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46

1146화 전환점 (2)

생명들이 서로를 탐식하며 재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원초의 생태계.

하나에서 다시 새로운 하나로.
둘에서 다시 새로운 둘로.
셋에서 다시 새로운 셋으로.

우리는 무(無)에서 유(有)가 탄생하지 않는 개념에 감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무한한 증식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진 혼돈을 마주했을 테니.

미지와 지식을 탐닉하는 그대들이여.

진리를 찾기 위해 세계가 그어놓은 금지된 경계를 꼭 넘어야겠다면.
언제나 마경과 하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 마경에서 실종된 초월자 ‘파인더(finder)’가 남긴 수기에서 발췌 –

* * *

전쟁 초기.

처음으로 마경에 진입하는 순간 대기가 달라진 걸 느꼈다.
고작 경계에서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아예 별개의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온 신경이 곤두섰다.

키퍼──아세트로 올딘.
마의 공포.
무모한 지식인──퀘론 렉클로스.

마경의 환경을 몇 번이나 경험한 것으로 알려진 세 명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메이아를 제외한 대부분은 육체가 형용할 수 없는 오싹함에 적응할 때까지 잠시 호흡을 다스려야 했다.

“이것이 마경의 공기…….”
“불쾌하면서도 상쾌한 듯한, 음,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라리안 마탑주와 젠티르 마탑주는 긴장감과 기대로 얼룩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토벌군의 일원으로서 얼마나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법사의 기질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마탑의 주인들이 공식적으로 대륙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미개척 지대에 언제 또 와보겠나?

지금 이 순간 사명감보다 개인적인 호기심이 앞선 것은 레그리트도 마찬가지였다.

‘과연……침묵의 사막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울림이 느껴지는군.’

갑옷형 아티팩트 [황금의 광채]로 외양을 감췄지만, 그런들 그녀가 인간의 틀을 벗어난 용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예민한 감각은 사방에서 넘실거리는 이질적이고도 질척거리며 풍부한 기운을 포착했다.

생명의 파동.

레그리트에게는 환경에 불과한 마경 전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드래곤의 눈동자가 투구 너머로 어둠을 응시했다.
여름의 대낮인데도 서늘하고 어두운 숲에서 이따금 원인 불명의 괴음이 들려왔다.

레그리트가 슬쩍 다가와 이자벨라에게 물었다.

“느낌이 어떻지?”

이자벨라도 그녀와 같이 인간과 이형종이 결합한 융합체다. 심지어 종족적으로 한 발 앞서 선배라고도 할 수 있었다.
레그리트는 다른 마족이 품은 마경에 대한 감상이 어떤지 궁금했다.

“글쎄…….”

이자벨라는 물끄러미 마경 안쪽을 바라보고 나서야 대답했다.

“편안하다?”
“편안하다고?”

어떻게 생각해도 불편한 것뿐인데……농담이라도 한 줄 알았지만, 이자벨라의 표정은 진심으로 안락해 보였다.
동족일지언정 뒤섞인 이형종이 다르니 관점도 크게 다른 것인가, 레그리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

메이아는 그런 이자벨라를 흘겨보고는 곧 토벌군을 정비했다.
숫자는 기껏해야 수십 명.
다른 군단에 비해 현격하게 적은 규모였지만, 한 명 한 명이 각 분야에서 높은 명성을 떨친 국가급 전력의 강자들이었다.

메이아가 토벌단장으로서 선두에 섰다.

“그럼 사문까지 안내를 부탁하겠습니다.”
“아아……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마경에 오는 건 처음이군요.”

퀘론은 한껏 흥분으로 달아오른 얼굴로 단호하게 고개를 당겼다.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아세트로, 퀘론, 마의 공포는 마경의 사문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바가 있다.
개중에서 퀘론은 마경으로 진출하는 방식에 가장 해박했다.

다른 두 사람은 순수한 실력만으로 마경의 위험에 대항했지만, 퀘론은 그들에게 감히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경지로 마경에서 살아남았다.
스승의 스승이었던 초월자가 마경에서 실종되었던 만큼 공식적으로 마경에 한정해서 그보다 많은 지식을 가진 사내는 없었다.

쿵.

마의 공포가 한 발짝 내디뎠다.

마경 토벌대가 진군했다.

* * *

마경의 사문은 시체가 발생한 직후 이를 언데드로 재탄생시킨다. 동대륙 남부의 타락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군이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환경.
그래서 토벌대 규모를 최소화하고 개개인의 경지에 큰 비중을 두었다.
생존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마경의 생물에 기반한 언데드가 그리도 끔찍하다고 하던데……대체 여기서 얼마나 기상천외한 괴물들과 싸우게 될까.

흑요 등급 모험가들은 특히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사방을 경계했다.
고위 모험가일수록 토벌 도중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재앙에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끼이이익───끼이익───

멀리서 나무껍질과 금속이 비틀리는 소리를 배경 삼아 하루가 지났다.

조용했다.
이상할 정도로.

