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55

855화 급진전 (1)

───너에게서 바다 냄새가 나.

세계 회의 개최 전에 흑해가 갑작스럽게 찾아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링 아르카넘.’

최초의 마탑에서 손에 넣은 3대 전설이 뇌리를 스쳤다.
바다.
물결치는 바다.
잿빛의 용이 언급한 ‘운명의 사도’…… 그중 하나로 추정되는 존재의 단서는 이미 그의 손에 있었다.

‘흑해가 첫 번째로 바다 냄새를 언급했다. 다음은 라이너스, 그다음은 듀말.’

초월자, 인간, 뱀파이어.

이렇듯 서로 공통점은 놀라울 정도로 없다. 그럼 어째서 그링 아르카넘의 소유주인 베르덴은 바다를 느끼지 못하는가.

‘아무래도 제대로 알아봐야겠군.’

지식의 만찬회가 열리기 전까지 일단 기다리려고 했는데, 뭐가 뭔지는 몰라도 애써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닐 터였다.
이런 불안 요소를 방치하는 건 베르덴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세계 회의에서 이형종 공존 대의제가 정식으로 개정되었다. 악마를 제외한 이형종의 종족 제한이 철폐되었지. 자세한 내용은 머지않아 공문을 통해 전달될 거다.”
“……!”

듀말이 눈을 크게 떴다.

“또한 이곳 달레힌을 이형종 거주 구획으로 시범 적용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아인종과 악마까지 범위를 확대할 생각이고. 종족과 무관하게 지성체의 낙원을 만드는 셈이지.”

베르덴이 듀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먼저 인간과 여러 이형종 간의 조화를 이루기가 쉽진 않겠지만 나는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가능하게 만들 거니까. 도시의 행정 초기 설계는 전적으로 네게 맡기마. 에온의 힘과 자원을 수단으로 삼도록.”
“저에게…….”
“일개 도시를 운영하는 수준이 아닐 테니 상당한 인력이 필요할 거다. 그러니 권역 밖에 있는 이형종을 불러도 좋다. 다른 뱀파이어도 물론 환영이고, 인간을 선발해도 환영이다. 말 그대로 종족을 차별하지 말고 능력에 입각해서 내각을 구성해라.”

그가 듀말의 옆을 지나쳤다.

“과연 너의 도시가 세계 통합의 교두보가 될 수 있을지, 기대하겠다.”

듀말에게서 멀어진 베르덴이, 활기차게 인사하는 하녀 피네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이형종들이 머무르는 구역으로 향했다.

“에헤헤, 베르덴 님 얼굴 봤다…… 응? 왜 그렇게 서 계세요? 어디 아프세요?”

듀말이 세수하듯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고는 빙글 몸을 돌렸다.

“앞으로 사람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네? 얼마나요?”
“아직 계산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겁니다. 영주성도 증축하고, 도시도 확장할 정도로. 즉…… 도시의 행정을 담당한 저와, 영주성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은 당신의 역할은 아주 중요해질 터.”
“아…….”

듀말이 피네의 양어깨를 잡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피네 하녀장.”

피네는 고작 17살의 나이에 달레힌 영주성의 하녀장으로 승급했다.
재작년에 달레힌의 영주가 베르덴으로 바뀐 뒤, 가장 먼저 성의 하녀를 자원했기에 가능한 초고속 승진이었다.

* * *

[세계 회의의 과정에 대해서는, 그 진실의 서약을 제외하고 전해 들었네. 경악스러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렀더군.]

초대 네크로맨서, 안데스 네크라일이 제 턱뼈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꼬물꼬물.

안데스에게 맡겨 놓은 그림자 악마가 조심조심하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차를 가져와 베르덴 앞에 놓았다.

“정보력이 대단하십니다. 아직 이틀이 채 안 지났는데.”

[정보의 신속하고 정확한 전달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이 아니겠나. 800년 전엔 대규모 연락망이 없어서 많은 피해를 봤네. 실제로 당시에는 그런 걸 구축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지. 그 상황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법. 나는 과거를 통해서 발전을 거듭하는 것이 산 자의 권리라고 생각하네.]

“동감입니다.”

[아, 물론 나는 죽은 지 오래지만.]

안데스가 턱뼈를 딱딱거리며 웃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지는 언데드가 어디에 또 있을까.
생각해 보니 익살스럽게 구는 황금의 죄인이 있긴 했다.

베르덴이 찻잔에 입가를 댔다.

“그림자 악마는 어떻습니까.”

[악마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얌전하네. 저기 보게. 어떻게 저런 모습을 보고도 악마라고 생각할 수 있겠나.]

그림자 악마가 쟁반을 몸에 거의 갖다 붙이다시피 한 채 베르덴을 주시했다. 어둠 위에 올라온 두 개의 눈동자가 말똥말똥했다.
가만히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그림자 악마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뚝.”

그림자 악마가 뚝 울음을 그쳤다.
말 잘 듣는 아이도 아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자네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네. 악마에게 이런 습성이 있다곤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혹시 자네의 핏줄과 악마가 관계가 있다던가?]

“고아원 출신이라 모르겠습니다.”

[미안하네.]

