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43

1043화 도륙

성소 아벤카의 밀실에 새하얀 면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누워 있다. 양손을 몸 위에 가지런히 놓은 모습이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고요한 숨소리만 적막을 보듬었다.

옛 왕의 완전한 부활 탓에 긴급하게 소집된 정상 회의로 교황과 성자가 자리를 비웠을 때…… 성스러운 빛이 강림했다.

가장 아끼는 빛이여.
아이야.
신성한 광휘가 되어.
신앙을 관철하라.

신탁이 내려왔다.

거악이 도래했다.

베일 너머에서 샛노란 안광이 강하게 번쩍이며 주변 일대를 물들였다. 그와 함께 치솟은 존재의 힘이 밀실을 압도해 성소 전체를 격동시켰다.

천장에 새겨진 거대한 빛의 정십자가를 바라보며 빛을 닮은 여인이 유일신을 향해 기도하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빛의 어머니의…… 뜻을 따라.”

성녀가 깨어났다.

* * *

단텔.

운명 자체를 이상으로 추구하게 된 초월자로서 인공 사도로 불리며, 선택을 받아들이고 저항에 대한 저항을 하는 자.

마렌 왕국 아래…… 단텔은 히아레마르 내해에서 손상된 심신을 회복했다.
고단한 노력 끝에 깊숙이 스며든 검붉은 번개를 피로 몰아내고는, 동맥에 상처를 내어 그 피를 전부 쏟아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거동에 문제는 없다.’

벽을 넘어선 육신은 장기가 토막 나고도 웬만한 출혈로는 죽지 않는다.
항상성.
모든 초월자가 그러하듯 그도 명줄이 질겼다.

그리고.

단텔은 자신의 경지를 웃도는 초월자의 이목조차 어느 정도 속일 수 있을 만큼 은밀 기동이 특기 중의 특기였다.
은폐와 감지 능력은 사실상 그 자체로 초월기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약자는 단텔을 감히 추격할 생각도 못 했으니.

‘음?’

단텔은 문득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그가 있는 곳은 오래된 지하였다. 거미줄과 먼지로 뒤덮인 어둑한 천장만 보였다.
하지만 그의 예리한 감각은 천장 너머의 지상에 닿아 있었다.

불길함을 느꼈다.
문제는 그것이 익숙했다.

“……!!!!!!!!!!!!!”

경직된 채 표정이 시시각각 변한 단텔이 당장 탈출구로 쏘아져 나갔다.

* * *

중앙 대륙의 마렌 왕국은 인간 국가로, 이데라트 연맹국 아래쪽에 위치했다. 또한, 가르간트와 아티슨 마탑과 인접해 있기도 하다.
히아레마르 내해를 통해 나라 기반을 다진 마렌 왕국의 규모는 대국과 비교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긴 시간 명맥을 이어 온 나라 중 하나였다.

운명의 추종자들은 마렌 왕국의 서쪽에 근거지를 하나 두었다.

세르노흐 요새.

마렌 왕국의 기록에 없는 성채였다. 마렌 왕국이 건국되기 전부터 존재해 왔으므로…… 국가에 속하지 않은 성이 국경 안쪽에 박혀 있다.
그런 사실 자체가 역사의 이면을 모르는, 무지한 국제 사회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저항의 씨앗.”

마렌 왕국의 귀족파에 속한 쥬네브 브라에시르가 작은 스태프로 손바닥을 탁 쳤다. 그녀는 브라에시르 후작 가문의 순박한 여식으로 여겨지나, 마렌 왕국에 깊게 스며든 운명의 추종자였다.

“옛 왕의 부활을 조력하다가 추종자가 그들에게 제거되고 있는 판국인데, 설마 여기까지 발각될 줄은 몰랐네요. 며칠만 있으면 국제 사회를 제법 뒤집어 버릴 수 있었는데.”
“계획에는 변함이 없네.”

건장한 사내가 답했다. 그는 마렌 왕국의 에토스 백작이었다. 현역 때 근위기사단장이었으며, 지금도 국가급 전력의 무위를 자랑했다.

“10분 정도만 시간을 끌어도 모든 계획이 외부로 이전될 테니.”
“그들을 이겨 내면 더할 나위 없을 터, 껄껄껄.”

마렌 왕국의 음지에서 영향력을 떨치는 마도사, 나사니엘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웃었다.
6위계의 벽을 넘은 그도 엄연히 국가급 전력으로 분류됐다.

나사니엘이 환하게 이를 드러냈다.

“공적이다. 뭐가 됐든 공적이야.”

운명의 추종자는 ‘당신’을 위함에 있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연한 이치다.

공적을 세울수록 ‘영원한 세계’에서 좋은 운명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왕의 운명을 가진 자는 끝없는 순환의 굴레에서 계속 왕이 되며, 황제의 운명을 가진 자는 계속 황제가 된다.
심지어 강대한 초월자로 각성할 운명을 지녔다면 초월자가……!

