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76

876화 축제 협의 (1)

모험가 길드의 흑요 등급 모험가에서 뒷세계의 중개자로 전락한 삶에는 영광도 없었고, 최소한의 보람도 없었다.
그저 더러운 진흙탕과 같았다.

그런데 딱히 이렇다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뒷세계가 뭐 어때서?

약자를 병탄하고 강자가 군림하는 세상이야말로 본연의 세계일진대. 음지는 좀 더 노골적일 뿐이고, 양지는 좀 더 점잖은 척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음지가 오히려 더 편하기도 했다.

쓰레기와 버러지가 싸우도록 만들면서 이윤까지 챙길 수 있으니까. 우물 안이어도 강자로서의 기분도 느낄 수 있고 말이다.

그러다가 멋모르고 정체를 감춘 초월자의 심기를 건드려 우물 밖으로 끌어 올려졌지만…… 그 밑에서 살아 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뱀의 머리에서 용의 꼬리로.
잘하면 용의 꼬리에서 등으로.

진정한 강자는 될 수 없을지언정 그에 한없이 가까워질 수는 있다. 어차피 세상이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브로커.
세를로 브로던은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그 이치를 깨달았다.

“브로커, 이 개새──”

단칼에 기도와 척추가 끊어진 쓰레기가 바닥을 나뒹군다. 장검엔 피 한 방울 기름 한 방울 묻어나지 않았다.

세를로가 크게 콧숨을 내쉬며 검을 지팡이처럼 다루었다. 비명과 함성을 지르며 죽어 나가는 놈들이 시야에 비쳤다.

“제법 보람찬 광경이군.”

이곳은 도시 연합 카일리언스와 델하룬 남부를 잇는 땅 위의 도시, 언포드(Unford).

배를 이용하지 않고 델하룬으로 넘어갈 때 흔히 거치는 곳이다.
델하룬은 사회적으로 척박한 편이라 다른 관문 도시에 비하면 인구는 적지만, 그래도 지역과 지역 사이에 있어 유동 인구는 제법 있다.

3세기 전 당시의 수왕을 살해한 초월자 – 여제(女帝)의 권역이었던 델하룬은 현재 제후들과의 인맥만 있다면 살 만한 국가이므로.

이종족 전쟁에서 여제가 수인과 인간의 협상을 피로 물들이고 그를 속죄하지 않은 탓에 델하룬은 국제 사회에서 배제되었다.
그렇기에 정치와 권력의 구도는 더욱 폐쇄적으로 변모했다.

주인 없는 땅처럼 외부에서 온 인물이 영주가 될 수는 없을지언정 지역 유지의 마음에 들면 권력자로 급부상할 수 있다.
서로 몸이 얽히고설켜 한 뭉치가 되어 버리는 뱀 소굴처럼 말이다.

혈맹에서 델하룬 남부의 어느 도시를 회의장으로 선정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외부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안전을 도모할 수 있으니.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들이 간과한 것은 초월자가 직접 혈맹을 치러 왔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마울러가 델하룬의 북부와 남부를 통일해 권역을 확립함으로써, 델하룬은 다시 세계의 무대에 설 자격을 되찾았다.

다시 말해…….

델하룬은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다.

새롭게 탄생한 세력인 만큼 자리가 아직은 많이 남아 있을 테니까. 초월자 세력이란 곧 세계의 지배 세력이니까.
무엇보다 에온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초월자가 있으니까.

그간의 행실을 돌아보고는 지성체의 존엄을 어긴 것 같다고 판단한 뒷세계의 인물들은 목숨을 지켜 줄 방패가 필요했다.

본래 혈맹에 의존하려고 했으나, 혈맹은 에온의 상대가 감히 되지 못했다. 위상 암살은 크게 실패했고 역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간부 대부분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뒷세계를 통제하려 들었다. 에온의 칼날이 턱 밑까지 왔는데 말이다!

해서 다급하게 방향을 튼 것이다.

델하룬에 정식으로 입국한 뒤, 델하룬을 따르는 제후들과 만나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비호를 받을 작정이었다.
나름대로 준비는 철저히 했다.
자칫 마울러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가는 도망칠 곳이 더는 없었으므로.

그러나.

애석하게도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틈은 벌어지기 마련인 법. 특히나 목숨의 경각에 달렸을 때는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공작을 하기에 적합한 순간이다.
무력보다도 언변을 무기 삼아서 뒷세계를 살아온 브로커의 눈에, 그들은 그저 손쉽고 맛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동부 대영주를 죄다 죽여 버리고 남부 동맹까지 뒤통수 친 브로커다운 솜씨군.”

군림자, 라테온 오프니엘이 옥상으로 올라와서 세를로와 함께 상황을 주시했다. 에온의 집행 부대가 자율적으로 움직였다.

