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45

1145화 전환점 (1)

베르덴은 독선적이며 이타적이다.

살상을 주저하지 않되 구명(救命)에 대한 갈등으로 여념이 끊이지 않는 심리.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지성체들의 존엄성을 해하지 않는 신념.

모두가 갈망하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세상을 아우르는 원대하고도 거대한 이상을 추구하기에 그는 특별하다.

과거의 올다르크와 ‘당신’도 지금의 베르덴과 같은 특별함을 간직했지만──서로 다른 이유로 절망하고, 좌절해 현실과 타협했다.

절대자들은 앞서 그렇게 선을 넘었다.

베르덴은 아직 선을 넘지 않았지만 그래 봤자 얼마나 오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까.
방황하다가 선구자(先驅者)들이 개척한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답습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선택지는 오직 그것밖에 없으므로.

기근의 묵시록으로 선택받은 제르마엘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것이…… 운명과 정반대되는 힘.]

제7사령관에게 작렬한 종말의 벼락이 곧 주체하지 못하고 전광(電光)을 분출했다.
제어하지 못한 파괴가 마르테스의 절반을 삼키더니 건물, 시신, 언데드 등 그에 닿은 사물을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렸다.

영혼까지 전율시키는 압도감.

그런데 제7사령관과 다르게 보잘것없는 두 인간은 온전했다.
선명한 검붉은 색채는 그들에게 끝이 아닌 구원을 선사했다. 베르덴 자신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파멸로 연약한 존재들을 보호한 것이다.

가장 두려운 개념 아래에서 만인은 제한된 선택을 누리며 저마다의 삶을 영위할지니…….

[힘에 의한 자유.]

운명도, 저항도 아닌,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 않아서 아득하고 모호한 세 번째 길.
이것이야말로 베르덴이 완성하려는 선택인가.

숭고한 모순이다.

절대자들의 경지를 어렴풋이 인지했을 텐데도 감히 도전하려는, 무모하고 고집스러운 결의는 어리석음의 표본이다.

그렇기에 황홀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만약 운명전이 발발했을 때 그가 있었다면 현재와 미래는 달랐을까.
무의미하지만 그럼에도 상상을 해 보았다.

제르마엘은 이렇게 대면하고 나서야 비로소 어째서 여섯 번째 사도…… 아칸드가 베르덴을 위대한 적수로 지정했는지 이해했다.

과연 오늘 위대한 전쟁에 그보다 어울리는 존재는 없었다.

[영광이로다.]

제르마엘은 기꺼이 파멸 속으로 뛰어들었다.

* * *

잔혹하게 죽어 버린 이 도시 마르테스에서 아칸드의 도발적인 언사를 듣고 나서야 베르덴은 함정의 의도를 이해했다.

‘놈은 나를 자극하고 있다.’

권역에 제대로 피해를 줄 생각이었다면 에스티리아 왕국을 노려야 정상인데, 다름 아닌 리비안트 공국의 변방을 무대로 삼은 것.
더 많은 포로를 방패로 삼지 않고 콘라드와 파이테 영주만을 인질로 삼은 것.

마치 베르덴의 시작점을 비웃고, 더럽혀서 근본을 부정하는 듯했다. 학살의 현장에 대해 베르덴이 무슨 책임을 졌는지 묻고 있는 듯했다.

아칸드는 지금까지 베르덴이 상대해 본 적이 없는 부류의 적이었다.

부아가 치밀었다.

마탑에서 수년 동안 인체 실험을 당했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건 희생자가 자신이 아닌 자신의 관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로벨린마저도 인체 실험을 당하는 광경을 본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현실이 어깨를 짓눌렀다.

칼리아 일행과 이자벨라 일행은 실종이니 살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나 카인은 죽었다. 죽음은 엘릭서로도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희망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최악을 상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베르덴은 마음속으로 칼리아와 이자벨라의 죽음을 그렸다. 그리고 아칸드에 의해 파괴된 주인 없는 땅을 그렸다. 황폐화된 대륙을 그렸다. 아드리안의 죽음과 로벨린의 죽음을 그렸다.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죽음을 그렸다.
패배를 그렸다.
최후에 망가진 알파와 베타를 그렸으며, 혼자 남은 베르덴 자신으로 방점을 찍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다시는 멈출 수 없다. 보헤미른 마탑에 대한 복수를 성공했다고 해도 또다시 잃을 수도 있어. 세상엔 상식 밖의 것들이 존재하니까.

