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1화 관점
이페아카른의 답변은 베르덴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구두 계약은 그렇게 성립되었다.
사아아아아…….
대화의 목적을 달성한 이페아카른의 분체는 핏물도 남기지 않고 흩어져 자기가 존재했었던 흔적을 말끔히 없앴다.
과연 은밀한 동맹이 성사될지는 기생의 대악마에게 달려 있다.
협력하게 됐으니 베르덴은 가레스의 배후를 루아스 교국에게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조했다.
다만 이페아카른이 성실하게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협력은 동맹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들의 관계는 무(無)로 돌아간다.
‘마경 토벌군단은 최정예로 구성했음에도 지역이 지역인지라 마음을 놓을 수 없었는데. 이페아카른의 공작만은 당장 배제해도 되겠어.’
마경의 위험들 중에서 대악마를 제외한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계약이었다.
이페아카른은 베르덴 자신에게 예상보다도 관심이 깊은 듯하니, 이 시점에서 뒤통수를 칠 이유가 사실상 없었다.
베르덴이 가레스를 곁눈질했다.
‘그리고…… 녀석이 계약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이해했다. 동반자의 개념이 아니라 철저하게 수족으로 부리는군.’
운명이 거론된 이상 결코 부외자에게 공개할 만한 대담이 아니었으나, 이페아카른은 가레스의 귀를 닫지 않았다.
가레스 시릴리아드라는 초월자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존재감의 표출이었다.
악마와의 계약은 계약자만이 아니라 악마에게도 그 규칙이 강제될 정도로 강력하다.
그것은 악마만이 가진 종족적 특성이었다.
베르덴은 악마의 탄생 배경은 이해했으나, 탄생의 원리까지는 알지 못한다. 정확히는 금기 탓에, 어쩌면 답에 도달할 수 있는 단서들을 얻고도 억지로 사고를 멈춰 둔 상태였다.
어째서 악마가 그런 힘을 가졌는지는 내막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겠지만…….
‘가레스는 기생의 대악마와 어떤 계약을 맺었길래 주구 노릇을 하는 걸까.’
초월자가 무릎을 꿇고 힘 앞에 굴복했을 가능성은 단언컨대 없다.
가레스가 이페아카른에게 휘둘리는 상황은 본인이 자처했기 때문일 터.
어떤 달콤한 대가를 제시했길래 그 마울러가 이런 취급까지 감내하며 그 계약을 이행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뭐…… 계약 내용은 당연히 극비일 테니 지금으로선 알아낼 방법은 없다. 진정으로 이페아카른과의 동맹이 실현돼야 그나마 넘볼 수 있으리라.
‘어쨌든 간에 대악마들은 ‘당신’과 초대 마도왕이 추구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을 터.’
베르덴의 신적 본질을 제외하더라도 그들을 가까이해야 한다. 그것 또한 금기로 제한된 비밀들을 캐낼 수 있는 루트(route) 중 하나이리라.
‘그런데 무슨 선물을 보내겠다는 거지?’
필시 빈말은 아닐 텐데.
기생의 대악마는 모략에 능하기에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판단은 그 선물이 올 때까지 미룰 수밖에.
후웅.
공간 폐쇄를 해제했다.
베르덴은 가레스와 함께 천막을 나섰다. 가레스는 별말이 없었다. 손에 난 상처를 붕대로 강하게 압박한 녀석은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는지 침을 뱉고는 자리를 떠났다.
“다음은 내 차례군.”
말했던 대로 천막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라인델이 앞장섰다.
“자리를 옮기지.”
“그러시죠.”
최초의 마탑주와 다크워튼 마탑주는 <비행>으로 한창 재정비 중인 주둔지를 벗어났다. 시간은 낮이나, 저 하늘은 아직 전투의 여파로 빛이 희미한 우중충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높게 목소리를 내는 바람결.
휘오오오오.
안티아스는 대충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지상을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이 베르덴에게 머물렀다가 이내 가레스 쪽으로 향했다.
“둘이 독대라…….”
안티아스가 수왕다운 턱을 쓰다듬으며 콧잔등을 씰룩였다.
끈적한 불쾌감, 그 낯선 이취(異臭).
아칸드에게 짓밟힌 가레스에게서 일순간 이질적인 분위기를 감지했다.
특히 후각이 강하게 반응했다.
지금은 그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 착각인가 싶을 정도였지만, 수왕 안티아스는 무엇보다 자신의 직감을 신뢰했다.
본능이 경험에서 기억을 끄집어냈다.
가레스가 내뿜었던 것과는 크게 달랐지만, 그와 본질이 유사한 듯한 이형종을 예전에 우연히 마주쳐 죽인 적이 있었다.
악마, 그리고 악마 숭배자.
