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화 마도 축제 (4)
운명 창조는 ‘가장 거룩한 존재’의 과업.
과업을 방해하는 적을 멸살하고 굴복시키는 것은 ‘사도’의 사명이며, 사도를 보좌하는 것은 ‘순환자(循環者)’의 의무일지니.
운명으로 영원한 반복을 허락받은 자들이여.
책무를 다하라.
사도의 부활을 위해.
* * *
미궁의 거주민과 마주친 것은 루아스 교국만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탐사대가 위험을 인지했다.
새까만 갑각에 반사되는 마법의 불빛.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무슨 톱니 같은 턱을 가진 벌레들이 바닥과 벽면, 그리고 천장을 타고 들이닥쳤다.
마도 <여벽(如𩘆)>
여덟 번째 위상──알더니스가 돌풍을 일으켜 통로를 임시 봉인했다. 그사이 에온의 탐사대원들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까드드드득.
사사사삭.
사사삭.
까드드득.
벌레들이 대기의 장막에 달라붙어 턱과 다리를 미친 듯이 움직였다. 손바닥만 한 것도 있고, 팔뚝만 한 것도 있다.
크기가 제각각이다.
이형종 특유의 기이한 능력 자체는 없는 듯하나 마법 없이 맨손으로 상대하기엔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형체였다.
“비위가 제법 좋은 편이라고 자부합니다만, 꽤나 징그러운 광경이군요.”
일곱 번째 위상──그레이브 러드워스가 소검과 단검으로 무장했다.
“이건 무슨 생물이지?”
“저도 난생처음 보는 곤충입니다.”
알더니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곤충인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암월에게 패배한 후 아카데미 교수와 마법도시의 용병으로서 오랜 시간을 살아왔던 그들조차 아는 게 전혀 없는 생물체.
생김새는 영락없는 벌레였지만 자세히 보니 뭔가 기이했다. 서로 뒤얽히다가 으깨진 벌레의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량의 체액조차도.
특히나 신경 쓰이는 건 희미하게 코끝을 스치는 케케묵은 냄새였다. 마치 오래된 무덤에 감도는 시취 같달까.
‘섬이 히아레마르 내해 바닥에 가라앉은 시간은 최소 수천 년은 될 터. 상식적으로 어떤 생물도 버틸 수 없다…….’
지하 미궁에 바닷물이 들어온 흔적이 전무했다. 그러니 외부에서 흘러 들어온 바다 생물을 섭취한 건 아닐 터였다.
애초에 이 곤충은 살아 있는 걸까.
……!
벌레들이 일제히 뒤쪽으로 고개를 향하더니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당최 영문을 알 수가 없어 기현상을 가만히 지켜봤다.
쿵.
미궁 저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금속의 울림이었다.
쿵.
에온의 마법사가 마석등의 불빛을 최대로 키워 일대를 밝혔다. 그리고 곧이어 소음의 원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
쿵.
낡은 갑옷과 헤진 망토를 두른 기사가 검을 곧게 세운 채 다가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윽고 멈춰 선 기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피골이 상접하다 못해 피부가 말라붙은 끔찍한 얼굴이었다.
그레이브가 놈을 관찰했다.
“언데드, 그리고 기사. 겉보기에 통상적인 데스 나이트는 아니군. 변종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계열이 다른 듯합니다.”
데스 나이트, 그러니까 죽음의 기사는 스켈레톤 계열이다. 육중한 갑옷을 두른 거대한 백골이 정신을 무너뜨리는 오라를 내뿜으며 츠바이핸더를 휘두르는 상위 언데드 개체 말이다.
반면에 눈앞의 언데드는 백골이 아닌 수분 하나 없는 미라였다.
[…….]
미라 기사는 양손으로 잡은 검을 수직으로 세운 채 정지했다. 검 끝은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고 천장을 가리켰다.
으지직.
[경배. 하. 라.]
그때였다.
