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8화 소환 (2)
테오도르가 설명한 의식 격리는, 한꺼번에 여러 마법을 연산하는 현대 마법사들의 사고방식과는 결이 다르다.
문자 그대로 하나의 의식을 둘로 나누는 일종의 ‘독립 사고’에 가깝다.
‘테오도르의 경우에는 여전히 하나의 의식만 제어하는 거라 독립 사고까진 아니나…… 일시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새로운 의식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에 못지않다.’
베르덴은 병렬적 사고가 특기지만 정신의 분리를 시도해 본 적은 없었다. 고작해야 마법 물품이나 이그나시아의 힘을 빌려 마법적 분신으로 의식을 이동한 것이 전부였다.
‘왜 아카데미에서 천재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군.’
테오도르처럼 부분적인 독립 사고를 이루려면 자기 자신을 절반가량 잊어버릴 정도의 집중력이 필요 불가결하다.
천재성.
이건 후천적으로 완성된 거라기보다는 재능의 영역일 것이다.
현실에 몰입하는 속도가 남다르니 다른 학생들과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테오도르는 나름대로 마법적인 이해력도 갖추고 있다.
‘사실상 특이 형질, 혹은 마도.’
소환 마법이 마법계에 공개되면 상당한 파장이 일 테지만, 결국엔 테오도르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으리라.
‘의식 격리는 대부분의 지성체가 체득할 수 없을 터. 이걸 정식 마법으로 등록해 대중화하려면 독립 사고를 대신할 만한 대체 의식이 필요하겠어.’
예를 들어 간단한 명령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소환체에 별도로 주입할 수 있는 마법적인 수용체를 만든다든가…….
발상은 이렇지만, 세부적인 요소는 나중에 따로 생각해 볼 문제다.
오늘은 소환 마법을 시험해 보는 게 전부니까.
후웅.
베르덴이 미약하게 마력을 불어넣자 디스펜서에 푸른빛이 명멸했다. 마치 캡슐을 반으로 자른 것 같은 특수한 구조.
투명한 막 내부에서 밀도 높은 마력이 시시각각 움직였고, 그 아래를 받치고 있는 황동색 금속판은 점차 떨렸다.
“네……! 거기서 구체화하고 싶은 생물의 특징을 하나둘씩 떠올리는 거예요. 명확하게요. 아, 아크에서 제가 소환했던 울프레드의 기관과 습성을 설명해 드릴 테니까…….”
“잠깐.”
갑자기 베르덴이 마력을 거두자, 테오도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베르덴이 디스펜서를 가리켰다.
의문이 해결됐다.
“아.”
테오도르의 마력량이 작은 웅덩이라면, 베르덴의 마력량은 바다에 필적한다. 기본적인 역량의 격차가 커도 너무 컸다.
마력뿐만이 아니다.
테오도르가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보이는 집중력, 사고력, 이해력 등도 베르덴은 초월적인 차원에 올라서 있다.
하나를 생각해도, 겉보기엔 비슷해 보일지언정 그 안에 담긴 마법적 정보량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다르다.
그러니 서로 똑같이 울프레드───로어 울프의 아종을 소환하더라도 베르덴과 테오도르의 소환체는 완전히 별격을 보일 수밖에.
쉽게 설명하자면 모양과 크기는 동일한데 질량의 차이가 큰 것이다.
“아무래도 이걸로는 안 될 것 같군.”
디스펜서는 어디까지나 테오도르의 역량에 맞춰 설계되었다. 내구력 또한 마찬가지다. 베르덴에게는 종잇장이나 다름없다.
최대한 힘을 조절해도 디스펜서가 도중에 박살 나는 건 피할 수 없다.
의식 격리는 베르덴에게도 처음 시도해 보는 일인 만큼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에 따라 힘이 집중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그렇다고 디스펜서를 고려해 신경을 느슨하게 풀면 의식 격리는 이룰 수 없다.
이자벨라가 물었다.
“그럼 소환 마법은 안 되는 거야?”
“이, 이런 상황은 저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데일 교수님이 힘들게 예산으로 구한 미스릴을 넣은 거라서, 설마 마력을 견디지 못할 거라고는…….”
“흠.”
베르덴이 디스펜서를 잠시 면밀하게 관찰하고는 테오도르에게 돌려줬다.
“마법진으로 대체해 보지.”
“네…… 네??”
“구조가 복잡한 건 아니니까.”
소환 마법의 차별점은 테오도르의 발상에 무게가 실려 있다.
디스펜서 자체는 어떤 인공 아티팩트에도 견주지 못한다. 마법 물품 제작에 조예가 있다면 역설계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물론 디스펜서의 기능을 마법진으로 모방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지만.
파아아앗!
