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48

1048화 정상 회의 (3)

노르드발트의 상층 벽면이 붕괴됐다. 한기를 품은 돌조각이 눈더미와 함께 터졌고, 그 내부에서 두 명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샤아아아아아아악.

아드리안은 각도가 예사롭지 않은 요새의 가파른 돌출부를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얼어붙은 구조물 위에 쌓인 눈이 좌우로 휘날렸다.
맑고 투명하며 차가운 공기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폐를 적셨다.

‘루아스 교국.’

벨디른 공화국에서 유골룡을 토벌했을 때 성녀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대륙 반대편에서 날린 성창이 아니었다면 아드리안이 죽을 수도 있었고, 주군께서 더 깊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성녀가 이를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빚은 빚인 셈이다.

하지만, 그 빚은 이미 갚고도 남았다.

피울음 역병이 창궐했을 당시에 에온은 완화제를 제조해 루아스교를 조력했고, 역병을 퍼뜨린 세 번째 하인을 찾아 섬멸했다.

성소 학살 사건 때는 주군이 직접 첫 번째 하인을 막아섰다.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에서 결국에 두 명의 하인을 처단했다.
옛 왕이 부활했고, 두 번째 하인도 되살아나 현재 포로로 잡혔으나, 에온이 없었다면 루아스교는 진정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리라.

이뿐이랴?

로니아 왕국과 하부 수인 부족의 국경에서 열린 죽음의 문 때문에 동대륙 남부가 사실상 초토화되고 말았다.
언데드로 인한 인명 구조는 루아스교가 나서야 할 문제이지만, 에온의 위상들이 목숨을 걸고 돌입해 최대한 많은 생존자를 지켜냈다.

루아스 교국은 염치가 있다면 대가리를 숙이고 있어야 마땅했다.
옛 왕의 신체들을 끝까지 지키지도 못했고, 지난 수백 년 동안 주검의 영광을 결국 뿌리째로 없애지도 못했으니까.

조제프 대주교나 레나 상위 주교 등 제법 괜찮은 인물이 있을지언정…… 죽음을 극복한 옛 왕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중 4할 이상은 루아스교 탓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판단할지 몰라도 아드리안은 그리 생각했다.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득!

아드리안보다 미숙하게 요새의 벽을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새로운 성자───레온하르트는 어금니를 악물고 성검에 힘을 실었다.

위상들이 힘겹게 생포한 로니아 국왕을 제멋대로 죽여 갈등의 불을 지핀 어린 장본인이 아드리안에게 분노를 집중시키고 있다.

마치 잘못된 것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이성을 거부하는 모습이다.

‘어린애가 투정 부리는 것 같군.’

애석하게도 아드리안은 소년이 울며불며 심하게 난동을 부리면 다정한 말이 아니라 완력으로 달래는 사내였다.

아드리안이 살짝 고개를 틀었다.

한쪽 벽면이 무너진 정상 회의장의 끄트머리에 선 주군께서 턱짓했다.
그 뜻은 정확히 이러했다.

압도해서 제압하라.

‘받들겠습니다.’

아드리안이 진심으로 입가를 비틀며 다시금 광검 [실렌다르]를 뽑았다.
성녀와 교황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으니, 그는 아직 경지에 적응하지 못한 신앙계 초월자에게 몸소 가르침을 새겨 줄 작정이었다.

아드리안과 레온하르트의 다리가 동시에 허공에 붕 떠올랐다.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지.”
“──────!”

레온하르트가 포효하며 성검 [루엔스]로 신성을 발현했다. 그것이 자색빛 검기와 맞물리면서 대기가 크게 격동했다.

두 초월자가 연이어 벽과 벽 사이를 밟으며 검을 충돌시켰다.

확산하는 검명.

그러나 아드리안은 목숨을 내던졌던 진연 산디르 파엔과의 생사결에서 허공을 대지처럼 짓밟는 기의 활용을 체득한 지 오래였으니.
벽의 마찰력에 의존하는 레온하르트가 따라올 수 없는 자유로움이었다.