결말은 이미 쓰였다.
모든 것은 그 문장을 걸을 뿐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천부적인 재능의 벽은 넘을 수 없다. 타고난 운명을 바꿀 수 없다. 천성을 어찌할 수 없다. 결국에 주어진 대로 살아가야만 한다.
경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머물러야 하는 것처럼, 신분의 벽을 엿보지 못하고 태어날 때와 같이 바닥을 기어야 하는 것처럼.

벌레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인간이 될 수 없다.

벌레는 벌레일 뿐이다.

그런 벌레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당신’에 관한 설화를 듣고 눈을 떴다. 영원한 세계를 지향했으며, 새로운 운명을 소원했다.
쥬네브, 에토스, 나사니엘은 스스로를 선택받은 존재라고 여겼다. 실제로 그러했다. 운명의 추종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순환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일종의 자격이 있어야만 하기에…….

이들뿐만이 아니다.

세르노흐 요새 지하에서 여러 추종자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이 내린 삶을 완전히 뒤집으려는. 다시 말해 ‘역천’을 기원하는 지성체들이었다. 하늘을 거부하기 위해 하늘을 떠받드는 모순을 품고 있으나 그들에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죽음 뒤의 세상에서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추종자들은 그저 위대한 존재라고만 알고 있는 ‘당신’에게 지금 주어진 목숨과 의지를 공양한다.

“그나저나 저항의 씨앗이 운명의 아성(牙城) 중 하나를 직접적으로 습격하는 상황은 이번이 처음 아니오?”
“우리가 아는 것은 역사의 단편이네. 그마저도 티끌조차 되지 않지. 보잘것없는 견문 따위로 처음을 감히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군.”
“처음이든 아니든 뭐가 중요할까. 저항의 씨앗은 대단한 병력을 투입할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성을 넘보지 않을 테니.”
“저항의 씨앗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들추는 것만 해도 공적이죠.”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진실을 깨달은 인간들은 예전에 공포를 잊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희생정신이 번들거렸다.
물론 그 희생이란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까지도 포함했다. 운명이 요구하면 그들은 기꺼이 아이조차 산 채로 씹을 것이다. 성소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했던 때처럼 말이다.

그 순간.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마치 석양이 지고 난 후처럼 일순간 모든 빛이 저물며 시야에 닿는 공간이 암흑천지가 되었다.

누구도 겪어 본 적 없는 갑작스러운 기상 이변인 터라, 단순히 새까만 하늘만 올려다볼 뿐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못했다.

쥬네브가 조용히 손목시계를 살폈다.

여전히 시간은 낮이었다.
한데 주변 일대는 완전한 밤이었다.

“……별?”

에토스 백작이 그때 하나둘씩 피어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응시했다. 심상치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건 알겠는데 직접적인 위기감은 없었다.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천재지변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것은 기존 다섯 개의 별 일부를 규합해 창조한 두 개의 성신 마법 중 하나였다.

천체의 영역을 구현하는 영성(領星), 알헤나.
봉인의 별자리인 쇄성(鎖星), 레그나룸.
원소를 강화하는 위성(衛星), 테아브.

세 번째 별과 네 번째 별 그리고 다섯 번째 별은 베르덴의 무한의 마도 아래 합일하였고, 새로운 성신 마법이자 거성들을 아우르는 우주의 영역이 잿빛의 별자리에 깃들었으니.

결성(結星), 보르간투아.

우주의 암흑은 출입을 차단하는 장막이 되었고, 여덟 개의 원소의 별은 거대한 크기가 되어 타원으로 공전했다.
어둠은 발광하는 별들로 인해 더 이상 어둠이라 할 수 없었다.

무수한 별이 운명을 직시했다.

“뭣.”

나사니엘은 무심코 압도당해 뒷걸음질쳤다. 이내 가장 강한 빛을 내뿜던 별이 혜성처럼 떨어져 지상에 도달했다.

“사도의 끄나풀이 득실거리는군.”

베르덴의 낮은 목소리가 운명의 아성 전체에 전달됐다.

“운명과 생명, 하나만 택해라.”

그들에게 최초이자 최후 통첩이었다. 베르덴의 제안을 수락할지 거부할지 주어진 여유는 고작해야 몇 초도 되지 않는다.
그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멍한 정신이 깨어난다.
침묵에 금이 간다.

찰나에 수십 번이나 어긋난 인식과 이해가 겨우 맞물리며 일치했다. 경악성이 퍼져 나갔다. 머리털과 신경이 전에 없을 정도로 곤두섰다.
그 직후 마력회로가 활성화되고 기운이 전신을 강화했다.

“베르덴?!!”
“어떻게 에온의 수장이……!!!”

