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16

1016화 신들이 몰락한 시대 (4)

‘경지는 억제됐다.’

아르카디옴의 두 번째 게임은 참가자 개개인의 무력으로 세계는커녕 국가의 정세마저도 휘두를 수 없는 한계선을 지향했다.

규칙에 명시됐듯 예외는 없다.

데우스도, 블러디아도, 테아렐도 그리고 베르덴 본인도 이 무대에 들어온 이상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게임의 제약으로도 내 마력량을 억누를 수 없는 모양인지 마력은 무한하나…… 마력회로가 ‘평범’하게 변했다. 치명적인 부담을 감수하면 잠시나마 5위계급 마도를 개방 가능한 상태.’

현재 베르덴의 마법적 수준은 리비안트 공국을 떠나 에스티리아 왕국으로 향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말인즉슨 과거를 기준점으로 삼으면 4위계급의 베르덴과 같다. 베르덴은 자기 자신의 마법적 무력을 그렇게 판단했다.

‘대신 기를 깨우친 전사에 못지않을 정도로 육체 능력은 나쁘지 않다.’

베르덴이 손가락을 굽혔다.
힘이 느껴진다.
평범한 마법사는 범접할 수 없는 근력이 손끝에 실렸다.

태고의 모험이 허락하는 무력의 상한선은 마법과 육체에 각각 적용되는가, 아니면 둘을 포함한 총합에 반영되는가.

단언컨대 후자다.

그렇지 않으면 종합적으로 우수한 베르덴과 같은 참가자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니까. 호스트는 그렇게 일방적인 게임을 원치 않을 것이다.
굳이 루자크와의 지식 거래를 통해 확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그는 확신했다.

스윽.

베르덴은 브로흐나트 변경백을 죽여 달라고 말한 루자크를 바라봤다. 반역의 기사. 루자크가 직접 밝힌 그의 역할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른 참가자의 기록서를 읽을 수 없다는 게임의 세부 규칙이 있기에. 그리고 초월자의 고유 통찰력도 봉인됐다.
루자크의 진실과 거짓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단은 사실상 없다.

‘어쨌든 루자크와 연결 고리가 생겼다. 즉, 다른 지식인도 개입할 경우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미 이 도시에서 암약하고 있을지도.’

지식인(知識人).

첫 번째 게임에서는 베르덴이 압도했을지언정 아르카디옴의 지식인들은 아득한 세월 동안 심해에서 지식을 탐했다.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괴물들.
순수 힘으로 전원 제압할 수 없으니 그들과 두뇌 싸움을 벌여야만 한다. 아차 하면 먹혀 지식을 빼앗길 수도 있을 터.

‘재미는 있겠군.’

베르덴은 결단을 내렸다.

“거래를 받아들이지.”

길고도 짧은 삶에서 죽을 위기를 동반한 상황은 어느 때나 있었다.
다른 지식인들을 잡아낼 좋은 기회다.
베르덴은 아직 한 자릿수의 귀빈을 만나지 못해 중급 질문권을 얻지 못했다. 상급 질문권도 포기할 수 없다.
괴물을 토벌하려면 괴물의 소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물론 정보는 선급이다.”
“귀하께서는 나를 믿지 못하는구려. 브로흐나트 변경백이 죽으면 내가 도망갈 거라고─”
“걱정 마라.”

베르덴의 존재감은 아무리 게임적 한계로 억눌려 있어도, 타인으로 하여금 형용할 수 없는 비범함을 느끼게 했다.

“아르카디옴의 제약이 아니더라도 난 약속은 지키니까.”

[알파가 보증.]

[베타도 보증합니다.]

“하하하하.”

루자크의 눈매가 휘었다. 믿음을 주지 않으면서 자신을 믿으라는 모순. 루자크는 지식인으로서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베르덴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다는 지식욕의 발로이리라.

거래 성사.

이로써 루자크는 샛별의 잔당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그 대가로 베르덴은 브로흐나트 변경백을 처단해야 한다.

