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화 신들이 몰락한 시대 (3)
휘오오오오───
중앙 대륙에 자리한 푸른 산맥의 정상부에는 항상 눈보라가 몰아친다.
흔한 겨울의 한기를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골수까지 얼어 버릴 것 같은 추위에는, 보온 기능을 갖춘 매직 아이템조차도 장시간 노출되면 망가지고 말 정도다.
신께서 강림하시니.
신을 위한 신전을 조각하라.
수십 일 전에 호세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이러한 산맥의 혹한을 왕복했고, 베르덴이 초월자가 됐던 그 설산 동굴을 찾았다.
그 깊은 공동에서…….
거대한 돌기둥 전체를 깎아서 윗부분부터 신전을 조각했다. 여러 기둥을 구성하고, 원을 그리는 계단을 만들고, 벽화를 새겼다.
커다란 신의 조각상도 세공했으나 레나르, 페이, 하에넬과 함께 마무리를 장식하기 위해 얼굴 조형만 남겨 둔 상태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이들의 열병 탓에 호세는 푸른 산맥에서 떠나야만 했으며, 이내는 글러트니에 붙잡히면서 신전은 방치되고 말았다.
완성될 수 없는 신전.
고독한 어둠.
그런데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규칙적인 소리.
똑…… 똑…… 똑…….
높은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정확히 조각상 위로 떨어진다.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가 볼을 타고 턱끝에 방울진다.
얼음 조각을 머금은 물이 중력을 받아 끊임없이 낙하하니, 얼어붙은 조각상조차도 조금씩 깎여 나갈 수밖에 없으니.
차츰 섬세한 윤곽을 갖춰 가면서 베르덴의 얼굴이 빚어진다.
똑…… 똑…….
그것은 마치 신전(神殿)이 스스로 완성되는 듯한 광경이었다.
* * *
태고의 모험.
히히힝!
안시르의 군마는 호화로워서 눈에 띄기에 적당한 곳에 풀어 주었다. 평범한 로브를 둘러 아이젠폴까지 숨긴 베르덴이 성문에 도착했다.
어디까지나 역할극으로 부여받은 것은 배신당한 용병이다. 두 번째 게임의 무대에 오른 것은 베르덴의 본체다.
베르덴은 후드를 푹 눌러써서 잿빛의 머리색까지 가렸다가, 병사들과 함께 성문 앞에 자리한 통행세 징수원에게 슬쩍 얼굴만 보였다.
“여, 여행객…… 이신가 보군요. 통행증이 없으면 통행세는 대동화 3입니다. 이, 임시 통행증은 은화 1개입니다…….”
귀족 출신이라고 생각했는지 징수원의 태도가 깍듯했다. 사기 치는 기색은 없었지만 사기라고 해도 딱히 개의치 않았다.
자기 돈도 아니니까.
금화도 여러 개 있으니 돈이 부족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름이? 애셔. 애셔. 애셔, 애셔…… 자, 여기 임시 통행증입니다. 분실하면 다음 발급 때는 은화가 2개이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하하.”
징수원은 굽신거리며 당장 길을 비켜 주었다.
덕분에 베르덴은 자세한 몸수색도 당하지 않고 임시 통행증을 챙겨 도시로 들어올 수 있었다. 성문에 난 작은 문을 넘은 그의 시야에 운명이 존재하지 않는 시절의 도시가 드리웠다.
‘정말로…….’
베르덴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로 형편없기 짝이 없군.’
불만이 한둘이 아니다.
일단은 악취가 쉽지 않다.
에스티리아 왕국의 2대 금지 중 하나인 빛이 들지 않는 동굴에서 이형종의 시체들이 썩는 것과 비슷할 정도였는데…….
그때보다 베르덴의 후각이 훨씬 더 뛰어난 터라 충격은 몇 배로 다가왔다.
“아, 다른 데다가 버리라니까!”
“누가 거기 있으래!”
건물에서 요강에 쌓인 변을 거리에 내다 버리고 있고, 맞을 뻔했던 사람은 역정을 내다가 대충 옷을 털고 가 버린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는 흙과 오물투성이였으며, 척 보니 배수로와 하수도의 체계 또한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모습이다.
‘세계의 틈새에서 봤던 운명의 도시, 렌디바르도 기술적으로 조악하고 열악했지만 이곳은 흡사 원시 시대군. 시대 배경은 같은데 대제국의 수도와 변경 도시의 차이인가.’