───글러트니, 방주, 주검의 영광, 마탑, 국가, 그리고 마도왕과 세계수가 감추고 있는 비밀───그 앞은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미래다. 복수의 굴레라는 두려움보다도 더욱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지도 몰라. 나 자신만이 아니라 곁에 있는 모두가…… 그런데도 선택할 건가?

───이상은 이루지 못하기에 이상(理想)이다. 그리고 그 이상은…… 세상이 바라지 않을 거야. 평온함은 꿈꿀 수 없을 거다.

푸른 산맥에서 펼쳐진 선택의 기로에서 베르덴은 마지막으로 자문했고, 스스로에게 더 이상 가능성으로 남지 않겠다고 자답했다.

시작한 이상 멈추지 못한다.

하나를 잃었다고 해서 전부를 잃을 수 없다. 그게 책임이다. 베르덴은 아직 손에 남아 있는 것들을 위해 절망을 미루었다.

그렇게 비워진 마음에 승리에 대한 열망과 강렬한 적의만을 남겼다.

콰아아아아아─────────!

[인테리스]에서 사출된 종말의 벼락이 제7사령관의 육신을 도시와 함께 멸했다.

잔류 벼락이 일대를 뒤덮었다.

하늘과 구름도 그와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검붉은 먹구름에서 현뢰가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파괴의 현장에서 묵시록의 제물로 사용된 가련한 이들도 같이 안식에 들었다.

투확!

그때 제르마엘이 후폭풍을 무시하고 베르덴에게 돌진했다. 마도에 노출되어 신체의 겉부분이 소거되고 있음에도 놈은 망설임이 없었다.

제7사령관을 먼저 처단하느라 생길 수밖에 없는 필연의 빈틈.

찰나에 [인테리스]와 기근의 검이 충돌했고, 그와 동시에 제르마엘이 거리를 더욱더 좁혀 오른손을 깊이 찔러 넣었다.

콰드드득.

사령관의 수를 줄이는 대가로 베르덴의 옆구리로 단검이 비집고 들어왔다.

<기근: 탈진(脫盡)>

제르마엘이 수만 명의 목숨을 바쳐 강화한 권능은 베르덴의 모든 저항력을 약화시켰다.
3차원의 변방에서 탈출하기 직전 사룡 네크바엘의 발톱에 관통당한 우측 복부에 하나의 자상이 더해지며 사기가 흘러 들어왔다.

“콘라드, 파이테 헨로드.”

제르마엘의 손목을 붙잡았다.
힘이 대립했다.
베르덴은 바로 옆에 주저앉은 인간들에게 단호하게 명령했다.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라.”
“베르덴 님…… 으헉!”

마력의 급류가 몰아치더니 콘라드와 파이테 남작을 마르테스 바깥으로 날려버렸다. 물론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도록 손을 써 두었다.
더 이상 그들의 안전을 고려할 정도로 힘을 다스릴 자신이 없었다.

<기근: 탐악(貪顎)>

제르마엘의 등 뒤에서 형상을 이룬 낡은 이빨들이 삽시간에 들이닥쳤다.

베르덴의 턱선 위로 힘줄이 불거졌다.

붙들린 건틀릿이 마력을 버티지 못하고 손상되자 제르마엘이 단검을 포기했다. 베르덴이 [인테리스]를 내리그어 권능 자체를 쳐부쉈다.

콰과과과과과과!

개념에 의해 공간이 일그러지며 마르테스가 반으로 갈라졌다.

[태초 이래 가장 위험한 개념.]

베르덴은 신격을 해방했을 때 신성력을 제어 아래 두었다. 그에 반해 지금은 마도 개념을 전혀 조절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제약을 벗어난 힘은 베르덴을 잡아먹으면서 미래에 도달할 경지를 억지로 불러냈다.

과거에서 현재.
역천을 완성하고 초월하여 신격을 얻은 현시점.

자신에게도 적에게도…… 베르덴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위험했다.
존재감이 끊임없이 증폭됐다.

<기근: 시군(屍軍)>

묵시록의 권능이 반경 십수 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언데드를 변형시켰다. 그렇게 바뀌어 버린 개체는 전부 동일한 외형과 힘을 갖게 되었다.

크세리온 제국의 제10사령관, 군체.

제르마엘은 여섯 번째 사도를 지키는 가장 가까운 권속이자, 전쟁, 죽음, 정복(역병), 기근의 권능을 가진 묵시록의 필두.
아칸드와 네크바엘에게 감히 준할 수 있는 존재가 또 하나의 사령관을 탄생시키며 베르덴을 향해 기근의 검을 겨누었다.

[나, 크세리온 제국의 제1사령관. 기근의 묵시록, 제르마엘.]

