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41

941화 사후(事後) (2)

세상에 다시 발을 디딘 반토레온이 새로운 공기를 만끽하고 있자, 곧이어 반토레온에게 익숙한 기척이 다가왔다.

콰자자자작.

“짐이 되살아나는 장소인데 고풍스러운 성채도 아니고 미천한 노예들조차도 거들떠보지 않을 낡은 집이라니. 심지어 이 보잘것없는 의복은 또 무어란 말인가.”

굉장히 거대한 체격을 가진 사내가 썩어 문드러진 나무문에 한 손을 갖다 댄 것만으로도 오래된 경첩이 찢어졌다.
농민이 입을 법한, 식물 줄기로 짜인 연녹색의 튜닉은 그 근육을 전혀 가리지 못했다.

“드라벤 르마르크가 이미 죽어 버린 게 아쉬울 지경이군.”

대제(大帝), 라이칸 투르가르드.

옛 왕이 두각을 드러내 대륙 연합군이 조직되기 전, 초월자 전쟁 당시에 천하의 동쪽을 지배한 초월자 세력의 최강자.
근엄한 목소리와 태도에는 정제된 제왕의 품격이 물씬 풍겼다.

반토레온을 따라 화창한 햇살을 맞이한 라이칸의 뒤로 여성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대인 아니랄까 봐 까다롭긴.”

붉은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새하얀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베일 듯한 예리한 눈매. 냉소를 품은 듯한 오만한 입매.
그녀에게선 감히 숨길 수 없는 폭력적인 제왕의 위엄이 드러났다.

“부활의 거래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거면 충분하잖아.”

델하룬의 여제(女帝), 히스릴 델 로하룬.

이종족 전쟁이 종식되려고 할 때 인간과 수인의 협상 자리에 난입해 수왕을 살해하여, 수인 대부족의 대침공을 야기한 초월자.

“그래…… 불쾌감 따위 다시 세상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에 비하면 사소한 불만에 지나지 않지.”

라이칸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건 짐이 판단하는 거다. 네가 아니라. 하물며 최소한의 존중 따윈 귀를 씻고도 들을 수 없는 무례하기 그지없는 어투로. 먼저 동쪽에서 군림했던 자로서 충고하지.”

라이칸이 태양을 등지고 섰다.
거구의 그림자가 히스릴을 뒤덮었다.

“같은 제(帝)라고 불렸다고 해서 동격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군림한 시대가 다르듯, 위엄 또한 다르니.”

대제와 여제.

두 사람의 영혼은 아니무스에 저장되어 있었지만 서로를 대충 인식만 했을 뿐 실제로 대화를 나누거나 얼굴을 맞댄 적은 없었다.

부활한 직후, 지금이 초면이다.

약 8세기 전 동대륙을 호령했던 제왕과 약 3세기 전 대륙을 전쟁터로 만든 동대륙 상부 제왕의 시선이 교차했다.

“따지는 게 많네. 덩치에 안 맞게.”

히스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당신 그릇에 맞게 좀 잘라 줘?”
“야만적인 여자로군.”

숲이 흔들린다.

아직 기(氣)가 거의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평생 쌓아 올린 존재의 격은 영혼에 새겨져 본 육신에 되돌아왔다.

라이칸이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히스릴은 벽 뒤에 감춘 손을 거칠게 세웠다.

무려 수백 년 만에 다시 얻은 생명인데도 상대와 죽고, 죽이는 데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자신의 뜻과 부합하지 않으면 강제로 휘게 만들거나 아예 꺾어 버리는 것.

이야말로 초월자의 본질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반토레온이 크게 박수를 치며 두 초월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관짝에서 일어나자마자 힘이 넘치는 게 참으로 보기 좋구만. 내 마음 같아선 조금도 중재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은 우선해야 할 일이 있다.”
“짐도 기억하고 있으니 상기시켜 줄 필요는 없다, 반토레온.”

반토레온과 라이칸은 동일한 시대를 살았으며, 초월자로서 대립하기도 했고 대륙 연합군에 합세해 옛 왕에 함께 맞선 적도 있다.
서로의 이상은 다를지언정 대화를 나눌 정도의 사이는 되었다.

라이칸이 목 근육을 주물렀다.

“위대한 주검이 재림해 생사의 경계에 비틀림이 생기면, 세 개의 대륙에 총 ‘아홉 개의 사문(死門)’을 개방하라. 그게 놈들과의 거래 조건이었으니.”

크세리온 황제는 셀 수 없이 많은 언데드 군단을 지배해 대륙을 휘저었으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그 언데드는 전부 소멸하였다.
이게 그의 봉인이 풀렸으니 사라졌었던 언데드도 다시 발호하게 된다. 크세리온 황제는 죽음과 인과의 관계로 묶여 있다.

