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36

936화 옛 왕 (1)

“루네시카 안테르노아.”

공기가 무거워졌다.

“흘러간 세기를 고하라.”

모두의 눈길이 거대한 크레이터 안쪽의 어둠으로 기울었다. 누군가가 저 밑바닥에 있다. 그것도 보통이 아닌 강대한 존재가.

‘루네시카는…… 죽었을 텐데?’

베르덴이 직접 확인했다.
단언할 수 있다.
루네시카는 몸 자체가 붕괴되고 소멸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살아날 가망조차 없이 두 번째 하인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

베르덴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던 구덩이 끄트머리에 웬 고깃덩어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깔끔한 뼈의 단면, 붉은 살점.
형태로 보아 저건 정교한 도구로 절단된 여성의 우측 네 번째 발가락이었다.

이변이 발생했다.

마치 감춰져 있던 신체가 드러나듯이 루네시카의 몸이 나타났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투명하게 비치는 육신에서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이 절단된 부위와 겹치는 순간 존재가 실체화되었다.
현실에 나타난 그 육체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와 같은 몰골이었다.

“허억─!”

루네시카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떴다.
생기가 깃들었다.
황급히 상반신을 일으킨 그녀가 목덜미와 심장이 위치한 가슴, 또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상황을 이해한 듯 구덩이를 향해 즉각 예를 갖추었다.

“불사의 의식을 거행하고 8세기가 지난 현재.”

루네시카의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황실 직속 크세리온의 영광의 부단장, 루네시카 안테르노아. 아칸드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 황제 폐하의 재림을 감축드립니다.”

지축이 흔들렸다.

“오랜 세월이 흘렀군.”

구덩이에서 솟아오른 그림자가 절벽의 경계선에 발을 디뎠다. 건틀릿을 파괴하느라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레그리트가 시선을 높였다.

아드리안보다 크고, 가레스보다는 작은 키.
아주 과하지도, 결코 부족하지도 않은 체격.
어깨까지 내려온 흑발.
새까만 눈동자.
밝은색에 가까운 피부.
수염은 딱히 없었으며, 선이 날카로웠다. 근엄한 위압감이 풍겼다. 외견상 베르덴보다 나이가 두세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젊음이었다.

주검의 영광이 그토록 바라던 존재.

옛 왕이 부활했다.

* * *

주검의 영광이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었으니 곧 부활할 드라벤도 기뻐하리라.

“이렇게 폐하를 다시 뵙게 되어 영…… 광…….”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든 루네시카가 얼어붙었다.

“어, 어떻게. 지고한 옥체가.”

우드드득.

옛 왕은 대답하지 않고 가볍게 크세리온 제국을 상징하는 철혈의 왕관이 새겨 넣어진 제복의 상의를 새까만 망토와 함께 뜯어냈다.
이는 과거 불사의 의식을 치르기 직전에 입었던 의복이었다.

“……성은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뜯어진 옷은 루네시카에게 던져졌다. 다시 삶을 얻은 루네시카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기에 그걸로 몸을 단정히 했다.
그녀는 이내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베르덴을 노려보았다.

‘환각 따위가 아니다. 정말로 되살아났어.’

베르덴은 어떻게든 신체의 부담을 가라앉히면서 통찰력을 발휘했다. 어느 모로 봐도 루네시카의 목이 붙어 있다.

이게 부활인가?
루아스교의 기적과 같은?

‘정황상 루네시카가 과거 잘라 놓았던 발가락이 부활의 매개체로 쓰인 걸로 보인다. 그런가. 옛 왕의 봉인이 풀리게 되면 불멸의 세상이 온다고 한 게 이걸 말하는 거였나.’

부활의 원리는 무엇인지.
부활 가능한 횟수는 몇 번인지.
제약은 없는지.
드라벤 르마르크도 다시 살아나는지.
…….

베르덴은 머릿속으로 의문들을 나열하며 옛 왕을 주목했다. 훤히 드러난 옛 왕의 상반신에서 그 기력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육체의 경지를 가늠할 수 없다.’

불사의 의식을 성공한 뒤라서 그런지 안데스의 기억에서 목격했던, 초월자 전쟁 당시의 격과 차이가 느껴졌다.
명확하지 않지만.
베르덴이 이제까지 본 초월자 중에서 독보적인 수준이다. 무투계 초월자. 당대의 수왕과 비교하면 과연 어떨까.