제르마엘이 전력을 드러냈다.

[운명의 반역자에게 도전하겠다.]

베르덴이 몸에 박힌 단검을 뽑았다. 그건 잿더미도 남기지 않고 소멸했다. 마도 개념의 심화는 베르덴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고조시켰다.
위대한 전쟁이니 도전이니 운운하며 고고하다는 듯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는 놈들의 행태가 역겨워서 견딜 수 없었다.

“닥쳐라.”

듣기 싫다.
죽어라.

제10사령관 군체가 달려들고, 제르마엘이 기근의 검을 높여 권능을 집중시켰다. 베르덴은 역수로 잡은 [인테리스]를 마르테스에 내리꽂았다.

빛이 한 점으로 수렴해 도래한 암흑.

리비안트 공국에서 피어난 섬광은 마르테스 영지를 송두리째 증발시켰다.

* * *

전신에 힘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애써 손끝의 감각을 일깨웠다.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몸을 그런데로 움직일 수 있었다.

스르륵…….

테아렐은 기절하기 전에 보았던 베르덴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어떤 방의 침대에 혼자 누워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는 아니었다.

“너…….”

테아렐이 느릿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울어?”

손바닥 크기로 작아진 거인 네르가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사문에서 성염의 대주교를 발로 차서 반으로 찢어 죽이고, 제4사령관 사르카논을 저주로 압박했을 때의 섬뜩한 인상이 뇌리에 선명한데.
단순히 작아져서 그런 것인지, 눈물이 진실해서 그런 것인지 가련하게 느껴졌다.

[아버지께서. 괴로워하고. 계신다.]

세계는 베르덴에게 아픔을 주었다. 운명의 굴레는 베르덴에게 절망을 선물했다. 순수하게 마법을 배우고 싶어 하던 아이는 그때 죽었다.
운명이 그를 살해했다.
네르가는 바로 그 죽음이 있었기에 탄생한 저주의 사도다.

증오스럽다.

아버지께서 이런 희생을 자처하게 만드는 모든 게 싫었다. 참을 수 없다. 아버지의 악몽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는 자식으로서.

[모두. 그. 고통을. 알아야. 해.]

반드시 아버지가 받는 고통을 이 대륙이 분담하게 만들겠다.

* * *

“호세 님……?”
“아, 아. 괜찮습니다. 눈에 뭔가 들어갔나 보군요.”

호세가 황급히 눈가를 문질렀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누가 봐도 먼지 때문은 아니었다. 레나르와 페이, 그리고 하에넬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이건…… 베르덴 님의 감정.’

최근 신성력이 강해진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예전에 비해 신과의 연결이 강해졌다.

대체 신께서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 계시는가.

호세가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겨우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슬픔뿐이었다. 분명 그의 신앙심이 부족해서 그 이상은 감히 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리라.
시간이 흐르고 가까스로 눈물은 멈췄지만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신이시여…….’

글러트니의 둥지에서 호세가 베르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이단 신앙을 품은 푸른 산맥의 조각가, 그게 한계였다.

하지만.

언젠가 다음에 도달할 수 있다면 신께서 고통받는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 * *

마경의 심부, 마해.

적룡 사르칸드라의 숨결이 지나간 숲에 잿더미가 간간이 휘날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망가진 환경이 꿈틀거렸다.

기형적인 생명력이 공허를 채웠다.

어슬렁리는 기괴한 괴수들은 게걸스럽게 혓바닥을 내밀었고, 나무 뿌리는 의식을 상실해 쓰러진 자들을 탐하려고 했다.

팍!

그 순간 불타 버린 대지 아래에서 한 생명이 밖으로 손을 뻗었다.

“……퉷.”

이자벨라가 입 안에 들어간 흙을 뱉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마력을 퍼뜨려도 거대한 존재감은 더 느껴지지 않았다.

“사르칸드라, 이 도마뱀 어디로 갔어.”

이자벨라가 형안을 번뜩이면서 묻자 뿌리들이 곧장 물러났다. 멈칫한 괴수들은 여러 눈동자를 끔뻑거리다가 서쪽을 가리켰다.

“대륙으로…….”

이자벨라는 입술을 짓씹으며 바닥에 쓰러진 검성의 뺨을 가볍게 쳤다.

짝!!!!

“……!!”

프리발트가 당장 몸을 일으켰다. 거리를 벌리고는 허리춤을 더듬거리다가 이내 이자벨라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물었다.

“사문은 어떻게 됐지?”
“뭐야.”

이자벨자가 팔짱을 꼈다.

“기억 안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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