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42

1042화 중립자 (3)

호스트는 세상 누구보다 많은 책을 집필한 것을 자부하듯 지식인이면서 학자였다. 그리고 학자이면서 연구자였고, 천생부터 연구자였기에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선각자이기도 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바위 틈새에 자리 잡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문했다.

신이란 무엇인가?

그는 바다의 개념이 지성을 터득한 개념체이며, 바다를 진정으로 경외하는 이들로부터 신격을 얻은 태고의 신.

미물들은 신을 전지전능한 윗분이라고 생각하나, 이는 미물다운 안목이다.
신으로서 단언한다.
신은 전지하지도 않으며, 전능하지도 않다.

그저 그렇게 보일 뿐…….

하지만 보인다는 것은 곧 인식이며, 인식은 강한 힘을 갖고 있다.
피지배자의 관점에서는 모든 지배자가 압도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것처럼, 그리고 무수한 인식이 같은 방향을 향한다면 진실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말인즉슨 신은 절대자는 아니어도 만물과 만인의 지배자쯤은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호스트는 또 자문하였다.

지배란 또 무엇인가?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지배는 남을 복종시키고 다스리는 개념. 그런 의미에서 남을 통제하는 규칙은 지배자의 권능이며, 규율에 따르는 것은 피지배자의 의무다.

여기서 호스트는 지배와 신을 정합해 조화로운 규칙을 구축했다.

이는 금기 개념의 탄생이었다.

그렇게 신이 정한 율법은 세계에 뿌리를 내렸다. 세상에 신들의 의지가 반영됐다. 호스트는 이야말로 신이란 존재에게 부합한, 그러니까 세상이 지배자로 규정하는 신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보았다.

{당연히 금기 선포는 으레 국가가 새로운 국법을 반포하는 방식과는 달랐다. 세계 자체는 지성이 없기 때문이다. 금기의 기반은 될지언정 금기 위반에 대한 심사와 처벌을 집행할 판단 의지가 없지.}

그는 선구자로서 말했다.

{그런 뜻에서 대자연의 개념인 세계수는 금기의 집행자로 삼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신이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세계’수니까.}

“……그래서 ‘당신’이 운명전에서 저항자 편에 선 세계수를 살려 둔 건가? 세계수가 없으면 금기가 힘을 잃으니까?”

{금기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베르덴, 너는 세계수를 심히 얕잡아 보는구나. 그녀의 존재 의의가 얼마나 깊고도 방대한지 몰라.}

호스트가 살짝 허리를 굽혔다.

{세계수의 존재 가치는 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존귀하거늘.}

호스트는 세계수를 경애(敬愛)했다.

{너도 마찬가지다, 베르덴. 어떤 시각에선 세계수 이상으로.}

세계수는 베르덴을 향해 자신과 본질이 같다고 했으며, 보다 자세하게는 베르덴이 더 상위 차원의 개념이라고 일러 주었다.

‘대체 뭐길래…….’

이미 몇 번이고 혼자서 사색했던 의문이건만 그 무게는 갈수록 무거워졌다.
지금은 더욱 그랬다.
마치 점점 더 숨을 옥죄는 것 같다.

‘내가 대체 뭘 동력으로 삼았길래 이러는 거냐.’

역천은 운명의 굴레를 부수고 베르덴의 신체를 재구성했으며.
역천의 마법진을 발동시킨 보헤미른 마탑의 동력원은 베르덴에게 무한한 마력과 불가해한 존재 가치를 부여했다.

초대 마도왕은 어떠한 이상을 바랐기에 10개의 동력원을 만든 것일까. 동력원의 근원이 무엇이길래 모두가 베르덴의 본질에 주목하는 걸까.

호스트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진실에 닿지 못한 베르덴을 비웃듯이 촉수를 꿈틀거렸다. 일견 공부를 아직 끝마치지 못한 천재 학생을 대하는 천재 교수의 눈빛이었다.

{변수를 지우려 했던 ‘당신’의 행동은 역설적으로 수많은 변수를 야기했다. 이야말로 변화의 시대이자, 변혁의 시간이며, 모든 자의 분기점이지. 이 이야기의 종착지는 과연 어디로 이어져 있을까.}

연극의 해설자와 같이 목소리를 높인 호스트가 과장되게 몸짓한다. 시체 위에서 춤을 추며 난세를 만끽하는 광인처럼 보였다.

베르덴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손가락을 강하게 굽혔다.

“즐겁나? 이 혼돈이.”

{즐겁지 않냐고? 자, 보아라.}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진심으로 웃는 호스트의 한 손이 하늘을 향했다.

{창조와.}

그리고, 호스트가 다른 한 손으로 알파와 베타를 정확히 지목했다. 바다의 신성력은 녀석들의 근원을 직시하고 있었다.

{흐름과.}

마지막으로 호스트는 천천히 양손을 앞으로 모아 베르덴을 가리켰다.