미라 기사의 메마른 입이 열렸다. 순간 턱 관절이 움직이며 피부가 떨어져 나갔다. 눈은 닫혀 있었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저게 무슨 언어지?”
“적어도 제가 아는 고대어는 아닙니다.”
[경배. 하라.]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의 나열.
[경배하라.]
그레이브와 알더니스는 신중하게 마도를 개방한 채 부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법사들이 사격 대형을 이루었다.
낌새가 묘했다.
뭔지는 몰라도 미라 기사의 발음이 명확해지는 게 꺼림칙했다.
[시체의 왕. 영혼을 거두어들이는 자.]
이윽고 미라 기사가 검을 높이 들었다.
[여섯 번째 사도의 재림에 경배하라.]
미라 기사가 눈꺼풀을 확 들어 올렸다.
그 안에서 벌레들이 기어나왔다.
“큽……!”
“사격 개시!!”
전신을 오싹하게 하는 기괴한 오라를 접한 순간 그레이브의 명령이 떨어졌다. 1열에서 시전한 대지계 마법이 허공을 관통했다.
콰아앙!
콰드드득!
돌진해 오던 미라 기사의 갑옷이 파손되며 한쪽 팔이 날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좁혔다.
접근하기 전에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지금은 정보가 필요할 때.
<전이>
그레이브가 순식간에 미라 기사의 다리를 자르고 목을 갈랐다. 부여 마법으로 강화된 완력과 움직임은 전사에 필적한다.
미라 기사의 몸을 기어다니던 벌레도 절반으로 나뉘었다.
‘아직도 움직이나.’
상체를 틀어 어렵지 않게 칼날을 피한 뒤 한 바퀴 회전했다. 놈의 절단된 팔과 갑옷이 검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경배하라. 경배하라. 경배하라.]
몸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에서 뭔지 모를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꿈틀. 꿈틀. 토막 난 미라 기사의 몸이 불규칙적으로 움찔거린다.
“개체는 약한데 언데드보다 끈질기다. 풍기는 기운도 왠지 예사롭지 않고.”
“잠시 실험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헤번, 로워드. 도와주시겠습니까?”
“예, 각하.”
경계를 펼치고 즉석에서 미라 기사의 저항력과 특이성을 시험했다. 전반적으로 언데드 하위 개체와 다를 바 없었다.
단순 무력 자체는 3위계 마법사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는 수준.
그런데 언데드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죽지 않는다.
정확히는 ‘사멸’하지 않는다.
어느 이상으로는 절단되지 않았고, 강한 힘으로 짓눌러도 어느 이상으로는 으깨지지 않았으며, 불에 태워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타지 않았다.
특히 미라의 머리는 파괴되지 않았다.
[경배하라.]
“이건 도대체…….”
“그나마 재생하지 않는 게 다행인가.”
그레이브가 습관적으로 연초를 피우려다가 손을 거두었다.
“이런 개체라면 수천 마리 있어도 탐사에 지장은 없겠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최대한 부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동일한 특성을 가진 다른 종류의 개체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만약 저항력이 극도로 높고 무력까지 갖춘 것이 나온다면 무력화에 무시할 수 없는 노력과 시간이 들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조차 불사신을 상대해 본 적은 없었기에.
[경배하라. 시체의 산 위에 앉은 군주를.]
“역시 용검은 함정이었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이유가 있나.”
[운명을 재건할 자를──]
콱!
그레이브가 흩어진 신체 조각을 모아서, 미라의 입에 처넣었다. 미리 기사의 머리는 더 이상 발음을 똑바로 할 수 없었다.
“탐사를 속행한다.”
용검 마그라스의 소재를 확인하고, 섬의 정체를 밝힌다. 과연 얼마나 위험한 것들과 마주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문제없다.
이 미궁엔,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다.
* * *
미궁, 그 어딘가.
