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75

875화 혈연! (2)

베르덴의 나이를 무려 몇 배 곱해야 반젤리스가 살아온 세월에 육박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조상과 후손의 차이다.
한데 형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적어도 그 호칭은 고려할 가치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형님도 괜찮다는 반젤리스의 당당한 태도는 무시했다.

어쨌든.

반젤리스가 8위계의 어느 경지에 도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래도 8위계가 무엇인지는 몸소 체감했다.

‘마법의 규격이 다르다.’

흐름을 따라서 순식간에 이동한 것처럼, 파멸의 마력의 흐름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심장에 피해를 준 충격파처럼, 마지막 그 마력 광선처럼…… 마치 마법이 벽으로 가려진 듯했다.
가려져 있기에 쉽게 감지할 수 없었고, 감지하지 못한 만큼 베르덴 특유의 마법 이해력이 작용할 틈이 없었다.

저마다의 마도 개념을 통달한 8위계의 공통적인 특징인가.
혹은, 반젤리스만의 고유성인가.

지금으로서는 이런 추측만이 전부였다.

정보의 부재 탓이다.

최초의 마탑 창설 이래 공식적으로 확인된 8위계 초월자는 반젤리스 루인 아케나드, 라인델 넥스레온, 데우스 위덴을 포함해 그야말로 한 손을 겨우 채울 정도였으니까.

물론 8위계‘급’으로 추정되는 무투계와 신앙계 초월자까지 포함하면 수는 조금 더 늘겠지만, 그들은 애초에 마법을 다루지 않기에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다.
마법계처럼 그 경지가 뚜렷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은 마법의 시대.

마법 기술력은 첨단을 걷고 있으며, 역대 마법계 초월자의 수는 최대, 그 총 전력은 초월자가 군림하는 세상에서 가히 최강.

모든 계열을 통틀어 초월자가 가장 많은 현재가, 과연 훗날의 재앙 앞에서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베르덴은 이미 결단했다.

하나같이 제멋대로인 존재들과 집단들을 규합해, 과거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는 제3의 세력을 세우겠다고.
이에 필요한 수단은 다양하나, 그중에서 무엇이 핵심인지는 명확했다.

강함.

베르덴이 서둘러 8위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무한>의 가능성을 확장시킨 그의 벽엔 <파멸>의 깨달음이 남았다.

그리고…….

사실 베르덴이 마주한 이 상황도 어느 의미로는 벽이나 다름없었다.

탁.

반젤리스가 베르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베르덴 루인 아케나드. 어감이 좋아. 이름부터 마도왕 혈통이라는 티가 물씬 나는데, 내가 이제까지 몰라봤군.”

반젤리스가 아주 만족스러운 듯 대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이 증명됐으니 생각이 전부 그쪽으로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베르덴이라는 이름까지 혈통과 연결 짓고 있었다.

‘원장님이 들으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시겠군.’

베르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반젤리스의 손을 천천히 떼어 냈다.

“오해했다면 미안하군.”
“음?”
“너희가 <아케인>을 통한 증명으로, 어떤 대답을 원했는지는 이해하지만. 내 핏줄 자체는 마도왕의 혈통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이 자리를 빌려 하나씩 설명하지.”

착각은 여기까지.

베르덴은 <아케인>의 숙련도가 발각되자마자, 즉시 머릿속에서 짜맞춘 그럴듯한 해명을 자연스럽게 늘어놓았다.

“내가 이 초대 마도왕의 로브 [아인베르]를 손에 넣은 건 3년 전의 일이었다.”
“아인베르. 무결하다는 의미의 고대어로군.”
“그때는 지금처럼 칠흑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백금색을 띠고 있었지. 내 행적을 조사했다면 알고 있겠지만.”

반젤리스가 짧은 수염을 쓸었다.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로아프라를 점령하기 전에 차림새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경지에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는 정황까지도.”

당시에 베르덴은 관리자의 가르침을 받고 골렘 연구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칼리아 일행을 습격한 로아프라의 빈테르트를 정리했다.
왕국 뒷세계의 지배자였던 암흑가의 왕도 그때 죽었다.

