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46

946화 선택지 (4)

베타의 무자비한 비평에 아드리안이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다.
아드리안의 성격은 바짝 날이 선 타인을 어르고 달래거나 묘한 언변으로 회유하는 데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검으로 설득하는 거라면 편했을 텐데.’

타인과 타인의 갈등을 원만하게 수습하는 일은 여러모로 성가시다.
세계 회의 같은 무대 위에 올라 주군처럼 정보와 존재감을 이용하여 복잡하기 그지없는 국제 사회를 주도할 자신은 없다.

차라리 경지의 열세를 인지하고도 진연, 산디르 파엔이라는 명확한 적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웠을 때가 마음은 훨씬 더 편했다.

아드리안은 소파에 뒷목을 얹고는 조용히 천장을 응시했다. 혹시나 지극히 이성적인 분석에 낙담했나 싶어, 베타가 말했다.

[본디 능력의 평가는 냉정하게 해야 한다고 평소 베르덴 폐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드리안의 기분을 고려하여 평가의 정도를 순화해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베타도 알파처럼 예전에 눈치라는 개념을 이해한 지 오래였다. 물론 아드리안은 어떻게 일침을 가하든 신경도 안 썼다.
베타는 그에게 직언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존재 중 하나다.

“음? 왜 순화하지? 지금처럼 부탁하마. 직설적인 편이 알아듣기 쉬우니.”

[알겠습니다. 아드리안의 부탁대로 냉정 평가를 지금 상태로 유지합니다. 아드리안의 화합력으로는 국제 분열을 절대로 막을 수 없습니다.]

“그건 알아들었다. 세 번 말할 필요까진 없어.”

아드리안이 고개를 바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그렇습니다. 베르덴 폐하의 부재로 주도권을 빼앗기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방관은 최악입니다.]

주군께서는 세계 회의에서 운명의 비밀 일부를 공유함으로써 세계의 권력자들을 상호 연결로 하나로 묶으려고 했다.
그렇게 ‘당신’의 세력에게도, 뜻을 드러내지 않은 저항자의 세력에게도 구애받지 않은 세 번째 세력의 형성을 바랐다.

한데 ‘당신’의 세력은 이데라트 연맹장 같은 세계 권력자에게 배신을 지시해 의도적으로 통합을 끊으려 하고 있다.
그들은 주군께서 직접 구상하신 계획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암중에서 운명의 지시를 받는 존재는 이데라트 연맹장과 레논 버나드뿐만이 아닐 겁니다.]

“배신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미 통합의 고리 사이에 이물질이 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거할 방법은?”

[이데라트 연맹장도, 레논 버나드도 인간의 범주 내에 있었습니다. 글러트니의 이식자처럼 스캔으로 특징을 잡아낼 수 없습니다. 당장은 ‘당신’의 세력을 색출할 방법은 전무합니다.]

비유하자면 거대한 기름통과 이어진 심지에 불이 붙었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
놈들을 완벽하게 없애지 않는 한 훗날에 반드시 폭발한다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아드리안이 손을 풀었다.

“……그럼 심지가 전부 타 버리기 전에 절단하면 되겠군.”

[아드리안의 친화력으로는 현 상황을 제어할 수 없으니 역으로 나서서 갈등을 일찍이 종식하겠다는 의미입니까?]

“최선이 안 되니 차선을 택할 수밖에.”

심지를 잘라 내도 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어 다시 심지에 불이 타오르겠지만, 그냥 지켜보는 것보다는 시간을 벌 수 있을 터.
주군의 자리를 대체하며 주군의 복귀를 대비해 준비를 갖춘다, 이것이 에온의 이인자인 아드리안의 역할이었다.

“다만 그 전에 레프라기움 마탑으로부터 옛 왕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게 우선이겠지. 갈등을 최대한 빨리 진정시키려고 검을 들었다가 옛 왕이 다시 나타나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말 테니까.”

옛 왕을 직접 봤기에 놈에게 내재된 힘의 편린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전의 상태를 갖추더라도 초월자 한두 명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연합하지 못한 채 각개격파당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아드리안이 합리적으로 통찰하자 베타가 외눈을 빛냈다.
마치 의외라는 듯.

[아드리안의 지능이 상승했습니다.]

“지능?”

아드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주군의 곁에서 배운 게 많다. 설마 이 정도 생각도 못 할까. 베타, 넌 날 뭐로 보는 거냐.”

[망나니입니다. 아드리안의 소꿉친구인 케이렐이 그랬습니다.]

“케이렐이 뭐라고 그랬는데.’

