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47

947화 신격 – 1

베르덴의 내면.

6대 전설이라고 불리던 물건 중에서 2대 전설이 어떤 도구가 아니라 생물일 줄은, 그것이 아이샤가 가끔 내비치던 기이한 예지력의 근원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시간의 개념이라니.’

공간은 능력 여하에 따라 조작하거나 간섭할 수 있지만, 시간은 그럴 수 없다.

시간은 절대적이다.

그럴진대 눈앞의 소녀가 시간의 개념을 자칭하니 베르덴으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시간을 임의로 다룬다면…… 거의 대적이 불가능한 괴물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때, 웃음소리가 번졌다.

“전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에요. 그저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흔적이죠. 그런 의미에서 생물이기도 하고, 무생물이기도 해요. 생명인지 아닌지 딱 경계를 긋는 게 무의미하달까요?”

아이샤, 아니 히안테는 천진난만하게 베르덴와 알파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상하곤 질문을 하기도 전에 먼저 대답했다.

타인의 속내를 읽은 것도 아니고.
시간의 개념답게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닌 듯하다.

베르덴은 그녀로부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관록을 느꼈다. 패잔병의 감옥에서 만난 잿빛의 용, 태초의 드래곤과 유사한…….

알파가 물었다.

[히안테. 나이?]

“이미 셀 수 있는 규격을 넘어섰죠. 굳이 따지면 잿빛의 용보다 좀 더 많아요. 그는 세상이 탄생하면서 남긴 잔재에서 태어났지만, 전 세상에 시간이 출현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해 왔으니까요.”

히안테는 여전히 소녀 아이샤의 모습으로 뒷짐을 진 채 걸어왔다.

[잿빛의 용?]

“아르카디옴에서 호스트가 말한 태초의 드래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그 용이 어떤 존재인지는 조만간 알려 주마.”

[확인.]

베르덴은 여태껏 혹시 모를 금기를 경계한 탓에 태초의 드래곤에 관한 정보를 아무에게도 귀띔할 수 없었다. 아르카디옴에서 호스트를 대면한 이후에도 말이다.
알파를 비롯한 녀석들은 그런 베르덴을 이해해 궁금해도 묻지 않았다.

“스승님과 나눈 대화뿐만이 아니라 내가 잿빛의 용과 조우한 것까지 본 건가.”
“잿빛의 용과 베르덴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볼 수 없었어요. 그가 갇힌 감옥은 제 인식 밖에 있거든요. 그런데도 잿빛의 용과 베르덴의 만남을 짐작한 건 [아인베르] 덕분이죠.”

그녀의 눈매가 휘었다.

“그 안에 잠든 태초의 드래곤의 흔적은 명확히 보여서요.”

초대 마도왕의 로브엔 잿빛의 용이 부여한 힘이 내재되어 있다.

───[올다르크가 드래곤의 소재로 제작한 그 로브에 부족한 부분이 꽤 보이더군. 아마 실패작이겠지. 내가 선물을 넣었으니, 훗날 네가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면 자연스럽게 손에 넣게 될 거다. 그러니 해야 할 일에 집중해라.]

아직 그 선물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최소한의 자격이라는 것이 경지의 상승이라면 곧 알게 될 수도 있지만, 약간의 정보도 없으니 예단하긴 어려웠다.

“……아는 게 많군.”
“겉핥기에 불과한 통찰력이죠. 전 보이지 않는 건 볼 수 없어요. 이렇게 제 두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요.”

히안테가 멈춰 서서 손바닥으로 자신의 두 눈을 덮었다.

“시간은 어디에나 있을 뿐이지 전지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아요. 단순히 이 세계를 이루는 배경 중 하나에 불과하죠. 태고의 존재이나 호스트가 ‘당신’과 올다르크와 잿빛의 용과 다르게 굳이 언급하지 않을 만큼 무력한 실재(實在). 지금 베르덴이 제게서 느낀 존재감이 전부랍니다.”

그렇다.

히안테의 기운은 굉대했으나 위압감은 전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약했다. 마력도, 기도, 신성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처럼.

“질문이 몇 가지 있다.”
“답할 수 있는 건 전부 해 드릴게요. 말했잖아요?”

소녀가 손바닥을 치웠다.

“저는 베르덴의 편에 가깝다고.”
“…….”

베르덴은 연륜을 조금도 파악할 수 없는 연둣빛 눈동자를 응시했다. 아군. 그건 어디까지나 베르덴이 판단할 일이었다.

첫 번째 질문.

“아이샤의 인격은 어떻게 됐지?”
“푹 잠들어 있어요.”

