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96

896화 금환일식 (1)

“방주는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위험에서 인류를 철저히 보호하려고 했다면 암암리에 활동하지 않고, 차라리 대륙 군림을 택했을 것이다.
베르덴도 맹세했듯이 방주는 인류의 보호자가 아닌 지도자다.

“하지만 이 중 네 명의 선장은 대륙의 세력에 속해 있으니, 각자 세력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서 활동해도 상관없지. 단, 방주의 조력 없이.”
“상황이 심각해져 방주에서도 개입해야 한다면.”
“그 시기는 윗분께서 결정하실 거다.”

아크에서 의무를 다하는 다리시아와 세력 기반이 없는 아세트로를 제외한 전력.

재액의 토벌자.
미지의 탐색자.
북부의 감시자.
경이의 답파자.

에레스는 프로하스 국왕이기에 대륙 최북부에서 멀리 나오지 못하는 걸 고려하면 선장 세 명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

“답파자, 당신의 우려는 알고 있어요. 하나 선장 회의에서는 대륙의 모든 이해관계에 대해서 의논하지 않는 게 절대적인 규칙이에요. 그 주제가 방주 후보나 인류의 존속 등과 직결되지 않는 한.”

방주의 역사는 까마득하다.

인류가 모든 종족에게서 약자로 취급받은 시절은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과거다.
그런데도 해체되거나 와해되지 않고 오히려 세를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준엄한 규칙과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를 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엄연히 현실이니까요. 인류와 인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 그거야말로 방주가 지금까지 명맥을 이을 수 있었던 비결이죠.”
“예, 너무 많은 걸 끌어안으려다가는 전부 잃기 마련이니까요.”

에레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세트로가 툭 던진 뭔지 모를 문서를 베르덴이 받아 냈다.
그 안에서 마법이 느껴졌다.

“그걸 아르시스에 사용하면 아크의 선착장으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된다.”
“선장 권한이군.”
“대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은 선에서 방주의 정보력을 이용할 수도 있고, 라이브러리의 모든 서책을 열람할 수도 있지.”
“그 대신 매해마다 선장 회의에 참석해서 의무의 현황을 공유해야 하고, 후보들의 교류전을 참관해야 된다. 후보들을 위해서 시련을 극복한 보상을 숙고할 때도 있고. 생각보다 할 게 많아. 뭐, 이 선임 선장이 차차 알려 줄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하하핫.”

레그리트가 머리 뒤로 깍지를 낀 채 시원스럽게 웃었다.

분위기가 제법 떠들썩했다.

여섯 번째 선장, 즉 새로운 동료가 늘었다는 것은 선장들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긴 셈이니.

“회의는 이걸로 마치고자 하는데. 더 할 말 있나?”
“방주의 정보력은 어떻게 이용하지?”
“차후에 경이의 답파자 직속 부대가 조직될 거다. 그들을 통하면 정보망과 연결되지. 당장 급한 정보가 있다면 말해라. 네 부대가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내가 구해다 줄 테니.”
“사람 한 명을 찾고 싶다.”
“사람?”

베르덴에게 다섯 사람의 시선이 꽂혔다. 신성이 방주의 힘을 써서까지 소재를 찾고 있는 인물이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름이 뭐지?”
“제니아.”

베르덴이 나지막이 말했다.

“제니아 데이로스.”

* * *

선장 회의를 마치고 엑소디움의 회장 바깥으로 나갔다. 마의 공포가 먼저 자리를 떠나고 다리시아와 에레스가 그 뒤를 따랐다.

“역시 회의는 짧은 게 좋다니까.”

레그리트가 한껏 기지개를 켜며 베르덴을 향해 빙글 돌았다.

“미리 언질을 해 두자면 히아레마르 탐사는 내가 지휘하기로 했다. 과연 어떤 미지가 벌어질지 기대가 되지 않나?”
“상황이 쉽게 흘러가지 않을 거다.”
“언제는 또 쉬웠다고? 뭐가 됐든 간에 극복하면 그만이지. 침묵의 사막에서처럼, 그리고 네 선장명이 답파자인 것처럼,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녀가 팔짱을 끼었다.

“히아레마르 탐사대에 초월자는 포함되지 않도록 이미 합의됐지만, 사안이 사안이니 사실상 무의미한 조항일 터. 투하르 대제사장을 죽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초월자를 상대할 기회가 또 주어졌군.”
“신체에 문제는 없나?”
“태어났을 때부터 이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상태다.”

황금색 눈동자에 드래곤 특유의 세로 동공이 더 길게 갈라졌다. 그녀가 옷깃을 살짝 들춰 비늘이 일부 돋아난 구릿빛 목덜미를 드러냈다.

