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4화 올다르크 – 3
초대 마도왕에게 처음으로 의문을 갖기 시작한 건 골렘 연구 시설의 방치였다.
인공 골렘 부대.
통신 장치.
기억 골렘.
화상(畫像) 골렘.
에온의 정보망은 골렘 연구 시설에서 생산된 여러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블랙 아워 찬탈전과 보헤미른 마탑과의 전쟁 등 골렘 기술이 없었다면 베르덴은 더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제2차 초월자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연합 본부를 세우고 통신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크세리온 제국을 상대로 대대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긴밀한 명령 체계가 없었다면 군단 한두 개 이상은 전멸했을지도 몰랐다.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서 알파와 베타의 존재감은 컸다. 베르덴이 힘의 상징이라면, 두 녀석은 기술력을 대표했다.
‘그런데 초대 마도왕은 그 모든 것을 버렸다.’
골렘 연구 시설을 약 470년 동안 방문하지 않았다.
알파를 버렸다.
대수림에서는 베타를 버리고 갔다.
베타는 반영구 동력원을 설계하는 데 이용한 뒤에 쓸모가 다해 버렸다면……이해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납득은 할 수 있다.
어쨌든 간에 베타를 창조하고 목적에 맞게 사용은 한 것이니.
반면에 알파는 뭔가를 하기도 전에 유기됐다.
───이 실험실은 정확히 말해 골렘만으로 운영되는 연구 시설이다. 그리고 연구의 전체 진행도가 50%를 넘었을 때, 본체에게 연락을 보내기로 정해져 있었지. 알파와 나는 그 매뉴얼을 그대로 실행했다.
관리자와 알파가 연락을 보냈음에도 초대 마도왕은 침묵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본체는 올 기미가 보이지 않더군. 이후로 몇 번이나 같은 시도를 해봤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시설에 나타난 건 그대와 같은 외부인들뿐이었다.
───본체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고……어쩌면 단순히 잊힌 걸지도 모르지.
초대 마도왕의 신변엔 문제가 없었다. 그는 종적을 감추고 있는 동안 대수림, 화산 지대, 하늘섬 아크 등 수백 년에 걸쳐 다양한 장소에 발자취를 남겼다.
골렘 연구를 맡겨 놓고 잊었다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고.
골렘 연구 시설이라는 씨를 뿌려놓고 왜 수확하지 않으셨습니까?
질문의 요지는 이러했다.
+알파……+
올다르크는 알파의 개체명을 중얼거리고는 단호히 말을 이었다.
+그대는 알파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군+
“……예??”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혹스러웠다.
이마가 뜨거워질 정도로 사고했지만 진심으로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파를 과소평가한다? 누가? 내가? 벽안이 동요했다.
도저히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통신 팔찌와 기억 골렘. 그 외의 에온이 전쟁에서 선보였던 다양한 인공 골렘들. 그깟 것들을 연구하고 완성하는 데 5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소요됐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올다르크가 고개를 돌렸다. 청광(靑光)과 금광(金光)이 조화를 이룬 눈동자에 경악한 베르덴의 표정이 반사됐다.
+알파는 창조된 지 불과 30년만에 내가 바란 모든 연구를 끝마쳤다+
그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
* * *
+운명을 둔 전쟁에서 나는 무너졌다+
올다르크가 가장 강렬한 과거를 회상했다.
+최후에 그녀를 잠들게 할 수는 있었지만 전쟁이란 곧 세력전. 머리를 잃어버린 나의 세력은 사냥감으로 전락했고, 나는 그 모든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지+
죽지 않는 잿빛의 용이 봉인되고, 남은 저항자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전부 죽거나 투항하고 말았다. 청룡 탈리시아가 살해당하고, 다른 고룡들이 운명으로 편을 바꾸었듯이.
세계수가 관조하는 존재를 강요받아 강제로 존속당하게 되었듯이.
사실상의 패배였지만 ‘당신’도, ‘당신’의 사도들도 종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올다르크가 살아 있는 한 완전한 승리라고 할 수 없었으므로.
휴전.
올다르크는 그렇게 최후의 저항자로서 홀로 전쟁의 구도를 유지했다.
+단순히 예전의 힘을 회복하는 데만 무수한 시대가 흘렀다. 이미 세계는 잠든 그녀의 것이 되었더군. 그에 반해 나는 고립됐고+
‘당신’이 먼저 판을 준비했기에 불리함을 떠안기는 했지만 어쨌든 간에 세력과 세력의 전면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래, 인정해야 했다. 그녀의 ‘간계’는 올다르크를 능가했다. 그녀는 패배를 알지 못하는 올다르크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안겼다.
