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화 펜드렌 호: 사문 (2)
루아스 교국에도 인류의 배신자가 있다면, 그러면 이단 심문으로 그들 배신자를 색출하는 방법에 허점이 존재하는 셈이다.
‘7인의 대주교 일부가 운명에 속했다면 그 윗급도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어. 어쩌면 삼정의 추기경, 더 나아가 신인까지.’
대부분의 인류가 신앙하는 빛의 종교가 조금이라도 오염된 상태라면 위험하다. 그 파급력만큼은 지금의 제2차 초월자 전쟁 이상일지도.
‘나중에 생각하자.’
훗날의 불안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눈앞의 문제가 먼저다.
‘이 외눈박이는 베르덴의 대리인.’
베르덴이 대체 어떤 마법으로 이런 존재를 구축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외눈에 넘실거리는 농밀한 감정만큼이나 사상이 극도로 위험해 보인다.
운명의 추종자를 감지하고 즉시 죽여버리는 단호한 행동력. 남을 설득하지 않고 제 뜻을 관철하는, 혼란을 마다하지 않는 독단적인 광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또 하나의……‘순수악’의 베르덴.’
경지와는 별개로, 존재 자체만으로 따지면 제국의 사령관보다 불길한 느낌이다.
단언컨대 기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베르덴이 보내준 초월자급의 지원군이고, 테아렐은 군단장이다. 녀석을 어떻게 다루어 펜드렌호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는 그녀의 재량이다.
사고가 가속한다.
테아렐의 의념이 뇌리에 꽂힌다. 대부분의 범인은 인지 능력이 미약해 곧바로 대답할 수 없지만, 거인은 능히 그 속도를 따라갔다.
───정확히 말해. 사르카논은 배신자의 육체에 숨을 수 있는 거야?
[우리. 를. 제외한. 나머지.]
거인이 의미하는 우리란 초월자와 베르덴의 영향을 깊게 받은 자들을 뜻했다. 그러니까 그 이외의 인원에 사르카논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운명의 추종자, 혹은 저항과 무관한 일반인.
아무래도 사르카논은 그들의 생명에 깃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권속이. 옮겨 다닐 존재를.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승산은. 희박.]
물방울이 느리게 낙하한다.
[저 물방울이. 떨어지면. 누군가는. 즉사. 그러고는. 숨고. 또 반복. 하지만. 넌. 직접. 아군을. 죽이. 는 게. 껄끄럽겠지?]
거인이 다시금 선택을 종용했다.
[그러니까. 내가. 죽여 줄게. 우리. 가 아닌. 전부를.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쉬운 길을. 우리를. 위해.]
───안 돼. 안 되는 이유가 너무 많지만, 특히나 그렇게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 않고 학살극을 벌이면 군단이 와해될 거야.
[왜. 우리. 가 아닌. 저들을 설득해야. 하지? 이해는 받는 게. 아니라. 시키는 것인데.]
───다른 방법.
[……나약해. 아버지. 처럼.]
초감각으로 지극히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권속은. 우리. 전장을. 벗어날 수. 없어. 근원체를. 지켜야. 하니까. 지금도. 소울 트리에. 힘을. 부여하는 중이고.]
───사르카논이…… 힘을 분산하고 있었어?
[그런데도. 권속에게. 중삽을. 입히. 는. 것만으로. 이곳 전력 중 최소. 7할은. 사망.]
거인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생명은. 평등하지. 않아. 타인의 죽음에. 망설이지 마. 우리. 의. 피는. 그들보다. 고귀하니. 대업에. 작은. 희생은. 불가피하다. 저들을. 앞세워. 우리. 가. 가장. 유리한. 전장. 을. 만들어.]
나쁜 베르덴의 조언은 틀리지 않았다. 살점을 주고 뼈를 취하는 것은 전쟁에서 당연한 전술이다. 무엇도 주지 않으면 전부 빼앗길 뿐이다.
이십만 명 이상을 지휘하는 군단장이라면 기꺼이 대국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아니.
그래서 테아렐은 군단장으로서 선택했다.
───토벌군단의 목적은 사문의 폐쇄야. 사령관의 토벌은 부가적인 거고. 두 마리 토끼 다 못 잡으면 그냥 가까운 거 하나만 잡으면 돼.
거인의 눈동자가 소울 트리 쪽으로 휙 기울었다.
