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69

1069화 군단들 (1)

루네시카와 다른 감옥에 갇힌 그림멜이 그하룬에게 안면을 제대로 폭행당해 코뼈가 주저앉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대단한 일도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돈, 혼돈이라.”

벤디에와 유리온은 서로 마주 앉아 베르덴의 말을 곱씹었다. 이게 더 중요했다. 둘은 베르덴이 남긴 충고를 해석하고 있었다.

“베르덴은 초월자의 본질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 같더군. 외력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어도, 멈추지 않고 이상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항로를 모색하는 광기, 그 저항력…… 베르덴은 그걸 강조하고 있었어.”
“이상은 불변하기에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배반하지 않는다. 초월자 연합의 제안 시점과 외적이란 존재에 대해 듣고 짐작은 했습니다만, 과연 저희의 추측이 사실이었던 모양이군요.”

성소 학살 사건을 일으킨 전 이데라트 연맹장이 몸담은 인류의 배신자들. 베르덴은 그들의 배후를 외적이라고 가칭했다.

“초월자와 외적 사이에는 ‘본질적인’ 적대 관계가 옛날부터 형성된 듯합니다.”
“타고난 적대감인가. 마주친 순간 상대의 존재를 말살하고 싶은 수준의, 이르자면 종족 자체가 서로의 천적인 것 같은.”
“본질은 태생적인 거니까요.”
“아, 빌어먹을. 하나같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투성이구만.”

유리온이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현대의 초월자 개념은 오랜 인류사에 처음부터 자리 잡지 않았고…… 그중에서 마법계 초월자는 위계 마법 체계가 확립되고 나서야 출현. 영창 마법 시대의 초월자에 대한 기록은 전무. 무엇보다 초월자 개념은 인간만의 전유물. 이렇게 된 이상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유리온은 애써 우연 하나하나에 모종의 의도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편집증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매사에 안일한 사내도 아니었다.

“정황상 누군가가 인류에 개입해 초월자 개념을 심은 것 같다, 적어도 베르덴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해. 어쩌면 물증까지 있을지도 몰라.”
“그가 최초의 마탑주인 까닭이군요.”
“그렇지.”

베르덴은 위계 마법의 뿌리인 현 최초의 마탑의 주인이다. 아직 최초의 마탑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전설의 엘릭서가 증명을 대신했다.

하물며 베르덴의 말과 행동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무게가 있다. 그것은 과거의 행적이 쌓아 올린 위상의 탑이기도 했다.

그러므로……진정 마법계 초월자의 기원과 위계 마법이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면 베르덴이 모를 리 없을 터.

“베르덴이 세계 회의에서 연설하듯이 말했던 거 기억하지? 그 예언이란 거.”
“물론 기억합니다.”

세계 회의에서나 정상 회의에서나 그가 작정하고 내놓은 발언들은 모조리 충격이라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한창 피울음 역병이 확산할 때, 나는 위계 마법 체계와 최초의 마탑을 창시한 네 명의 키론다르 그 필두인 1대 최초의 마탑주 ‘텔로르 크렌드로스’의 의지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먼 과거 시대의 존재들과 조우했지.

───드래곤, 죽음의 군주, 그리고 바다.

───이 셋은 언젠가 대륙에 계측 불가한 영향을 끼칠 미래의 위협들이다. 전과는 달리, 지금의 너희들에겐 대부분 그리 생소하지도 않을 테지.

세계 회의에서는 예언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대두되었다. 전 이데라트 연맹장인 테리웬과 감정사, 레논 버나드의 입에서도 말이다.
심지어 제라클 황제 또한 드래곤에 관한 예언을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예언은 빙산의 일각이었던 모양이야. 베르덴이 최초의 마탑에서 초월자에 관련된 알 수 없는 비밀을 알게 된 것은 확실해 보여. 물론 누군가가 초월자를 인위적으로 구축했다는 가설 자체는 솔직히 말해 너무 터무니없지만.”
“그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외적과 대립하는 어떤 세력이겠죠.”
“뭔가 알아선 안 되는 걸 알게 된 기분이야. 에휴, 다른 녀석이 지껄인 거라면 그냥 헛소리로 치부했을 텐데.”

인물을 연구하는 것도 엄연한 학문.

하이랜디아에서는 진즉 베르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는 그 초월자 중에서도 완연한 두각을 드러낸 존재이니.