“더 보여 줄까?”
“거절하지.”
“하하하, 부끄러워하기는. 다음엔 이자벨라에게 허락받고 오지. 이번에는 서둘러 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대륙에서 보자고.”
“레그리트.”
“응?”

베르덴이 조언을 하나 던졌다.

“비행정은 최대한 많이 대동해라. 전력으로 쓸 수 있는 자들도 태워서.”
“……뭔가 있나 보군.”

레그리트가 입꼬리를 날카롭게 끌어 올렸다.

“충고, 고맙게 받지.”

용인의 기척이 멀어진다.

그나저나 레그리트의 몸을 보면 제국에서 간단히 내보낼 리가 없을 텐데. 제라클 황제도 사고방식이 어지간히 남다른 인물이었다.

아세트로가 다가왔다.

“지금 복귀할 건가?”
“그래야지.”

글러트니 출신 장로를 대면하거나 라이브러리를 느긋하게 둘러보거나 하고 싶었지만, 금환일식까지 고작 나흘 남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무엇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실전에 에온을 투입할 때가 코앞이었다.

“그렇다면 가면서 말하지. 지난번에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나? 방주 후보, 레이라의 내력이 어딘가 기묘하다고.”
“기억한다. 아직 확언할 수 없다고, 사안이 커서 다른 선장에게도 말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알아보는 중이라고 네가 그랬었지. 안 그래도 기회가 되면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때는 의심이었지만, 이제는 확신이다. 기묘한 수준이 아니야. 레이라의 과거는 확실히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

두 초월자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아세트로가 품속에서 레이라의 신상 정보가 담긴 문서를 건넸다.
그녀의 과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테르네티아 연방 북서쪽에 자리한 ‘헤스니어’. 인구수는 70명조차 되지 않는 산골 마을이 레이라의 고향이다.”

부모와 남동생.

레이라의 가족은 총 4명이었다.

“레이라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악마에게 가족들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녀의 얼굴에는 예의 저주가 짙게 남았지. 그것이 레이라가 직접 밝힌, 방주에서도 예전에 확인을 마친 과거다.”
“…….”
“이 완벽하고 평범한 비극으로 보이는 기록에서, 내가 의심을 품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레이라의 생체 조직이었지.”

악마의 저주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자료가 필요 불가결했고, 그녀의 동의하에 머리카락, 손톱, 피 몇 방울 등을 받아 연구했다.

물론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어느 모로 봐도 악마의 흔적 따위 없는 인간의 것이었다.
레이라가 방주에 입단한 이후 주기적으로 관찰을 시도했지만 지극히 당연하게도 발견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리시아가 관측한 대로 레이라는 엄연히 순수한 인간이었다.
방주에 들어올 자격을 갖춘.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레이라의 피에서 갑자기 변화가 생겼다.”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지 오래된 생체 조직에 변화가 생겼다?”
“아주 찰나였지만 검은색으로 물들었다가 다시 원래의 붉은색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뒤늦게 마법으로 포착했다.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당시에는 주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반응이 늦었지.”

베르덴이 레이라의 자료를 훑어보던 손길을 잠깐 멈췄다.

“정확히 몇 년 전 일이지?
“정확히 4년이 되어 가는군. 마도 축제 중간에 보헤미른 마탑에서 동력원 폭주 사태가 일어났을 때니.”

……!

운명의 수레바퀴가 파괴된 그날.
레이라의 생체 조직이 기묘한 반응을 보인 그날.

베르덴이 생각하기에 두 시기의 맞물림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

“이후 레이라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방주에서 확인을 마친 레이라의 내력을 직접 자세히 차근차근 되짚어 봤지. 여기서 미묘한 균열을 확인했다.”

아세트로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레이라가 모험가 길드에 들어오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확인이 안 돼.”
“기록에 공백이 있다는 건가.”
“레이라는 무투계의 재능을 자각하고 나름대로 검과 육체를 스스로 단련했다. 조잡한 가면을 쓴 채 여러 장소를 전전하며 남들의 시선을 최대한 피하긴 했지만, 무기와 음식을 구하려면 어쩔 수 없이 사회에 부대껴 살아가야만 하지. 응당 그녀에 대한 목격담이 있을 수밖에. 실제로 이는 방주에서 수년 전에 직접 확인한 바다.”

그런데.

“내가 저번에 알아보니 레이라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 단 한 명도. 가면을 써서 잊기 어려운 인상인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결정적인 건 레이라의 고향이었다.”

아세트로가 미간을 좁혔다.

“테르테니아 연방에 헤스니어라는 마을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있었지.”
“……!”
“약 6세기 전에.”