[그럼. 권속이. 소울 트리에 부여. 한. 힘을. 회수하. 게끔. 몰아쳐야 돼. 군단이. 보다. 수월하. 게. 사문의. 근원체. 를 부술 수 있도록. 하지. 만. 아무런. 제약이. 없는 저. 권속을. 상대한다는 것은. 너의. 목을. 천칭에 걸어야. 성립한다.]
───그래서?
[희생을. 자처하겠다?]
거인이 웃었다.
아마도 진심으로.
[원한다. 면.]
타인의 희생을 권했을 때보다 거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시험이었을까? 그녀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 보기 위한.
뭐가 뭔지는 몰라도 거인의 성격이 나쁘다는 것은 자명했다.
거인이 방법을 설명했다.
테아렐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만 물을게. 넌 뭐야?
[아버지의. 가장. 어둡고. 격렬한. 감정에서 태어난 존재. 하늘을 증오해. 반역을 선택한. 가련한 아버지의 근원.]
거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저주의 사도.]
똑.
마침내 물방울이 떨어졌다.
“윽, 끄아아악!”
“도엘!”
거인의 손아귀가 곧바로 젠티르 마탑 장로의 호위 마법사를 붙잡았다. 당장이라도 손가락에 짓눌려 몸이 으깨지는 듯했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생명 균열>
고유 흑마법에 노출된 마법사의 전신에 검보랏빛의 틈새가 열렸다. 생명 자체에 반영구 손상을 일으키는 8위계급의 저주.
젠티르 마탑 장로가 급하게 그를 구하려고 했으나 테아렐이 만류했다.
[권속 주제에. 두려운. 가?]
거인이 악의를 내비쳤다.
[죽음이.]
파앗──────!
마법사의 균열에서 어둠이 솟구쳐 나와 사르카논의 형체를 이루었다. 그가 제 로브를 덮은 <생명 균열>의 저주를 벗겨 내더니 역으로 뒤틀었다.
저주의 반사.
직접적인 정신계 마법이 그러하듯이 파훼되는 순간 흑마법사는 저주를 돌려받는다. 거인의 상체 일부분에 균열이 발생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사를 치우고 사르카논과 격을 맞대었다.
<역천의 낙인>
<죽음: 지평(地平)>
저해의 거인이 새까만 사선(死線)에 난도질당하는 순간───사르카논은 그 존재 자체에 반역의 저주가 새겨졌다.
다른 자의 생명에 기생해 죽음을 선사하려던 그가 우뚝 멈췄다.
[묵시록의 권능이…….]
베르덴은 운명과 상극이다. 천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운명 파괴자의 저주가 깃들었으니 ‘당신’의 사도가 하사한 힘을 운용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필연이다.
거검에 직격당한 사르카논이 내리꽂혔다.
‘최후의 저항자는 무슨 존재를 만든 것인가.’
운명에서 비롯된 권능의 일부를 봉인하는 저주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르카논은 여전히 거인의 배후가 올다르크라고 확신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테르네티아 연방에 있는 베르덴을 떠올릴 수 없었다.
‘거인…… 저 ‘미완성된 사도’를 죽여야 한다.’
거인에게서 쏟아진 붉은 피가 사문 세계의 투명한 바다를 더럽혔다.
죽음에 의한 상처와 더불어 저주의 대가.
테아렐의 선택을 존중한 거인은 대학살을 일으키는 대신에 스스로 피를 흘려 사르카논의 성가신 권능 중 하나를 봉쇄한 것이다.
테아렐이 다음의 공세를 주도한다.
사르카논은 그 흐름이 무척이나 성가시다고 느꼈다.
거인의 위험성은 예상을 초월했다.
시간만 있다면 거인에게 죽음을 선고할 수 있지만, 거인이 미처 메우지 못하는 틈을 초월자를 비롯한 산 자들이 채우고 있다.
압도해야 할 전장이 거인의 존재로 인해 생각과는 달라지고 있는 형국.
효율적으로 적들을 멸할 수 있는 권능을 쓸 수 없게 되었으니…… 사문 바깥에 있는 정체불명의 초월자를 잠시 배제하고, 최고의 권능으로 단시간내에 토벌군의 머리를 앗아 가는 것이 옳을 터.
‘지성체인 이상 거리낌 없이 사문의 근원체를 부술 수 없으니.’
사문의 근원체가 파괴당하기 전까지 세계 연합의 전력을 최대한 약화시켜야 한다.
