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13

913화 주검의 영광 (3)

“……당신?”

테리웬이 다른 누군가에게 충성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다. 세간에 잘 알려진 그의 과거에 그럴 만한 사연은 전무했다.

‘애초에 이데란트 연맹장이라는 자리는 타인을 섬기는 것이 허락되는 위치도 아니다.’

다종족 화합의 선도자.
세계 회의에서는 상원의 일석.

중앙 대륙의 이데라트 연맹국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강대국이다. 연맹국 수장의 위신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설령 초월자라고 해도 연맹장의 머리를 강제로 조아리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테리웬의 태도는 마치 종복의 그것이었다.

‘주인이 누구냐.’

메드란트는 테리웬의 주변 인물들을 떠올리고는 빠르게 하나둘씩 지웠다.
유력한 후보를 물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을 특정하지 못했지만, 테리웬과 레논 버나드의 숨겨진 배경이 어떤 것인진 어렴풋이 깨달았다.

“베르덴이 내심 무엇을 경계하는지 몰랐는데…… 그게 너희들이었군.”

베르덴이 모두에게 밝히지 않은 비밀이 있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베르덴조차 침묵해야 할 만큼 위험하고 중요한 정보일 테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
가면을 쓰고 세상에 섞여 있는 놈들.

저들이야말로 베르덴의 적이다.

“오스테아 마탑주, 의미에 주의하십시오. 당신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그런 건 네놈이나 주의해라.”
“본래 당신은 최하위 마탑주로서 살다가 노년에 자연사했어야 했습니다. 지금 나이로도 그렇게 짧은 여생은 아니었죠. 그런데 모두의 앞날이 불투명하게 변하고 말았으니, 당신과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테리웬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남들보다 우월한 인생이, 한 푼 없는 노예보다 못한 인생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불안정해진 세상이.”
“아까부터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정신 나간 집단인 건 분명하고.”

메드란트가 비스듬하게 기울었던 자세를 바로 했다. 마침 리산드로의 열매 포션이 상처를 절반 이상 회복시켰다.
충격이 상처에 닿지 않는 이상 마법전을 벌여도 무방한 상태.

“뭔지는 몰라도 베르덴에게 당한 게 있나 보군.”
“…….”
“익숙해져라.”

메드란트가 조소했다.

“앞으로도 계속 당할 테니까.”

메드란트는 전대 오스테아 마탑주의 제자가 됐을 때는 스승을 따랐고, 오스테아 마탑주가 된 이후에는 누구도 섬기지 않았다.
함께 소사이어티를 창설한 오스가르와 멜라드는 상관이 아닌 동료였다.

그런 그가 주군이라고 인정한 인물은 베르덴이 처음이자 마지막……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의 결단으로 견고해진 충성심은 절대 아드리안보다 못하지 않을 터였다.

오스테아 마탑주이자 수호의 현자인 메드란트 케덴은 에온의 열한 번째 위상, 그가 모시는 하늘은 베르덴이다.

“하늘 밖에는 하늘이 있음을 마탑 안의 마법사는 모를 겁니다. 각오가 그러하다면 순간을 즐기십시오. 결국 이 또한 돌이켜보면 기억조차 남지 않을 사소한 일이 될 테니까요.”

테리웬이 뒤로 물러났다.

“오직 순환이야말로 세상의 구원일지니.”

교황의 찬란한 신성력으로 생겨난 건물의 그늘로 테리웬이 사라졌다. 마력 반응은 없었지만 기척은 곧 사라졌다.

메드란트는 작게 콧숨을 내쉬었다.

“……별 해괴한 경험을 다 하는군.”
“마탑주님!”

상공을 <비행>하던 마법사들이 메드란트 주변에 착지했다.

“상황이 지금, 음?! 상처가……!”
“조치는 했다. 상황도 대충 알고 있고. 그래서 중심가 쪽은 어떻지?”
“심각합니다.”