이런 거리에서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지 현대인, 그것도 마탑 출신인 베르덴은 이해할 수 없었다.
면역력이 약하면 이 시대에서는 오래 살아남기 어려워 보인다.
알파와 베타가 슬쩍 도시의 풍경을 보고 있다가 냉큼 갑옷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로브로 가려 줄 테니까 좀 더 느긋하게 구경해도 괜찮다만.”
[사양.]
[공기가 좋지 않습니다. 프레임이 더러워질지도 모릅니다.]
알파와 베타도 오물거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작게 웃은 베르덴은 가슴팍을 두드리곤 앞으로 나아갔다.
그나마 밟을 수 있는 땅을 밟아 정보를 얻을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도시 북쪽에 있는 작은 성채가 보였다.
‘변경백은 저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무작정 쳐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고대 아티팩트 같은 것이 또 있을지도 모르니. 놈이 정확한 위치부터 알아내는 게 좋겠는데…… 어디가 좋을까.’
주점은 나쁘지 않지만 변경백의 소재를 얻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이 시대는 현대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각박하다.
노예 제도가 합법이며.
베르덴이 아는 국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경죄로 즉결 처형을 당해도 괜찮다는 각오로 변경백에 관한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용병들은 변경백에 대해 자세하게 아는 게 거의 없을 테니 상관없지만, 시종 하나 정도는 살려 볼 걸 그랬나.’
효과를 모르는 고대 아티팩트에 바로 대처하느라 집중력을 일순간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기사와 그 주변을 일격에 처리한 것이다.
베르덴은 만전이 아니기에, 경계심을 높인 채로 유지한 결과였다.
뭐, 지나간 일이다.
‘……음?’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도시를 탐사하다가 문득 멈춰 섰다. 간판에 책이 그려진 상점. 베르덴은 홀린 듯 그 안으로 들어섰다.
딸랑, 딸라아앙.
종소리가 나는데도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장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케케묵은 종이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여긴 그나마 낫군.’
변경백에 대한 단서를 얻을 만한 장소는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베르덴이 대충 책 한 권을 훑었다. 역시나 모형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내용이 차 있다.
사소한 것 하나도 빼곡하다.
영혼이 있어도 몸은 가짜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그도 게임에 불과한 이 세상을 저도 모르게 현실처럼 생각했으리라.
‘아무튼.’
베르덴은 태고 시대의 서점이 어떤지 구경하면서 책들을 확인했다. 지식을 쌓는다. 어쩌면 혹시 모를 단서가 있을지도.
[애셔 폐하. 호기심?]
“조금은.”
그때였다.
베르덴은 책장 한가운데 자리한 감청색의 책등을 발견했다. 특색이 있지는 않으나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갔다.
끄트머리를 잡았다.
동시에 베르덴의 마법적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해 정신을 자극했다.
‘마법과 관련된 물건.’
베르덴은 당장 책장을 넘기다가 멈칫했다. 안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기에. 이를 자세히 관찰하던 베르덴이 기시감을 느꼈다.
‘잠깐. 이건…….’
베르덴은 책 전체를 파헤치듯 살펴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마법서?”
마법서(魔法書)란 마석을 소모하여 특정 마법을 등록하고, 사용자의 마법적 역량을 강화하는 성능을 지닌 마법 물품.
지금의 베르덴은 대지의 마법서, 전격의 마법서, 화염의 마법서를 직접 개방해서 가지고 있으며, 그 전부를 방주에서 받은 [다원의 마법서]에 흡수시켜 활용하고 있다.
허름한 서점에서 베르덴이 아는 것과는 다르게 생긴 마법서를 찾았다. 그러나 외형이 달라도 진짜 마법서임이 느껴졌다.
그것도 미등록된 걸로 보인다.
좋아해야 마땅하나 베르덴은 그보다 당혹감이 먼저 일었다.
“마법서는 오직 아티슨 마탑만이 제작할 수 있는 물건인데, 왜 태고의 시대에 마법서와 비슷한 게 있는 거지?”
* * *
아티슨 마탑에서 마법서를 제작하기는 하지만 미등록 마법서가 시중에 풀리는 경우는 고작해야 몇 년에 한 번이다.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미등록 마법서는 수백억 엘크가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책이므로. 괜히 보헤미른 마탑에서 보물고에 보관했던 것이 아니고, 베르덴이 괜히 그걸 훔친 것이 아니다.