미라 같은 것들이 최소 단위로 쪼개진 채 서로 뒤엉켰다. 여기저기서 대륙 공용어도 아니고 수백 년 전 고대어도 아닌 말들이 들려왔지만 아무렇지 않게 무시했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거, 괜히 신경을 할애할 것도 없었다.
아드리안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시체들을 가로질렀다.
‘주검의 영광이 준비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뭐라고 할까.
주검의 영광의 세 번째 하인, 만연의 랑데르크와 네 번째 하인, 케실루스 차에렌을 상대했을 때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느낌.
예의 불쾌감 대신에 기묘한 중압감이 시종일관 신경을 자극했다.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
아드리안이 사거리 한가운데 서서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미궁의 규모는 가늠이 되지 않는 데다가 뭔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먼 거리에 있는 사물은 감지가 거의 되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멀리 온 탓에 통신 장치의 신호가 거의 먹통이었다.
‘주군께 직접 상황을 전달하기는 어렵겠군.’
베르덴이 준 은색 팔찌를 바라보다가 곧 방향을 결정했다. 아직 고대 아티팩트를 기동하여 ‘권역’을 정할 때는 아니었다.
더 적합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섬의 핵심과 가깝고, 섬에 관련된 자들의 빈틈을 제대로 찌를 수 있는 절묘한 위치를. 사실상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마울러,’
놈이라면 단언컨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섬에 들어왔을 텐데.
아드리안은 언제 어디서라도 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세를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물론 상대는 초월자로 상정했다.
경고를 무시하고 세계 회의에서 주군께 무례를 범하고 감히 도전한 죄.
그 대가는 오직 사형이다.
터벅, 터벅.
그렇게 에온의 검은 홀로 미궁의 심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경배하.]
콰아아아앙!
초월적인 권격이 거대한 미라의 몸통을 산산이 부수었다. 역시 으깨지지는 않았지만 다시는 멀쩡히 움직일 수 없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수만 마리에 육박하는 벌레의 사체들도 근방에 널렸다.
콰득.
마울러──가레스 시릴리아드가 미라의 머리를 짓밟았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쓰레기들이.”
뭔지 모를 괴물들을 패 죽이는 감촉이 별로 좋지 않았다. 퀴퀴한 냄새 또한.
그래도 이로써 미궁에 뭔가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뭐, 당연히 주검의 하인인지 뭔지 하는 것들은 이곳에 있겠고. 과연 여기에 얼마나 많은 초월자들이 숨어들어 왔을까.’
히아레마르 탐사 조약 따위는 허울뿐인 명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따위 조잡한 규제가 어찌 초월자의 행동을 감히 억압하겠는가.
용검이든 뭐든, 목적이 있어 섬에 들어온 초월적 존재가 한둘은 아니리라.
마울러는 사납게 웃었다.
“천검, 네놈은 어디에 있나.”
마울러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드리안도 섬에 침입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베르덴, 그 영악한 놈이 초월자라는 전력을 방치할 리 없었다.
용검을 확보하고.
시건방진 초월자에게 격을 보여 주고.
거슬리는 버러지는 전부 죽이고.
겸사겸사 디아문 마탑에서 파견한, 반타룬이 아니라 알버트 윈디로브를 지지하는 르온 장로를 제거한다.
물론 르온 장로의 암살은 마울러가 아닌 ‘수하’의 몫이었다. 초월자가 직접 움직이기에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으므로.
이렇게까지 했는데 반타룬이 디아문 마탑주에 오르지 못하면, 누가 나설 것도 없이 반타룬은 그의 손에 죽을 것이다.
“끄으으윽…….”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피 묻은 손이 마울러의 발치에 닿았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못 봤, 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마울러는 하고자 한다면 은폐도 가능하나, 근접 거리에서 실력자를 죄다 속여 넘길 정도로 능숙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쥐새끼처럼 숨어다닐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약 위반을 공식적으로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가?
간단한 방법이다.