+그때 막막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지+
휴전을 깨자니, 본래의 경지를 드러내어 행동하면 그녀의 기상(起牀)이 급격하게 앞당겨진다.
그녀가 깨어나서 세력을 지휘하면 올다르크는 이길 수 없다. 균형을 이룬 천칭. 일대일이 아니라면 승산은 전무했다.
+결국 세력이 필요했다+
올다르크가 그녀와 결전을 벌이는 동안에 운명의 추종자들을 막아줄, 또 배신할 걱정 따위 없는 새로운 저항자들이 말이다.
결국 올다르크는 처음으로 폐관하고 명상에 잠겨 전쟁을 설계했다.
그녀가 가면을 쓰고 운명을 준비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는 새로운 이상을 토대로 모든 밑그림을 그리고 나서야 대륙으로 나왔으니, 그때가 대략 2천 년 전이로군+
베르덴은 지금으로부터 가장 오래된 초대 마도왕의 첫 번째 행적을 상기했다.
“키론다르…….”
최초의 마탑을 창설한 네 명의 키론다르를 통해서 마력 연공법 연구 및 완성. 마력 연공법을 전 세계에 보급해 인류에게 마력회로 부여.
위계 마법사 탄생.
첫 번째 위계 마법사───데우스 위덴.
그리고 천 년 전의 어느 순간부터 초월자의 개념이 생겨났다.
“최초의 마탑주 텔로르 크렌드로스를 비롯하여 네 명의 키론다르는 인체 실험으로 각자의 마력 연공법을 창시해, 영생을 이루려다가 초대 마도왕께 발각되어 처벌받았습니다.”
최초의 마탑은 통째로 전이돼 침묵의 사막 지하에 거꾸로 고정되었다. 텔로르, 일자스, 솔브, 리엘르카는 나갈 수 없다는 봉인과 함께.
“시간을 견디지 못한 그들은 상잔했고, 텔로르만이 남아 연명. 결국 미쳐버린 그는 최초의 마탑 아래에서, 과거 대분기 때 죽이고 봉인해 둔 고대 신들의 잔해를 발견한 뒤 스스로를 실험한 끝에 봉인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존재로……‘당신’의 제7사도가 될 이슈르의 대적자로 거듭남으로써.”
베르덴이 말을 이었다.
“그 대적자의 형성 과정을 총괄한 것이 인공 골렘, 오메가였죠.”
+그 아이를 창조하고 나서야 나는 구상에 종지부를 찍고 비로소 실천에 옮겼다. 오메가(Omega). 그래서 그런 개체명을 부여했지+
골렘에 대해 이야기하는 올다르크의 말투에서 묘한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알파(Alpha)를 창조해 내가 정한 이상을 추구했다. 베르덴, 알파가 총괄하는 골렘 연구 시설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다+
골렘.
연구.
시설.
베르덴은 그 단어를 몇 번 곱씹고 나서야 진의를 깨달았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오메가와 알파를 제외한 모든 골렘을…… 알파가 설계한 겁니까.”
올다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력원의 초석을 설계할 베타(Beta). 인공 골렘의 최종 형태인 감마(Gamma). 알파는 나를 도와 자신의 형제들을 탄생시켰다+
오메가, 공상의 끝.
알파, 이상의 시작.
* * *
알파가 30년만에 초대 마도왕이 원하는 모든 골렘 연구를 이미 마쳤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듣고 보니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래, 알파의 능력이라면 가능하다.’
베르덴 자신과 함께하기 시작한 지 고작 3년도 안 됐는데 이 정도.
초대 마도왕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다면 무엇을 이루었든 간에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주제에서 의문은 하나였다.`
“그런데 어째서 알파로 하여금 자신이 버려졌다고 느끼게 하셨습니까.”
+내가 기억을 조작하지 않았다면 알파는 자결했을 테니까+
베르덴의 표정이 굳었다.
올다르크가 헛웃음을 지었다.
+모순이지. 존재 의의를 다했으니 폐기 처분해야 마땅하나, 그걸 보기도 싫고, 내 손으로 끝내기도 싫어 도망치듯 시간에 맡겼으니+
관리자들만이 아니라 오메가, 알파, 베타는 서서히 사라질 예정이었다.
키론다르라는 대적자가 완성되면 오메가는 기동이 중지될 것이었다. 대수림에 남겨진 베타는 긴 세월에 짓눌려 기억까지 손상될 정도로 프레임과 코어가 거의 파괴되어 있었다.