오스테아 마탑의 유일한 최고 원로인 유르기엔이 침음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여기저기 섞여 학살을 일으키고 있는데,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어려운 탓에 교국의 성직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검의 영광의 첫 번째 하인은 팔라딘 군단과 맞서며 성소로 직행하고 있습니다.”

쿠우우우우우우웅!

굉음이 터지며 지축이 흔들렸다.

소름 끼친다.

유르기엔이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진원지 쪽으로 눈길을 향했다.

“……제 생애 다시는 초월자와 싸울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거 참 큰일이군요. 산디르 파엔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존재감입니다.”

그날 보헤미른 마탑과의 전면전 당시 아드리안, 오스가르, 멜라드, 유르기엔은 콜젼에 지배당하는 진연 산디르 파엔과 결전을 벌였다.

그때처럼 한 번도 겪지 못한 죽음을 가깝게 느낀 적은 평생 없었다. 마도 축제를 위해서 루아스 교국에 방문한 지금을 제외한다면.

“주검의 영광의 목적은 성소 어딘가에 있는 옛 왕의 신체일 터. 앞장서서 사생결단을 벌일 필요는 없다. 우린 어떻게든 시간만 끈다.”
“교국의 수도 전체가 봉인돼 외부 개입이 어려운 실정입니다만, 지원이 제때에 올 수 있을까요.”
“그저 교국만 폐쇄하진 않았을 테지만 걱정하지 마라. 베르덴은 눈치가 빠르니까.”

메드란트가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베르덴이라면 금방 방법을 찾을 거다.”

쿠우우우우웅!

첫 번째 하인과 최고위 팔라딘 세 명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빛의 검기와 죽음의 검기 사이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건물을 무너뜨렸다.

“앞으로 7분 12초 뒤에 주검의 영광의 지원군이 도착할지도 모른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상황에 대응하도록.”

메드란트가 말을 덧붙였다.

“죽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마탑주님!”
“예, 각하!”

오스테아 마탑의 마법사들 외에도 에온의 집행 부대가 명을 받들었다. 이곳에 있는 전력도 절대로 약하지는 않았다.

“허헛, 시간 한번 자세하군요. 이제 정말로 7분 8초 뒤에 적들이 몰려올 것처럼. 할아버지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우리 손주가 알아야 하는데.”

유르기엔이 껄껄 웃고는 짝! 자신의 뺨을 세게 두드렸다.
다시 웃는 건 나중이다.

“자, 한번 봅시다. 초월자 전쟁 시대의 초월자가 얼마나 강한지.”

* * *

구름 위로 올라왔다. 보름달로 천천히 변해 가는 달이 아름답다. 중앙 대륙에서 보는 것과 다른 향취가 느껴진달까.

“그래…… 이야말로 생명.”

그림멜 그롬파르가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양팔을 펼쳤다.
그의 왼쪽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눈을 뜯어낸 고통?

어찌 이런 생생한 자극을 통증이라고 격하할 수 있겠는가. 죽음 너머에서 겪었던 모든 것에 비하면 이조차도 축복이다.

“나는 죽지 않았네. 아직 ‘약속’을 지킬 수 있으니 재촉하지 말게. 주검의 영광은 옛 왕의 신체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를 위해 ‘준비’했으니까.”

그림멜이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서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혼잣말이었지만, 그림멜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검은색 천을 꺼냈다.

그것으로 굳게 닫힌 왼쪽 눈꺼풀을 감싸고는 질끈 매듭을 묶었다. 그가 기계 다리로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오, 뭔가 느낌이 있는데. 뭐랄까. 마치 이야기 속 해적 같군. 으하하하하핫.”

키이이잉──푸쉬이이이익.

광기 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그림멜의 등 뒤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서대륙에 미리 가져다 놓은…… 중앙 대륙의 도시 잔트라에서 시험용으로 사용했던 마력 분열기와는 다른 무기였다.

훨씬 더 무겁고.
훨씬 더 다채로운.

생전에 동대륙을 점령하고 대학살의 수인과 동반 자살한 ‘최악의 병기’.
과거 그림멜의 최고 역작이었다.

쨍그랑!