아케나드 마도국은 진즉 베르덴의 과거를 샅샅이 조사했다.
당연했다.
갑작스레 등장한 마법계 초월자가 누구이며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정도는 알아야 대응 방안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정보국의 힘으로도 베르덴의 리비안트 공국 이전 행적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후 드러난 활동만큼은 훤히 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그에 대해서 너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아케나드 마도국과 에스티리아 왕국, 초대 마도왕과 동대륙. 이 사이에는 뚜렷한 접점이 없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에스티리아 왕국에는 초대 마도왕의 유적이 있었다. 지고한 팔각성이 새겨진.”

……?!

반젤리스와 메드레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시조의 유적이라니?
동대륙에?
그런 듣도 보도 못한 기록은 마도국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엘레마르의 마도사들은 단어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 유적, 당장 가 볼 수 있겠나?”
“일정이 끝나는 대로 안내하지.”

에스티리아 왕국의 동부 늪지대에는 알파의 골렘 연구 시설과 공간 마법진으로 이어져 있는 건축물이 존재한다.
시설에서 제작한 유물 – 사파이어만 있다면 골렘 연구 시설의 출입이 가능한 구조였다.

그곳은 이미 베르덴이 손을 봐 두었다.

외부에 드러낼 이유가 없으니 마법진으로 은폐해 두었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공간 이동 마법진은 따로 감춰 두었다.
게다가 공간 이동진을 발동하는 유물은 베르덴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마도국이 거기에 발을 디딘다?
상관없다.
반젤리스라 해도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초대 마도왕의 흔적뿐일 테니까.

베르덴은 그럴 거라고 자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련의 과정에 초대 마도왕이 창조한 인공 골렘들이 참여했기에.
그와 스치듯 눈이 마주친 알파는 남몰래 짤막한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무튼.”

베르덴이 말을 이었다.

“거기서 [아인베르]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에게 반응해 각인 과정이 진행됐지.”
“스스로 주인을 정한다, 시조께서 제작하신 고대 아티팩트의 특징이지. 역대 마도왕을 포함해 나 또한 그러했고.”

반젤리스의 로브, [올디아렌].

고대어로 찬란한 영광을 뜻하는 진정한 마도왕의 상징. 그 색과 형태는 수 세기가 지났음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인베르]는…… 내가 지식으로 알고 있던 초대 마도왕의 아티팩트들과는 본질적으로 사뭇 달랐다. 불변하지 않고, 착용자와 함께 진화하는 아티팩트였으니까.”
“진화한다?”
“그래, 보다시피.”

실제로 베르덴이 각성한 순간 [아인베르]는 그를 따라 변화했다. 색은 칠흑을 물들었고, 성능은 더욱 강화된 것이다.

“아마 내가 <아케인>의 흐름에 익숙한 이유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초월의 영역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 마력회로가 아예 다른 형태로 변형되는 듯한 감각이 들었으니까.”
“그 말은…… 시조께서 만드신 새로운 로브가 네 신체에 <아케인>의 흐름을 새겼다는 건가? 초월자로 각성하는 과정에서?”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생 본 적도 없는 <아케인>에 익숙할 리 없지 않나.”

베르덴이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거짓된 진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반젤리스조차 의심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에 몰두했다.

‘역시 가주야!’

이자벨라가 보기에 베르덴은 남을 속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또한 내가 개척한 마도는 마력의 변질과 제어에 특화되어 있다. [아인베르]로 인해 달라진 마력회로도 문제 없이 적응할 수 있지. 그건 대련 상대인 너라면 아주 잘 이해하고 있겠지만.”

시선이 몰렸다.

“이거라면 설명은 충분하겠지.”

베르덴은 확언했다.

“결국 내가 <아케인>에 반응한 건 [아인베르]가 원인이다. 마력회로는 마도왕 혈통과 비슷한 특성을 띠었을지언정 그 뿌리는 달라.”
“…….”
“반젤리스, 내 핏줄에 너희가 기대하는 혈통은 없다.”

베르덴의 [아인베르]는 초대 마도왕이 드래곤의 힘을 부여하려다 실패했고, 그 진화된 성능도 생각과 달라 방치된 비운의 아티팩트였다.
다만 진화형 아티팩트는 현 마법계에 존재하지 않는 마법적 개념.

베르덴은 이 점을 이용해 <아케인>의 근거를 [아인베르]에 떠넘겼다.

이야말로 정보가 중요한 이유였다.