“새벽녘의 기사는 이 나라, 헤르사온 왕국 수도로 향하고 있소. 브로흐나트 변경백은 샛별들이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영지의 경계를 봉쇄, 그리고 몰이하듯 추적할 계획이지.”

태양의 신.
달의 신.
샛별의 신.
여명의 신.
황혼의 신.

여기서 샛별의 종교는 다른 네 개의 종교에 의해 몰락했다.

헤르사온 왕국은 달의 신을 국교로 삼은 나라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샛별의 종교의 적. 그런데 샛별의 잔당이 왕국의 수도로 향하고 있다.

“그 말은…….”
“샛별은 달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으나, 그믐에는 샛별이 더 환하게 빛난다. 달이 샛별을 질투하는가, 샛별이 달을 시샘하는가. 샛별이 떨어진 새벽, 그믐의 달빛은 보이지 않으리.”

연식을 알 수 없는 오래된 시.

“정황상 새벽녘의 기사는 달의 종교를 몰락시킬 작정일 거요. 더 도망갈 수 없다는 체념과 무엇이라도 남기기 위한 복수겠지. 마지막까지 빛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샛별의…….”

루자크가 설명을 멈췄다.

“루자크?”
“정보를 주시오.”

아르카디옴의 규칙.
일방적으로 정보를 건넬 수 없다.

“망각하고 있던 모험의 규칙이 떠올랐소. 그러니 거래를 위한 정보를 주시오.”

베르덴은 알파와 베타를 번갈아 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건 어떠한 이끌림이었고, 또한 루자크에게 없는 정보였다.

“새로운 신앙이 탄생했다.”

루자크의 동공이 확장했다.

“아르카디옴의 모험은 참가자들과 참가자들의 과업이 주류가 아니오. 모험의 중심은 ‘역사’. 우리는 역사의 한복판에 있소.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의 바로 그 중심에.”

그가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 규칙을 깨달은 지식인은 거의 없소. 그동안 단 한 번도 모험과 역사의 정보가 돌아다닌 적이 없기 때문이오. 그저 모험극을 즐길 뿐이었지. 어째서 지금 내 머리에 모험의 숨겨진 규칙이 떠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루자크는 이내 길게 두 번 호흡하고는 자리에서 기립했다.

“브로흐나트 변경백이 주최하는 식사회가 바로 내일 ‘아침’이오. 다른 지식인이 끼어들지도 모르니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을 거요. 아니면 그 직전에 일을 벌이거나.”

[루자크.]

알파가 그를 가리켰다.

[눈물.]

“눈물?”

루자크가 뒤늦게 얼굴을 더듬었다. 제법 잘생긴 기사의 눈가를 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정처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내게서 눈물이…….”

지식에 없는 일인지 루자크는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를 보며 베르덴 일행은 다시 확신을 거듭했다.

‘태고의 모험은 한낱 게임이 아니다.’

* * *

라흐 남작 가문의 마차가 가도를 적당한 속도로 질주했다. 라흐 남작과 그 딸인 테린이 각각 탑승한 마차가 두 대였다.

호위로는 기사가 1명, 사병이 13명이었다.

본래 테린은 라흐 남작과 같은 마차에 탑승하는 것이 옳으나, 그녀가 강력하게 거부했기에 마차를 두 대나 쓰게 됐다.

“먼 옛날이 배경이라고 하지만 이 수는 처참한데. 이게 남작가야?”

테아렐이 창틀에 얹은 얼굴을 살짝 돌렸다.

“산골짜기 도적단도 이것보다는 많겠어. 안 그래, 신비주의자 마기온 선생?”
“문명의 차이다. 이 시대에서 힘없는 남작가가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병사는 현대에 비해 한 줌에 불과하지.”

두 번째 마차엔 테아렐과 데우스만이 대각선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선생과 아가씨.

남작가의 사람이 마땅히 그들 사이에 함께해야 했지만 이 역시 그녀가 강력히 거부했기에 둘만 있을 수 있었다.

