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78

878화 비애 (1)

만찬을 뒤로하고.
달이 보이지 않는 밤이 깊었다.

터벅, 터벅.

반젤리스는 누구도 대동하지 않고 베르덴 일행을 어딘가로 안내했다. 그들의 발소리가 센트럼 복도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가능하면 베르덴만 데려가고 싶었다만.”

아드리안이 즉답했다.

“주군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든 간에 굳이 끼어들 생각은 없다. 연무장에서 그랬듯이 소리를 차단해도 상관 않겠다. 내 시야에 닿기만 한다면.”

거기까지가 아드리안이 호위로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였다. 8위계가 대수인가. 베르덴에게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좌시할 생각이 없다.

“훌륭한 충심이군. 과거에는 버르장머리 없기로 소문이 아주 자자한 검사가 초월자가 되어 개인에게 충성을 바친다니. 로드릭 리반데일도 황제가 아니라 제국을 위할진대. 이 또한 예측을 벗어나는 세상사의 이치겠지.”
“누가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아드리안. 버릇 없음.]

알파의 객관적인 일침을 들은 반젤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을 막론하고 성질을 조금이라도 건드렸다 싶으면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걸, 행실이 바르다고 할 수는 없지. 내가 오래 살기는 했지만 평민 출신의 검사가 공식석상에서 왕족과 귀족을 하대하는 경우는 처음 들었다. 괜히 망나니가 아니야.”
“진귀한 경험이 늘었다니 다행이군.”
“덕분에 앞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다양한 성격의 초월자가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니까. 게다가 넌 벤디에 카에나르와는 아예 정반대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기도 하고.”

마스터는 인품은 뛰어나지만 냉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천검은 사납기로도, 가차 없기로도 유명하다.

앞으로 어떤 앞날이 펼쳐질 것인가?

세상의 흐름은 존재들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어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걸 지켜보는 것은 반젤리스의 오랜 취미 중 하나였다.

아무튼.

반젤리스는 보기보다 훨씬 사교적인 인물이기에, 사실상 초면인 아드리안과도 농담을 하면서 능숙하게 대화가 가능했다.
그렇게 적적한 분위기를 달래고 있던 도중 그가 문득 몸을 살짝 돌렸다.

“그보다…… 본인이 늘 곁에 있는 바람에 물어볼 기회가 좀처럼 나지 않아서 말인데. 직설적으로 하나 물으마.”

반젤리스의 시선이 베르덴에게 향했다.

“골렘 기술은 온전히 네 것인가?”

알파와 베타는 평범한 모험가의 시각에서도 천연 골렘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그 아이들의 형태를 빚었을까.

반젤리스만이 아닌 마법계 전체는 알파와 베타의 기원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다. 본인 앞에서 대놓고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베르덴이 제작자인가.
다른 누군가인가.
혹은 고대보다 훨씬 더 먼 시대의 마법적인 유물 같은 걸지도 모른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지성을 갖춘 인공 골렘은 너무나 상식을 벗어난 존재라, 많은 마법사는 유물에 무게를 두었다.

이에 알파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아빠.]

알파는 베르덴의 어깨 위에서 보란 듯 작은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베르덴이 굳이 대답할 것도 없었다.
어느 모로 봐도 그 이상의 친분과 친애의 과시는 없을 터였다.

반젤리스는 멍하니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껄껄 웃었다.

“하하하, 가족이 늘었군.”

때마침 막다른 곳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후웅.

센트럼의 미세한 벽 틈새를 따라서 마력의 빛이 새어 나왔다. 센트럼의 주인인 반젤리스의 의지에 반응한 것이다.

벽 전체가 아주 작은 사각형 알갱이로 쪼개지고 다시 재구성되더니, 곧 마법의 미학을 담은 웅장한 문으로 변모했다.

베르덴이 물었다.

“어디로 이어진 입구지?”
“마도왕의 전당.”

반젤리스가 손수 문고리를 잡아 비틀며 앞으로 밀었다.

“위대한 혈통이 잠든 곳이다.”

화아아악.

내부의 환한 빛이 복도의 은은한 어둠을 일거에 집어삼켰다.

[……!]

알파가 외눈을 반짝거렸다.