{파괴.}

호스트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혼돈은 지식의 요람이며, 이들은 이전에 없었던 예측 불허한 혼란을 자아내려 한다. 그리고 크든 작든 모두 나의 영향을 자처했으니, 지식인으로서 이보다 더한 영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즐겁다. 즐겁지 아니 할 수가 있을까?}

“모든 선택이 전부 네 뜻인 양 굴고 있군.”

베르덴의 눈빛에 강렬함이 움텄다. 절대자들이 내린 선택을 제 것인 것처럼 여기는 호스트는 이미 베르덴의 역린을 자극한 지 오래였다.

“그러다가 죽을 텐데.”

{죽음──}

어느샌가 소환된 [인테리스]가 호스트의 육신을 갈랐다. 콰과과과과광! 파멸이 작용해 인간형의 몸이 재가 되듯 소멸했다.

“죽음을 논하기 전에 진체(眞體)부터 보여라.”

쿠구구구구구구구…….

어둑한 공동이 진동한다.

호스트가 발현한 신성력의 기운은 대해가 되어서 공간을 장악하고, 수면 위로 나오듯 존재감이 본래의 크기를 과시했다.

{죽음마저 새로운 지식의 거름이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지. 그것이 가장 깊은 미지에서 탄생한 나의 본성이니.}

태고의 시대 때부터 활동해 왔던 호스트는 많은 이름으로 불려 왔다. 그는 미동만으로 바다를 흔들어 대폭풍을 일으켰고, 광대한 촉수로 함선을 난파하고 신들을 집어삼켰으며, 태산과 같은 뇌로 세상에 많은 변화를 하사했다.

{나는 신들의 몰락한 기점인 대분기에도 광명이 닿지 않는 무저해에 머물렀으며, ‘당신’의 운명전에도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지식인으로서 전쟁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고, 내가 참전하기를 어느 존재도 바라지 않았던 까닭이다.}

바다의 신.
가장 거대한 존재.
공해의 괴이.
망해의 공포.
미지의 탐닉자.
크라켄(Kraken).
무저해의 주인.
세계 기록자.
지식의 포식자.
운명의 조언자.

그는 누구의 편에 명확히 서지 않는다. 그런 이해관계에 매이지 않는다. 온 세상에 흑과 백만이 있다면 그는 파란색이 될 것이며,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그는 가장 총명한 자조차도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답을 내놓을 것이다.

중립자.

선악을 초월한 그에겐 본명이 없었다. 개념체의 숙명이다. 그래서 시간의 개념은 스스로 히안테라는 이름을 지었고, 바다의 개념은 이를 참고하여 자신의 진명을 작명했다.

{베르덴.}

진행하는 자 – 호스트(Host).

{이 내가 관측을 그만두고 개입한다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알파와 베타가 위를 보고 있다. 한 명의 시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감히 형언할 수 없는 크기의 거대 문어가 작은 골렘들을 굽어본다.

청명한 바다를 연상케 하는 7개의 푸른 눈동자가 명멸했다. 좌우로 각각 3개의 눈동자가 있고, 가운데 1개의 커다란 눈동자가 있는 구조였다.
한 나라를 뒤덮을 것 같은 8개의 다리가 베르덴을 크게 에워싸고 있다.

“나야말로 묻고 싶군.”

무한한 마력이 바다가 되어서 무저해의 압력을 밀어낸다. 호스트가 보인 격은 어떤 사도와 비교해도 약하지 않았다. 단순한 질량으로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으리라.
이렇게나 규모의 차원이 다른 개체를 맞닥뜨리는 것은 처음이나, 베르덴은 초월자의 격과 신의 격을 동시에 발현하며 정면으로 맞섰다.

“지금이 아니면 네가 나를 감당할 수 있을까.”

문어 머리의 아랫부분이 길게 갈라졌다. 안에서 무수하고 큼지막한 이빨들이 드러나더니, 호스트가 찢어질 듯 입을 벌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즐거움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괴이한 웃음소리가 심해 전역을 격동시켰다. 마음을 갈무리한 호스트가 안광을 번뜩였다.

{그날을 기다리겠다.}

난폭한 해류가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물거품이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이내 이질적인 공간의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 베르덴의 마력을 두드리던 소용돌이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제야 사방이 트였다.

알파와 베타가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아르카디옴에 참석하기 전 머물렀던 출발지였다.

[블랙 아워 대전당. 복귀.]

비로소 아르카디옴이 막을 내렸다.

* * *

베타가 말했다.

[테아렐을 확인했습니다.]

테아렐은 느닷없는 공간의 변화에 잠시간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그링 아르카넘]을 이용하기 전처럼 베르덴 곁에 있었다.

“…….”

테아렐은 차분히 물기가 하나 없고, 어떤 상처도 없는 자신의 행색을 확인하고는 베르덴에게 눈길을 향했다.