[베르덴 님을 따르고, 초월자가 된 이후로 성격이 제법 괜찮아진 것 같은데, 아드리안 그 망나니 새끼는 원래 생각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놈이니 방심하지 않는 게 좋다, 라고 했습니다.]

“…….”

헛기침을 한 아드리안이 입맛을 다시며 눈꺼풀을 긁적였다. 케이렐은 그가 어릴 적 한 일을 전부 알고 있었기에 반박할 것도 없었다.

“아무튼. 레프라기움 마탑이 대체 언제쯤 정보를 공개할지 계속 매달릴 순 없을 터. 흑해에게서 아직 연락은 없나?”

[3시간 12분 34초 전에 히아레마르 내해 탐사를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머지않아서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올 거라고 예측됩니다. 그러나 아드리안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나려면 다른 것보다도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베타가 단호히 말했다.

[마울러와의 전투에서 이겨야 합니다.]

“내가 그럴 자신도 없이 말했을까.”

[아드리안을 믿습니다. 하나 아드리안의 육체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마울러도 마찬가지겠지만 부상 상태에서는 변수가 더 많습니다.]

초월기에 당한 상처는 겉으로만 아물었을 뿐이지 내상은 남아 있다. 게다가 초위 마법의 여파로 파멸의 마력이 깊게 스며들기까지.

‘평소에 주군과 자주 대련해 파멸에 조금이나마 익숙하지 않았거나 리산드로의 열매 포션이 없었다면 이렇게 움직이지도 못했겠지.’

아드리안은 옷과 붕대로 가려진, 가슴 부근에 난 검흔을 지그시 눌렀다. 통증이 오히려 그의 날카로운 정신을 일깨웠다.

“주군께서 초월적 존재를 다수 제압하시는 동안 나는 단 한 명을 잡았다. 심지어 그것도 다른 사람의 조력을 받고서야 겨우. 초월자로 각성한 이후엔 검만 휘둘렀을 뿐 결국에는 동급의 상대와 겨뤄서 승패를 가르지는 못했다. 이런데 주군의 검으로서 감히 곁에 설 자격이 있을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인정 못 한다.”

마울러와 짧은 교전을 두 번 치렀고, 어쩌다 보니 주검의 영광의 초월자들을 상대로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기도 했다.
초월기도 보았다.
놈의 경지가 정확히 어느 정도에 있는지 충분히 경험이 쌓였다.

여기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여러 개.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기니까.”

아드리안은 선택을 내렸다.

당연하게도 전투 경험이 축적된 것은 마울러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아드리안은 일말의 의심 없이 승리를 확신했다.
베타는 그런 아드리안에게서 베르덴의 모습을 보았다.

“물론 네 충고대로 너무 일러선 안 되고, 당연히 너무 늦어서도 안 되겠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베타는 그의 선택을 긍정했다.

[적절한 시기에 아드리안과 마울러가 일대일로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맞붙을 수 있도록, 상황은 제가 조성하겠습니다. 마탑이라는 전력을 포함하여 에온의 전략가들과 계획을 구상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젠티르 마탑주에게는 며칠 동안만 이곳 대전당에 머물라고 전달하겠습니다.]

아드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타가 말을 이었다.

[다음 일정입니다. 황금의 죄인이 과거의 기억을 전부 찾았다고 합니다.]

옛 왕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다시 발생할 거대한 전쟁에 대비한 초대 네크로맨서와 세 명의 죄인은 약 800년 동안 ‘무언가’를 마련해 두었으니.
마침내 그 비밀을 풀어 헤칠 고대의 황금 열쇠가 준비되었다.

* * *

슈르르르륵.

모험가 길드의 초월자, 흑해 테아렐은 물속 깊은 곳에서 수류를 조작하며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일대를 탐색했다.

이곳은 히아레마르 내해.

‘좌표는 분명 이 근처.’

검붉은 멸망…… 그러니까 베르덴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알려진 미지의 섬의 흔적을 찾으러 그녀는 혼자서 잠수했다.

누가 부탁해서 하는 건 아니다.
단지 궁금했을 뿐이다.

현장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냐는 에온의 요청은 겸사겸사 들어주는 것이다. 일단 아르카디옴 건으로 신세를 지고 있긴 하니까.

수면 위 곳곳에서 기척이 감지되는 걸 보면 다른 세력들도 조심스레 조사에 나선 듯하다. 하나 대륙을 통틀어 바다를 자세히 살펴보는 일만큼은 테아렐을 따라올 존재가 없다.

히아레마르 내해의 밑바닥을 샅샅이 훑어보던 테아렐이 기이한 물체를 발견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

테아렐이 심해에서 바위와는 전혀 다른 표면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나무뿌리?’