반젤리스는 [아인베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초대 마도왕에게 마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있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 후손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반젤리스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설득 방침을 최종으로 결정한다.’

적당한 개연성을 부여했으니 이제는 긍정적으로 납득하게 만들 차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젤리스의 적개심을 없애는 것.

이는 세계의 규합을 위한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반젤리스가 오직 마도국의 입장만을 고려해 시조의 [아인베르]를 뺏으려 든다면 센트럼을 탈출해야 한다.
고대 아티팩트의 각인을 무효화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죽음이므로.

…….

반젤리스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본인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메드레일이 그의 눈치를 조용히 살폈다.

아드리안과 이자벨라는 당장 전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했고, 레바나는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했다.

약 2분이 흘렀다.

반젤리스가 턱에서 손을 떼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베르덴, 네 부모는 어떤 사람들이지?”
“그러─”

베르덴은 곧바로 대답하려고 했으나 저도 모르게 순간 말문이 막혔다.

부모.

아버지, 어머니, 자식으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

리비안트 공국에서는 거짓된 스승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정작 출신을 조작할 때 부모에 대해서는 꾸민 적은 없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베르덴은 그러한 평범한 가족은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남들은 가정이 삶의 시작이었지만, 그는 고아원이 그랬다.

“일찍이 타계, 아니군. 너는 부모가 누구인지 본 적이 없어. 내 추측이 맞나?”
“……그렇다만.”
“그럼 정해졌군.”

반젤리스가 단언했다.

“너는 위대한 혈통이다.”
“내가 제대로 설명했을 텐데.”
“오히려 착각은 네가 한 듯한데. 시조께서 남기신 고대 아티팩트가 베르덴, 너를 주인으로 인정했다는 것 자체가 핏줄의 증명이나 다름없다. 아주 확실한, 확실한 근거지. 네가 내세운 논리를 조금 바꿔 볼까.”

반젤리스는 더욱 확신에 찬 눈빛으로 베르덴을 가리켰다.

“[아인베르]는 단순히 네 마력회로를 변화한 게 아니다. 너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혈통의 권능을 일깨운 것이야. 그래, 그게 맞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논리적으로 옳지!”
“너무 비약적인 논리다.”
“왜 비약적이라고 생각하지?”

반젤리스가 정론을 파고들었다.

“너도 네 출신을 모르지 않나.”
“……!”

베르덴은 마음속으로 동요했다.
외통수다.
부모에 대한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처하지 못한 탓에 구석에 몰렸다. 이렇게 되면 문답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난 마도왕 핏줄이 아니다.

───네가 뭘 알아? 부모도 모르면서.

반젤리스가 불분명한 출신을 계속해서 들먹이면 방도가 없다. 베르덴이 창조한 개연성이 역으로 그를 집어삼켰다.

“왜 그렇게 위대한 혈통임을 부정하는가? 가계를 모르니 단정할 수 없을 텐데. 혹시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나?”

반젤리스는 의도적으로 베르덴의 논리를 깨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핏줄에만 집중하다가 저도 모르게 베르덴의 허점을 찌른 것이다.

벽안에 청금색 눈동자가 반사됐다.

‘……이런.’

그제야 베르덴은 반젤리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해했다. <아케인>이 증명된 이후부터 그는 진즉에 답을 내렸다.

반젤리스는 처음부터 베르덴의 해명에 귀 기울일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든 베르덴을 위대한 혈통으로 끼워 맞추려는 의도였으니까.
그에게 있어서 <아케인>은 마도 혈통을 증명하는 마지막 기준이었다.

‘이미 무의미했다고.’

7대 마도왕을 얕봤다.
7대 마도왕의 광기를 과소평가했다.

틀림없다.

반젤리스 루인 아케나드가 추구하는 이상(理想)은 혈통과 관련됐다.

“아…… 너무 내 관점에서만 생각했군. 느닷없이 마도왕의 핏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적잖이 놀랐을 텐데.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솔직히 부담스럽겠지.”

반젤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베르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도 괜찮다. 마도왕의 가계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금방 적응할 테니까.”

베르덴의 눈가가 약간 떨렸다.

“메드레일, 너도 한마디 해야지.”
“아, 네. 조부님.”

메드레일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고선 베르덴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다가 이내 입술을 떼었다.

“앞으로 오,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파르르.

베르덴의 눈가가 조금 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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