마법적인 요소로 장식된 드넓은 공간의 끝자락, 여섯 개의 초상화가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는 초대 마도왕의 위엄 어린, 그리고 생생한 얼굴이 담긴 거대한 초상화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 *

아케나드 마도국이 건국된 지 5세기가 넘었지만 역대 마도왕은 단 7명밖에 되지 않는다.
초대 마도왕이 왕위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음에도 말이다. 이는 그를 제외한 6명 중 3명이 초월자였기 때문이다.

“마도국의 긴 역사에 비해 숫자가 적기에 초라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 그래도 나쁘진 않다. 혈통이라는 특수성을 보여 주기도 하고.”

위대한 혈통을 감당할 수 있는 후손은 초월자로 각성하지 못해도 신체는 강건했다. 그 수명은 대륙의 평균을 한참 웃돌았다.
선대 마도왕은 나이가 100세에 육박했음에도 정정했다.

“아무리 위대해도 시간을 이기지 못했지만.”

반젤리스가 뒷짐을 지고 정면을 장식한 초상화를 향해 나아갔다. 그는 아드리안과 알파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베르덴이 손짓했다.

아드리안은 군말 없이 물러섰다. 알파는 베르덴과 함께 대화를 듣고 싶었지만 떼쓰지 않고 아드리안의 어깨로 옮겨 탔다.

그렇게 베르덴은 홀로 반젤리스의 외로운 걸음을 따라갔다.

“예로부터 초대 마도왕의 후손은 땅에 묻지 않고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시신에 연구 가치가 있다고 보는 마법사들을 경계한 대책이었지. 그래서 이곳엔 유골함조차 없다. 그저 생전에 그려 놓은 초상화만이 전부일 뿐.”
“…….”
“나도 언젠가 수명이 다하면 그리될 거다. 내가 그랬듯이 메드레일이 나의 육신을 태우고…… 저 벽에 내 그림을 걸겠지. 하하하.”

반젤리스가 감정 없이 웃으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웃기는 일이지 않나? 위대한 혈통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도굴이 무서워서 죽어서도 마음 편하게 땅에 묻히지도 못하는 신세가.”

베르덴은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직감을 기반으로.

“뭐가 그렇게 원망스럽지?”
“…….”

정적이 내려앉았다.

발소리가 귓가를 파고들며 마도왕들의 초상화가 점차 가까워진다. 대화가 다시 이어진 것은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어린 나이에 사람을 꿰뚫는 눈을 가졌다는 것도 타고난 재능이겠지. 날 가장 오래 봐 온 이들조차 내게 그리 물은 적이 없었는데.”
“네가 숨기려 하지 않았으니까.”

반젤리스가 철저히 감추고자 했다면 그의 감정을 누구도 파악할 수 없었을 터였다. 8위계 초월자에게 자신을 통제하는 것쯤은 손쉬운 일이다.

“숨기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존재란 저마다 다르고, 그만큼 편협함도 안고 있기 마련이니.”

초상화 앞에서 멈춰 섰다.

반젤리스 이전의 마도왕들이 정면을 보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들과 베르덴과의 거리는 열다섯 걸음 정도였다.

반젤리스가 말했다.

“모든 위대한 혈통은 초대 마도왕을 숭배해 왔고, 또 존경해 왔다. 명실상부한 가장 위대한 마법사이자 초월자. 그런 격이 다른 존재가 가문의 시조이니 어느 누가 자부심을 갖지 않겠나? 내가 8위계의 잠재력을 가진 것도 시조의 덕이거늘.”

그가 초대 마도왕을 떠받치듯이 양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케나드 마도국이 이토록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초대 마도왕의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시조께 깊이 감사하고 있지.”

콱.

반젤리스가 강하게 손을 말아 쥐었다.

“그래서 원망스럽다.”

* * *

초대 마도왕의 초상화를 노려보는 반젤리스의 눈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거짓된 연기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감정이었다.
그 감정의 농도는 베르덴조차 놀랐을 만큼 아주 짙고, 또 짙었다.

“베르덴, 너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본 경험이 있나?”

베르덴은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비공식 실험체였던 시절에도, 가족과도 같은 사람을 잃은 기억은 결국에 없었다.

“……없다.”
“초월자는 남들보다 수명이 길어서 주변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 그것은 시간을 극복하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 그때의 감정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대개 참담하다. 그중에서도…….”

반젤리스가 베르덴의 등에 손을 얹었다.

“내게 평생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자식들의 죽음이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시야가 일렁였다.

……!

