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95

895화 선장 의무

[오…….]

안데스 네크라일은 달레힌 성채 구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근처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감이 다수 느껴졌다.

베르덴의 명령을 받은 듀말 영주가 이형종 거주 구획을 조성하기 위해 이형종들을 도시로 불러들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은 듀말의 친족처럼, 사회에서 공존을 허락받은 일부 뱀파이어를 비롯한 지성체만 달레힌에 방문했다.

변화가 갑작스러울수록 반동은 더욱 커지는 법.

당장 거리 한복판에 인간형의 이형종이 활보해도 문제인데, 공존이 허가되지 않은 이형종이 출입하게 되면 그냥 소란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특히 그것이 산 자를 증오하는 언데드라면 더욱 그러할 터였다.

그런 이유로 안데스는 다른 이형종에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은거해야만 했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루아스교의 반대로 새로운 이형종 공존 대상 목록에 일절 포함되지 않은 악마도 마찬가지였다.

[달리 못 먹는 게 없지만, 그중에서도 과일을 참 좋아하는군.]

와삭와삭!

[사과를 가장 선호하고.]

안데스가 던져 주는 사과 조각을 그림자 악마가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새까만 안개 같은 형체, 그 위에 떠 있는 두 개의 눈동자 밑에 입이 있다. 그림자가 뾰족하게 변하면서 치아를 대신했다.

[먹은 것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어째서 먹는다는 습성을 갖고 있는가. 종교적인 해석을 아예 제외하니 규명할 수 없는 게 한둘이 아니구나.]

안데스는 새까만 깃털펜을 쥐고 수첩에 글자를 끄적거렸다.

생전에 악마를 몇 차례 토벌한 적이 있고, 성자가 악마에 대한 경험담을 이야기해 준 적 있지만 그다지 관심을 두진 않았었는데…….
당분간 그림자 악마와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한번 악마라는 종족에 대한 특징을 자세히 관찰해 보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베르덴에게 죄인들을 소개했으니 딱히 할 게 없었다.

안데스의 존재를 공존 가능한 대상으로 다크워튼 마탑에서 인정할 때까지는 이제까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두꺼운 구름이 햇빛을 가리며 그늘이 진 순간이었다.

죽음이 가까워졌다.

언데드가 되었어도 죽음에 대한 감각은 잊을 수 없었다. 안데스는 자기 자신의 몸으로 불사의 의식을 치르기 직전의 서늘함을 느꼈다.

[멀리 있어도 뼈마디가 시릴 지경이었는데. 이리 가까이 있으니 섬뜩하기 그지없구나.]

“언데드만이 아니라 악마까지.”

햇빛이 잠시 사라진 창가에서 라인델 넥스레온이 말했다. 그는 베르덴이 보낸 전령을 접하자마자 중앙 대륙으로 넘어왔다.
죽음의 개념이 깃든 눈동자가 안데스의 정체를 간파했다.

“과연. 베르덴이 이형종 공존 대상에 언데드까지 포함시켰는지 이제 이해가 가는군. 날 먼저 찾아오지 않은 것은 일말의 불안감 때문인가.”

[자네가 나를 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확신할 수 없기에 만남을 미루었네. 마도와 존재의 상하 관계. 자네가 당장 마음만 먹는다면 나는 저항조차 못 하고 소멸할 테니까.]

“저항은 할 수 있겠지.”

라인델이 다가와 안데스의 맞은편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그림자 악마는 멀뚱멀뚱 서 있었다. 라인델은 관심 따위 없다는 듯 악마에게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초대 네크로맨서이자 다크워튼 마탑의 창설자, 검은 성현, 안데스 네크라일. 8세기 전에 묻혔어야 할 당신이 언데드로 되살아나 돌아다니고 있으니. 필시 옛 왕의 부활을 경계한 것일 터. 수백 년 동안 무엇을 준비했는지 후대로서 듣겠다.”

[응당 그래야지. 다만 그 전에 초대로서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최근에 부활한 존재, 혹은 존재들에 대해서 말인가?”

[역시 인지했군. 그렇네.]

대륙 어딘가에서, 아마 주검의 영광이 죽음에서 불러낸 무언가. 그에 대한 단서를 쥐고 있는 사람은 라인델이 유일하리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나중에 베르덴에게 꼭 들려주길 바라지. 아무래도 단순히 옛 왕만 문제는 아닌 듯하니.”

[옛 왕만 문제가 아니다? 무슨 뜻이지?]

“아는 건 없다. 베르덴이라면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지. 아마도. 터놓고 말하자면 내가 가장 기대하는 사내이니. 당신도 그렇게 판단했기에 여기 있는 걸 테고.”