쿵!

에토스 백작이 반사적으로 장검을 뽑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다른 운명의 추종자도 유려하게 거창을 회전시키며 점으로 쏘아졌다.

절기: 십제十齊

절기: 환령擐嶺

에토스 백작이 근거리에 도달함과 동시에 10개의 검기를 자아냈고, 바로 그 옆에선 한 치의 오차 없는 찌르기가 쇄도했다.

충동적인 선공이었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이빨을 내미는 것과 같은 반사 작용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을 궁지에 몬 것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알파가 정확히 시간을 잰 뒤 선고했다.

[유예. 종료.]

베르덴의 마안이 현현했다. 베르덴에게서 확산한 파멸의 마력이 절기와 충돌했다.
격돌이 이어진 것도 잠시 검붉은 광채가 그들을 뒤덮었다. 어느샌가 [인테리스]를 소환한 베르덴은 그들을 지나쳤다.

쩍.

에토스 백작과 창술사의 육신에 셀 수 없이 많은 금이 새겨지더니 절기와 함께 산산조각 나서 흔적도 없이 파괴됐다.

쥬네브가 스태프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아, 아무리 극점은 아니라지만 국가급 전력이 대항도 못 하고…….’

분명히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한 지 오래였는데 떨림이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나사니엘도 식은땀을 뚝뚝 흘렸다. 영혼 자체가 겁에 질린 것 같았다.

“고, 공간 이동이 안 돼……! 좌표 자체가 잡히지 않아! 일반적인 봉인이 아니네!”
“공간의 완전 격리……? 신성에게 이런 마법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

베르덴의 신형이 사라졌다.

나사니엘이 소리쳤다.

“막아──”

마도를 개방하기도 전에 나사니엘의 상반신이 소멸했다. 파멸의 창날이 공간을 가르자 사선에 놓인 추종자들이 두 동강 났다.
운 좋게 피한 그들은 운명의 추종자답게 ‘당신’을 위해 후퇴가 아닌 전진을 택했다.

“으아아아아아아!”
“하아아압!”

37년의 노력이 집대성된 검격과 67년의 일생이 담긴 고유 마법이 겹쳐서 날아왔다. 그리고 베르덴과 시선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67년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콰지지직!

베르덴의 왼손이 37년의 심장을 관통해 머리까지 뜯어 버렸다. 소멸의 화염은 피도 남기지 않고 모든 걸 불살랐다.
역수로 쥔 [인테리스]가 베르덴을 떠나자 파멸의 전격이 궤적을 남기며 직선상에 있는 사물의 인과를 결정지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쥬네브가 비틀거렸다.

투창의 궤도에 걸쳐서 상반신이나 하반신, 또는 머리만 남은 추종자들이 보였다. 몸을 조금 더 틀자 진즉 공성 대책을 끝냈던 세르노흐 요새가 처참하게 반파되어 있었다.
그녀의 육신도 그에 못지않았다.

“끅.”

쥬네브가 왼팔과 함께 사라진 상반신의 일부를 인식한 뒤 주저앉았다. 뭔가가 몸에 들어왔다. 검붉은 전류가 끔찍한 고통을 일으켰다.
눈물이 터졌다.
듣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쥬네브가 바닥을 기며 자신을 바라보는 베르덴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애써 입가를 끌어올렸다.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해.”

운명과 생명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었다.

“선택을 존중하지.”

베르덴이 손가락으로 수직을 그렸다. 마법적인 우주에 떠 있던 화염의 위성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섬전처럼 낙하했다.

<메테오: 위성>

───────────────!

천체로 강화된 화염의 운석이 세르노흐 요새의 지상부를 초토화했다. 베르덴과 같은 땅을 밟은 이들 중 생존자는 없었다.
불타는 거대 크레이터 아래쪽에 제법 깊은 지하 공간이 있었다.

후욱.

베르덴이 그 아래로 향했다.

* * *

이데라트 연맹장, 테리웬이 호위를 받으며 지하 통로를 질주했다. 갑작스러운 습격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으나 진동이 심상치 않은 걸로 보아 안전을 도모할 수 없을 듯했다.

‘서둘러 빠져나가야 한다.’

테리웬에게는 운명이 내린 사명이 있었다.

국제 사회의 붕괴.

성소 앞에서 민간인의 살해를 주도한 그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막중한 임무가 두 번이나 주어졌으니 이는 막대한 공훈이었다.

‘이로써 나는, 나의 운명을……!’

테리웬이 자신이 꿈에 그리는 세상을 상상하던 찰나 호위들이 그를 제지했다.

“무슨 일입니까?”
“물.”

호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바닥이 물에 잠겼다.”

그제야 테리웬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방금까지 없었던 물웅덩이가 그의 발목을 적셨다. 왜인지 바다향이 코끝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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