안데스가 크게 헛기침했다.

“관조해 본바 제 피와 육신에 악마와 비슷한 성질은 없습니다. 만약 관련이 있다면 비물질적인 요소일 겁니다.”

[비물질…… 역시 심오하군. 자네의 존재는.]

베르덴은 격이 다른 초월자다. 강함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도 기이했다. 침묵의 사막에서 직접 보고 느낀 감상이었다.
영혼의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안데스였기에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이었다.

[아무튼. 진실의 서약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역시 루아스 교국에서 옛 왕의 지워진 역사를 입에 담은 것인가.]

진실의 서약의 과정 전부가 궁금할 텐데 주검의 영광만 콕 집어서 물어본 것은, 안데스의 목적 의식을 분명히 하면서도 베르덴과의 관계에 무척 주의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공유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 그 일례였다.

“대략적인 흐름은 밝혔습니다.”

[수왕에게 제대로 허를 찔렸군.]

베르덴은 루아스 교국의 답변만이 아니라 진실의 서약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 간단하게 요약해서 설명해 줬다.

안데스가 양손을 모았다.

[주검의 영광을 직접적으로 경계하는 세력들이 많을수록 확실히 우리는 유리해지겠지. 다만 수왕이 대체 누구에게서 루아스교의 기밀을 들었는지가 의문일세.]

수왕은, 철저하게 외견을 감춘 인물이 정보의 출처라고 언급했다. 진실의 서약에서 한 대답이니 거짓은 아니었다.

[어쩌면 주검의 영광이 루아스 교국과 다른 세력 간의 분란을 유도하려 손을 쓴 것일지도 모르지. 하나 내 직감은 조금 다르네.]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주검의 영광…… 그를 뛰어넘는 악의가 느껴져.]

안데스가 손가락을 굽혀 뼛소리를 냈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린 주검의 영광을 조력하는 ‘세 번째 세력’을 예상하고 있네. 그들이 공작을 폈을 가능성을 높아. 옛 왕의 신체 부위가 어디에 있는지 하인들에게 알려 준 것처럼. 물론 모든 것이 추측에 불과하지만. 만일 실존한다면…….]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점이 위협적이군요.”

[상대를 모르면, 우리는 불리를 끌어안고 움직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세계 회의에서 최소한의 단서를 얻었으니 그를 놓치지 말아야 하네.]

둘이 동시에 말했다.

“히아레마르 내해.”

[히아레마르 내해.]

옛 왕이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용검 마그라스가 있다고 밝혀진 장소.

“이데라트 연맹국이 공개한 정보입니다. 연맹국이 그 세 번째 세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알 수 없네. 그러니 조사해 봐야지.]

안데스가 창밖을 응시했다.

[용검의 소재가 드러난 걸 인지한 직후 이데라트 연맹장과 레논 버나드의 뒷조사를 시작했네. 그러니 이 부분은 걱정할 것 없을 걸세. 뭔가 꾸민다 싶으면 즉각 자네에게 연락을 취할 테니.]

안데스가 수백 년에 걸쳐 준비한 세력은 겉으로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상대를 모르면 우리는 불리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대에게도 통용되는 명제였다.

여러 변수에 선제 대응한다.

안데스의 이런 신속한 행동력은 베르덴의 마음에 들었다. 최악의 상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최악을 낳는 법임을 알기에.

베르덴이 말했다.

“그래도 금환일식에 마그라스가 나타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닐 겁니다.”

[그렇겠지. 처음부터 거짓을 입에 담는 건 아무런 효과도 없을 테니까.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는 진실과 거짓을 섞는 게 효과적이니. 뭐가 됐든 용검을 둘러싼 갈등은 예고된 셈이지.]

안데스가 첨언했다.

[만일 누군가가 용검을 손에 넣었다면, 물리적 충돌은 반드시 피하게. 그것은 모든 사물을 부수는 검이니.]

그건 관리자에게 들었다.

‘5대 전설. 만물을 극하는 용검 – 마그라스.’

물질적으로 분명한 실체를 가진 것과 완전히 상극하는 검.
한 명의 드워프가 엄청난 양의 용골을 소재로 사용해서 제작했다고 하니 그 위험은 애써 설명할 것도 없으리라.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부탁? 아, 물론이지. 오히려 환영이네. 어서 말해 보게.]

“기억을 공유해 줄 수 있으십니까.”

베르덴이 나지막이 말했다.

“초월자 전쟁의.”

[…….]

타인에게 기억을 훤히 보여 주는 데엔 최소한의 신뢰 관계가 전제된다.
그런 이유로 침묵의 사막에서 처음으로 안데스를 마주했을 때는 입에 담지 않았지만, 세계 회의가 끝난 지금은 또 달랐다.

‘세계 회의에서 결정된 여러 안건을 벌써 전해 들었다는 건, 세계 회의 참석자 중 누군가가 안데스의 세력이란 뜻.’

안데스는 800년 전의 진실에 대해 말해 주었지만 아직 죄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곧 때가 올 것이라며 알려 주지 않았다.
피차 준비할 게 많지 않냐며.

베르덴은 안데스가 더 강한 확신을 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착각은 아니었을 터.

