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49

1049화 정상 회의 (4)

레온하르트는 전력은 아니었다. 신기를 해방해서 본력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신성력만 끌어냈을 뿐 여러 기적을 발현하지도 않았다.

마찬가지로 아드리안도 기예나 절기를 구사하는 일 없이 기(氣)만 운용했다.

순수한 백병전.

당연하게도 레온하르트가 체득한 검술과 체술은 아드리안에 감히 미치지 못했다.

아드리안에게는 양아버지이자 존경받는 스승이 있었다. 무결의 레이먼. 그의 고결한 인품은 물려받지 못했지만, 검술과 가르침은 온전히 터득한 걸 넘어서 승화시켰으니.

천검.

보헤미른 마탑의 실험체로 전락하기 한참 전부터 중앙 대륙 4강의 일각, 베르덴을 주군으로 삼고 여러 사선을 극복해 초월을 거머쥔 존재.

아드리안 첸버스는 이미 세계의 일좌다.

콰아앙! 콰앙! 우지지직!

가속할수록 무게는 더해진다. 신속할수록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횟수가 많아진다. 광검을 쥐고 있지 않아도 아드리안의 무투는 이미 마울러와의 격전에서 증명되었다.

쩌엉!

레온하르트의 턱이 들렸다.

‘무슨 벌이든 받을 생각이지만…… 너, 너무 많이 때리는 거 아닌가……?’

이성으로 억눌러 온 본능이 꿈틀거린다. 복부에 주먹이 꽂혔다. 기가 내부로 전달되면서 신성 갑옷의 저항력이 감쇄됐다.
그렇게 상체가 숙여질 때 레온하르트가 양손으로 아드리안의 팔을 잡았다.

“죽일, 거라면…… 그냥 죽이시죠……!”
“드라벤과 전투를 치르고 살아남았으면서 엄살이 심하군. 네 기적이라면 그까짓 상처쯤은 바로 회복할 수 있을 텐데.”
“……교황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겁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다고 들었다.”
“……!!”

가족을 언급하자 레온하르트의 손아귀가 상당히 억세졌다. 독기 서린 눈동자. 근력 자체는 아드리안의 바로 아래 수준이다.

“죽을 생각도 없으면서 태연한 척하긴.”

레온하르트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면상 정중앙을 무릎으로 찍었다. 코가 으깨지는 듯한 통증에 녀석이 주저앉았다.
어지간한 실력자 따윈 머리뼈가 아작 날 정도의 충격이었으나, 과연 초월자다운 저항력으로 코피가 흐르는 선에서 그쳤다.

“끄읍…….”

아드리안은 괜한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속도로 다리를 한 번 더 차올렸다.
콰드드득!
눈발을 가로지르며 나가떨어진 레온하르트가 뒤로 엎어졌다.

‘가, 가차 없어!’

레온하르트는 태어나서 이리 무자비하게 맞아 본 것이 처음이었다. 아드리안처럼 물리적으로 과격한 사람도 처음이었다.
신기를 해방하지 않으면 무참하게 패배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으나, 설마 이렇게 수백 대나 처맞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아드리안이 걸어온다.

“기적은 계속 안 쓸 건가?”
“의미, 없으니까요. 원한도 없는데…… 오히려 상황만 악화될 테니까요.”

레온하르트는 팔다리를 쭉 뻗은 모습으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절, 어떻게 할 거죠?”
“적당히 패고 회의장으로 끌고 갈 거다.”

그가 눈을 감는다.

“국제 관계는, 저 때문에 큰일 난…… 거죠?”
“파탄 났지.”
“아…….”
“성녀가 날뛰지 않는다면.”

아드리안이 노르드발트 쪽으로 눈길을 향했다.

“아직까지 조용한 걸 보니 주군께서 잘 수습하신 모양이군. 그러니 전쟁을 앞에 둔 국제 사회는 최악을 면한 셈이다.”
“다, 다행이네요.”
“루아스 교국 입장에선 최악이나 다름없겠지만. 교국이 자랑하는 신인이 타 세력을 공격했으니, 이를 만회하려면 얼마나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까.”
“아…….”
“어리숙한 놈.”