역대 마도왕들의 초상화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다른 초상화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속 인물들의 나이는 제각각이었지만, 보다시피 대다수는 젊거나 어린 편이었다.

“혈통의 저주를 이겨 내지 못하고 천수를 누리지 못한 아이들이다.”

반젤리스는 두 사내와 한 명의 여자아이가 웃고 있는 작은 초상화 앞에 섰다. 차례대로 장년, 청년, 소녀의 나이대로 보였다.

“둘째 아들은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 마도국 기사들과 함께 어울려서 육체를 단련하는 법을 자주 배웠었지. 하지만 끝내 18살을 넘기지 못하고 저절로 마력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심장이 스스로 파열돼 눈을 감았다.”
“…….”
“그다음 해에 막내딸이 죽었다. 마력이 너무도 강력해서였을까. 마력회로가 육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기현상이 벌어졌지. 이 둘 다 내가 곁에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혈통의 저주로 인해서 촉발되는 죽음은 예측할 수 없었고 대처할 수 없었다. 발현하는 순간 반드시 숨을 거두었다.
마치 초자연적인 개념이 그들의 죽음을 결정한 것처럼 말이다.

“장남은 태어났을 때부터 병약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살아 주었어. 침대에 앉아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책임감도 있었지. 혈통을 잇기 위해서 그 몸으로 자식을 가지려고 애썼다. 내가 그리 만류했는데도. 그리고 노력은 결실이 되어 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센트럼에 울려 퍼졌지.”

베르덴이 말했다.

“그 아이가 메드레일이군.”

반젤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산 과정에서 메드레일의 어미가 목숨을 잃었다. 그 아비는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내 곁을 떠나더군. 혈통을 위해 목숨만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는 듯이.”

청금색 눈동자가 하늘을 향했다.

“지난 5세기 동안 위대한 혈통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래도 끝까지 자식을 가져야만 했지. 왜? 무슨 일이 있어도 위대한 혈통이 끊기면 안 되니까, 그게 위대한 혈통을 잇는 자의 의무니까.”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혈통을 견디는 자식이 나올 때까지 낳고 또 낳는 격통은 심신을 크게 앗아 갔다. 아무리 초대 마도왕의 후손이라도 해도 그 순간을 계속해서 감히 견딜 수는 없었다.

“초대 마도왕의 후손은 나와 메드레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후손의 수가 점차 줄어드는 건 처음부터 예견된 상황이었다.

“훗날 내가 생을 마감하면, 메드레일이 8대 마도왕이 되겠지. 그 아이라면 언젠가 각성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기에, 녀석은 고통스러운 날들을 견뎌야 할 거다. 마지막으로 남은 위대한 혈통을 주변에서 가만히 둘 리가 없으니.”

메드레일은 아버지를 쏙 빼닮았는지 혈통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그녀라면 어떻게든 대를 이으려고 노력할 터.
그럼 귀족들은 위대한 혈통에 피를 섞어 보겠다고 기회를 엿볼 것이다. 주변국에서도 마도국을 노리려 할 것이다.

거기서 메드레일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득.

반젤리스는 손녀의 미래를 상상하고는 노기를 드러냈다.

“위대한 혈통으로 고통받는 건 내 대에서 끝내야 한다. 내 하나뿐인 보물에게도 그런 아픔을 겪게 할 수는 없다. 절대로…… 그래서, 베르덴. 그래서 네가 필요한 거다.”

반젤리스가 성큼성큼 다가와 베르덴의 양 어깨를 붙들었다.

“너는 위대한 혈통이다. 위대한 혈통이어야만 해. <아케인>을 체득한 이상 너에겐 아케나드 마도국의 차기 마도왕이 될 자격이 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메드레일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희망은 오직 너뿐이다.”

반젤리스의 이상이 무엇인지 점차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의 꿈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처럼 소박했다.

“하나만 묻겠다.”

베르덴이 입술을 떼었다.

“내가 없었으면 너는 어쩔 생각이었지?”

새로운 혈통이 없었다면 반젤리스는 메드레일을 위해서 무엇을 했을까. 그는 결의를 다진 얼굴로 곧 침묵을 부수었다.

“결국 메드레일을 가두는 것이 마도국이니.”

……기분 탓일까.

반젤리스의 얼굴에서 올다르크 루인 아케나드의 모습이 비쳤다. 초대 마도왕의 초상화 앞에서 7대 마도왕이 단언했다.

“마도국을 멸망시켜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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