그 중심에서 용병왕이 껄껄 웃었다.

“과연 야망이 넘치는 눈길들이로군. 그래, 그때는 젊음이 전부지.”

캉!

몸을 극단적으로 숙여 네 방향에서 찔러 들어온 창칼을 피했다.
원을 그리듯 네 명의 발목을 다리로 쓸어버렸다. 검기로 두 명의 배를 가르고, 허공에 뜬 창을 붙잡아 휘둘러 두 명의 목을 갈랐다.

“어, 언포드를 벗어나라!”
“시발 새끼들아! 너희가 빠지면, 어억!”

푸확.

용병왕의 투창에 심장이 관통당한 전사의 비명을 뒤로하고, 일부 마법사가 <비행>을 시전하여 탈출을 시도했다.

<프로미넌스>

<스파이럴>

5위계급 화염 마법과 대기 마법이 화염 폭풍을 형성했다. 대처가 늦은 뒷세계의 마법사들이 까맣게 탄 채 추락했다.

쾅! 콰앙!

언포드의 한 구역은 전장이 되었다.

그곳은 브로커가 고도의 정보 조작으로 에온의 계명 위반자들을 유인한 함정이었다. 민간인은 전부 다른 곳으로 보냈다.

“동부 대영주는 직접 처리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남부 동맹을 뒤통수 친 적은 없네. 그저 도중에 일을 포기했을 뿐이지.”
“안목이 조금만 더 덜떨어졌으면 놈들하고 같이 누워 있는 건데.”

세를로가 피식 웃었다.

“나잇값은 해야지. 그나저나 자네도 힘에 굴복한 것은 매한가지 아닌가? 아직 에온이 대두되기도 전에 중앙 대륙 4강 중 한 명인 군림자가 주인 없는 땅의 북부 밑으로 들어갔으니.”
“같은 취급하지 마라. 네놈과 달리 나는 정식으로 권유받은 거니까.”

베르덴에게 덤볐다가 박살 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라테온에게 초월자가 직접 찾아와 함께하자는 제안을 건넨 건 사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작 부리다가 제대로 걸려서 목숨을 저당 잡힌 채로 겨우 연명했었던 세를로와는 처지가 달랐다.

“처음에는 그랬지만, 나도 나중엔 권유를 받았네. 아무튼. 서로 출신은 다를지언정 함께 용의 등에 탄 사람으로서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라테온이 단언했다.

“누가 용의 등으로 만족할까 보냐.”
“원래 꿈은 크게 가져야 하는 거지. 일단 일부터 끝내고 돌아가세. 델하룬에서 개입할 틈조차 없도록 해야 하니까.”
“흥, 저쪽에 그럴 여유가 있는지 모르겠군.”

마울러는 주검의 영광 건으로 루아스교의 눈치를 보고 있다. 하물며 다른 곳에선 세계 회의에서 통과된 안건들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델하룬의 권역을 침범하는 수준이 아니면 일일이 반응할 여유는 없을 터였다.

“그래도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은 피해야 하는 게 상책이니. 너는 여기 있어라. 그리고 나중에 베르덴 님께 잘 보고하도록.”

라테온이 모서리가 피로 물든 금속 방패를 들고 난간에 발을 올렸다. 체중을 싣자 난간이 구부러지며 그의 몸이 허공에 떴다.

“나야말로 에온의 방패라고.”

전장 한가운에 착지한 라테온이 압도적으로 적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세를로가 고개를 저었다.

“출세욕 하나만큼은 정점이구나.”

* * *

세계 회의에서 합의된 히아레마르 탐사 논의는 이데라트 연맹국에서 이루어졌다.

마법 자주 연대.
델하룬.
아르나크 제국.
레프라기움 마탑을 제외한 9대 마탑.
루아스 교국.
이데라트 연맹국.
모험가 길드.
아케나드 마도국.
하이랜디아.
수인 대부족.
템플.
가르간트.
에온.

탐사에 직접 참여하는 세력과 국가는 이렇게 총 열세 곳이다.
이번 논의가 종료된 이후 며칠 간격으로 대륙 간 무역 협의, 마경 탐색, 해양 마석 광산 추가 개발안 등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장소는 연맹국으로 같되.
회담 구성원만 차이가 있을 예정이다.

“…….”

에온의 열두 번째 위상, 메드란트 케덴은 에온과 오스테아 마탑을 동시에 대표해서 보란 듯이 일석을 차지했다.
세계 회의에서 정체를 발각당했으니 더는 내력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소사이어티를 창설한 인물 중 한 명인데도 다른 마탑에선 적의 대신 중립적인, 혹은 우호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적응 안되는군.’

최하위 마탑이라고 멸시받아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그중에서 화산섬의 마탑주의 눈빛이 특히 부담스러웠다.