“습격받으면 어떻게 해? 이 호위 수준으론 우릴 지키지 못할 텐데?”
“마법을 써라.”
“내 역할은 아가씨잖아.”
“…….”
“여차하면 선생이 지켜 주려나? 제자를 지키는 건 선생의 의무니까.”

테아렐이 반개한 눈으로 은근히 데우스 위덴을 놀렸다. 그렇게 숨기는 게 많은 레프라기움 마탑주가 선생으로 있으니 한 명의 마법사로서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데우스는 대꾸하지 않고 테아렐의 반대편 창밖을 응시했다.

“여전히 과묵하네.”

짧게 기지개를 켠 테아렐이 구석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장난은 이쯤 하고, 슬슬 이 태고의 모험에 대해 더 알려 주지 그래? 명색이 아르카디옴의 세 번째 주빈이니까 아는 게 많을 거 아니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저기 내 가짜 아버지가 고용한 선생이니까. 아, 그럼 이렇게 부탁해야 하나?”

테아렐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알려 주면 안 돼요, 선생님?”
“…….”

데우스가 부여받은 역할과 상황은 라흐 남작가의 마법 선생이다. 마법적 재능이 있는 테아렐에게 마법과 교양을 가르쳐 주기 위한 선생 말이다.

‘선생은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려야 한다.’

말인즉슨 아르카디옴의 지식 교환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데우스는 어떤 대가도 없이 테아렐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테아렐은 영악하게도 그 사실을 애초에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베르덴의 인맥만으로 열아홉 번째 귀빈으로 호스트에게 선정되어 아르카디옴에 초대된 것이 아니다.

데우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거절할 수는 있으나…….’

힘이 제한된 상태에서 테아렐이 악착같이 발목을 잡으면 성가시다.

모험 시작부터 귀족과 자연스러운 연결을 가진 것은 버리기 아까운 이점인 데다가 라흐 남작 가문이 충성하는 브로흐나트 변경백은 현재 새벽녘의 기사를 쫓고 있다.

‘상황을 따졌을 때 테아렐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 어쩔 수 없군. 흥미를 충족할 만큼은 적당히 내어 줄 수밖에.’

데우스는 그렇게 판단했다.

“……모험극은 역사의 재현이다.”
“역사?”
“실제로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중심 소재로 삼아 모험 게임이 진행되지. 첫 번째 귀빈과 나를 제외하면 인지할 수 없는 규칙이다. 다수의 지식인이 기억하는 역사가 나오면 게임이 재미없게 흘러갈 것이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
“왜 너희는 예외인데?”
“호스트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가 보고 들은 기억에 직접적으로 개입이 불가능한 것처럼.”
“왜 네 기억에 개입이 불가능한데?”
“그런 식으로는 이야기가 안 끝난다, 테린.”
“농담이야. 계속해.”

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모험 게임에서 각자 부여받는 지식의 과업에는 ‘규모’가 있다. 규모가 클수록 역사를 가장 크게 바꾼 사건을 뜻하지. 또한 과업이 거대할수록 많은 과업이 뒤얽힌다.”
“거대한 과업에는 다수의 지식인이 끼어든다는 말이구나.”

테아렐의 눈빛이 은은하게 빛났다.

“네가 잠자코 내 선생 노릇을 하는 걸 보면 제법 거대한 과업이 이 앞에 있는 것 같은데. 샛별의 신앙. 그게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야?”
“적잖은 지식인이 개입하겠지.”

데우스는 창틀에 팔을 얹었다.

“심해의 지식인은 겉으로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위험한 존재들이다. 권모술수에 능하거나, 금지된 마법을 시전하는 데 거리낌이 없거나. 새로운 지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상상을 벗어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자들이지.”
“…….”
“책장을 넘기는 것도 행동에서 비롯되니, 행동은 곧 지식의 양식이다. 아르카디옴이 자랑하는 격언 중 하나지. 저택에서 보았던 추한 괴물들은 잊어라.”

해가 지고 도래하는 어둠.

“초월의 경지가 제한된 지금. 지식인 하나하나가 우리 초월자의 목숨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과거의 달인들이니.”
“지식인들만 조심하면 돼?”
“그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이 이 신들이 몰락한 시대다.”