히안테가 베르덴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전 시간의 개념의 인격으로서 아이샤의 육신에, 정확히 말하면 아이샤의 예언자 혈통에 깃들어 있는 거거든요. 그 루네시카 안테르노아가 세계 회의에서 보여 준 빙의와 비슷한 원리죠. 다만 그녀와 다르게 전 아이샤의 영혼과 몸, 그 존재 자체에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아요.”

[일종의 고대 혈통?]

“그런 셈이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아이샤를 먼저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아이샤는 베르덴을 많이 좋아하거든요. 인간적으로도, 그리고 본질적으로도.”
“아이샤와 그 가족은 내가 보살피겠다고 했으니 감사는 됐다. 당연한 거니까. 한데 본질이라니, 그건 무슨 뜻으로 말한 거지?”
“아이샤는 운명이 창조된 이래 선지자로서 극히 드문 재능을 갖고 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시간 개념을 조금씩 이해해 나갈 정도로요.”

운명의 수레바퀴는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가상의 미래를 만들어 냈고, 그 형성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은 예지자를 탄생시켰다.

예지자는 은연중에 가상의 미래들을 자연적으로 체감한 예언자. 그중에서 너무도 많은 미래들을 접해 본능적으로 앞날을 예견하는 예지자는 선지자라고 불려 왔다.

아에로돈이 그렇게 설명했다.

“운명은 수많은 가능성을 품은 시간을 억제하는 개념이에요. 제가 그러하듯이 아이샤 또한 운명을 파괴한 베르덴에게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죠. 물론 아이샤와 베르덴이 마주치게 된 건 어디까지나 우연의 산물.”

히안테가 과거를 상기시켰다.

“리바안트 공국의 도시, 코헨의 여관에서 부딪쳐 넘어지려던 아이샤와 허공으로 날아간 아이스크림을 잡아 주었던 베르덴.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인연으로 이어지는 세상. 그것이 무엇도 정해지지 않은 태고의 시대랍니다.”

베르덴은 아이샤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또한 아이샤의 손에 이끌려 아이샤의 할머니가 코헨에서 카드로 점을 봐주었던 순간도.

‘내가 선택한 세 장의 카드.’

첫 번째는 사신(역).
두 번째는 신(역).
세 번째는 인간(역).

당시에 아이샤의 할머니는 지금처럼 살면 된다는 아주 좋은 점괘라고 평했다.
하지만 글러트니의 세 번째 송곳니인 벨도란을 생포했던 도시 다운트에서 재회한 후에…… 주인 없는 땅에서 그녀는 사과하며 그때 보았던 점괘의 진정한 결과를 말해 주었다.

거꾸로 된 죽음.
거꾸로 된 탄생.
거꾸로 된 생명.

즉, 혼돈이다.

예지자가 감히 엿볼 수 없는 미래가 없는, 본인의 운명에서 벗어났으니 그 앞은 무엇도 확정되지 않은 가능성의 세계.

───……마법사님께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사라지실 수도 있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수중에 넣어 군림하실 수도 있습니다.

베르덴은 운명의 구속을 받지 않으나 결과적으로 예언은 들어맞은 셈이다.
우연의 일치가 필연이 된 것이다.

“아이샤의 할머니도 신통하군.”
“선지자는 아니었지만 젊었을 적엔 그에 준하는 수준은 됐죠. 아이샤가 태어나기 전에 제가 그녀에게 깃들어 있기도 했고요.”
“어쨌든 아이샤가 무사하다면 그걸로 됐다.”

베르덴이 갑자기 팔을 내밀더니 손목을 가볍게 당겼다.

쿠구구구.

나무뿌리가 솟아올라 등받이가 없는 간이 의자의 역할을 대신했다. 놀란 표정을 지은 히안테가 뿌리 위에 폴짝 올라앉았다.

“벌써 이 세계를 다루기 시작할 줄이야. 여기가 진정 무엇인지 이해했군요.”
“계속 머무르고 있다 보니 알아서 깨닫게 되더군. 아직은 이렇게밖에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그것도 시간문제겠지.”

바람에 실린 나뭇잎이 알파를 보듬었다.

[와아.]

베르덴의 의지에 호응하듯이 광활한 숲이 잔잔히 흔들린다.
마력의 바다와 생명의 수림으로 이루어진 고유한 심상에 이자벨라가 본질을 시각화하는 형안으로 봤던 거목과 끝없이 광활한 공간이 있으니…….

‘이곳은 곧 나의 본질이다.’

어째서 마력을 조작할 수 없고, 현실에서의 육체 능력도 발휘되지 않았는가.