“그 사문이란 걸 열면 ‘진정한 옛 왕의 군세’가 도래한다고 했나.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수락하기는 했는데 의문이긴 해. 왜 우리를 끌어들이면서까지 준비를 한 건지. 지들끼리 하는 게 변수가 훨씬 더 적을 텐데.”

히스릴은 팔짱을 끼고는 낡아 빠진 문틀에 머리를 기댔다.

“초월자로서 거래를 맺었으니 이행한다고 쳐도 그다음은 우리 자유니까.”

초월자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초월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존재가 아니다. 굴복하는 대신 죽음을 택할 고집스러운 위인들이다.
각성하기 전부터 크세리온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 하인들처럼 크세리온 제국의 산하로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부활한 초월자의 검이 얼마든지 옛 왕에게 향할 수도 있다.
드라벤 르마르크와 맺은 거래조차도 초월자로서 자존심이 있으니까 지키는 거지 실질적인 ‘강제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지시는 아칸드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이 불사의 의식을 치르기 직전에 드라벤 르마르크에게 명령했다고 알고 있다. 놈이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짐을 비롯한 초월자들과 거래를 맺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전략적인 이점은 자명하지.”

라이칸이 단언했다.

“전쟁 기반의 마련.”

왕이 있으면 병사가 있는 법.

세계의 모든 시선이 아칸드에게 팔려 있는 동안에 그들이 사문을 열어 아칸드가 진두지휘할 죽은 자의 군대를 푼다…….
그렇게 되면 아칸드는 비로소 과거에서 그러했듯 전 인간 국가를 상대로 범세계적인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그는 차분히 상황을 분석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사문의 개방은 보통 존재로는 불가능한 데다가 주검의 영광은 아칸드를 되살리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은 끝에 실질적인 전력을 모조리 상실했다. 이는 하인 놈들도 수백 년 전부터 예상했던 결과. 그 이후를 준비함에 있어서 초월자처럼 확실한 존재가 또 있을까. 그걸 알기에 초월자들에게 거래를 제안하고, 아니무스에 그들의 영혼을 저장하여 사문 개방의 조건을 갖추도록 한 것이지.”

요약하자면.

도중 저지당하는 일 없이 옛 왕의 군세를 확실히 일으키기 위해, 옛 왕은 주검의 영광으로 초월자와의 거래라는 수를 두었다.
초월자들이 나중에 옛 왕을 적대하든 말든 간에 개의치 않고 그 목적에만 집중한 것이다.

그만큼 전쟁에서 대군(大軍)은 필요 불가결하기 때문이리라.

“왜 세력을 일구고, 전략을 구상하는가. 아무리 뛰어난 존재라고 해도 단신으로 세상을 압도할 수는 없으니, 군단을 갖춘 아칸드조차 결국 대륙 연합군에 패배해 신체가 조각났다. 그럴진대 군세도 없는 사이 모든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어느 누가 버틸 수 있을까. 그러한 자가 있다면 세계의 지배자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존재일 터.”
“절대다수의 강함이라……그거야 나도 아주 잘 알지. 알고말고.”

히스릴이 생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수왕 살해의 복수로 수인 대부족에 포위당한 끝에 갈가리 찢어져 죽었던 순간이 생생했다.

“그나저나 당신은 옛 왕과의 전투에서 죽었다며. 이제 와서 옛 왕의 수하가 될 것도 아니고, 지금의 옛 왕은 약점을 극복해 전보다 강해졌을 텐데. 또 걔한테 살해당하는 거 아닌가?”
“아칸드는 확실히 독보적인 초월자다. 하지만 그 강함이 감히 짐을 억누를 수는 없다. 다시 살아난 건 놈뿐만이 아니지.”

라이칸이 손목을 문질렀다.

“저번에는 짐이 죽었지만, 이번에는 그놈이 죽을 것이다. 내 이상을 방해한다면.”

혼자 죽일 수 없으면 무리를 지어 죽이면 된다.
크세리온 제국을 멸망시킨 대륙 연합군보다 더욱 강한 세력으로.

“자신감 넘치네. 하긴 뭐 불가능하진 않겠지. 옛 왕의 신체는 훼손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그 검붉은 번개에 손상된 걸 보면. 확실히 이 시대는 내가 살던 세상과는 다른 것 같아.”

히스릴이 입술을 매만졌다.

“막강한 초월자들이 상당히 많아 보여.”
“더할 나위 없이 기꺼운 일이지.”

반토레온이 이를 드러냈다.