쩍!

광검이 물 흐르듯이 성검을 옆으로 젖힌 순간에 발등이 레온하르트의 안면을 강타했다. 요새의 벽에 처박히고 튕겨 나오는 성자.
다시 아드리안의 발차기에 가격당한 그가 요새의 거리로 추락했다.

“큭……!”

가도에 깊게 흔적을 남긴 레온하르트의 입가에 선혈이 흘러내린다. 피를 손등으로 훔칠 여유도 없이 아드리안이 사선으로 쇄도했다.

여신의 신물, 그리고 전설적인 드워프가 창조한 드래곤의 검.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는 두 사람은 칼날을 맞댈 때만 요새 안에서 연회를 벌이는 국가급 전력들에게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은 한발 늦게 귓가를 파고드는 금속음을 어떻게든 뒤쫓았다.

카앙! 카아앙! 쩌엉! 카가가가가각──!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하던 레온하르트가 진각을 밟고 성검을 올려쳤다. 검광과 함께 신성한 충격파가 시야를 물들였다.
레온하르트가 직후에 옆쪽을 향해서 지면을 박차 수평을 베었다.

카각, 카가각……!

술자리가 벌어지던 야외 테이블의 위에서 광검과 성검이 힘을 겨루었다.

온몸이 온전한 아드리안과 얼굴에 타박상이 남은 레온하르트, 두 초월자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보게 된 전사들이 얼어붙었다.

북부의 여전사는 술이 잔 밖으로 흐르는 줄도 모르고 계속 술을 부었다.

“어머나…….”

여전사를 누님으로 부르던 사내는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술잔을 높이 들었다. 이성이 마비되니 몸이 익힌 습관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사내는 워낙 음주를 즐겼기에 습관적으로 술을 권하고 말았다.

“하, 한잔하시겠습니까?”
“흠.”

아드리안이 성검과 맞닿아 있는 광검을 순식간에 역수로 다잡았다. 그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이야말로 속도의 기교.
아차 하는 사이에 레온하르트의 턱이 주먹에 맞아 옆으로 돌아갔다.

쿵.

레온하르트가 찰나 무게중심을 잃고 혹한에 젖은 바닥을 짚었다.

벌컥, 벌컥.

아드리안은 즉시 사내가 권한 술잔을 그 자리에서 들이켰다. 그러곤 술이 찰랑거리는 여전사의 술잔을 레온하르트에게 내밀었다.

“목이나 축여라.”
“…….”
“아, 애새끼라서 마실 줄 모르겠군.”

아드리안은 한껏 조소하며 보란 듯이 술잔을 던졌다.

팅!

차가운 술이 레온하르트의 머리를 적신다.

애새끼.

레온하르트는 자신이 풋내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른 초월자들이 자신을 한 명의 초월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해했다.
인정한다.
무지한 농부에게 성검이 주어졌다고 해서 근본이 달라질까. 그는 지금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농부에 불과하다.

교황의 가르침.
성녀의 가르침.
추기경의 가르침.
대주교의 가르침.
주교의 가르침.
성직자의 가르침.
…….

레온하르트는 성자로서, 또 루아스교를 대표하는 성직자로서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공부했다. 교리를 깊이 파고들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이따금 회의감이 들었다.

성자라니?

맞지 않은 의복을 입은 느낌이었다. 자신은 그저 가족과 이웃을 지키고 싶은 것뿐인데, 너무도 과분한 힘과 지위였다.

“하.”

레온하르트가 실소하며 몸을 일으킨다. 달라진 기류에 주변인들이 멈칫했다. 그가 머리카락 끝에 맺힌 술방울을 바라봤다.
잡념이 흩어진다.
맞아서 그런 걸까. 복잡한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듯했다.

레온하르트가 성검을 늘어뜨린 채로 걸어오더니 여전사의 술병을 입에 들이부었다. 아무리 독한 술도 초월자를 취하게 만들 수 없다.

벌컥, 벌컥, 벌컥!