아드리안이 코웃음쳤다.

“루아스 교국이 인류를 위해서 공헌해 온 노력을 무시하는 인간은 없다. 옛 왕의 육신을 봉인하기 위해 당시의 교황과 성자는 목숨을 바쳤고, 도저히 없앨 수 없는 신체 부위들을 망각으로 지우기 위해 수백 년간 비밀을 지킨 것. 루아스교는 희생했고, 주군께선 이를 알고 계신다. 최악이라고 해 봤자 이번 전쟁에서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하는 게 고작이지.”
“양보라면.”
“결과적으로 너희는 실패했다. 실패했으니 한발 물러서는 게 마땅하고.”

레온하르트는 그의 말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했다. 성자가 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은 그는 지금도 이런 정치적 문제를 따라가기 버거워했다.

“주제에 생각만 많군.”
“윽!”

아드리안이 미간을 좁히며 레온하르트의 머리를 팍! 걷어찼다. 굴러가는 성자.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성검 [루엔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책임지고 싶으면 뭘 알고서 저지르든가.”
“…….”
“내 경험에 의하면 너는 처맞으면서 배워야 하는 부류다. 그러니 이 꼴이지. 고상한 놈들이 널 패면서 가르치지는 않았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가족과 같은 마을 사람들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끝에 각성한 레온하르트에게 어떤 성직자가 폭력을 휘두르며 가르침을 때려 박을까.
초월자들 사이에서 광신으로 유명한 성녀도 그런 짓은 차마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아드리안이 알 바는 아니었다. 그는 레온하르트의 비극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세상은 잔혹하고, 결국 비극을 극복하지 못하면 다른 참극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삶이므로.

철컥!

검의(劍意)만으로 광검 [실렌다르]를 검집으로 되돌리고, 손수 성검 [루엔스]를 집어 들어 레온하르트 앞에 던졌다.
눈 덮인 땅에 비스듬히 박힌 성검에서 금속음이 퍼졌다.

“따라와라.”
“…….”
“처맞기 싫으면.”

아드리안이 때리는 시늉을 한 순간 레온하르트가 움찔! 떨었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몸이 바로 반응했다.
이 정도 간격쯤은 아드리안이 순식간에 좁힐 수 있음을 감각으로 깨달은 것이다.

“……네.”

레온하르트는 여전히 몸을 치유하지 않은 상태로 일어나 성검을 회수했다. 걸음 속도를 조금 높여 당장 아드리안의 뒤를 따랐다.

“……저기.”
“왜.”
“잘못했습니다.”

하도 맞아서 답답한 가슴이 트인 걸까.
그게 아니면 코가 시큰거려서 그런 걸까.

레온하르트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오열은 아니었다. 그저 눈물 몇 방울만 흘러서 눈물 자국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드리안은 다른 데 신경이 팔려 있었다. 성검을 붙잡은 손바닥을 조용히 들여다본 그가 이내 인상을 구겼다.

‘뭐지?’

기분이 더럽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드리안과 레온하르트의 인영이 설산의 등마루에서 솟아났다.
베르덴의 말대로 성자가 다치긴 했지만 그뿐이긴 했는데…….

피부에 남은 출혈과 타박상.
볼에 남은 눈물 자국.

레온하르트는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가련한 모습이었다. 뭐랄까. 동네 양아치에게 잘못 걸려서 흠씬 두들겨 맞은 성실한 청년 같았다.
상처 하나 없는 아드리안와 바로 대비되니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벤디에와 유리온이 소곤거렸다.

“군말없이 따라오는 걸 보니 아드리안이 계도를 했나 본데. 근데 그러다 보면 한 대 정도는 맞아 주지 않나? 아예 짓밟아 버리는 게 아니라.”
“그럴 성격은 아니니까요.”
“그렇긴 해. 그러니 망나니지. 쟤가 자식 낳으면 어떻게 가르칠지 궁금하네.”
“…….”