“그런데 라이칸, 네 추측도 충분히 일리는 있지만 나는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아칸드는 그리 복잡하게 흐름을 구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오히려 단순하게 나아가려는 것일 수도 있어.”
“어째서지?”
“나의 직감이다. 그땐 몰랐지만.”

반토레온이 수염을 문질렀다.

“아칸드는 그냥 전쟁을 원하는 거다. 가장 거대한 전쟁을, 온 대륙이 피로 물들을 정도로 살육이 넘치는 전쟁을! 그렇게 생각하면 되살아난 초월자들이 뭐를 하든 간에 상관없어지지. 우리가 멋대로 행동하면 이 전쟁의 규모를 키우면 키웠지, 결과론적으로 전쟁을 축소할 일은 없을 테니까. 안 그런가?”
“…….”

라이칸은 말없이 반토레온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투에 미친 자 아니랄까 봐 생각도 그쪽으로만 흐르는군. 시끄럽다.”
“납득하지 못하나. 아무래도 좋지. 끝까지 가 보면 내막이 밝혀질 테니. 그리고, 방금 내가 우선해야 한다는 건 사문의 개방이 아니다.”

반토레온이 당당히 말했다.

“식사다.”

그들의 뱃속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다. 초월자도 생명체이기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히스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옛 왕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적당히 느긋하게 움직이면서 사문을 열어도 괜찮겠지. 새로운 무구도 구해야 하고, 여기가 어딘지도 알아야 하고.”

드라벤과 루네시카는 사문의 개방을 보조하게 될 주검의 영광의 잔당에게도 알리지 않을 만큼, 이 셋이 부활하는 장소를 철저히 함구했다.
안내해 줄 사람이 없으니 그들이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아니무스 내에서 외부 정보를 공유받는 건 아주 제한적이었다.

“내가 앞장설 테니 따라오도록.”
“이런 촌구석에 짐의 혀를 만족시킬 만한 요리가 있을지 의문이군.”
“난 생고기라도 좋아.”

드라벤과 루네시카의 초위 마법으로 드라벤의 영혼에 깃들어 그 힘이 되었었던 초월자들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만 이 중에 성자 에단벨트는 없었다.

신체 부위의 유무 탓이었고.
영혼의 탓이었다.

반토레온은 수명이 다하기 전에 드라벤과 조우해 직접적으로 거래를 맺고 영혼과 함께 손가락 하나를 넘겼으며.

라이칸은 옛 왕에게 죽은 뒤 강제로 아니무스에 영혼이 저장된 상태로 드라벤과 대화를 나눠 거래를 받아들였다. 부활의 매개체가 될 그의 신체 부위는 그 최후의 전장에서 손에 넣었다.

히스릴은 라이칸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부활의 기회를 얻었다. 신체 조각은 수인들이 그녀를 살해한 현장에서 얻었다.

에단벨트는 영혼만 겨우 확보했을 뿐 그 시신은 루아스 교국에서 엄격하게 처리한 터라 신체 부위를 확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에단벨트의 영혼은 다른 초월자들과 뭔가 달랐다. 그와 함께 옛 왕을 봉인했던 교황 벤슬로프도 그러했다.

무투계와 마법계.
신앙계.

혹시 계열의 차이 때문일까.

당장은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반토레온, 라이칸, 히스릴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결국에 자신만의 이상일 뿐이니.

마법의 시대여.

과거의 초월자들을 맞이하라.

* * *

아드리안이 침상에서 눈을 떴다. 그의 상반신은 두꺼운 붕대로 덮여 있었고, 붕대 위에는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항상성은 무사해. 자상이 한 치라도 더 깊었다면 위험했겠지만.”

아드리안이 물었다.

“주군의 상태는?”
“높은 체온, 불규칙한 심장 박동…… 가주의 상태를 마법적으로 규명할 수는 없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 같아. 다행히.”

이자벨라가 연금술 연구실 특유의 냄새를 온몸에 묻힌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무슨 상황인지는 알고 있다.

아드리안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전 알더니스와 그레이브에게 그 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루아스 교국 성소에서의 상황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다.

“주군께서는 괜찮으실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가주의 신변을 맡기는 게 좋겠지. 여기보다 그쪽이 더 조용하기도 하고.”
“……침묵의 사막 말인가.”

침묵의 사막에는 초대 마도왕의 분신인 관리자가 있다.
그 존재라면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편이 낫겠지…… 잠깐.”

아드리안이 미간을 좁혔다.

“여기보다 ‘조용’하다고? 무슨 뜻이지?”
“그러니까 이번 사태 때문에 대륙의 상황이 꽤 안 좋아졌어. 정확히는 세력 간의 관계가.”

이자벨라는 그가 치료를 받는 사이에 있었던 국제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앞으로 꽤 시끄러워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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