“무저갱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왔나 했더니. 제대로 된 이유가 있었군.”
안티아스가 촘촘한 이빨을 훤히 드러냈다.
루아스교가 빛의 업적을 한데 모아 편찬한 책에서 묘사된 존재들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루아스교 최악의 숙적들.
‘대악마의 계약자.’
일반적인 고위 악마 따위로는 가레스의 성에 차지 않을 테니, 그 유명한 3대 대악마 중 하나가 가레스의 배후에 있음이 자명했다.
그리고, 베르덴은 그걸 알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 알았든, 전에 알았든 간에 대악마의 존재를 함구하고 있다. 이를 루아스교가 알아차리면 대참사가 날 터인데.
옛 왕과의 전투는 별개로, 이렇게 흥미로운 상황은 처음이었다.
관망할까.
개입할까.
“크하하하하.”
안티아스는 전쟁이 끝나고도 삶이 지루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커다란 손으로 눈가를 감싸고 한동안 어깨를 들썩이면서 마치 세계와 한 몸이 된 듯 웃음을 누렸다.
* * *
쿠르르릉…….
회색으로 얼룩진 구름이 울고 있다.
비가 내릴 듯하다.
“생태가 재생하는 광경. 아무리 고찰해도 그것을 현대의 마법으로 보기는 어렵더군.”
라인델이 상반신을 조금 숙여 싱그러운 풀잎을 톡 건드렸다. 그들은 옛 왕과 수왕이 파괴하고, 베르덴이 재생시킨 그라세림 숲에 와 있었다.
“엘프의 마법인가?”
엘프는 마력회로 없이 마력을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신체를 갖고 있다. 마법사의 궁극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엘프야말로 마법사였다.
대자연의 주민.
세계수를 숭배하는 종족.
정령의 친구.
라인델은 생태의 재구성을 엘프의 고유 마법이라고 단정했다.
베르덴은 지극히 순수한 마력을 갖고 있는 데다가 배타적인 엘프들에게 형제로 인정받아 동맹을 맺기도 했으니…….
그와 엘프 사이에 긴밀한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신의 권능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라인델의 판단은 일리가 있는 오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또한 세계수의 권능에 대해 베르덴도 잘 모르기에 부정하지 않았다.
찰나에 이루어진 베르덴과 ‘당신’의 조우와 대화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칸드만은 인지했을지도 몰라도 그저 감각으로 느낀 게 고작이리라.
“그렇습니다. 이성이 아닌 마력이 행한 신비이기에 저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만. 아마 마력의 순수성에 의한 자연적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수성으로 대자연을 압도하는 마력은 마법계에 없었으니 그야말로 신비로군. 그래, 8위계란 본디 그런 경지지.”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은 손길이 나뭇잎에서 멀어진다.
라인델이 허리를 폈다.
단순히 자연의 이적(異跡)에 대해 궁금했기 때문에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 아닐 터. 베르덴은 조용히 귀를 열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베르덴, 너는 ‘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끝이라면…….”
“생명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필연적 대립쌍은 세상을 유지하고 변화시키는 자연의 섭리지.”
라인델은 서로 스치며 소리를 내는 잎사귀들로 가득한 숲을 응시했다.
“경지도 이와 같다. 수명의 문제든, 재능이 부족하든 모든 개개인은 끝없이 강해지지 못하고 언젠가 한계에 봉착하고 말지. 더 나아갈 수 없는 극한(極限). 인간이 이를 극점의 경지라 칭한다면, 초월자는 8위계급이 그 극한일 것이다.”
초월자의 극점이 8위계…… 그런 관점은 세간에서 들은 바 없다. 8위계의 벽을 극복한 존재를 대륙에서 모르는 사람이 사실상 없으니까.
베르덴은 그의 견해를 경청하며 반문했다.
“초대 마도왕은 9위계가 아닙니까?”
“9위계가 명확히 실존한다고 생각하나?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누구도 닿지 못한 미답의 경지를. 9위계라는 미지의 경지가 알려진 건, 초대 마도왕의 격을 목도한 초월자들의 증언이 그 시작이었다.”
라인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랫동안 8위계에 머물렀지만, 나는 이 이상 격이 한 단계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군. 그 위는 상상을 벗어났다. 아마 이 경계를 넘으려면 초월자도 넘어선 무언가가 되어야겠지.”
모든 개체는 저마다의 궁극이 있다.
종족 또한 그렇다.
라인델은 초월자 자체가 생명체가 다다를 수 있는 궁극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초월 이상은 생과 사의 개념으로 전부 설명할 수 없는 특정 존재를 의미했다.
“신.”
라인델은 오랜 세월 숙고를 거듭한 끝에 그 존재를 신이라고 규정했다.