텅 빈 술병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저도 술 마실 줄 압니다.”
“그래서.”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요.”

레온하르트는 잡스러운 생각을 어떻게든 떨치기 위해 분노를 행동에 옮겼다. 여전히 감정은 타오르고 있으나 보다시피 이번에는 아까보다 다분히 이성적인 선택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다시 붙죠.”
“애새끼라는 말은 취소하지.”

아드리안이 상당히 높은 시야로 레온하르트를 내려다봤다. 제법 어른스럽다. 그리고 아드리안은 애새끼는 완력으로 달래고, 어른은 힘으로 줘 패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건방진 새끼.”
“이……!”

아드리안의 눈앞으로 성스러운 빛이 정확히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치듯 지나친다.
일격을 피한 아드리안의 앞차기가 레온하르트의 명치에 작렬했다.

* * *

쩌어어어엉!

아드리안과 레온하르트의 존재감이 노르드발트 요새의 성벽을 넘었다.
다른 때였다면 진즉에 마스터나 리반데일 대공이 나서서 말리고도 남았겠으나, 이전에 없던 방해자가 그들의 개입을 막고 있었다.

“나설 생각 마라.”

베르덴은 밖이 훤히 보이는, 정상 회의장 균열의 경계에 서 있다. 누구도 나가는 걸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중앙에 자리한 채 두 초월자의 급작스러운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런 위압만으로 계속해서 억제하기에는 정상에 바로 선 초월자는 너무나도 독선적이었고, 또 강인했다.

“……비키세요, 베르덴.”

에르세티아가 성갑과 성창을 소환하고는 그에게 창날을 겨누었다. 레온하르트보다 월등히 강력하고 막대한 신성력이 발현됐다.
그녀는 어느샌가 베르덴을 신성이 아닌 본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더는, 좌시할 수 없습니다.”
“웃기는군.”

베르덴이 헛웃음을 입가에 띠었다.

“줄곧 방관만 한 주제에.”
“……!”

베르덴이 성창을 당겼다. 베르덴에게서 느껴지는 기이한 기운 탓에 반응이 늦어진 에르세티아가 순간 끌려왔다.
서로의 호흡이 닿는 거리에서 벽안이 신성으로 물든 눈동자를 직시했다.

“너희는 지금까지 뭘 했지?”
“저희는…….”
“옛 왕이 섭리자의 봉인에서 깨어나고, 대륙에 죽음의 문들이 열리고, 로니아 왕국이 붕괴할 때 뭘 했냐고 물었다.”

베르덴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성직자들의 심중을 찔렀다.

“에르세티아, 너는 은거했지.”
“…….”
“로마누스, 넌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성소에서 회복을 도모했고. 루아스의 광휘가 닿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비극은 다른 세력들이 대처했다. 그 과정에서 교국이, 교국 스스로 정한 의무를 충분히 이행했다고 생각하나?”

에르세티아는 부족 출신을 전혀 알 수 없는 수인, 바르카젤과 혈투를 벌이고 두 번째 신열을 앓은 탓에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로마누스는 드라벤과의 혈전 도중 레온하르트를 지키기 위해 성서를 몸에서 멀리 떼어냈다. 그 때문에 치명상에 즉각 대응하지 못했고, 한동안 몸을 가누지 못했다.

사유가 있었다.

루아스교의 신인들이 세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까닭은 분명히 있었다.

“……이유가, 있었.”
“변명할 처지인가? 그런 식으로 책임에서 회피할 거라면 세계 종교라는 위명도, 잘난 신앙심도 버려라. 아까우니까.”

잠시 수그러들었던 에르세티아의 광기가 고개를 쳐들었다.
콱!
그녀가 베르덴의 멱살을 잡았다.

“입조심해.”
“닥치고 들어.”

베르덴이 당장 잿빛의 건틀릿으로 에르세티아의 하관을 붙잡았다. 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이 막힌 그녀가 억압을 떨쳐 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당혹감에 젖었다.