침묵의 사막에서 가능성을 확장한 무한의 개념을 통해 머릿속으로 구성한 다수의 마법진을 즉석에서 구현했다.
공간 분리.
마력만이 오가는 통로.
공간 밀도의 조율.
…….
테오도르가 책에서 본 적조차 없는 마법진들이 서로 겹지고 연결되며 오우거가 들어가도 충분한 거대한 디스펜서를 형성했다.
‘마법진은 작성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실전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 걸로 유명한 학문이라고 배웠는데.’
초월자는 전부 이런 존재들일까? 아니면 베르덴 님이 특별한 걸까? 암월에게 살해당한 만능의 발로크 베시아스가 마법진의 일인자라고 들었는데, 베르덴 님하고 비교하면 누가 더 우위일까?
‘와아아.’
학구열이 치솟는 생각들이 테오도르의 머리와 마음을 자극했다. 그러는 사이 마법진 디스펜서가 완성되었다.
“원본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크기는 한데 기능적인 측면에서 디스펜서와 동일하다. 부분적으로 조금 더 편리해지기도 했고. 한번 만들어 본 거라 시범 운용은 필요하겠지만.”
“……혹시 제가 시험해 봐도 될까요?”
“그래.”
베르덴이 손짓하자 임시 디스펜서가 변형되며 인식 기능을 담당하는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 위에 테오도르가 손을 올렸다.
“……!”
마력의 연결이 느껴진다.
아주 선명하게.
마법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보다 마법 기술이 몇 단계 더 발달하면 이런 모습일까? 테오도르는 미래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강철검보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땅을 부수는 각력…… 부드럽고 질긴 회색 가죽…… 낮고 위협적인 울음소리…… 사냥감을 주시하는 사백안…….”
의식을 격리하며 언어로 심상을 구체화하는 테오도르. 그의 마력이 마법진 디스펜서 내에서 짐승의 형태를 갖추었다.
<소환: 울프레드(Ulfred)>
디스펜서 내부에서 생겨난 공간의 틈새로 늑대가 뛰어들자, 그 반대편에서 거대한 체격의 늑대 마수가 등장했다.
테오도르가 입을 벌렸다.
방주의 교류전에서 소환했을 때보다 무려 세 배는 더 컸다.
“엇……?”
“공간의 밀도가 조금 더 효율적으로 조직되도록 구성해 봤다. 소환 마법의 강화인 셈이지. 생각대로 잘되는군.”
[크르릉.]
거대 울프레드가 쪼그려 앉아서 테오도르에게 얼굴을 문댔다. 테오도르가 쓰다듬어 주자 꼬리가 붕붕 흔들렸다.
“애완동물…… 저런데도 본질적인 의식은 서로 같다는 거지? 되게 신기하네.”
[의식 격리. 인정.]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아하하…….”
이자벨라, 알파, 베타가 나란히 개인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칭찬 일색이다. 테오드르가 쑥스러워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정도면 디스펜서 대용으로 문제없겠지?”
“물론이죠! 아니, 오히려 베르덴 님이 구상하신 마법진 구조로 새로운 디스펜서를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나중에 논의하도록 하고. 그럼.”
베르덴이 마법진 위에 손을 올리며 마력을 흘려보냈다.
“음, 격리한 의식에 부여할 로어 울프의 습성과 본능에 관해 설명해 드리자면…….”
“그건 됐다. 지금은 의식 격리의 성공 여부만 확인하는 게 목표니까.”
“아, 그렇긴 하네요! 의식 격리만 성공하신다면 이후는 간단하니까요. 당장 로어 울프의 의식까지 고려하는 건 여러모로 비효율적이죠.”
테오도르고 여지 없이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올해를 기준으로 테오도르는 17세, 베르덴은 29세.
경지를 떠나 가르침을 베풀고, 가르침을 받기에 적당한 나이 차이였다.
‘배움의 태도는 더할 나위 없군.’
베르덴이 마력으로 형상을 구축했다. 테오도르가 소환했던 울프레드와 외형은 같았으나, 조형 속도는 압도적이었다.
푸른빛이 퍼져 나갔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빚어진 로어 울프 아종 한 마리가 마법진 디스펜서 안에 두 눈을 감은 채로 앉아 있다.
‘다음은 의식의 격리.’
베르덴은 자신의 내면에 몰두하며 정교한 칼날을 상상했다. 쇄폐한다. 공간을 절단하듯 정신의 일부를 강하게 베어 냈다.
테오도르처럼 창문을 여닫는 방식과는 다르다.
초월자의 의식은 너무 강해 그렇게 쉽게 분리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대신 추상적인 의식에 실체적인 힘이 깃들어 있기에, 이런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칼날과 닿은 정신의 층이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어지기만 했다.
‘역시 쉽지는 않다.’