“그 초탈(超脫)의 경지가 있다면 신이라고 칭해도 좋겠지. 공교롭게도 현대에서 초대 마도왕은 마법의 신으로도 칭송받기도 하니. 어디까지나 나의 사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르덴은 내심 찬사를 보냈다.
아직 가설에 불과하나, 라인델은 논리적으로 다른 경지를 인지했다.
‘당신’과 초대 마도왕은 이상을 좇는 진정한 신, 즉 그들은 초월자의 고유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초월자의 다음이라고 봐도 이상하지는 않으리라.
베르덴은 경지는 부족하지만 진정한 신으로서 그리 생각했다.
“하나, 그조차도 결국 끝이 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렇다면 생과 사를 끊임없이 순환하며 존재하는 광활한 대륙과 바다는 어떨까. 과연 세상은 영속하는가?”
라인델이 뒤를 돌아보았다.
“마법도시 비렌테에서의 마법계 총회의에서 나는 섭리자에게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고, 죽음은 죽음일 뿐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너는 그에게 무한이 존재하냐고 물었다.”
“예, 그리고 섭리자로부터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대답을 받았죠.”
“그 섭리자도 고민해서 내놓은 답이었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묻겠다.”
죽음에 통달한 초월자가 자신보다 훨씬 어린 신을 마주했다.
“베르덴, 무한은 존재하나?”
여태까지 베르덴이 던지기만 했던 질문이 그에게 돌아왔다.
베르덴은 섭리자뿐만이 아니라 침묵의 사막에서 재회한 초대 마도왕의 분신인 관리자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한 바 있었다.
───관리자, 무한은 존재합니까?
───적어도. 마음은 무한하되 유한하다.
그리고.
수왕 안티아스는 옛 왕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모든 자원은 유한하다.
무한의 실존에 대해 누군가는 부정하고, 누군가는 모호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중에서 무한이 존재한다고 확답하는 지성체는 없었다.
이에 베르덴은 단언했다.
“예, 무한은 존재합니다.”
베르덴의 심장에 깃든, 10대 마탑의 동력원이 가진 끝없는 마력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하나, 그는 무한의 개념을 의심하지 않았다.
유한한 사고에 갇혀 있었다면 베르덴은 실험체로서 죽었을 것이다.
“8위계 극점론, 신의 이론. 그럴듯하지만 결국에는 사유에서 파생된 것이다. 내가…… 나의 상한을 규정한 데서 생겨난 산물인 셈이지.”
마침 바람이 약해질 즈음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베르덴.”
“예.”
“너만큼은 미래의 한계를 정해 두지 마라.”
라인델 또한 단호히 말했다.
“어떤 난관에 직면할지라도, 반드시.”
순수하고도 거대한 마력이 생태계를 재구성할 때 안티아스와 베르덴 스스로는 놀라워하거나 나름대로 의문을 가질 뿐이었지만…… 라인델만은 그들과 다른 감상을 품었다.
그것은 전례 없는 공포였다.
생명의 결말을 이해했기에 두려움을 잊어버린 그가 죽음을 아득히 능가하는 미지를 보았다.
죽음은 수단, 그 자체라는 금기를 따위로 치부할 수 있는───절대적인 금기를.
* * *
시작과 끝은 필연적인 섭리이나, 시작했다고 해서 누구나 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을 견디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베르덴은 진정한 신을 자처했다.
과연 ‘당신’과 태초의 마법사의 과거와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사상은 고뇌한 끝에 스스로 찾아낸 결론이며, 그들의 선택은 세상을 양분하고 있으므로.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겠다면 전부 버려야 한다. 아니면 전부 갖거나.”
섭리자───데우스 위덴이 나지막이 중얼거리곤 백색의 스태프를 기울였다. 그를 따라 백색의 로브를 두른 레프라기움 마탑의 마법사들이 부대별로 진형을 갖추었다.
무수한 언데드가 듬성듬성 능선을 채웠다.
데우스의 지휘 아래 토벌군단조차 아닌, 본래 마렌 왕국의 사문 포위망만 담당하는 병력이 긴장과 두려움 속에 전진했다.
그들은 전투원보다는 사실상 공성 병기를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무력 서열 1위.
종합 서열 1위.
신비주의 때문에 알려진 게 많지 않은 레프라기움 마탑이 전선에 나섰다. 남은 여덟 개의 사문 중 하나로 향하는 마렌 왕국 전선의 실질적인 전력은 레프라기움 마탑이 전부였다.
* * *
다크워튼 마탑주는 동대륙 군단장으로서 동대륙의 방위를 계속 담당, 그리고 사문이 폐쇄됐으니 델하룬 토벌군단은 부대를 세분화해 동대륙 곳곳으로 전이한 언데드를 토벌한다.
