 상관이야? 그저 도태된 존재의 흔적이거늘.

천공룡 아에로돈이 했던 말과 비슷하다. 아니, 의미는 동일하다.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명확한 공통점이 있다.

‘드래곤이 연상되는 수왕의 꼬리라…… 드래곤과 실제로 관련되어 있는 건가. 어쩌면 용의 형질을 가진 걸지도 모르겠어.’

저기 제라클 황제 뒤에서 투구로 뿔을 가리고 있는 반인반룡, 레그리트도 있다.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당연하게도 마족은 아닐 것이다.

이자벨라가 마족의 개념을 되살리기 전에 이미 수왕은 존재하고 있었고, 애초에 마족은 인간과 이형종의 융합체를 의미하니까.

수왕이 묻는다.

“너는 다른 초월자들과 다를 줄 알았는데. 이상에 억눌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다니 조금 실망이군, 베르덴.”
“나를 아나?”
“알다마다. 저 배타적인 엘프 종족과 동맹을 맺고 이기적인 드워프 종족과도 손을 잡은 초월자. 그리고 암월을 죽인 초월자 살해자. 한데 이제 보니, 그것도 드러난 송곳니에 불과한 것이었군.”

수왕의 후각이 눈으로 보이지 않는 깊은 향취를 맡았다.

“이렇게나 짙은 피 냄새는 처음이다. 너무 짙어서 제대로 분간하는 것조차 시간이 걸리다니. 역시 다른 초월자하고는 달라. 분명 각성한 지 2년도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 너는 뭐지?”

짐승의 동공이 순간 세로로 갈라졌다.

“대체 초월적 존재를 몇이나 죽인 거냐.”

* * *

“……뭐라고?”

서약자, 유리온 하이로스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지 확인하며 미간을 좁혔다.
하원이 아니라 상원에서의 술렁임이 컸다.

제라클 황제, 리반데일 대공, 반젤리스, 성녀, 교황, 성자, 흑해, 인드렌, 모험가 길드 본부장 등도 침묵을 유지하지 못했다.

이그나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잠깐만. 베르덴이 죽인 건…… 분명 다히트 웨스로엘하고 발로크 베시아스뿐인데? 혹시 유골룡도 포함인가? 하지만 셋 죽인 걸로 저렇게 말할 리가, 어?’

뇌리에 모래 냄새가 스쳤다.

베르덴이 선물로 주고 간 그 사막어로 만들어진 책은 투하르란 이름의 국가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고 있었다.

침묵의 사막.

베르덴은 그 미개척 지대에 다녀왔고 거기에서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다. 만약 그 문명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면, 그 문명을 지배하는 권력자가 있을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사막의 왕이 초월자다? 그리고 그 초월자를 베르덴이 죽였다?’

넷 정도면 수왕이 저런 반응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은 숫자였다. 눈치 빠른 그녀는 멋대로 가설을 세워 퍼즐을 맞췄다.

“흐.’

이그나시아가 찬란한 머리카락을 쓸면서 강하게 두피를 짓눌렀다.
뇌가 짜릿했다.

그때 마스터, 벤디에 카에나르가 입술을 뗐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수왕.”
“크큭, 말 그대로의 뜻이지. 궁금하면 본인에게 물어보지 그래.”
“아니면 조언을 구해도 좋겠지요.”

교황, 로마누스가 조언자로 지목한 건 상원의 초월자였다.

“현 다크워튼 마탑주께서는 수왕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죽음의 이해자인 라인델 넥스레온이라면 확답할 수 있으리라. 상원 참석자들의 눈길이 일제히 같은 곳을 향했다.
네크로맨서는 예의 무정한 눈동자로 그 시선들을 고요히 받아들였다.

그 순간.

“그만.”

섭리자가 개입했다. 목소리와 함께 뻗어 나간 마력이 한쪽 방향으로 쏠려 가던 분위기를 단번에 환기시켰다.

“참석자를 추궁하는 건 자유 토론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난다. 정식 문답을 원한다면 소의제를 기다리도록.”

그렇게 소란은 잦아들었지만 의문의 해소를 요구하는 눈빛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초월자 다수 살해는 그만큼 심각한 안건이었다.

정작 호수에 파문을 일으킨 수왕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베르덴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런 것도 감지할 수 있었나. 하기야 라인델처럼 대륙 반대편에서 발생하는 죽음까지 감지할 수 있는 초월자도 있는데. 그 수왕이니 뭘 해도 그리 이상할 건 없겠지.’

느닷없이 폐부를 찔린 셈이지만 베르덴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비교적 이런 건 가벼운 파도에 불과했으므로.
그보다는 수왕이 무슨 목적으로 회의에 임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세계 회의에서 역병 따위를 견디지 못한 약자들을 논하는 건 결국 시간 낭비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도 지배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마음대로 해도 될 텐데. 자국의 인간을 죽이든 말든. 그거야말로 왕이니까.”

수왕이 비릿하게 웃으며 자료에 올라와 있던 국가 하나를 입에 담았다.

“그렇지 않나, 로니아 국왕?”

으득.

베르덴의 뒤에서 군림자가 몸을 떨었다. 그건 분노의 발로였다. 군림자는 로니아 왕국에서 반역을 일으킨 기사였다.

“…….”

베르덴이 벽안만 움직였다.

루아스 교국 측에도 군림자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자가 한 명 있다. 인내하고 있으나 점차 격한 감정이 드러나고 있다.

새로운 성자.
성검, 루엔스의 주인.

‘……! 수왕이 루아스교의 신인을 자극하고 있다. 설마.’

아무래도 수왕이 세계 회의에서 노리는 건 루아스 교국인 듯하다. 정확한 목적은 몰라도 그냥 끝나지는 않을 터.

“킥.”

베르덴과 마찬가지로 그를 간파한 이그나시아가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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