대륙을 유린했다는 초월자를 관찰하던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온전하지 못한 것 같군.’

뚝…… 뚝…… 뚝…….

옛 왕의 전신에 난 상처에서 새까만 피가 흐르고 있다. 그중에서 드라벤이 이식했던 왼팔과 왼다리는 중상에 한없이 가까웠다.
본래 어떤 경우에도 손상되지 않아야 할 완성된 육체가 베르덴의 <멸뢰>를 끝끝내 감당하지 못하고 장벽이 깨진 것이다.

“…….”

루네시카는 부활했으나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가. 아무튼 전력 외로 판단해도 좋을 정도다.
주검의 영광과의 사생결단과 <멸뢰>의 충격으로 베르덴 측의 상태도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건 옛 왕도 마찬가지.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윽.

옛 왕은 드라벤의 오른팔에서 비롯되었던 육편을 집어 들었다. 한데 루네시카와 다르게 드라벤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내 의식을 완성하기 위해서 새로운 세상을 누릴 기회를 버렸군, 드라벤 르마르크 단장. 그것이 너의 ‘선택’인가.”

루네시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장이 부활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본래 있어서는 안 될,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는 세상이 도래한 결과다.”

옛 왕이 손을 움켜쥐어 드라벤의 일부를 짓이겨 없애 버렸다.

“그나저나.”

검은 눈동자가 천천히 주변을 훑었다.

“멸종했던 종족이 하나.”

레그리트 나르실리아.

“종류가 다른 인형이 둘.”

레온하르트와 그레고르반 추기경.

“오랜 육친(肉親)이 하나.”

카스티안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

“노예 하나.”

가레스 시릴리아드.

“운명 파괴자.”

베르덴.

“운명 파괴자를 따르는 자가 하나.”

아드리안 첸버스.

느긋한 태도로 그들의 면면을 살핀 옛 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통찰력. 날 때부터 초월자였던 그는 운명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혜안을 가졌다.

“여러모로 특별한 세대군.”

예리한 바람이 스쳤다.

“투쟁심도 넘치고.”

쿠웅─!

레그리트가 강하게 발을 구르며 황금색 벼락과 함께 권격을 내질렀다.

* * *

옛 왕이 여유롭게 구는 동안에 그 육체의 부상을 면밀하게 살폈다.
절대 가볍지 않다. 초월자 전쟁의 주역이라고 할지언정 강대한 능력을 자유롭게 다룰 수는 없을 터였다.

‘선수는 빼앗기지 않는다.’

레그리트는 용인의 근력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마도를 극성으로 개방했다. 황금의 건틀릿이 뇌명을 터뜨렸다.

섬진閃震

기예까지 더해진 일격이 옛 왕의 복부를 향해 직행했다.

콰과과과과광!

샛노란 전격이 육신을 관통했다. 레그리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방 한 방 힘을 실어 일격을 이어 나갔다.
무릎, 목, 얼굴.
그때마다 공동의 대기가 거칠게 격동하며 지면이 흔들렸다.

“썩어 문드러진 구시대의 유물 따위가……! 감히 누구보고 노예라는 거냐!!!”

무전 – 대태륜大泰輪

가레스가 격분하며 내지른 절기가 거센 돌풍을 만들어 냈다. 레그리트가 휩쓸리든 말든 거대한 산을 무너뜨리는 힘이 굽이쳤다.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고개가 살짝 틀어진 옛 왕이 가레스의 움직임을 간파했다.

묵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옛 왕이 제자리에서 고작 한 손을 뻗어 가레스의 주먹을 붙잡았다.
파멸에 생겨난 상처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타의에 목숨을 저당 잡힌 존재를 노예가 아니면 뭐라고 부를까.”
“……!!”
“빛이 있기에 숨겨 둔 전력을 내지 못하는 처지가 안쓰럽구나.”

드라벤의 이식한 신체가 보여 주었던 힘, 그를 웃도는 초월적인 신체 능력.

쩌어어어억!

복부가 진탕했다. 머리채를 잡히고 순식간에 아래로 끌려 내려가선 날아오는 무릎에 정통으로 안면을 강타당했다.
정신이 번뜩 뜨일 듯한 충격에 가레스가 이를 악물고 다시 기예를 펼쳤다. 레그리트 또한 공세에 합류했다.