‘가레스는 군단장으로 활약시키되 여차하면 비대칭 전력으로 투입한다.’
외부와 격리된 공간이 전장이면 가레스는 악마화를 쓸 수 있다.
그 힘은 아칸드의 측근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니 제한적으로나마 세계 연합의 총력이 강화된 셈이었다.
새로운 지시 사항을 하달한 뒤에 통신 장치에 대고 말했다. 이미 델하룬에서 무슨 상황이 발생했는지는 가레스가 직접 전달했다.
“나와 안티아스는 로아프라의 공간 이동진으로 복귀하겠다.”
사문이 개방되기 전에 설치된 대륙 간 공간 이동진 등의 경우 반젤리스가 공간 좌표를 안정시키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기동했다.
마법적으로 해석하면, 특정 공간 좌표가 고정되어 있어 사문들이 내뿜는 공간 파장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억지로 안정을 유지하는 공간 좌표에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모든 도시는 방어에 전념하여 대대적인 토벌이 집행될 때까지 시간을 확보한다. 특히 도시 내 정신계 마법사와 교국의 성직자의 호위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전하도록. 역성의 항렬을 포함한 각 세력의 정신계 및 부여계 특화 부대를 적극적으로 운용해라.”
정신계에 도시 상층부가 당해버리면 성문과 성벽은 무용지물이 된다. 루네시카가 손을 쓸 때까지 주검의 영광은 베르덴의 통제 밖이라, 놈들이 도시에 잠입해 공작을 벌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현대의 방어 체계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면 머리를 지켜야 한다.
───[확인. 사전에 설정해 둔 중요도와 위험도의 기준으로 우선순위 결정. 여섯 번째 위상. 레바나가 역성의 항렬 지휘를 담당. 실시간으로 현황을 파악해 대응하겠습니다.]
“그래, 이변이 발생하면 즉각 통신하도록.”
초대 마도왕의 기억과 능력을 토대로 해서 창조된 알파와 베타, 그들의 종합적인 지적 수준은 베르덴을 대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때, 베타가 보고했다.
───[현재 테르네티아 연방 토벌군단과 동대륙 남부 토벌군단이 전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동시에 도착한 걸 보니 아드리안이 진군 속도를 더 높였나 보군. 좋아, 지금부터 각 군단장은 예정대로 사문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확보하며 연합과 발을 맞춰 속도를 조절한다.”
베르덴이 후방을 향해 명령했다.
“현대 병기, 투입.”
* * *
옛 왕의 출진과 후퇴를 접한 초월자 연합 본부가 한층 더 분주하게 움직인다.
[현대 병기. 운반 명령 확인.]
최대한 빠르게 사문을 공략해야 하는 토벌군단에게 속도는 전략의 핵심이었다.
언데드처럼 휴식 없이 전투를 지속할 수 없는 터라 필요 불가결한 요충지들을 점령해 후속 보급과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최우선.
그래서 이동을 저해하는 병기들은 후속 지원으로 돌리고, 토벌군단들이 지역을 먼저 확보하도록 군략을 구상했다.
“연합장님의 승인을 확인!”
“마법적 병기 및 드워프제 공성 병기 등 모든 현대 병기 이송 가능한 상태입니다.”
“테르네티아 연방 운송대, 발진하십시오.”
“점령 지역에서 골렘 부대가 기동했습니다. 동대륙 남부 운송대는 해당 신호를 따르세요. 그곳에서 경로 이탈은 절대 안 된다는 거, 잊지 마세요.”
“헬리온 마탑의 마력 입자포! 부품 운송 개시!”
“알겠습니다. 헬리온 마탑의 마력 입자포를 기동할 에온의 마법사단. 천궤의 반전과 인과의 전도도 이동 중입니다.”
통신 장치에 불이라도 날 것처럼 정보 담당관들이 열을 올렸다. 대륙 전체가 움직인다. 이야말로 고대 전쟁과 현대 전쟁의 차이였다.
알파가 정보를 총괄하는 사이에 베타는 각지에서 보고가 들어오는 족족 [마테리아스]에 표시해 현황을 갱신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3차원의 대륙 지도는 연합의 모든 전장을 아울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도중이었다.
세계 연합장을 대행하는 알파가 외눈을 빛냈다.
[동대륙 남부 토벌군단. 로니아 왕국의 전략 요새. 하스토우(Hearstow)를 식별.]
동대륙 남부에는 두 개의 사문이 존재한다. 하나는 서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동쪽에 있어 두 개의 군단을 파견했다.
죽음을 거부하고 삶을 갈구해 마음을 배신하면 언데드로 전락하는 타락의 땅.
그곳의 사문들에 도달하려면 점령해야 하는 장소들이 있으니.
하스토우 요새는 그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