도중 어쩔 수 없이 마주친 탐사대를 죽여 버리면 끝이다. 전부 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억울해할 것 없다.”
“제발……!!!”
“재해란 그런 거니까.”
콰지지직!
종합 서열 5위인 젠티르 마탑의 장로의 머리가 짓눌려 터졌다. 장로의 주변에는 젠티르 마탑 소속 마법사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사인은 불행히도 마울러와 마주친 것.
이로써 젠티르 마탑에서 내해에 파견한 탐사대는 전멸했다. 인간에게 있어 적대적인 초월자는 항거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마울러가 다시 움직였다.
* * *
지하 미궁의 최심부.
주검의 영광의 두 번째 하인, 루네시카가 막다른 공간에 다다랐다. 그녀는 대륙의 탐사대처럼 공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정체 모를 미라들과 벌레들이 루네시카의 길을 인도했다.
[경배하라.]
이 섬은 무엇인가.
이 괴물들은 또 뭔가.
여러 의문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지만 미궁의 끝에 도달한 순간, 그런 생각들은 루네시카에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지하의 흙으로 이뤄진 언덕에, 단 하나뿐인 거대한 검이 꽂혀 있다.
“아…….”
용검, 마그라스.
크세리온 황제의 애검이 무려 8세기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초월자 전쟁이 끝나고 사라진 검의 행방을, 대체 그놈들이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또 의문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용검의 옆에는 목함이 있었다.
루네시카가 서둘러 달려가 조심스럽게 목함을 열어 보았다. 숨 먹히는 사기. 비로소 황제의 마지막 신체 조각이 손에 들어왔다.
루네시카가 옛 왕의 머리에 조용히 속삭였다.
“폐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천천히 목함을 닫았다.
“곧 깨워 드리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목함을 내려놓고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하며 몸을 일으켰다.
마도 <영연계(靈連契)>
영혼과 영혼을 잇고 결속하는 길, 이를 개척한 루네시카는 초월자 전쟁 당시 영혼을 노획하는 자로 일컬어졌다.
철컥.
첫 번째 하인이 예의 수인과 난쟁이를 부활시킬 때 사용한, 영혼을 다루는 욕망 – 아니무스의 일부로 제작된 건틀릿을 꺼내 착용했다.
“죽음 너머에는 완전한 죽음이.”
루네시카의 안광이 번쩍이자 건틀릿에서 영혼이 쏟아져 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악.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공간이 가득 채우고, 온갖 영혼들이 허공에서 원을 그리다가 하나둘씩 형체를 잃고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미궁의 최심부가 그녀가 구현한 영혼의 잔재로 뒤덮였다.
영혼이 사라지며 반투명한 사물이 점차 구축되기 시작한다.
옛 왕의 머리를 중심으로.
이것은 ‘제단(祭壇)’이다.
바로 여기서, 그때 결국 끝마치지 못했던 불사의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제단의 준비야말로 루네시카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영혼의 일부는 제단을 지키는 강대한 언데드로 변화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의식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제단을 지켜야 한다.
전력은 부족하지 않다.
머지않아 주검의 영광의 온 힘이 이곳에 모일 테니까.
‘이번에는 반드시.’
첫 번째 하인이 루아스 교국에 있는 폐하의 남은 신체 부위들을 확보한 순간 비로소 계획의 성공은 목전에 다다른다.
* * *
마도 축제의 ‘셋째 날’.
초반부의 무대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마침내 초반부의 마지막을 장식할 마법 발표가 코앞까지 다다랐다.
“후하, 후하.”
테오도르가 연거푸 심호흡했다.
여태까지 빠짐없이 여러 마법적 세력의 무대를 보고, 어떻게 진행할지 머릿속으로 그렸지만 잘 진정이 되지 않았다.
마법계를 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치도록 두근거렸다.
“그, 그래도 해야 돼……!”
테오도르는 눈을 꼭 감은 채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섭리자가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