유명한 결혼 예찬론자인 유리온이 아드리안의 자식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에스티리아의 여왕인 실리스는 눈치를 봤다.

반젤리스는 대견하기 짝이 없는 베르덴을 향해 박수를 치고 어깨동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을 애써 자제했다.

가레스는 베르덴을 미친놈 보듯이 했다.

에르세티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충동과 상황 속에서 혼란을 느꼈다.

라인델이 약간 고개를 돌렸다.
메이아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데우스는 레온하르트의 몰골을 응시하다가 이내 손끝으로 망가진 테이블을 두드렸다. 정확히 세 차례 말이다.

쿵! 쿵! 쿵!

“1시간 동안 정회를 선언한다. 전부 노르드발트 밖에서 대기하고, 의장으로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세력 간의 접촉은 엄격하게 금지하겠다. 위반 시 제재를 각오하도록.”

정상 회의는 시작하자마자 중단돼 버리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 * *

프로하스에서 회의장을 재정비하는 동안 베르덴 일행은 한적한 설산으로 대기했다. 다른 초월자들도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데우스의 단호한 선언을 무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더 이상 회의가 지연되면 국제 사회만 궁지에 몰릴 뿐이다.

회의의 주제는 전쟁 대책.

옛 왕이 전령을 보낼 때까지 약간 여유가 있어도 필요 이상으로 논의가 지체되는 것은 베르덴도 결코 바라지 않았다.

“성자의 돌발행동은 예상 밖이었지만, 성녀의 독기는 충분히 빠진 듯하더군. 이로써 협상의 우위를 확실히 점했다. 잘했다, 아드리안.”
“말씀 감사합니다, 주군.”

[참교육.]

[계산 결과, 초월자 연합이 전쟁 주도권을 가져갈 확률이 83%로 급증했습니다.]

개회 직후에 루아스 교국과의 갈등을 터뜨린 것은 바로 ‘신뢰도’ 때문이었다. 초월자들은 저항에 기원을 두고 있으니, 적어도 초월자들 중에서 배신자가 나올 확률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에서 나를 노렸던 비공식 초월자가 마음에 걸리긴 한데…… 녀석은 적극적으로 운명 편에 섰으니.’

드라벤의 기억 속에서 해당 초월자는 바르카젤과 그림멜 그롬파르의 일부가 담긴 두 개의 관을 주검의 영광에 직접 넘겼다.
드라벤처럼 이용당했다고 여기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도 많아 보였다.

‘운명의 추종자들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정보가 빈약하니 최대한 경계할 수밖에 없겠군. 그리고 그게 최선일 테고.’

운명을 따르는 초월자의 문제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었다.

이자벨라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가주하고 성녀가 진짜로 싸우는 줄 알고 얼마나 식겁했는지……. 다행히 가주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긴 했지만, 그렇게 과감해도 괜찮은 거야?”
“조금은 도박수였다. 다소 감정적이기도 했고.”
“감정…… 아.”

베르덴은 무려 신이다. 그것도 다름 아닌 악마의 신이다. 믿음을 강요하는 성녀의 태도가 거슬리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순리였다.

“신으로서의 본질이라…… 솔직히 형안으로 보지 않으면 그렇게까지 실감은 안 나긴 해. 내게 가주는 가주인걸.”

이자벨라가 바위에 앉은 베르덴을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몸이 아주 밀착됐지만 그녀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르카디옴은 어땠어? 필요한 정보는 얻었어?”

[정보 산더미.]

“그래, 무리해서라도 루아스교를 압박해서 모든 주도권을 가져와야 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들을 손에 넣었다. 데우스가 분위기를 빌미로 정회를 선언한 건, 우리끼리 정보를 공유할 시간을 제공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

아르카디옴과 데우스는 무슨 관계인가?