라인델이 턱을 괴었다.

“그럼 나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지. 초대에 대한 예우로서.”

초대 네크로맨서.

그리고.

당대의 네크로맨서.

무려 80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고, 한 시대에서 두 네크로맨서가 대화를 시작했다.

* * *

경이의 답파자.

여섯 번째 선장명은 초대 마도왕의 무덤, 침묵의 사막, 최초의 마탑 등 경이로운 미지를 극복한 업적에 대한 찬사이며.
다른 선장들이 그러하듯 고유한 의무를 암시하는 상징이다.

“어떠세요, 답파자? 이름은 마음에 드시나요?”

세계의 주시자, 다리시아가 두 손을 모으며 잔뜩 기대를 머금은 표정을 띠었다. 그녀는 베르덴이 물론 만족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베르덴은 생각했다.

‘거창한 감상은 없는데.’

의미도 나쁘지 않다.
어감도 괜찮다.

딱히 부정적일 것도 없다.

단순히 ‘당신’의 표층의지를 포함해 종종 언급한 운명 파괴자라는 별칭에 비해서는 조금 덜 인상적일 뿐이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베르덴이 입 밖으로 내뱉는 일은 없었다.

“마음에 든다.”
“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제 나름대로 열심히 고안했거든요. 입으로 발음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철자까지 세세하게 고려해서─”

다리시아가 무슨 다람쥐가 입을 오물거리듯 재잘거린다. 작명을 이렇게 취미 이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레그리트가 팔짱을 꼈다.

“네가 이해해라, 베르덴. 주시자도 선장 이름을 지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예전엔 결국 하다가 말았으니.”
“칼라드. 그분을 위한 이름도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죠. 부디 시련에 스러진 인류에게 무구한 안식이 있기를.”

초대 마도왕의 무덤에 도전했다가 1차 동력실에 갇혀 생을 마감한 후보자.
칼라드의 유품은 베르덴이 직접 수습했다.

사망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도 특유의 어색한 분위기는 없었다.

여섯 명의 선장뿐만이 아니라 방주에 소속되어 인류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죽고 사는 문제는 언제나 흔했다.

오히려 죽은 사람을 입에 담는 걸 꺼리는 것 자체가 결례였다. 그들은 죽어서도 방주의 일원으로 영원히 기록된다.

아세트로가 말했다.

“사담은 그쯤 하고, 본 주제로 들어가지.”

여섯 번째 선장 즉위식을 마친 직후 선장 회의를 소집했다.
그 장소는 엑소디움의 회장이었다.

이렇게 여섯 명의 선장이 한데 모인 이유는 신임 선장에게 선장으로서 대대로 계승될 의무를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겸사겸사 각 선장이 어떤 사명을 지니고 있는지 공유도 하고 말이다.

신입을 위한, 일종의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그때였다.

“난…… 인류의…… 적을…… 멸하는…… 것이…… 의무다…….”

재액의 토벌자가 가장 먼저 본분을 밝혔다.

말수가 적고 침묵이 습관인 그가 선뜻 목소리를 내자, 베르덴을 제외한 다른 선장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토벌자와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베르덴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일리가 있군. 어쨌든 토벌자가 먼저 말했으니 그쪽부터 순서대로 진행하지.”
“바로 제 차례네요.”

에레스가 그야말로 청년다운 미소를 지었다.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북부의 감시자의 의무는 프로스티움의 거인을 봉인한 얼음을 지키는 겁니다. 프로하스 왕가의 오랜 가업이죠. 그런데 아직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 결혼을 못 했네요. 슬슬 자식을 가져야 할 나이인데.”

보검 니비스와 북부의 감시자는 현재 혈통으로 계승된다. 그리고 니비스의 계승자는 결코 수명으로 죽지 않는다.

다만 에레스가 불시에 살해당하면 그 핏줄은 끊어진다.

그렇게 되면 방주에서 니비스를 만들기 이전처럼 프로하스의 가계에 묶여 있던 특수한 마력회로는 다른 북부인에게 깃들게 된다.
정체불명의 현상. 그렇게 프로스티움의 봉인은 지속되는 것이다.

“감시자의 눈이 꽤 높거든. 저러다 수백 년 동안 왕으로 지낼지도 몰라.”
“음? 그게 레그리트가 할 말인가요?”
“물론 아니지. 근데 이제는 다를 수도?”