유리온은 그들이 만든 모든 보고서를 빠짐없이 탐독했고, 그래서 베르덴 특유의 비범함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유리온이 생각이 막힌 듯 소파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베르덴이 마지막으로 언급한 ‘그나마 등을 맡길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각성한 자들뿐이다’라는 조언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루아스교의 신인들만을 암시한 건 아닌 느낌인데.”
“제가 생각한 바는 이렇습니다.”

벤디에가 찻잔을 잠시도 내려놓지 않고 눈빛을 가라앉혔다.

“무투계, 마법계, 신앙계. 초월자의 각성 방식은 이 셋과는 별개로 보다 더 근본적인 갈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 흥미로운 견해잖아. 예를 들면?”
“스스로 각성했다는 것은 스스로 각성하지 않은 초월자도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렇다면 만약 각성 과정에서 당사자가 모르는 타의가 개입됐다면 그건 무엇으로 분류해야 할까요.”

벤디에는 과감하게 생각의 방위를 넓혔다.

“과연 저희의 각성은 순수할까요?”

각성에 관여했다는 추측은 고유한 이상의 형성에 손을 댔을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벤디에는 일단 그게 사실이라고 가정했다.

‘구역질이…….’

쨍그랑!

찻잔이 터졌다.
찻물이 손을 적셨다.

벤디에는 차갑게 식어 버린 눈으로 조각난 파편을 내려다봤다. 그녀와 오랜 친분을 자랑하는 유리온도 처음 보는 기색이었다.
짙은 감정의 표출.
그건 감히 누구도 사그라뜨릴 수 없는 분노였고 혐오였다.

유리온은 슬쩍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니까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했든 간에 각성 과정에서 외부 개입이 들어간 순간 스스로 각성하지 못한 초월자다?”
“그것을 온전히 자신만의 각성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우니까요.”
“그럼 베르덴은 스스로 각성한 초월자라고 봐야 하나……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원. 어쨌든 베르덴은 적아의 경계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초월자는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고 본 거군.”

유리온은 문득 팔에 난 흉터를 문질렀다. 이것은 하이랜디아에 침입한 비공식 초월자가 남긴 단검의 흔적이었다.

“그 단검 쓰는 녀석은 확실히 외적의 편을 든 것 같은데. 옛 왕을 부활시키는 데 기여했으니. 그놈은 예외인 건가.”
“알다시피 베르덴은 모든 초월자를 신뢰하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라는 여지를 두어 저희에게 판단을 맡겼죠.”
“타인에게 등을 맡겨야 하는 도박을 해야 한다면 초월자들에게 걸어라…… 과연, 이게 가장 그럴 듯한 해석이겠어.”

아무래도 초월자 연합은 생각보다 더 중요한 세력이 될 듯하다.

“아, 그러고 보니 테아렐이 정상 회의에서 저항의 씨앗, 씨앗 거리던데.”
“저한테도 그러더군요.”
“베르덴이 말한 저항하고 테아렐이 재잘거리던 저항이란 단어가 노골적으로 겹치지 않아? 게다가 정상 회의에서 둘이 같이 오기도 했고 말이야.”

둘이 알고 있는 흑해 테아렐은 다소 괴짜스러운 면모가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돌아다니며 씨앗을 읊조리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모습은 그야말로 광기였다.

“초월자, 외적, 저항, 씨앗, 운명, 영혼, 최초의 마탑…… 수수께끼는 좋아하지만 그림이 안 잡히니 영 답답하네.”

베르덴의 어록과 행적에 관련된 단언들을 나열한 유리온이 숨을 털어 냈다. 냉수를 들이켜도 갑갑함은 가시지 않았다.

“베르덴도 생각이 있어서 정보를 제한적으로만 밝히는 걸 테니 캐물을 수도 없고.”
“그에 대한 가설이 하나 있습니다.”
“응?”
“어쩌면 정보 제한은 강제적일지도 모릅니다.”

벤디에가 그를 직시했다.

“당신도 아는 방법으로요.”
“……!”

유리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심 어린 경악이었다.

“설마, 정보 자체가 금약(禁約)에 얽혀 있다고?”

그는 언어와 기를 매개체로 삼아 세계와 계약을 맺어 힘을 발휘한다. 그 기예는 역대 무투계 초월자와 비교해도 고유성이 가장 짙었다.

서약자.

유리온은 각성과 동시에 초월기를 깨달았을 당시 세상과 맺는 절대적인 계약을 인지했다. 그는 그러한 개념을 금약이라고 명명했다.
유리온의 초월기를 아는 사람은 벤디에를 포함해 여덟 명도 되지 않는다.