무지막지한 두께의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내해의 저층을 뒤덮었다. 이제 보니 정확히 미지의 섬이 있던 그 좌표였다.
물속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테아렐이 후방으로 물러섰다가 즉석에서 수류의 쐐기를 만들어 가볍게 쏘아 보냈다.

쿠웅───보글보글.

나무뿌리엔 어떠한 흠집도 나지 않았다. 동시에 그것이 가진 말도 안 되는 경도와 강도가 흐름을 타고 그녀에게 전해졌다.

‘초위 마법은…… 아니, 그래도 파괴는 불가능해. 뿌리 아래에 빈 공간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밑에 뭐가 있는 거지?’

테아렐은 마치 ‘봉인’의 형태를 한 듯한 나무뿌리들을 관찰했다. 틈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빽빽하게 얽힌 정체 모를 뿌리 아래서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낯설고, 희미한 불길한 존재감까지도.

‘혹시 옛 왕이 이 아래에?’

* * *

델하룬 어딘가에 있는 지하 동굴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연신 울려 퍼졌다. 상처 입은 괴수가 어금니를 깨물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콰앙!

마울러, 가레스 시릴리아드가 애먼 동굴 벽을 후려쳤다. 천장에서 잔해가 떨어졌다. 땀으로 얼룩진 그의 몸이 들썩이고 있다.

“이제…… 끝났나……!”

[아직 남았노라.]

우지직.

“크으으읍……!!!”

[이제 끝났노라.]

가레스가 허벅지와 벽을 짚은 채 상처투성이인 몸을 지탱했다. 상당한 격통이었다. 도중에 의식을 잃으면 다시 깨어날 정도로 말이다.

[피부와 근육과 신경을 산 채로 찢어 떼어 내고, 뼈를 긁어내어서 너의 몸에 스며든 파괴적인 마력을 분리했노라. 이대로 가져가 연구하고 싶으나…….]

파지지직!

진녹색 촉수가 검붉은 광채에 닿는 순간 그 끝이 사멸했다. 임의로 제어할 수 없다. 마력을 담는 특수 용기에 보관할 수도 없다.

[불가능하군.]

촉수가 아쉽다는 듯 이내 물러나자 가레스에게서 뽑아낸 마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로써 항상성을 갉아먹는 힘은 제거했다. 하나 그 회복력으로도 지금 당장 만전의 상태를 갖추기엔 어렵다. 명심하라.]

“베르덴, 이 빌어먹을…….”

퉷.

가레스가 피와 다름없는 침을 뱉으며 반복해서 숨을 몰아쉬었다. 항상성과 이질적인 재생력으로도 상처가 빠르게 아물지 않았다.
놈의 말대로 본래 전력을 회복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촉수가 말했다.

[실로 차원이 다른 개념. 운명전에서도 감히 보지 못한 파괴적인 기운. 이것의 진가를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 참으로 애석하노라.]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에온에 기생하겠다는 거냐?”

가레스가 조소했다.

“너처럼 음흉한 새끼가 접근하면 베르덴이 바로 발작할 것 같은데.”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네가 할 일이지.]

“개소리를…….”

콱!

촉수들이 순간 증식하더니 가레스의 목과 손목을 단단히 옥죄었다. 상당한 압박감이 혈류와 숨통을 틀어박았다.

[섬에서 용검 마그라스를 가져오라고 했으나 넌 실패했노라. 어떤 이유든 간에 실패는 실패. 계약은 이행되지 못했노라.]

촉수가 상처를 헤집었다.

가레스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악력으로 촉수를 붙잡았다.
반항심이 가득한 눈동자가 촉수를 노려봤다.

[자유를 누리려면 나의 지시를 따르라]

“…….”

[수왕 안티아스에게 패배하여 추락한 무저갱. 거기서 죽어가던 널 구해 주었던 나의 아량, 그리고 네 힘을 보완할 나의 권능. 계약을 기억하라.]

기분 나쁜 속삭임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네 이상(理想)에는 내가 필요하노라.]

촉수들이 물러간다.

[회복을 도모하라.]

기괴한 존재감이 사라졌다.

그렇게 혈향이 가득한 동굴에는 가레스 혼자만 남게 되었다. 가레스는 전신에 묻은 검은색 혈액을 보곤 헝클어진 머리를 쓸었다.

“좆같은 대악마 새끼.”

* * *

대륙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듯 베르덴과 알파의 상황도 바쁘게 흘러갔다. 느끼고 있는 시간의 흐름은 다를지언정 서로의 시간은 똑같이 경과했으니.

“……새로운 신이라고?”

베르덴은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었던 자신의 신격을 인지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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