크세리온 제국 격투술.

옛 왕은 모든 공격을 피하거나 흘려내지 않고 힘으로 맞섰다. 주먹이 쇄도하면 주먹을 부딪치고, 발차기가 오면 발차기로 상대했다.
수십 합이 교차하는 공방 속에서 이내 두 사람이 멈칫했다.

“완강하나 막강하지 않고, 견고하나 압도적이지 않군. 어중간한 경지다.”

가레스의 균형이 깨졌다.

“‘놈’에게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계속 그렇겠지.”

방어를 무시하는 옆차기에 가레스가 나가떨어져 멀리 벽에 꽂혔다. 공동은 도시 규모로 넓어졌으니, 거의 도시를 가로지른 셈이었다.

“너는 개인의 기술은 정교하나, 종족으로서 아직 미숙하고.”
“큽?!”

옛 왕과 서로 팔꿈치를 부딪친 레그리트가 뒤로 물러났다.

‘팔이 부러질 뻔했다.’

용인의 저항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그녀도 아주 잘 알고 있다. 한데 그걸 부딪쳐 부술 정도라니.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신체란 말인가.
게다가 아까부터 종족을 들먹이는데 마족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그때, 옛 왕이 말했다.

“순수한 강자가 하나, 그리고 스스로 견고하다고 생각하는 자가 하나.”

기척이 늘어났다.

“전쟁의 구색이 점차 잡히는군.”

벤디에가 나타난 마검 [모르베인]을 쥐고 옛 왕과 충돌했다. 인드렌이 지팡이를 휘저어 옛 왕의 틈새를 물색했다.

“그 초위 마법에도 몸이 파괴되지 않은 겐가……! 그야말로 괴물이로군.”

둘 다 <멸뢰>의 여파 탓에 육체의 부상 정도가 더 심해지긴 했지만 당장 휴식해야 할 정도로 지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옛 왕도 큰 부상을 당한 상태라는 사실만 주목했다.

“성자님, 위험합니다. 문헌에 따르면 옛 왕의 힘은…….”
“저는, 성자입니다.”

레온하르트가 가까스로 전의를 되찾고는 성검을 쥐고 돌진했다. 추기경이 만류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압!”

800년 전처럼.

성자가 옛 왕에 맞섰다.

* * *

카스티안은 가파르게 호흡하며 검을 말아 쥔 손을 떨었다.

‘결국 형님이 부활하셨다.’

대륙의 절반이 불타는 악몽 같은 광경이 뇌리를 스쳐 지났다. 형님에게 희생당한 수많은 영혼조차도 복수해 달라며 아우성거리는 한편 일부는 지레 겁을 먹었다.

그러나…….

‘불사의 의식을 치렀음에도 불완전해.’

초월자들의 합공에 결국 형님은 치명상을 입어 의식을 치러야 했다. 타고나면서 얻지 못한 항상성을 대체해야 했다.
아무리 형님이라고 할지언정 절대적인 무적은 아니었다.

죽인다.
봉인 없이.

형님이 생애 두 번째로 큰 부상을 당한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 카스티안의 검은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서렸다.

옛 왕의 동생이 참전했다.

* * *

“……아드리안, 움직일 수 있나?”
“예, 잠깐 정도는. 전력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산드로의 열매 포션을 마셨음에도 아드리안의 상처는 쉬이 낫지 않았다. 초월기가 남긴 자상에 기가 서려 회복을 방해했다.

평소라면 베르덴이 파멸을 지정해 흔적만 없앨 수 있을 터였지만, 마도와 마력이 통제를 벗어나 힘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베르덴도 호흡이 뒤틀릴 만큼 지친 상태였다.

‘파멸은, 쓸 수 없다.’

그러니 아티팩트의 힘을 빌릴 수밖에.

* * *

벤디에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공세에 옛 왕이 대응했다.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방어와 반격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 순간.

쿠구구구구구……!

무한한 마력이 일대를 위압했다.

“진정한 전쟁을 치르기 전에 서로를 가늠해 보는 것도 좋을 테지.”

옛 왕이 손짓했다.

용검 마그라스가 날아와 그의 손에 쥐어졌다.

“와라, 운명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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