명심해야 한다.

단순히 이해관계만 일치하는 협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게다가 강한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거리고 불안정하다.

신뢰는 이해를 넘어선 영역에 있으므로.

그런 관점에서 베르덴이 장담했던 것 이상으로 세계 회의를 주도하는 모습은, 안데스의 마음의 벽을 어느 정도 허물었으리라.

이에 안데스가 답했다.

[방법이 무엇이지?]

“<기억 공유>라는 마법입니다.”

[고유 마법이군…… 기꺼이.]

안데스가 턱을 당겼다.

[다름 아닌 자네에게 내가 본 모든 장면을 실제로 보여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얼마든지 보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베르덴이 부드럽게 팔을 뻗었다. 그가 안데스의 두개골에 손을 얹었다.

“보여 주고 싶은 기억을 차례대로 회상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대신 제가 보여 주고 싶은 기억이 반대로 흘러 들어갈 겁니다.”

[순차적으로 기억을 공유하는 건가. 또한 자네의 기억을 저울에 올려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고. 상냥한 마법이로군.]

그렇다.

<기억 공유>는 로벨린에게 보헤미른 마탑에 대한 복수의 전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창조한 베르덴의 마법이니까.

[아, 이제 황금의 죄인의 기억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할 걸세. 두 번째 하인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건, 그만큼 옛 왕의 부활이 거의 목전에 다가왔다는 의미니. 아마도 18일 정도면 7~8할 정돈 돌아오젰지.]

안데스가 속삭였다.

[앞으로 18일 뒤. 두 명의 죄인이 자네를 찾아갈 걸세. 황금 비고를 개방하기 위해서.]

“황금 비고라면…….”

[하하, 그건 나중에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좋겠군.]

안데스가 마력을 최대한 가라앉히며 옛 기억에 잠겼다.

[난 준비됐네.]

베르덴은 황금의 죄인을 잠시 떠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 악마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여전히 베르덴을 바라봤다.

“그 전에 질문이 있습니다. 혹시 저에게서 바다 냄새 같은 게 납니까?”

[바다?]

안데스가 마법적으로 후각을 형성해 잠시 집중했다.

[아니. 전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베르덴이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기억 공유>

───!

초대 네크로맨서가 실제로 경험했던, 대륙의 절반을 불태운 전쟁의 역사가 베르덴의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쳤다.

시체의 산.
그 위의 군주.

그렇게 베르덴은 옛 왕을 보았다.

* * *

에온의 재정을 관리하고 있는 빈테르트의 로베르트는, 황금의 죄인을 스승으로 삼아 자금 운용법을 배우고 있다.

고대의 언데드와 사제 관계를 맺은 지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여태껏 그녀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깊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했던가?

로베르트는 이대로만 가면 에온 내에서 절대적인 자금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생각에 열정이 활활 타올랐다.
밑바닥 출신인 그녀에게 권력 추구는 당연하고, 순수한 욕망이었다.

“스승님, 전염병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하면서 리켄티아의 보석과 액세서리에 대한 주문이 몇 배로 늘어났습니다. 예정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대륙 사교계를 머지않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자금도 확보했고요. 이제 이걸…….”

로베트트가 잠깐 멈칫했다가 조심스럽게 시선을 높였다. 평소 수다스러운 황금의 죄인이 너무나도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황금의 죄인은 자신의 목에 건 펜던트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스승님?”

[…….]

바로나스의 감람석───부부의 행복을 상징하는 그 보석이 황금빛 손가락 뼈에 가려졌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했다.

부부, 남편, 아내, 자식, 가족. 부부, 아내. 부부, 아내, 부부, 아내, 부부, 아내, 아내. 아내, 아내, 아내, 아내, 아내, 아내, 아내, 아내──

황금의 죄인의 옛 기억이 일부 번뜩였다.

[다이…… 에니아…….]

다이에니아.
그리고 그녀의 애칭.

[다이나.]

“네? 다이나 은행에 무슨 볼일이라도…….”

[후호홋. 후호호호호호홋!!]

황금의 죄인이 펜던트를 콱 움켜잡고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었다. 로베르트에게는 마치 절규처럼 들리는 듯한 웃음이었다.

콰앙!

황금의 죄인이 냅다 책상을 후려쳤다.

“스, 스승님?”

[아칸드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

뚝…… 뚝…….

황금의 죄인의 텅 빈 눈 안에서 피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가 두개골을 붙잡으며 원한과 절망을 토해 냈다.

[너도, 모든 걸 잃게 해 주마……!]

* * *

초대 네크로맨서와의 만남을 마친 베르덴은 본래 일정을 취소하고는, 주인 없는 땅이 아닌 블랙 아워의 대전당으로 복귀했다.
대동한 건 알파와 베타뿐.
그 외에는 누구도 없는 밀실에서 [레인디아]를 기동했다.

후웅.

베르덴의 손 위에 [그링 아르카넘]이 소환되었다. 도대체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는 정체불명의 고서가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3대 전설. 세계 금서. 그링 아르카넘.]

알파가 미니 골렘에 있는 기억 골렘의 기능을 활성화했다.

[실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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