그림멜이 거울을 깨서 던져 버렸다.

“쯧…… 그래도 된통 당해 버리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군. 짐승 놈이 본다면 비웃을 텐데. 그래서는 안 되지. 그래서는 안 돼.”

그가 엉덩이 아래에 놓인 뼈를 두드렸다.

“어서 날아가게. 내가 서둘러 내 위대함을 증명할 수 있도록.”

후욱───!

창공을 가르는, 너덜거리는 날개의 피막.

그림멜을 태운 유골룡‘들’이 루아스 교국으로 직행했다.

* * *

리비안트 공국의 뒷골목 정보상으로, 에온의 정보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페일이 서대륙의 상황을 보고했다.

───메드란트 님의 통신 장치와 전혀 연결이 닿지 않습니다. 메드란트 님과 동행한 에온의 집행 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루아스 교국과의 통신이 완전히 단절됐습니다.

───루아스 교국 주변으로 목적지로 한 공간 이동 실패를 확인했어요. 베르덴 님, 지금 공간 이동 자체가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 같다고 해요!

───아케나드 마도국의 국경 근처에서는 공간 이동이 가능한데…… 비행정을 써도 루아스 교국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요. 급박한 상황인 것 같은데 즉각 대응은 불가능해요.

에스티리아 왕국의 정보상 출신이자 페일의 후배인 페르네와, 아드리안의 소꿉친구인 고양이 수인 케이렐이 첨언했다.

잔트라의 폐허를 확인한 후 가르간트로 돌아온 베르덴이 팔짱을 꼈다.

‘정말로 루아스 교국의 수도를 칠 줄이야.’

빛의 성자가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신인이 세 명이다. 하물며 그들을 떠받치는 성직자의 총력도 막강하다.
결국 세계 종교의 힘 앞에서 군단의 대악마조차 토벌되었다.

주검의 영광의 두 하인으로서는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그걸 잘 아는 첫 번째 하인은 어떤 계획을 쥐어짜 냈을까.

‘일단 놈들의 가장 큰 걸림돌은 성녀.’

말인즉슨…….

현재 성녀 에르세티아는 성소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그림멜 그롬파르처럼 주검의 영광으로 인해 부활한 정체 모를 강자가 성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 주어진 정상적인 선택지는 둘인가.’

대륙 어딘가에 있는 성녀를 찾아내 돕거나.
루아스 교국에 최대한 가깝게 전이한 다음 직접 날아가거나.

둘 다 시간이 꽤 소요된다.

무엇보다 이데라트 연맹장을 직접 감시하겠다며 루아스 교국으로 향한 메드란트 일행을 조력하기에는 적합한 대응책이 아니다.

베르덴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세 번째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주검의 영광은 비상식적인 집단이다. 그러니 그에 맞서는 쪽도 비상식적인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주, 잔트라의 생존자 수습이 거의 끝났어. 칼리아가 사람들을 안정시키는 중인…….

“이자벨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베타와 함께 에온의 지휘를 부탁하지.”

───어? 지금? 루아스 교국으로 넘어갈 방법을 찾은 거야?

“그래, 시험해 봐야 알겠지만.”

[채널 교체.]

베르덴의 뜻을 눈치챈 알파가 즉시 통신 장치를 조작해 다른 쪽에 연결했다.

“이그나시아, 들리나.”

───어, 잘.

“들려.”

이그나시아가 통신 장치를 착용한 손목을 흔들며 등장했다. 거대 도시의 초고층 건물 옥상에서 두 초월자가 도시를 굽어봤다.

“갑자기 여기저기 공간 이동을 해 대던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니?”
“적습이다. 방금 전에 포르메네 자유국의 도시가 파괴됐다.”
“어머, 주검의 영광이구나? 도시 하나가 날아갈 정도면 엄청 죽었겠네? 전쟁 시작부터 스케일이 제법 큰데?”
“루아스 교국도 봉쇄됐지.”
“와우.”

베르덴이 말을 이었다.