헤스니어 마을은 역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래 전에 멸망한 마을이었다. 루아스교와 대악마가 충돌한 1차 대성전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레이라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세계의 주시자가 관측했었던 헤스니어 마을은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레이라를 보았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였을까…….

“세계의 주시자가 지켜보고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좀 더 가까이서 레이라를 관찰할 사람이 필요해. 네가 적임자겠지.”

아세트로가 단안경을 고쳐 썼다.

“이 또한 ‘경이’일지도 모르니.”

세상의 경이를 밝혀내고 규정하라.
인류의 적을.

아세트로 올딘은 레이라의 배경에 있는 악마를 경계했다. 경이의 답파자. 베르덴이 수행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 * *

블랙 아워의 대전장.

그 선착장에서 에온의 비행정 함대가 출항 대기 중이었다. 베르덴 일행이 하늘섬에서 복귀한 지 약 이틀이 지났다.

이데라트 연맹국에서 진행된 회의는 바로 어제 끝났지만, 회의의 첫 번째 주제였던 히아레마르 탐사 협의를 마친 지는 며칠이 지난 시점.
탐사 논의가 끝나자마자 각 세력에 서로 조율한 탐사 일정과 조약이 전달되었기에 준비를 갖추는 데 어떤 애로 사항도 없었다.

“히아레마르 내해에 진입한 후 세 시간 간격으로 보고하고,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연락해라. 통신 장치 사용이 불가능할 경우엔 아군과 합류할 때까지 안전을 도모하고. 오히려 무리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예, 폐하.”
“맡겨 주십시오.”

일곱 번째 위상, 그레이브 러드워스.
여덟 번째 위상, 알더니스.

과거 블랙 아워의 상위 간부들이 탐사의 지휘를 맡았다.
표면적으로.

베르덴이 고개를 틀었다.

“조약은 허울이다. 적대적인 초월자와의 교전을 상정하고 움직여라. 예의 상황이 발생할 것 같으면 즉시 ‘그 팔찌’로 권역을 결정하도록.”

아드리안이 자그마한 금속 눈동자가 여럿 박힌 은색 팔찌를 들어 보였다. 그는 짙은 남색의 로브를 푹 눌러썼다.

“용검 마그라스는 맡기겠다. 주검의 영광이든, 델하룬에 있는 초월자든. 네 앞을 가로막는 자는 전부 베어라.”

힘 조절은 필요 없다.

아드리안이 단호한 기세를 보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주군.”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행정을 향해 손짓했다.

아드리안이 전 함대에 명령했다.

“출항.”
“출항!!!”

비행정 함대가 맹렬한 소리를 내며 선착장 위로 떠올랐다. 히아레마르 내해를 탐사하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명백히 과잉 전력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치열한 교전을 상정했으니까.

알파와 베타, 그리고 이자벨라가 후방에서 크게 손을 흔들었다.

베르덴이 물었다.

“알파, 베타. 그 렐릭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확인했나?”

베르덴의 렐릭.

감마가 무엇을 남겼는지 살펴보는 건 그 형제의 몫이었다. 알파가 양팔로 입방체를 머리 위로 들어 보였다.

[확인. 기술 설계도.]

[새로운 골렘 기술을 확인했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보다 명백히 상위의 기술력입니다.]

신(新) 골렘 기술…….

어째서 감마가 그런 걸 전달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다. 또 어떤 안배가 숨어 있는지도 아직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을 생각은 없지만.’

베르덴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서 에온의 전력 강화를 도모했다. 주검의 영광과 동떨어진 세월의 간극을 채우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마도 축제가 다가왔다.

* * *

마도 축제까지 며칠 남지 않은 때.

각 세력이 드넓은 히아레마르 내해를 탐사하는 데 집중한 지 이틀이 지났다. 아직까지 용검의 소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어?”

하늘이 점차 어두워졌다.

고개를 추켜올리니 어느샌가 나타난 달이 태양의 집어삼키고 있다.

햇빛이 사라졌다.

원래라면 각 대륙에서 관측 각도가 달라 시간 차이가 발생했어야 하지만, 그 기이한 현상은 전 세계에서 동시에, 그리고 동일하게 일어났다.

이윽고 달이 태양을 가렸다.

달이 가리지 못한 태양의 형체가 흰 띠 모양으로 보였다.
마치 금반지처럼.

어떤 마법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금환일식……?”

서녘에 걸린 칠흑의 관.
어머니의 차갑고 따스한 품에.
그 웅덩이에.
피를 머금은 용의 전신이 솟으리라.

바아렌 모루의 예언서에 적힌 금환일식이 지금 발생했다.

쿠구구구구…….

바다가───

히아레마르 내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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