알파는 골렘 연구 시설을 유지하는 소형 동력원의 손상으로 머지않아 정지되어야 했다.
베르덴이 아니었다면 그들 전부가 대륙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올다르크가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미련이었다. 내가 스스로 치른 시험이었고+
……시험?
+이젠 과거의 이야기다+
올다르크가 손가락을 굳게 모았다. 그의 어투에서 온기가 사라졌다. 서늘하고 무정한 시선이 베르덴에게 쏘아졌다.
+그대를 이곳으로 인도한 이유는 그녀가 타협해야 했던 것들에 관해 논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이 미래가 될 과거는 운명의 주둔지가 될 것이니, 그대가 여기서 했던 행위가 곧 침공이었지+
베르덴은 운명에 굴복한 즈크타라는 고대의 신을 처단했다. 한낱 생채기에 불과해도 다름 아닌 ‘당신’의 영역을 침략한 것.
+고대의 존재들이 올 것이다. 그대가 죽인 조잡한 신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옛 신과 고대종.
저항자들을 몰살했던 ‘당신’의 추종자들.
+과연 그대는 타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는 당신들과 다릅니다.”
베르덴은 심지를 굳힌 지 오래였다.
“반대로 묻겠습니다. 초대 마도왕께서는 무엇을 타협하셨습니까.”
망국의 죄인, 키론다르, 테아렐 등 인생을 뜻대로 조종해 사도들의 대적자로서 희생을 강요한, ‘당신’의 운명과 다를 바 없는 행적.
“무엇을 위해 동력원을 창조하셨습니까.”
대수림에서 베타와 함께 세계수를 연구해 탄생시킨 소울 트리. 황금 모루가 소울 트리 등을 재료로 삼고는 검은 화산까지 멸망시켜 만든 모종의 개념.
그 모든 것이 집약되어 마법의 시대를 연 10대 마탑의 동력원.
“무엇을 위해 아크를 구축하셨습니까.”
초대 마도왕이 방주를 이끄는 최초의 모험가에게 넘긴 거대한 하늘섬.
“무엇으로 세상을 구원하실 생각이십니까.”
초대 마도왕이 선을 넘고도 스스로 타협하면서까지 추구하는 이상(理想)이 무엇인가. 베르덴이 그리 묻자, 올다르크가 입가를 비틀었다.
+하하하하하……+
광기 어린 웃음이었다.
‘당신’과는 다른.
+아직 그대는 준비되지 않았다. 진정 알고 싶다면 더 높이 올라오라. 이 세상에 본래의 격을 감출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라+
올다르크가 그의 심장을 가리켰다.
+세계수와 동력원. 그때가 되면 내가 그대를 찾아 진실을 속삭이리+
주변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당신’의 권역으로 넘어왔을 때처럼 물감이 번지듯 공간이 변화했다. 베르덴은 곧 이 만남이 끝날 거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잠시 고민한 끝에 최근 얻은 정보에 대해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이 그러더군요.”
올다르크는.
당신이.
되려고 한다.
‘당신’이 전령을 통해 보낸 문장을 읊자 올다르크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여전히 명민하군+
그가 덧붙였다.
+나 또한 그대에게 충고하마. 제6사도가 전쟁에서 보여준 정직은 예외다. 선과 악이 모호하면, 선의와 악의는 다르지 않으니. 앞으로의 전쟁은 형태가 다를 것이다+
“…….”
+그럴수록 주변을 중시하거라. 매몰되어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지 마라+
올다르크가 베르덴의 어깨를 짚으며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모습만은 관리자와 같았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현재이니+
공간이 완전히 변했다.
베르덴은 서해의 해안가로 돌아와 있었다. 앞서 걷고 있었던 초대 마도왕은 사라졌다.
베르덴이 뒤를 돌아보니 두 사람의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쏴아아아──
빈자리에 파도 소리가 맴돌았다.
* * *
초대 마도왕과의 갑작스런 대화를 끝내고 배르덴은 대전당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본래 예정대로 아이샤, 그러니까 히안테를 만났다.
히안테가 말했다.
“그를 만나셨군요.”
“……그래.”
베르덴은 그녀와 마주 앉았다.
히안테가 테이블을 바라보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저를…… 원망하지 않으시나요? 제가, 그녀에게 종말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 되고.”
미래를 알려줬다고 해서 ‘당신’이 해온 모든 죄를 히안테에게 묻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모든 책임은 ‘당신’의 것이다.
“나는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
에온의 위상들은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카인은 죽었지만 사도로 부활했다.
에온의 피해는 다른 세력들에 비해서 확실히 적은 편이었다.
“그게 네 힘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