[육사도의 뜻대로.]
스하아아아아악…….
소울 트리에게 부여했던 죽음의 기운이 주인에게 돌아온다. 사르카논은 군단의 최고 전력들에 포위당한 채 휘어감듯 양손을 모았다.
<죽음: 결명(結命)>
묵시록의 죽음이 계시된다.
* * *
콰드드드드득!
소울 트리의 거대 뿌리에 잡힌 비행정이 으깨지고 선원들이 추락한다. 마법사들이 <비행>으로 곡예를 펼치며 대기 마법으로 그들을 구출했다.
“특수 개체라고 하지만 함대의 폭격을 이 정도로 견뎌 내다니…….”
“그래도 껍질은 거의 벗겨 냈습니다.”
고위 모험가들의 조언을 받아 소울 트리를 신속히 공략했다.
죽음의 소울 트리는 기존의 개체와는 달라 공세가 온전히 먹히지는 않았지만, 나뭇가지와 뿌리를 아무리 움직여도 결국 몸통은 제자리에 있다.
마법적 파괴력을 투사하기 위한 표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이윽고───여섯 번째 일제 폭격이 가해졌다.
“……! 뚫렸다!”
마침내 나무껍질 너머의 심이 크게 손상되며 소울 트리의 저항에 허점이 생겼다. 왜인지 모르게 갑자기 저항력이 약해진 듯했지만, 어쨌든 대공망의 일부를 무너뜨린 것은 사실.
그러자 녀석은 행동 반경을 축소해 제 줄기를 넓게 감싸기 시작했다.
“아주 식물로 벽을 세우는군. 그러나! 보다시피 곳곳에 틈이 열렸다! 폭격을 유지할 인원을 제외, <비행>이 가능한 인원은 하선해 접근한다!”
제국 마법성의 로드인 메리사로부터 함대 지휘권을 받은───초거대 규모 비행정, 어토리움(Atorium)의 함장이 정면을 가리켰다.
“근원체를 부숴라!”
“하선하라!!”
토벌군의 정예들이 높은 고도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비행정에서 뛰어내렸다. 마법이나 매직 아이템으로 <비행>을 시전한 그들이 저마다의 경로로 소울 트리를 향해 들이닥쳤다.
소울 트리의 몸 일부에서 본체에 비해 작은 뿌리와 가지들이 솟아오르더니 미친 듯이 허공을 휘저으면서 그들을 가로막았다.
콰과과과광! 콰아아앙! 콰앙! 콰지지지직!
공성전을 방불케 했다.
끝내 요격당한 사상자들은 아래로 떨어졌고, 회피 기동에 전념한 이들은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맞으면 치명적이라 잠시 제동이 걸린 상황.
“끝까지 발버둥을…….”
“뒤에!”
그때였다.
다양한 신성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루아스 교국의 비행정이 가속했다. 보호막이 도중에 손상되어 선체가 파손되었다.
그럼에도 대주교의 비행정은 난파되지 않고 결국 식물의 벽에 난 균열을 파고들었다.
먼저 소울 트리의 줄기에 도달한 은휘의 대주교가 위를 가리켰다.
“근원체는 저기에 있소!”
위다───!
위로 가라───!
교국 비행정에서 내린 류왕과 그 휘하의 수인들이 재빠르게 줄기를 타고 올라갔다. 도중 나무의 가시에 꿰뚫린 자도 있었으나 멈추지 않았다.
대주교의 보호를 받으며 모험가와 마법사들이 그 뒤를 바싹 쫓았다.
콰아앙!
사람 몸통만 한 두께의 가지를 박살 낸 류왕의 앞에 불온한 빛이 닿았다. 소울 트리가 감싸고 있는 거대한 역원뿔의 수정이 내뿜는 은은한 광채였다.
“사문의 근원체. 이런, 무지막지하게 단단할 것만 같은…… 저건?”
근원체 내부를 목도한 그들이 멈칫했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대주교 일행이 근원체가 자리한 공간에 도착했다.
팔라딘이 소리쳤다.
“수인! 여기선 오래 버틸 수 없는데, 당장 근원체를 부수지 않고 뭐 하는……!”
“입 닥치고 저걸 봐라.”
류왕이 근원체를 가리켰다.
“저건 뭐지?”
“저건…… 맙소사.”