에르세티아가 얼마나 난폭한 인물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숨을 삼켰다.
제라클 황제와 안티아스가 소란 때문에 아무도 손대지 않은 프로하스산 특제 딸기 쿠키를 조용히 깨물었다.

“성자가 저리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건 전적으로 너희들 탓이다. 제대로 가르칠 거면 가르침을 소화할 때까지 철저하게 보호하든가. 심신의 준비가 되지 않은 녀석에게 감당 못할 책임과 중임을 맡기니 이 사달이 나는 거다.”
“…….”
“루아스 교국은 에온의 계명 집행을 방해했고, 공식 석상에서 루아스교의 신인이 에온의 초월자를 선제공격했다.”

베르덴의 발밑에서 균열이 퍼졌다.

“누가 보면 선전포고로 알겠군.”

베르덴의 광기가 에르세티아의 광신(狂信)을 억누른다.
그것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성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에온과 교국의 전쟁은 누구도 상상한 적이 없었으므로.

‘현대의 초월자들 중에서 가장 광기에 사로잡힌 자는 성녀라고 생각했는데…….’

벤디에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르덴이 가장 미쳤구나.’

그래도 에르세티아가 이대로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에르세티아의 눈빛이 반항심으로 깊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 이상은 선을 넘었기에 벤디에가 개입하려는 순간이었다.

“……신성의 말이 맞습니다.”

로마누스가 조심스럽게 베르덴과 에르세티아의 팔을 눌러, 서로 잡고 있던 멱살과 하관을 떼어놓게 만들었다.
로마누스는 겨우 베르덴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존재감에 절반쯤 적응해, 침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교황…….”
“여기서부터는 제가 맡겠습니다, 성녀.”

로마누스는 반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로 에르세티아를 천천히 밀어내고는 스스로 베르덴과 마주 섰다.

“신성.”
“말해라.”
“저희가 어떻게 책임지면 되겠습니까? 어떻게 책임지면 저들의 싸움을 멈추겠습니까?”

과정은 예상과 많이 달랐지만 베르덴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루아스 교국에서 협상의 여지가 있는 이는 교황 로마누스뿐이다.
그러나 당장 속내를 드러낼 생각은 없다. 지금은 뜸을 들일 시간이다.

베르덴이 말했다.

“아드리안이 레온하르트를 데려올 거다. 다치긴 하겠지만 그뿐이다. 오히려 레온하르트에겐 쌓아 온 감정을 한껏 쏟아 내게 될 기회이니 아까와 같은 충동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겠지.”

베르덴이 요새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협상은 그다음이다.”

* * *

빠르다.
심각하게.

쩍!

레온하르트는 인지하지 못한 일격에 설산에서 굴러떨어졌다. 곧장 일어나서 신성 검기로 맞섰으나, 아드리안의 검속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미처 막아내지 못한 십수 개의 검기가 살갗만을 베고 지나갔다.

‘이게, 나와 진정한 초월자의 차이……!’

불식간에 성검이 튕겨 나갔다. 육체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든 충격에 숨을 토해내며 성검을 놓치고 말았다.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간극.

레온하르트는 맨손이 되었다. 동시에 옆차기에 직격당했다. 그대로 밀려난 그의 무릎이 접히며 손이 빙하에 닿았다.

“쿨럭, 쿨럭…….”

입 안쪽이 찢어져 침에 피가 섞였다.

레온하르트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에 비해 아드리안은 멀쩡했다. 성검은 단 한 번도 아드리안의 몸에 닿지 못했다.

“……졌습니다.”

레온하르트는 이미 분노가 다 빠졌기에 충동도 사라졌다. 그는 승패에 승복하며 죄인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정상 회의에서 벌인 미친 짓, 어떤 대가든 달게 받을 생각이었다.

“하나 가르쳐 주지.”

아드리안이 광검을 땅에 꽂았다.

“진다고 끝이 아니다.”
“……예?”

아드리안의 주먹이 레온하르트의 얼굴을 다시금 후려쳤다.

누가 멋대로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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