아드리안과 이자벨라가 경청했다. 그들은 아직 에온을 창설하기 이전처럼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에 베르덴은 결론부터 말했다.

마도 <명운>

베르덴의 손에서 검보랏빛 마력이 피어올랐다.

“드라벤 르마르크의 마도를 이어받았다.”
“……!!!”

주검의 영광, 그 수장의 마도가 발현되는 광경에 둘이 눈을 부릅떴다.

“가, 가주가 마도를 모방하려면 마도사의 기억을 전부 이해해야 하잖아…… 그럼, 설마.”
“다히트 웨스로엘 때처럼 모든 기억이 전이된 겁니까?”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르카디옴에서 조우한 데우스와 블러디아.
첫 번째 게임.
두 번째 게임
세 번째 게임.
드라벤과의 재회.
호스트와의 대담.
…….

베르덴은 심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핵심만 짚어서 알려 주었고, 알파와 베타가 양옆에서 설명을 보조했다.
태고의 모험에서 얻은 악신의 산물 등은 회의가 끝나고 보여 줄 생각이었다. 베르덴도 그게 무엇인지 연구가 필요했으므로.

아무튼.

“드라벤을 통해 죽음의 문의 정체를 알아냈고, 아니무스의 존속을 확인했다. 또한, 고대에 실전된 스크롤의 제작법을 터득했고, 루네시카를 이용한 옛 왕의 내부 분열 계획을 구상했다.”

베르덴은 한 세력의 수장으로서 말했다.

“아드리안, 이자벨라.”
“…….”
“우리가 정점이다.”

베르덴이 가장 위에 서야만 가진 정보와 자원을 최대 효율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려면 다른 세력의 반발은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베르덴은 무리하게 루아스교에게 압력을 행사했다. 교국이 한발 물러서면 다른 강대국까지도 앞에 나서지 못할 테니까.

이는 세계급 전쟁의 승패를 베르덴이 결정짓는 것이며…… 전쟁에 의한 모든 여파를, 베르덴이 가장 많이 감당하겠다는 의미였다.

희생은 자처하는 것.

아드리안과 이자벨라는 최전선에서 군을 이끄는 베르덴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건 베르덴이라고 해도 참혹한 길일 터였다.

“뭐, 자세한 전략은 논의해 봐야 알겠지만 에온은 반드시──”

베르덴이 말을 멈췄다. 아드리안이 앞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그다음으로 이자벨라가 즉시 형안을 개안했다.

후우웅.

베르덴이 가벼운 손짓만으로 안팎을 구분하는 마법진을 해제하자, 익숙한 거구의 그림자가 언덕을 올라왔다.

“서로 사이가 좋군.”
“의장이 세력 간의 접촉을 금한다고 했을 텐데.”

베르덴이 묻는다.

“무슨 일이냐, 수왕.”
“크크크큭.”

단신으로 찾아온 수왕 안티아스가 드래곤을 닮은 꼬리를 움직인다. 그러더니 몇 걸음 더 다가와 베르덴 앞에 앉았다.
체격이 압도적인 터라 바위에 앉은 베르덴보다도 눈높이가 높았다.

“아무리 관찰해도 모호했는데 계속해서 ‘엘프’와 비교해 보니 조금 알겠더군. 전과 비교해 네 존재감이 뭐가 달라졌는지.”
“…….”
“네게서 엘프에게서나 느껴질 세계수의 기운이 감지된다. 물론 단언컨대 넌 세계수가 아니다. 명백히 아니지. 하지만 성자, 교황, 성녀가…… 본인들도 알지 못하는, 베르덴, 네게서 알 수 없는 뭔가를 직감한 것 같더군.”

안티아스가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느꼈길래 위축된 걸까. 곰곰이 기억을 짚어 보니 세계수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떠올랐다.”

야생적인 미소가 베르덴에게 향한다.

“세계수는 엘프의 ‘신’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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