조금 더 심리에 몰입했다.
베르덴의 격이 어느 정도 개방되고, <겁화>의 봉인이 깨지지 않은 한계선에서 전신의 마력회로가 활성화됐다.
“이쪽으로 오렴.”
이자벨라가 곧장 <염동력>으로 테오도르의 몸을 끌어당겼다. 헉! 마법 저항력이 아주 가볍게 파훼되는 감각에 테오도르가 기겁했다.
쿠구구구!
하늘이 술렁인다.
회색빛의 구름이 몰려와 상공을 뒤덮으며 햇빛을 차단했다. 차가운 돌풍이 일었다. 당장이라도 폭풍이 일어날 듯했다.
테오도르가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베르덴 폐하의 존재감에 세상이 일부 반응. 격.]
“격…….”
베르덴이 힘을 제어하고 있어 테오도르가 정신을 놓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초월자의 격이, 방주의 교류전에서 느꼈던 <마력 위압>과 질적으로 다른 고차원적인 무언가임을 깨달았다.
우렛소리가 들려온다.
베르덴은 사방이 어두워진 세상에서 조심스럽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당장 의식이 분리될 듯 말 듯 한 기로에 선 상태.
‘지금으로선 의식 격리는 몇 초밖에 유지할 수 없겠어. 그렇다면 격리와 의식 부여를 거의 동시에 진행한다.’
부여하는 의식에는 간단한 명령에만 반응하는 습성만 남겼다. 어디까지나 실험이란 주제에 걸맞게 말이다.
다음으로 베르덴은 테오도르의 조언을 참고했다.
‘───‘나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를 부르는 기분이라.’
생소하지만, 일단 실천했다.
확.
내면의 칼날로 의식을 분리하면서 분리된 의식을 힘껏 밀어냈다. 그렇게 소환체에 부여한 다른 의식을 마음속으로 강하게 불렀다.
직후 정신적으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인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성공인가.’
그런데 그때였다.
소환체에게 부여했던 의식이 거꾸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뭐지?
다시 내면을 관조해 보니, 칼날은 의식을 완전히 끊지 못했다. 단절됐어야 했을 지점은 멀쩡히 이어진 채, 힘의 흐름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다.
‘……!’
팽팽해진 의식이 엄청난 속도로 돌아와 베르덴을 지나쳤다. 동시에 베르덴의 본래 의식이 어딘가로 당겨지는 듯한 느낌이 엄습했다.
스윽.
마법진 디스펜서에서 대기하는 로어 울프 아종이 천천히 눈을 떴다. 베르덴과 시선이 교차했다. 늑대의 눈동자가 아닌 무언가가.
그리고.
의식이 튕겼다.
* * *
주변이 마치 빛살처럼 지나가다가 어둠 속에서 멈췄다.
“…….”
베르덴이 벽안을 움직였다. 광활하던 자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생전 처음 보는 아주 거대한 동굴이 눈앞에 자리했다.
‘알파, 베타, 이자벨라, 테오도르.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
이전에 그링 아르카넘을 통해 호스트를 만났을 때처럼 정신만 이동한 건가. 확실히 그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신체 감각이 온전하다.
현실 그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동굴의 냄새, 어둠, 공허함 등 모든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아티팩트도 발동이 가능했다.
후웅.
베르덴이 아공간에서 [인테리스]를 소환하며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당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돌발 상황에는 나름대로 익숙했던 만큼 단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
‘저곳에 뭔가 있군.’
베르덴이 경계심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평범한 어둠이 아닌지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불리함은 베르덴의 전력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통로를 지나고.
거대한 공동을 넘었다.
이윽고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동굴의 막다른 곳에 도착한 순간…… 베르덴은 저도 모르게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
마력을 집중해 억지로 빛을 밝혔다.
벨디른 공화국의 유골룡보다 못해도 몇 배, 아니 십수 배는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봉인된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수많은 쐐기와 쇠사슬로 몸체와 비늘 여기저기가 꿰뚫리고, 날개의 피막은 무참하게 해진 채 죽은 듯이 잠에 든 기이한 초월종…… 그중에서도 베르덴의 눈을 사로잡은 건 드래곤의 ‘색’이었다.
베르덴은 가만히 서 있다가 광대한 존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웅크린 드래곤의 머리가 불과 몇 발짝 앞에 놓였다.
[세계수에게 들었다.]
“……!!!”
직전까지 미동도 없던 드래곤이 갑작스럽게 콧잔등을 씰룩였다.
[애셔, 혹은 베르덴.]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회색의 동공.
이에 모습이 반사된 베르덴.
[그것이 너로군.]
베르덴의 머리카락과 완벽히 같은─── ‘잿빛’의 드래곤이 그를 정확히 인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