사문을 어떻게든 신속하게 폐쇄하는 것이 급선무라 휴식은 자주 취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 얼마나 휴식할지는 전적으로 메이아 군단장이 불규칙적으로 결정했다.

그렇게 첫 번째 야영지를 꾸렸다.

절반은 명상을 하거나 잠을 청해 정신력과 체력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했고, 남은 절반은 야영지의 보호를 담당했다.
인적 구성도 그렇고, 장비도 그렇고, 웬만한 마경의 생물들이 본능적으로도 이빨을 들이대지 못할 영역이 완성됐다.

후우웅.

모닥불을 대신해 마석등이 밝게 빛났다.

“후우, 아직도 두근거림이 가시지 않는군요.”
“긴장되시나 봅니다. 하기야 아무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마경 안으로 안내하는 건 처음이니……”
“정말 즐겁지 않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전쟁 중에 할 말이 전혀 아니었는데.”

퀘론은 저도 모르게 실례를 범했다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서둘러 미소를 지웠다.
사람들은 마경에서 진심으로 웃은 그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위험을 너무 즐겼다가 뇌신경이 망가진 게 아닐까.

“이 마경에만 들어오면 현실과 아예 떨어진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사회성이 좀 떨어진 것 같긴 합니다. 하하, 젊었을 적에는 평범했는데.”

퀘론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머리를 뒤덮은 나뭇가지 사이로 별이 빛나는 밤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무래도 제 무덤은 마경이 될 것 같아요. 스승의 스승님도 이러다가 마경에서 사라지셨는데, 이거 참. 자손도 아닌데 이렇게 닮다니. 참으로 신기한 계보(系譜)지요?”
“…….”

마법계 총회의와 세계 회의에서는 꽤 멀쩡했는데 마경에서의 퀘론은 감정이 계속 고조되어 있었다.
종일 들떠 있다고 해야 할까.
눈빛이 지식에 매료되어 삶을 저당 잡힌 마법사의 그것이었다.

“크흠.”

에온의 여덟 번째 위상이자, 이자벨라의 아카데미 시절 교수였던 알더니스가 작게 헛기침을 해 분위기를 환기했다.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고요하군요. 마경에 들어서자마자 쉴 새 없이 전투를 치러야 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세간에 알려진 악명과 사뭇 다르긴 하더군.”

브라오닉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덧붙였다.

퀘론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마경은 원초적인 땅입니다. 그 위의 생물들 또한 가장 오래된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요. 살아남기 위해 피식자를 쫓고, 포식자를 피하는 것. 저희가 습격받지 않는 이유는 주변 생물들에게서 포식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초월자 때문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건 그분입니다.”

퀘론이 지금 누구를 말하고 있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초월자 이상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강자는 한 명밖에 없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저 멀리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모험가 길드 최고 전력으로 흑해와 항상 거론되는 존재, 마의 공포.

하지만 그의 순수한 실력을 목격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마의 공포는 이 마경을 토벌 장소로 삼은 지 오래였으니, 세간에서 그가 전투를 치르는 광경을 볼 기회가 없었던 탓이었다.

검성, 프리발트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의 경지는?”
“제 안목으로는 감히 평가할 수 없습니다만…….”

퀘론이 적당한 막대기를 주워들고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마경을 대충 축약한 지도였다.

“커다란 덩어리 같지만 이곳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무수한 영역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영역은 그보다 더 큰 영역 안에 속해 있지요.”
“일종의 계급 체계처럼 말인가?”
“그렇습니다. 남작령, 백작령, 공작령, 그 전체를 포함하는 국가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마경에는 국가를 지배하는 왕들이 있습니다.”

참극 야토.
비문(非文)의 파음.
태천의 거공.
생명앗이.
순환하는 군상(群像).
몰각의 공허.

“스승님의 스승님께서 작명하신 이명입니다. 이 중 야토는 제가 지었답니다.”
“토끼……지네……? 마수라고 해도 그런 개체들이 군림하고 있다는 건가? 거대한 지네라면 이해하겠지만 토끼라니.”
“겉모습에 속지 마십시오. 죽습니다.”

퀘론이 정색했다가 금방 표정을 풀었다.
공기가 한순간 경직됐다.

“아무튼 왕들은 서로를 경계하면서 마찰을 피하고 있습니다. 결국 생존이라는, 자연의 궁극적인 목적에 충실하게요. 그래서 저분에게는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죠.”

괴물들의 그림 옆에 마의 공포를 형상화한 화상이 더해졌다.

“맞붙으면,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초월자 이상의 강자라고 하더니 마의 공포가 그런 괴물이었단 말인가.

모험가들은 구태여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자부심을 품었다. 이렇듯이 모험가 길드의 위상은 어떤 세력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레그리트 나르실리아도 같은 방주의 선장으로서 내심 흡족했다.

그때 루아스교의 추기경──자선의 세르파니아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럼……적룡은 어느 위치에 있는 걸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추기경님. 약 1세기 전에 대륙을 급습한 이후 마경으로 홀연히 사라진 적룡은 지금까지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제가 비늘을 찾아내면서 상황이 급변했지요. 그러니 저희가 알고 있는 지식도 달라질 수밖에요.”