“확실히…… 난 그 금약을 쓰는 방법을 체득했을 뿐이다. 금약의 개념은 원래부터 존재해 왔으니, 과거 누군가가 다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말이 안 돼. 그 정도로 오랫동안, 심지어 세계 단위로 정보를 금지하는 건 불가능해.”
“세계 회의에서 베르덴이 그랬습니다. 저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고.”

벤디에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그 세상에서는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할까요.”

이상을 위한 저항.
직관으로 이어진 가설.
가설을 향한 단정.

초월자들은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 * *

유리온과 벤디에에게는 단서를 남겼다. 가설을 통해 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되 아무리 파헤쳐도 금기에 저촉되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모든 걸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 특히나 고집이 강한 초월자들은 더더욱.’

이그나시아에게 주요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녀는 금기를 인지하자마자 당장 금기 너머로 뛰쳐나갈지도 몰랐다.

실마리를 흩뿌려 놓고.
스스로 깨달아 인지하게 만든다.

일종의 시간 조절인 셈이다.

눈앞에 닥친 위험을 해결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위험에 시선을 빼앗기게 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할 최악의 낭비이므로.

베르덴은 언젠가 때가 되면 정보에 대한 금기가 사라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
혹은 그가 직접 해제하거나…….

어쨌든.

베르덴은 본래 그하룬과 함께 황금의 비고에서 가져온 세 가지 보물을 보려고 했는데, 갑작스러운 연락에 일정을 바꿔야만 했다.

긴급 소식은 두 가지였다.

그 둘을 한번에 처리하기 위해서 베르덴은 주인 없는 땅으로 향했다.

“……선배.”

대전당에 있어야 할 유니아, 카인, 에네트의 눈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들이 가리킨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인이 창문 너머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도시를 구경하고 있었다.

“새벽은 되어야 정신을 차릴 줄 알았는데.”
“영혼은 새벽이 되어야 안착할 겁니다. 제 의식이 먼저 깨어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죠.”

탁.

베르덴이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었음을 감지한 여인───새벽녘의 기사, 엘로리스가 등을 돌리고는 기도를 올리듯 예를 갖추었다.

“샛별의 사도가 악마의 신을 배알합니다.”
“다시 만나서 반갑군, 엘로리스.”

태고의 모험극에서 맺어진 인연이 현실에서 다시 이어졌다.

“상황은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그링 아르카넘]이라는 기물에 제 영혼이 보관되었고. 과거 제가 가공한 악신의 잔재에, 제 영혼이 들어갔다는 것 전부. 깨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각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엘로리스는 본능적으로 부활의 배경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영혼에 각인된 기억이었다.

“다른 분들은 악마의 신께서 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베르덴이라고 불러라.”
“예, 베르덴 님. 그래서 일단 신에 관련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악마도 마찬가지입니다.”
“휼륭한 판단이었다.”

다행히 엘로리스는 베르덴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눈치가 빨랐다. 베르덴이 악마의 신이라는 게 에온에 알려지면 혼란스러워진다.

후웅.

베르덴이 아공간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

하나는 샛별의 신물인 [새벽의 별빛]이었고, 다른 하나는 엘로리스가 생전에 사용하던 [새벽의 검]이었다.

“일단 전 주인이 갖고 있는 편이 좋겠지.”
“혹시 적합자가 있으면 이 둘을 임의로 넘겨도 되겠습니까?”
“……뭔가 느끼는 게 있나?”
“이렇게 부활하고 나니 달라진 게 많습니다.”

엘로리스는 손바닥을 위로 향했다. 이내 잿빛이 명멸했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순수한 구체가 그의 벽안에 반사됐다.
그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어색한 듯 다른 손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저 엘로리스…… 베르덴 님의 신관이 된 것 같습니다.”

엘로리스가 베르덴의 신성력을 품었다.

“그런데 샛별의 신앙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베르덴의 신성력 위로 샛별의 신성력이 안개처럼 아른거렸다.

“본의 아니게 복합 신앙자가 됐습니다만.”
“…….”
“어떻게 하죠……?”

베르덴은 이 변화에 대한 아주 심도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잠시 미루어야 마땅했다.

“일단 나가자.”
“네, 베르덴 님.”

베르덴은 엘로리스와 함께 방을 나섰다. 밖에서 위상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옛 왕의 전령부터 만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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