“……소울 트리는 죽으면 새하얀 빛을 내뿜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 빛은 소울 트리가 양분으로 삼아 온 영혼들을 뱉는 현상이고…… 그렇게 풀려난 영혼들은 자유를 되찾아 성불한다고 전해지죠. 물론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합니다만.”
고위 모험가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데, 낭설이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소울 트리가 뿌리내린 역원뿔의 수정에는 수많은 ‘인간’의 머리가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익숙한 면면이 많다는 것이다.
사문에서 죽은 병사들.
거인에게 살해당한 성염의 대주교.
그들의 영혼도 보였다.
은휘의 대주교가 사문의 근원체를 응시하며 조용히 물었다.
“근원체를 부수면 어떻게 되는가?”
“낭설 그대로라면 해방되는 게 맞지만…… 이곳은 사문입니다. 근원체를 부수는 순간 사문이 폐쇄되기 시작하니…… 아마도.”
영혼은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빛을 신앙하고, 인류를 위해 봉사한 신자들이 삶의 더러움을 정화하고 죽었는데도 루아스의 곁으로 가지 못한다.
류왕이 앞으로 나섰다.
“부수지.”
“……잠깐.”
그것은 망설임이 되었다.
* * *
생명은 탄생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간다. 아무리 미루고 미루어도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사르카논은 그 결말을 한없이 앞당겼다.
토벌자들의 시체 사이에서 힘겨루기가 발생했다.
콰아아아아──────!
저해의 거인의 저주를 막아내는 와중에 토벌자들이 뒤를 쳤다. <죽음: 허상>의 잔상으로 여섯 명의 기사와 전사, 그리고 마법사를 죽였지만 최고 전력은 그들을 넘어서서 간격을 좁혔다.
한쪽 팔을 뒤로 뻗어 장막을 형성했다.
테아렐의 고유 마법이 그를 관통했다. 심해의 창에 직격당한 사르카논에게 원거리에서 공격이 퍼부어지며 권능을 방해했다.
저해의 거인이 점차 손을 더 내밀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막대한 흑마력이 사르카논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저주했다. 그의 손뼈에 금이 갔다.
토벌자 십수 명을 죽인 대가로 그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극미한 공백을 거인과 테아렐은 집요하게 비집었다.
‘그렇다면…….’
사르카논이 저항하지 않고 거인의 저주를 모조리 받아들였다. 토벌자들의 공세가 이어지지 않는 찰나의 간극이 생겼다.
<죽음: 광망(光芒)>
사르카논의 오른손에서 사기가 일었다.
─────────!
다섯 개의 손가락 끝에서 죽음의 개념에서 비롯된 망자의 광휘가 점멸했다. 사르카논이 팔을 휘둘렀다. 광선들이 전장을 갈랐다.
신체 능력으로는 도저히 반응할 수 없는, 그야말로 순간의 절명.
거인의 왼손이 토막 났다.
젠티르 마탑 장로가 수평으로 절단됐다.
다크워튼 마탑 장로의 다리가 날아갔다.
에브란의 팔이 날아갔다.
메리사의 오른손은 손바닥 중간 부분부터 사라졌다.
그 한 방에 젠티르 마탑이 전멸했다. 테아렐 파티를 제외한 모험가도 무력화되었다. 제국의 전력도 반으로 줄었다.
“끄으윽……!”
“마탑주님!!!!”
권능이 발해지기 전에 유르기엔을 밀친 메드란트를 광선이 스쳐 지나갔다. 즉사는 면했지만 로브 너머의 피부가 검게 죽었다.
신체가 절단되어도 비명 하나 지르지 않을 것 같은 메드란트가 눈이 뒤집힐 듯 신음했다. 오스테아 마탑 전력도 크게 줄었다.
유르발이 넘어진 채 눈을 크게 떴다.
“테아렐, 너…….”
뚝, 뚝…….
테아렐은 복부가 검게 죽었다. 저항력 덕에 뚫리지 않았지만 사기가 침범한 것이다. 장기가 망가져 피가 입술에서 흘러내렸다.
그런 상태임에도, 옛 파티원인 에브란의 팔이 하나 날아갔음에도 테아렐은 한시도 사르카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쩌적…….
사르카논에게서 뼛가루가 떨어졌다.
사르카논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소울 트리는 약화되었고, 사문의 근원체를 수월하게 부술 수 있다는 것.
품속에 넣어 둔 통신 장치가 반응했다.