“하하. 세계 회의에서 보고, 또 뵈니 정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전반적인 진행을 맡았는데, 많이 부족해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계 회의의 상원, 이데라트 연맹장, 테리웬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다종족과의 조화를 주장하는 대표격 인물다운, 그야말로 평화를 사랑하는 듯한 선한 인상이었다.

테리웬의 의례적인 연설을 들으며 메드란트는 생각했다.

‘베르덴이, 그 괴상한 지성체와 함께 심해에서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금환일식은 앞으로 수십 일 뒤면 시작된다.’

이데라트 연맹장이 레논 버나드와 함께 주장한 예언의 실현이 코앞이다. 둘 다 진실이라면 용검의 소재는 곧 드러날 터였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게 정말 우리뿐일까?’

에온의 권역에 머무르고 있는 흑해가 그 내용에 관해 서신을 보냈으니, 모험가 길드는 물론 인지하고 있겠지만.
다른 세력은 어떨까.

‘베르덴이 입수한 정보는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곳으로도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어.’

그뿐만 아니라 어쩌면 베르덴처럼 심해가 아닌 다른 출처를 통해서 금환일식의 날짜를 파악한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메드란트가 할 일은 단지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만이 아니다.
베르덴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옛 왕의 무기인 용검이 하필이면 지금 외부로 모습을 드러낸 내막, 그 속에 감춰진 의도를 밝혀내는 일 또한 그에게 주어진 과제다.

테리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이렇게 인사도 마쳤으니, 용검 마그라스의 소재를 찾아내기 위한 히아레마르 내해 탐사 회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안녕. 나는 알파. 여기는 아케나드 마도국의 센트럼.]

[베타입니다. 마도 축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센트럼에 방문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치 면담을 하듯 두 인공 골렘의 질문을 받은 레바나가 몸을 움찔 떨더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크, 큰일 났다?”

[다른 표현도 부탁합니다.]

“어…… 수습 불가능?”

[감사합니다.]

알파를 머리 위에 실은 베타가 고릴라처럼 사족 보행으로 이동했다.

[큰일났다. 수습 불가능하다. 에온의 여섯 번째 위상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베르덴 폐하께서는 현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베르덴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생각 중이다.”

[베르덴 폐하. 심각. 분위기 전환 실패.]

반젤리스와의 대련…… <아케인> 검증을 마치고, 베르덴 일행은 귀빈관으로 돌아왔다. 만찬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충격이 클 테니 진정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반젤리스의 배려이기도 했다.

“역시 수습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주군의 해명을 들을 생각이 아주 조금도 없어 보이니, 차라리 그에 편승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드리안의 말이 맞아. 아무리 해명해도 저렇게 눈을 번뜩이면서 가주는 위대한 혈통이야! 마도왕의 핏줄이야! 가족이야! 저렇게 나오는 데 우리가 어쩔 수 있겠어? 오해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저쪽에 있는 거야. 응? 가주의 <아케인>이 그런 식으로 드러날 줄 누가 알았겠어?”

이자벨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초대 마도왕과 가주의 관계를 따져 보면, 거의 핏줄에 가까울 정도고.”

[알파. 베르덴 폐하. 가족.]

알파가 미니 골렘의 짧은 손을 베르덴의 손등에 얹었다. 베타도 당연하다는 듯이 제 형을 따라서 그 위로 팔을 얹었다.
참고로 관리자와 인공 골렘에 대한 정보는 기밀 중의 기밀이다.

레바나는 뭔가 아주 엄청난 이야기가 오가는 것 같아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베르덴이 알파와 베타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되돌릴 방법은 없다. 변명의 여지도 없는 내 실책이지. 그나마 현상 유지라도 하고 싶지만,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이상 오해는 더욱 깊어질 거다. 이자벨라, 너도 그렇고.”
“응? 나?”
“네 뿌리가 여기니까.”

이자벨라는 잠시 잊고 있었던 데이로스 가문을 떠올렸다. 그녀의 존재에는 마도국 명문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

“앗.”

* * *

센트럼의 만찬장으로 향하는 길은 메드레일이 직접 안내했다.

“……데이로스 가문, 이요?”

메드레일이 깜짝 놀라며 이자벨라와 베르덴을 번갈아 봤다.

베르덴은 애초에 데이로스 가문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자벨라의 출신을 밝힐 예정이었지만, 혈통 검증으로 인해 그 결과는 예상보다 조금 더 틀어지고 말았다.

“과거 억울하게 퇴출당한 마도국의 명문가…… 또 마도왕의 새로운 핏줄…… 그런 두 사람의 필연적인 만남……?”

메드레일이 숨을 삼켰다.

“서사가……!

그 할아버지에, 그 손녀다.

오해는 한 차원 더 깊어지는 와중 베르덴 일행이 만찬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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