애초에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떤 매개도 거치지 않고 그의 마음이 가는 대로 얼마든지 이룰 수 있으니까. 이 세계는 베르덴에게서 비롯되었듯 효율을 잊지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면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내면이 넓을수록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 어려운 법이에요. 그런 관점에서 베르덴은 과연 남다르다고 할 수 있죠. 그럼, 이제 다음 질문인가요?”
“그래.”

두 번째 질문.

베르덴은 자신의 어깨에 앉아 있는 알파를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여긴 내 세상이니 나야 그렇다 쳐도. 도대체 왜 알파가 여기에 있는 거지?”

* * *

[의문.]

알파의 미니 골렘이 베르덴의 마력을 동력으로 삼고 있으나, 그것만으로 정신계가 연결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마법적으로 성립되지 않기에.

‘무언가 내막이 있다.’

베르덴은 이에 어떤 원인과 결과가 얽혀 있는지 묻고 있다. 알파도 궁금해하며 히안테의 목소리에 청각을 기울였다.

“그야 베르덴은 운명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마탑의 동력원을 사용했고, 마탑의 동력원과 알파는 뿌리가 같으니까요. 베르덴과 올다르크의 인공 골렘 사이에는 교집합이 있어요.”

[뿌리? 마도왕 폐하?]

철컹.

상공에서 금기의 사슬이 꿈틀거리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베르덴과 알파에게 중압감이 내려앉았다.

히안테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었다.

“금기의 사슬이 가까이 있어서 이 이상은 말하기 어려워요. 우회해서 전달하고 싶어도 목소리에 담긴 뜻은 명확하기에, 정황을 자세하게 아는 존재일수록 비밀을 발설하기 어려워지는 구조죠. 제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건 이게 한계예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올다르크와 동력원, ‘당신’과 영혼. 둘을 이해한 순간 베르덴은 모든 진상을 알게 될 거예요. 운명전이 도대체 왜 발발한 건지…… 한번 패배한 올다르크가 저항을 위해 결국 무슨 선택을 내렸는지.”

철컹. 철컹.

거대한 사슬들이 비틀리며 히안테가 있는 방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중압감이 사라졌다.
대신 생명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숨이 멎는 듯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안 될 것 같죠?”
“그래, 넘어가지.”

[질문 통과. 확인.]

셋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세 번째 질문은 직전에 네가 내게 붙인 명칭에 관해서다.”
“신, 말이죠?”
“정확히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예요.”

히안테가 정면을 가리켰다.

“베르덴은 새로운 신이에요. 이제 새로운 신이 될 예정이죠.”
“내가…….”

베르덴이 뭔가 달라진 게 있나 싶어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딱히 변화한 것은 없었다.

“……새로운 신이라고?”
“아직 베르덴은 경계에 서 있어서 당장 실감하긴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선택을 내려야 하는 거고요. 진정한 신이 될 것인지, 자유로운 신이 될 것인지, 신이 되지 않을 것인지.”

느닷없이 신이라니.

‘분명 <절멸>을 시전한 후 사막의 신기를 소환해 옛 왕에게 날려 보낸 기억은 있다만.’

전에 잠깐의 반응만 보이고 잠잠했던 태양의 창, 라티르가 왜 베르덴의 부름에 응답해 파멸을 머금고 옛 왕을 공격했는가.
그 순간을 돌이켜 볼 여유도 없었지만, 당시에 체온이 들끓고 머리가 어지러워 감각이 분명치 않아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베르덴 폐하. 신.]

알파가 눈을 빛낸다.

녀석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애써 외면한 베르덴이 재차 물었다.

“진정한 신은 신이 될 만한 존재에게 진심 어린 신앙이 더해져 탄생한다고 알고 있다.”
“네, 관리자가 베르덴에게 그렇게 말했죠.”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 건가? 그리고 진심 어린 신앙의 주체는 또 누구지?”
“주체가 누구인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아요. 그걸 깨닫는 건 베르덴이어야 하고요.”

히안테가 말을 이었다.

“핵심은 누군가가 베르덴을 신으로 규정했고, 진심으로 신앙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서 신성력을 깨우쳤다는 거예요. 그 덕분에 베르덴이 신의 과정을 밟을 수 있게 된 거죠. 사막의 신의 무구를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그게 원인이고요.”
“……신성력까지?”
“그리고 자격에 대해 물었나요? 답은 간단해요.”

그녀가 양손을 펼쳤다.

“베르덴의 마음가짐은 ‘당신’과 올다르크와 이미 다르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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