레그리트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뭐, 잘 알겠지만. 내게 주어진 의무는 말 그대로 미지의 탐색이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아티팩트나 새로운 시련 등을 방주에 넘기지. 최초의 마탑처럼 말이야. 한마디로 방주, 즉 인류를 위한 개척자랄까? 앞으로도 쭉 함께하자고. 침묵의 사막에서처럼 오붓하게.”

레그리트가 한 손을 들어 베르덴을 향해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그녀의 손과 이마, 그리고 눈동자에서 드래곤의 특징이 보였다.

“아예 용인이 돼 버리더니 노골적으로 변했네. 안 부끄러워요?”
“좀 부끄럽긴 해.”
“하여튼…… 흐흠. 저, 세계의 주시자의 의무는 ‘판별’이에요. 세상의 눈으로, 주시한 사람이 방주의 후보, 또는 일원으로 적합한지 구분한 다음에 영입을 결정하죠. 시련을 극복했으나 심하게 다친 후보를 위해 대원을 파견하거나, 시련의 현장을 관측하거나, 글러트니처럼 적을 감시하기도 하고요. 안타깝게도 만능은 아니지만요.”

다리시아는 특정 존재를 주시하려면 그 존재를 한번 봐야 한다. 별개로 초월자와 같은 존재는 판별할 수 없기도 하다.
제약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눈의 소재로 사용된 천공룡 아에로돈처럼 말이다.

“그런 제 의무는, 균형의 조율자와 깊이 연관되어 있답니다.”

아세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보자들이 시련을 극복할 가능성을 예측하고, 각자의 수준에 걸맞은 아슬아슬한 시련을 조율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이를 포함하여, 방주를 위한 모든 연구가 나의 의무지.”

세계의 주시자는 곧 방주의 눈이며.
균형의 조율자는 곧 방주의 머리.

위 두 선장은 방주가 아크를 손에 넣은 뒤 구축한 시련 체계의 핵심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베르덴, 윗분께서 네게 부여한 의무는 우리와 결이 좀 다른 편이지.”
“어떤 점이 그렇지?”
“모호하거든.”

촤라락.

레그리트가 방주의 지도자가 직접 쓴 임명서를 펼쳤다. 그녀가 임명서에 기재된 베르덴의 사명을 나지막이 읊었다.

“여섯 번째 선장, 베르덴. 그대는 세상의 경이를 밝혀내고 규정하라.”
“…….”
“그것이 인류의 적인지, 아닌지.”

에레스처럼 짧은 의무였다.

하지만 에레스와 다르게 전혀 직관적이지 않고 함축적이었다. 다른 선장들은 그 진의를 어렴풋이 이해할 뿐이었다.

“너라면 무슨 뜻인지 알 거라고 말씀하시더군. 이해했나?”
“물론이다.”

베르덴이 임명서를 받았다.

‘루가르트는 이미 세상의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인지했다.’

과거엔 초대 마도왕에게서 직접 아크의 소유권을 받았고, 최근엔 가르간트에 숨어 있는 괴이한 광신자 노인과 조우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짧지만 노인과 교전까지 벌인 듯하다.

‘그리고…… 그 모든 비밀과 내게 접점이 있다는 것까지.’

경이(驚異).

루가르트가 말하는 경이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중대한 비밀들을 의미했다. 그 끝에는 초대 마도왕과 ‘당신’이 있다.
다시 말해 루가르트는 베르덴을 통해서 경이가 품은 진실이 무엇인지 파헤치고, 그 진실이 인류에게 해가 되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운명을 말해 준다면, 방주는 어떻게 반응할까.’

신중해야 한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

방주는 인류라는 종을 위하는 집단이지 인류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조직이 아니다.
힘에 의한 자유를 긍정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베르덴이 즉위식에서 선언한 바가 인류에게 이롭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때의 일이다.

만약 운명이 인류에게 더 이롭다고 판단한다면 검을 반대로 쥐게 되는 셈이다.

‘물론 초대 마도왕이 창조한 초월자는, 자신만의 이상을 추구하듯이 저항 의지가 강해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문제는 루가르트에게도 경이가 있다는 점이다.

최초의 모험가.
아크.
세상의 눈.
감마.

이곳에는 초대 마도왕의 안배가 가득하다.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정보를 천천히 풀 수밖에.
레그리트가 약속대로 비밀을 잘 지켜 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세트로가 말했다.

“네 의무를 알고 있다도 하니 우리가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개인 의무와는 별개로 여러 공통적인 의무가 있는데 이건 추후 서면으로 전달하지. 대륙의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베르덴이 다섯 선장에게 물었다.

“주검의 영광은 옛 왕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고, 그 징조가 목전까지 다가왔다. 방주에서는 옛 왕의 부활을 미연에 방지할 생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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