“아르카디옴에서 소모한 마력은 전부 돌아온 것 같은데, 부상도 없고. 상태는 만전이야. 어쨌든 아무 일 없이 호스트를 만났나 봐?”
“그래.”
“드라벤의 영혼은?”
“해방했다.”

베르덴은 오른손에 들려 있는 [그링 아르카넘]을 바라봤다. 세계 금서. 이것의 주인이었던 자는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사서는 알 수 없는 문자와 문양을 남기고 물 없는 장소에서 익사했고, 아이는 마을 사람들이 멍청해서 살지 못하겠다며 자살했고, 마법사는 제자에게 뇌를 적출당했다.

지식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마도 아르카디옴에 참여했다가 게임에서 모든 지식을 잃어버려, 그 여파로 현실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리라.
필시 그들의 영혼은 지식의 망령이나 지식인으로 전락했겠지.

‘그링 아르카넘을 읽는 자, 세계의 모든 지식을 얻는다…….’

모든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문자 그대로 방대한 지식을 손에 넣는 것일까? 베르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바라는 지식을 얻는다면, 그것이 모든 지식을 얻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호스트의 천문학적인 크기의 진체와 대면을 마친 지금, 그저 아르카디옴의 출입구에 불과했던 [그링 아르카넘]은 변화했다.
금서의 주인으로서 베르덴은 무엇이 바뀌었는지 한눈에 이해했다.

영혼의 서: [그링 아르카넘].

이 책은 베르덴이 바라는 지식이 영혼과 연관돼 있음을 뜻했다.
과연 어떤 비밀스러운 지식과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는지, 혹은 여러 지식과 연결되어 있는지 나아가며 알아내야 하겠지만.

후웅.

베르덴이 [그링 아르카넘]을 아공간에 수납했다. 아르카디옴에서 얻은 것을 재차 확인하기 전에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테아렐이 시간을 확인했다.

“바로 프로하스로 넘어가야겠는데. 늦겠어.”
“먼저 들를 데가 있다.”
“어디?”
“마렌 왕국.”

<게이트>

무한의 마도로 공간 이동진을 작성한다고 해도 거리에 따라 시간이 소모된다. 본래 다른 대륙으로 전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법계 상식과 비교했을 때 베르덴이 단신으로 장거리 공간 이동 마법진을 작성하는 시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지만, 지금은 그 약간의 시간도 허비할 여유가 없었다.

“그곳에 운명의 추종자들의 근거지가 있다. 두 번째 게임에서 블러디아의 기억으로 우연히 알아낸 정보지.”

테아렐은 공간의 입구를 응시했다.

“따라가도 돼?”

[물론.]

알파가 긍정했듯이 베르덴도 같은 생각이었다. 전력을 갖춘 채 알파와 베타를 대동한 베르덴이 앞장섰다.

“너도 이미 관계자다.”
“많이 알게 되긴 했지.”

테아렐이 그를 뒤따랐다.

“생포할 거야?”
“생포는 의미 없다. 기억도 엿볼 수 없겠지. 그런 식으로 쉽게 정보를 캐낼 수 있었으면 데우스가 진즉 처리했을 테니까.”

베르덴은 살의를 감추지 않았다.
테아렐도 동조했다.

“전부 죽인다.”
“확인.”

운명의 파괴자와 세 번째 사도의 대적자가 마렌 왕국으로 향했다. 프로하스에서의 정상 회의까지 약 20분이 남은 시점이었다.

* * *

운명의 추종자들을 지휘하는 자들을 ‘상부’라고 총칭한다. 그들은 추종자들에게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운명의 추종자들의 눈이 닿지 않는 이면에서 종족의 정점인 드래곤들을 경배한다.

네 번째 사도의 숭배자들.

그들 중 하나가 드래곤의 조각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이내 흠칫 놀라며 식은땀을 흘렸다.

[운명 파괴자가…….]

네 번째 사도의 뜻을 받든 용 숭배자 하나가 눈을 부릅떴다.

현재 마렌 왕국 근거지엔 국제 사회를 무너뜨릴 계획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잃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있다.

차기 여덟 번째 사도 – 단텔.

운명을 찬양하는 숭배자들이 인고 끝에 만들어 낸 인공 사도가 죽으면, 네 번째 사도께서 바라신 수백 년의 연구가 완전히 허사가 되어 버린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가 수정 구슬에 대고 말했다.

[저항의 씨앗에게 발각되었다. 퇴각을 도모하며 습격에 대비하라.]

운명 파괴자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동요가 클 테니까. 무지한 추종자들을 이용해 최대한 시간을 끌어 단텔이 도주할 틈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상부의 결정이었다.

본디 추종자는 소모품이다.
그를 대가로 좋은 운명을 약속받은 어린양들.

[절대로 내부 침입을 허용치…….]

쩌적.

수정 구슬에 무수한 금이 갔다. 그 광경을 목격한 용 숭배자들이 멈칫했다. 현 마렌 왕국 서쪽과 연결된 통신이 끊겼다.
이는 해당 공간 자체가 외적으로 격리되었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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