“공간 좌표는 완전히 막혔다. 정황으로 보아 일정 범위 안으로 들어가면 <전이>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수단을 썼을 테지. 날아갈 수는 있지만 그래서는 모든 상황이 끝난 뒤에나 도착할 거다.”
“흐응, 그래?”

이그나시아는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에 팔꿈치를 올렸다.

“그래서 네가 겨우 생각해 낸 방법은 뭔데? 어디 ‘친구’한테 말해 볼래?”

[친구.]

“3차원의 공간으로 안 된다면 그보다 고차원을 경유할 수밖에.”

베르덴이 단언했다.

“차원 이동으로 루아스 교국에 진입한다.”

발로크 베시아스가 레프라기움 마탑에 침입하는 데 사용했던…… 기존에 없는 네 번째 공간 좌표를 구현하는 고유 마법진.

초위 마법: <디아셴시오Diashencio>

발로크의 초위 마법을 재현할 수 있다면 폐쇄된 루아스 교국에 들어갈 수 있다. 아크, 리버레아스, 그리고 레프라기움 마탑까지도 말이다.

아직 연구 및 재구축이 끝나지 않았기에 베르덴 혼자로선 구현할 수 없지만…… 이그나시아가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계외.
그녀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마법계 초월자니까.

베르덴은 어떤 식으로 <디아셴시오>를 구축할지 간단히 설명했다.
최대한 핵심만 추렸다.
이그나시아의 오성이라면 원리쯤이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한 거다.”
“이야…… 베르덴, 너 미쳤니? 진짜 정신 나간 생각이잖아.”

이그나시아가 활짝 웃었다.

“재밌겠다! 당장 해 보자.”

* * *

쩌엉───!

골드힐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파공음이 터졌다. 한 번의 충돌에 지진이 일어나며 대지가 뒤집혔다.

<빛의 징벌>

하늘에 생성된 거대한 신성력의 창들이 대기와 마찰을 일으키며 쏟아졌다.

대학살의 수인, 바르카젤이 포효하며 전력으로 도약했다.

후웅───콰과과과과과광!

신성력의 창이 지표면에 닿자마자 사방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폭발했다. 이미 그들을 둘러싼 협곡과 산맥은 평지가 되었다.

바르카젤은 고속 기동으로 <빛의 징벌>을 피하며 공중에 떠 있는 성녀에게 돌진했다. 날개를 한 번 더 움직여 더욱 빠르게.

대참수.

촤아아아아악!

둘이 교차한 순간 성녀의 얼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제대로 먹혔다. 피부와 근육과 뼈를 가르는 감각이 그의 손끝에 남았다.

‘본래라면 죽어야 정상이지만…….’

바르카젤이 손가락을 굽히며 아래에 있는 성녀를 내려다봤다.

“죽여도 죽지를 않는군.”
“…….”
“어떻게 하면 널 죽일 수 있지?”

파아아앗.

고고한 빛이 성녀의 모든 부상을 원래대로 복구했다.
그녀가 자애롭게 팔을 뻗었다.

“빛의 어머니께서 곁에 계시는 한 우리의 믿음과 희생은 영원합니다. 당신 같은 수인 따위는 이해할 수 없겠죠.”
“광신자다운 논리─”

쉬익!

바르카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약간 비틀었다. 쩍. 얼굴을 덮은 갑각이 조금 갈라졌다. 순식간에 성창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당신의 전력은 거의 파악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수단이 있다면 꺼내세요.”

성녀가 고개를 기울였다.

“없다면 찢어발기겠습니다.”
“성녀라는 여자치고는 험악한 협박이로군.”

바르카젤은 한껏 여유를 드러냈으나 내심 성녀의 전력을 가늠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저런 힘을 가졌는데 대륙 하나를 지배하지 못한 건가. 아니면 하지 않은 건가. 만약 전자라면…… 저만한 존재가 몇 명이나 된다는 건가.’

바르카젤은 감히 자신과 공방이 성립되는 강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생각에, 성녀 너머에 있는 이 세상을 바라봤다.

‘뭐냐, 이 미친 시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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