‘호스트가 외형을 바꿔서 일부러 놓은 건…… 아닐 테고.’
태고의 시대를 여러 번 강조한 호스트가 애써 현대의 물건을 넣어 놨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아티슨 마탑에서 태고 시대의 마법서를 발견 및 분석한 결과로 현대의 마법서를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의.]
타당한 가설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고대 아티팩트도 세월을 넘어 현대에서 활약하기도 하니까, 태고 시대의 마법서도 운명과 시대를 거쳐 현대에 전해졌을 확률을 배제할 수는 없을 터.
‘그래도 마음에 걸린다.’
베르덴이 처음으로 그링 아르카넘을 펼쳤을 때 호스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다원의 마법서]를 소유하고 있군. 그렇다면 이걸로 인사치레 겸 간단히 예물을 대신하도록 하마.}
그러고 예물로 준 것이 미등록 마법서였다.
‘[다원의 마법서]는 원소 마법서만을 흡수하는 아티팩트. 기존 마법서와는 달리 마법을 등록할 필요 없이 해당 속성 마법을 전반적으로 강화한다…… 이게 내가 아는 전부인데, 혹시 숨겨진 다른 기능이 있는 걸까?’
마법서의 근원은 무엇인가.
새로운 지식의 가능성을 접했다고 여긴 베르덴은 게임의 기록서를 살폈다.
두 번째 게임: 태고의 모험.
참가자: 네 번째 주빈 – 애셔.
<지식의 과업: ‘새벽의 별빛’을 획득하라>
[ 습득 지식 ]
•샛별의 신앙이 몰락했다.
•태고의 모험의 배경은 제2 사도가 인간 시절에 군림한 시대다.
•마법서의 기원은?
[ 습득 아이템 ]
•장비: 침강의 처형 – 아이젠폴 (Eisenfall)
•도구: 미등록 마법서 (태고)
기록서가 갱신됐다.
베르덴은 먼 시대의 마법서를 어루만지며 호흡을 갈무리했다. 태고의 모험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피부로 이해했다.
‘이곳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얻을지도 모른다.’
지식욕이 일었다.
베르덴은 책장을 크게 둘러보고는 더 이상 이런 마법서 같은 보물이 없음을 확신한 다음에 계산대로 향했다.
정신없이 졸고 있던 노인장은 귓가를 후비면서 길게 하품했다.
“잉? 아, 그거…… 안 파는 책인데.”
탁.
베르덴은 대금으로 은화 여섯 개를 올려놨다가 금화 한 개를 추가로 올렸다. 더 이상 협상은 없을 거라는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감사합니다, 손님.”
늙은 주인장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처세술이 제법이다.
뜻밖에 마법서를 얻은 베르덴이 이 세상에 대한 깊은 의문을 품으며 서점을 나가려던 찰나 바깥에서 누가 들어왔다.
“주인장, 새로 책 들어온 것 있소?”
늠름한 갑옷을 착용한 건장한 사내.
갑옷에 상징이 새겨져 있다.
베르덴이 처리한 안시르처럼 브로흐나트 변경백 가문에 속한 기사였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루자크 경! 마침 새로운 책이 들어오긴 했는데,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은 죄다 챙겨 놓았…….”
“아, 잠시만.”
루자크라 불린 기사가 노인장을 제지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이에 베르덴은 후드를 들추며 루자크의 시선을 마주했다.
베르덴이 물었다.
“루자크 팔테인, 너인가?”
“네 번째 주빈! 역시 네 번째 주빈이셨구려!”
아르카디옴의 열여섯 번째 귀빈, 루자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가움을 표했다.
* * *
루자크의 신분으로 어느 주점의 밀실을 빌려서 서로 마주 앉았다. 알파와 베타도 갑옷 바깥으로 나와 베르덴 좌우를 차지했다.
“기사 역할을 부여받았을 줄은 몰랐군. 그것도 브로흐나트 변경백의.”
“운이 좋았소. 나도 모험극에서 높은 신분을 받는 것은 처음이오. 시작하자마자 위험에 처한 용병 같은 것이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었지.”
“…….”
배신당한 용병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시작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베르덴 정도의 무력이 없었으면 그냥 죽었으리라.
[루자크. 왜 인간 모습? 바다코끼리 코 어디?]
[회백색의 뇌도 보이지 않습니다.]