퀘론이 드래곤의 모양을 마경의 중심부에 새기며 말을 이었다.

“마해에 왕, 그 이상의 지배자‘들’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태껏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테지요.”
“이유는…….”
“모릅니다. 하지만 단언하거대 이유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 그들의 지적 능력은 우월하면 우월했지 열등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가 막대기를 내려놓았다.

“마경의 사문은 다행히도 마해가 아닌 마경에 속해 있습니다. 부디 저희가 상대할 적이 언데드만이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겁니다.”

퀘론은 나지막이 겁을 주며 토벌군이 마음을 놓지 못하게 했다. 안도하는 것. 그것은 마경에 있어서 독이 되는 마음가짐이므로.

그때였다.

하얗고 자그마한 것들이 떼를 지어 야영지를 향해 접근했다. 느릿하게 허공을 유영하는 다수의 이형종을 보고서 즉각 전투 태세를 취했다.

“아, 괜찮습니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어떤 해도 끼치지 않으니까요. 매우 약하기도 하고요.”
“저, 저게 뭡니까?”
“회귀령(回歸靈)입니다. 오직 마경에서만 서식하는 아주 희귀한 개체인데……신기하군요. 저도 이렇게나 큰 회귀령 군집을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회귀령이라고?”
“한번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퀘론의 권유에 따라서 청각에 집중하자 흐느끼는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가…….]

[돌……아갈래…….]

그저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이형적인 존재들은 아주, 아주 천천히 꿈틀거리며 야영지 위를 가로질렀다.

‘영혼…….’

이자벨라의 형안은 회귀령의 정체가 영혼이라는 걸 간파했다.

토벌대는 짙은 어둠 속에 흩뿌려진 하얀 빛들을 넋을 잃고 올려다봤다.

퀘론이 싱긋 웃었다.

“신비롭지요?”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마경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비로소 들었다.

회귀령 군집은 마의 공포가 있는 천막 위쪽에 잠시 머무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착각이라는 듯 유유히 떠나갔다.

* *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더 지났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더 흘렀다.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마경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괴수들과의 조우가 잦아졌다.

놈들은 왕이든 뭐든 간에 아랑곳하지 않는 난폭한 괴생명체들이었고, 그 괴물들은 죽자마자 사문에 의해 언데드로 구축되어 한 번에 최소 두 번 이상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

메이아 군단장은 마치 앞날을 읽기라도 한 듯이 습격을 예측했기에 피로는 있을지언정 피해는 사실상 전무했다.

그렇게 마경으로 진출한 지 정확히 30일이 경과한 그날이었다.

사문에 도착했다.

마침내 공략을 시작하는 건가, 생각보다 엄청 쉽게 왔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메이아가 입술을 짓씹었다.

“……같잖은 눈속임을.”

메이아가 즉각 명령했다.

“전부 사문으로 진입하세요.”
“전부요? 그랬다가 사문 밖에서 포위당하면…….”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메이아가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당장 사문으로.”

그 순간 사방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존재감이 감각을 흔들었다. 언데드가 아니었다. 마경의 생물이 일제히 연합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후욱───

대기를 짓누르는 무거운 굉음.

시선을 높였다.

붉은 거체가 날아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것이 드래곤임을 알 수 있었다. 예리한 용아(龍牙) 사이에서 비웃음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연합군 뒤에서 가공한 존재감이 솟구쳤다. 마경의 생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압도감이었다. 이자벨라가 뒤를 돌아봤다.

마의 공포가 절규에 가까운 함성을 토해냈다.

“사르……칸드라……!!!!!!!!!!”

지축을 무너뜨리며 하늘로 날아오른 그가 권격을 내리쳤고.
온 대기가 격동했다.

* * *

“큭……!”

프리발트가 계속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다가 이마를 붙잡았다. 두통이 너무도 심해서 더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이건, 뭐지?”
“영혼이 흔들린 영향이에요. 사문의 틈새에서 간신히 탈출한 대가죠.”
“탈출……했다고?”
“나중에 기억나겠지만. 일단 간단히 요악할게요. 사문은 성공적으로 폐쇄됐어요. 그 대신 토벌대가 뿔뿔이 흩어졌고요. 다행히 저희는 집단으로 떨어진 것 같지만요.”

이자벨라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챙겼다.

“군단장이 말한 대로 서둘러 생존자들을 찾아야 해요.”
“생존자……무슨 수로 찾지?”
“진짜 기억력이 크게 손상됐나 보네. 머리 부분의 영혼은 멀쩡한데.”

이자벨라가 턱짓했다.

“나머지는 안전한 곳에서 마저 설명할 테니까 사람들 데리고 따라와요.”

* * *

이자벨라와 프리발트가 각자 사람들을 챙기고는 발을 옮겼다. 그들이 사라진 장소에 작은 생명체가 나타나 코를 씰룩였다.

익숙한 냄새.
끝없이 부활하는 냄새.

참극 야토는 500년 만에 발견한 그리운 존재의 기척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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