마력을 조작해 손을 대지 않고 연결하자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류왕의 음성이었다.
───군단장……! 사문의 근원체에 도달했는데, 여기서 내분이……!!
“……내분?”
───사문의 근원체에 영혼들이 있다……! 여기서 죽은 인간들의 영혼들까지……! 근원체를 당장 부수면 영혼의 행방이 어떻게 되는지, 그 따위 것의 논쟁 탓에……!
테아렐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사르카논이 말했다.
소울 트리가 있는 곳에도 들리도록.
[근원체를 파괴한 순간 소울 트리가 흡수한 영혼은 전부 사문과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이 부활할 기회도.]
……!
죽은 사람이 부활할 수 있다는 말에 공기가 경직된 듯했다. 거짓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했지만, 테아렐은 직감했다.
‘진실이다.’
사르카논은 펜드렌호의 사문으로 죽은 존재들이 살아날 수 있다고 단언했다.
테아렐은 많은 시선을 느꼈다.
친구, 이웃, 동료, 가족 등의 죽음 탓에 세계 연합에 참여했던 이들이 테아렐을 응시했다. 그녀의 선택을 기다렸다.
당장 사문을 부술지.
일단 부활의 방법을 찾을지.
후자는 사르카논을 앞두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지만…… 죽은 자들을 되살릴 수 있음에도 포기하느냐, 아니면 노력이라도 해 보느냐는 큰 차이였다.
[사문을 폐쇄하면. 산 자들. 은 너를 원망할. 거고. 부활. 방법을. 찾으면. 그동안. 많은, 산 자가. 죽게. 되겠지.]
거인이 묻는다.
[선택은?]
“부숴.”
테아렐이 명령했다.
“당장 부숴.”
테아렐은 군단을 택했다.
통신 장치 너머에서 잡음이 발생했다. 연합군끼리 전투가 벌어질 듯했다. 사르카논은 힘을 갈무리하며 낮게 비웃었다.
그리고.
거인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 선택. 도와줄게.]
* * *
사문의 근원체 앞.
죽은 사람을 살릴 방법을 찾자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나뉘었다. 루아스 교국 대부분은 당연히 전자에 속했다.
류왕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비켜라. 진짜로 죽이기 전에!”
“닥쳐라, 수인!”
팔라딘이 그에게 검을 겨누었다.
“모든 더러움을 떨쳐 낸 빛의 신자는 마땅히 여신의 곁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저 저열한 이형체들과 함께 사라진다니. 용납할 수 없다.”
“에오로크 경!”
“대주교 예하……! 빛의 신자라면 당연히 저들의 영혼을 보살펴야 하거늘, 도대체 어찌 그곳에 서 있는 것입니까!”
은휘의 대주교는 사문을 폐쇄해야 한다는 쪽에 서 있었다. 아직 선택을 내리지 못했지만, 그는 서둘러 사문을 폐쇄하지 않으면 더 많은 희생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대주교 예하.”
“…….”
“설마, 이들을 포기하시는 겁니까?”
은휘의 대주교가 눈을 질끈 감았다.
망설임이 컸다.
저들을 설득할 방법도 없었다.
결국 류왕이 힘으로 돌파하려는 도중이었다. 팔라딘의 허리춤이 꿈틀거렸다. 부활을 위해 수습한 성염의 대주교의 하반신이 보관된 공간 가방이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콰드드득!
공간 가방에서 뻗어 나온 검이 팔라딘의 턱 아래를 관통했다. 팔라딘이 쓰러졌다. 그의 공간 가방에서 곧 이형의 존재가 현현했다.
성염의 대주교의 하반신 위로 대저주로 이루어진 상반신이 자리했다.
고유 흑마법진: <네벨로스>
성염의 대주교의 시신을 관조했을 당시에 저해의 거인은 다른 흑마법진을 숨겼다. 시체를 변형시키고, 자신의 힘과 의지를 연결하며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마법을.
시체────저해의 거인이 자세를 잡았다.
<일광一匡>
흑마력에 기반한 아서 타렌폴드의 기예가 수평을 갈랐다.
죽은 자의 부활을 바라는 자들이 즉사했다. 운명의 추종자든, 일반인이든 상관없었다. 감히 아버지의 뜻을 대행하는 테아렐 군단장의 거역했으니.
[거치적. 거리긴.]
사문의 근원체에 검이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