베르덴이 그러하듯 게임으로 들어온 참가자들은 본래의 모습이 반영된다. 루자크 또한 그래야 하지만 그는 지금 제법 잘생긴 인간 기사였다.
루자크가 껄껄 웃었다.
“말하자면 이게 내 본모습이오.”
[본모습?]
“나도 뒤통수가 깨져 회백색의 뇌가 훤히 보이고, 바다코끼리처럼 두껍고 거친 코를 가지고 태어난 거 아니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여하튼 지금 이런 모습이 진짜 나라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아르카디옴의 다른 참가자들도 그럴 거요. 그래서 모험 게임을 다들 좋아하는 것이오.”
루자크가 손을 쥐었다가 폈다.
“뭔가 자유롭기 때문에…….”
태고의 시대라는 것이 큰 문제지만──루자크는 암울하게 중얼거렸다.
‘루자크가 인간?’
베르덴은 자신의 기록서를 다시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참아냈다. 루자크가 어떤 지식의 과업을 이행하는지 모르니까, 섣불리 과업을 내보일 수는 없다.
방심은 금물이다.
루자크와 정반대의 과업이라면 적이 될 수 있다. 루자크를 해할 생각은 딱히 없지만 루자크는 똑같은 생각이 아닐 수도 있으므로.
‘루자크의 존재가 뭔지는 나중에 풀기로 하고.’
베르덴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루자크, 네가 모시는 변경백이 샛별의 신앙자를 찾고 있다고 하던데.”
“아, 그렇소. 현재 용병들을 모으고 있소. 단두의 기사라고 불리는 안시르가 맡고 있지. 또한 변경백에게 충성하는 하급 귀족들도 각자 병사를 이끌고 오고 있다고 하오.”
“샛별의 신앙자에 대한 소문이 또 거짓일 수도 있다고 하던데, 상당히 본격적이군.”
“소재를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오. 안시르가 왼팔이라면, 내가 브로흐나트 변경백의 오른팔이라서 잘 알고 있지. 하하.”
“아…… 그래. 그거참 다행이군.”
베르덴은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기댔다.
알파와 베타가 눈을 빛냈다.
[루자크 팔테인에게 선택지는 둘입니다.]
“음? 무슨 선택지 말이오?”
[첫 번째. 애셔 폐하에게 순순히 협조한다.]
알파가 베르덴의 로브를 들췄다. 안시르의 검인 아이젠폴이 훤히 드러났다. 루자크가 눈을 깜빡이며 흠칫했다.
[두 번째. 맞는다.]
“아.”
루자크는 표정을 꿈틀거리다가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는 듯 턱을 당겼다.
“……네 번째 주빈께서는 새벽녘의 기사를 찾고 있구려. 필시 지식의 과업과 연관된 것일 터. 저, 그럼 거래하는 게 어떻소?”
“거래?”
“샛별의 신앙자들의 소재를 알려 드릴 테니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되겠소?”
“말해라.”
루자크가 상체를 가까이하며 손을 모았다.
“브로흐나트 변경백을 죽여 주시오.”
[왜?]
“반역의 기사. 그것이 내가 이 게임에서 부여받은 역할과 상황이기 때문이오.”
* * *
브로흐나트 변경백의 영지와 아주 인접한 라흐 남작 가문이, 샛별의 신앙자 건으로 변경백을 만나기 위해 병사들을 준비했다.
라흐 남작이 말했다.
“딸아, 변경백께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 무조건! 절대 실례를 끼쳐서는 안 돼.”
“응.”
“명성 높은 마법 선생을 붙여 줄 테니까 변경백의 눈에 들려고 노력해라. 말투도 고치고 말이다. 내 말을 이해했으리라 믿겠다.”
“시끄러워.”
라흐 남작의 딸인 ‘테린’이 차가운 반응을 보이며 노려봤다. 라흐 남작은 뭔가 무서워서 헛기침하다가 자리를 피했다.
이윽고 마차가 도착했다.
남작가의 집사가 먼저 내리고는 그 뒤에 타 있던 손님을 배려했다. 테린이 가까이 가자 집사가 공손히 손님을 소개했다.
“위대한 마법 선생. 마기온 선생입니다, 아가씨.”
테린, 그러니까 남작가의 딸이란 상황과 역할을 부여받은 흑해 테아렐이 마기온을 똑바로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
“섭, 아니 마기온이다.”
“…….”
마기온───섭리자, 데우스 위덴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과 아가씨.
섭리자와 흑해가 그렇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