데우스의 시선이 움직였다.

“신이라는 압제자가 사라지면서 이따금 억압돼 있던 괴물들이 고개를 쳐들곤 했다. 이 시대에야말로 당시의 인류에게 불가해한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시대라고 할 수 있지.”

공기가 가라앉았다.

“지금처럼.”
“……!”

테아렐이 소름 돋는 기척을 감지한 것과 동시에 데우스가 검지와 중지를 겹쳤다. 마력 보호막이 둘의 마차를 감쌌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악!

검은 연기의 채찍이 어둠을 틈타서 라흐 남작의 마차를 습격했다. 기사가 응전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금방 조용해졌다.

테아렐과 데우스가 마차에서 내렸다.

라흐 남작이 타고 있던 마차는 말과 함께 쪼개져 내려앉았다. 그 사이로 토막 난 라흐 남작과 가신들의 시체가 보였다.
기사와 병사들의 절단된 신체 부위들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오───오오───]

[───오──────]

눈과 입에 구멍이 뻥 뚫려 있으며, 팔다리가 길쭉한 인간형의 안개들이 흐느적거리며 망가진 마차를 향해 다가온다.

현 흑요 등급 모험가인 테아렐조차 전혀 모르는 이형종이었다.

“저게 그 괴물?”
“이르자면 ‘태고의 이형종’들이지.”

데우스가 소매 속에 감춰 둔 작은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전투 상황에 테아렐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다들 태고의 모험을 하기 싫어했구나.”
“마차를 지켜라, 걸어가기 싫으면.”

테아렐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알았어, 선생.”

* * *

브로흐나트 변경백의 성.

이른 아침으로 예정된 식사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제법 많은 이가 도시에 입성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들이었다.

“저녁이 아니라 아침에 식사회라니. 손님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군.”

[인정.]

“아무튼 인파가 꽤 모였으니 슬슬 들어가지.”

베르덴은 알파와 베타를 데리고 루자크가 미리 확보한 침입 루트를 이용했다.
위장 잠입은 배제했다.
얼굴이 너무 눈에 띄는 데다가 얼굴을 가릴 만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몰래 들어가는 게 훨씬 더 편하기도 했고.

탓.

새벽의 적막 속에서 베르덴이 뒷문을 통해 성에 발을 디뎠다.

* * *

“허허허허, 이거야 원.”

성의 최상층에서 성에 침입하는 베르덴 일행을 포착한 일곱 번째 귀빈이 환희에 찬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네 번째 주빈께서 이곳에 나타나셨다, 아무래도 과업의 과정이 겹친 모양입니다. 아, 이거 참, 이거 참. 저희에게 이런 절호의 기회가 올 줄이야.”

네 번째 귀빈이 눈웃음을 지었다.

“호호호호,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우연은 또 없겠죠.”
“식사회에 경쟁자가 많긴 하지만 저희가 힘을 합치면 문제없을 터. 네 번째 주빈의 지식은 정확히 반반 나누어 갖도록 하죠. 어떻습니까?”
“좋은 제안이군요.”

네 번째 귀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제게 더 좋은 제안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아! 그거야 물론입니다.”

일곱 번째 귀빈이 귀를 쫑긋 세웠다.

“지고한 네 번째 귀빈의 고견을…….”

푹.

불식간에 날아온 단검이 일곱 번째 귀빈의 목을 뒤에서 꿰뚫었다. 그가 토혈하면서 눈앞에 서 있는 네 번째 귀빈에게 물었다.

“어째섭니까? 네 번째 주빈을…… 혼자 상대하, 는 것은…… 무리일…….”
“그거야.”

네 번째 귀빈이 게임 무대에서 고용한 암살자가 일곱 번째 귀빈의 경추를 끊었다. 그렇게 일곱 번째 귀빈의 목숨이 날아갔다.

“네 번째 주빈은 제 적이 아니니까요. 음, 말하자면 동료랄까요?”

네 번째 귀빈이 손등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렇지 않습니까? 애셔 님. 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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