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85

1185화 제6사도 (9)

시타델로 올라가 옛 왕을 상대하고 있을 베르덴을 돕는다.
루가르트가 그런 일념으로 프로하스 사문에서 나온 순간 허공으로 도약해 낯선 섬에 발을 디디자…… 밝은 광채가 그를 맞이했다.
죽음의 기운이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성스러운 빛이었다.

옛 왕과 베르덴의 기척이 사라졌다. 마땅히 시야를 채웠어야 할 시타델의 도심과 언데드 군단도 어느샌가 자취를 감췄다.

굴곡이 희미한 평지.
그 한가운데에 자리한 작은 호수.

낯선 초원이 루가르트를 맞이했다.

‘역시 공간 이동의 기색은 없다.’

처음 보는 초원이나 이와 같은 예기치 않은 풍경의 변화는 최근에 겪은 바 있다.
한창 세계 회의가 진행 중인 가르간트에서 자신을 인류의 왕이라고 소개한 광신자 노인을 맞닥뜨렸을 때 말이다.

“초대를 강요하지 않으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모양이군.”

즉시 존재감을 극대화했다.

순간 돌풍이 일었다.

잘려 나간 풀들이 솟구쳐 올라가더니 소나기가 되어 쏟아졌다. 녹색의 잎들이 검처럼 날카로워지며 거꾸로 초원에 박혔다.
의지가 곧 전부이니.
더 이상 검이 필요하지 않은 경지에 닿은 초월자가, 호수의 중심에 올라서 있는 ‘빛으로 이루어진 인간’을 마주 보았다.

빛이 말했다.

“그 말은, 반대로 초대가 없으면 아무도 이 영역에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서론이 길다.”

고작 한마디 했을 뿐인데 루가르트는 짙은 살기를 내뿜었다. 어떤 존재인지는 몰라도 그의 목적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베르덴을 돕지 못하게 시간을 끄는 것.’

광신자 노인은 베르덴을 극도로 적대했다. 저 빛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언하건대 그 둘은 같은 집단에 속해 있으리라.

루가르트는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 주변 일대를 압도하며 본론을 요구했다.

“너희는 무엇인가.”
“희망.”
“희망?”
“그렇습니다, 희망. 누구나 고유한 희망을 마음에 품고 살죠. 그런 의미에서 희망보다 저희를 대변하는 용어는 없습니다. 다만 모험가 루가르트, 당신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군요.”

빛은 루가르트의 이름을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순수한 광채로 이루어져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웃는 것 같았다.

“이종족 전쟁이 당신에게서 희망에 대한 의지를 거세했을 겁니다. 연인은 엘프의 과녁이 됐고, 친구는 드워프의 작품이 되었으며, 형제는 수인에게 전리품이 되었으…….”

대기가 갈라졌다.

공간만이 아니라 드넓은 초원 전체에 깊고 예리한 균열이 떠올랐다. 영역 자체가 손상됐다. 루가르트의 의지가 그걸 바랐기에.

“서론이 길다고 했을 텐데.”
“과연 올다르크가 ‘다음’을 맡긴 초월자…….”

빛의 인간은 갈라졌으나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더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빛은 베어도 빛이랍니다.”
“질문을 바꾸지.”

다음이니 뭐니…… 루가르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정보에 집착하지 않았다.
오직 빛의 인간의 반응에 몰두했다.

“루아스와 무슨 관계냐.”

빛과 연관된 것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루아스교가 뇌리에 남았다.

빛의 여신───루아스.

루가르트는 자기 자신의 식견이 짧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빛 하면 빛을 상징하는 여신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래서 연결 지었다. 루아스 교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있는 대로, 없다면 없는 대로 적에 대한 새로운 정보다.

“모든 해답에는 자격이 있습니다. 무지하면 진실에 닿을 수 없다. 암묵적으로 이 우주의 균형을 지탱하는 법칙 중 하나라고 할까요. 그러니 당신에게 대답하기 전에 묻겠습니다.”
“…….”
“루아스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루가르트가 미간을 좁혔다.
루아스가 뭐냐니.
빛의 여신이라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지식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듣고자 하는 것은 그런 상식이 아닐 테니까.

“이 물음에 회답할 수 없으면 제가 누구인지 감히 알 자격은 없습니다. 인간도, 초월자도, 그리고 신도 말입니다.”
“그렇군.”

루가르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촤자자자자자자자자작!

그리고 전조도 없이 그 자리에서 의지를 형상으로 표출했다. 물질계와 정신계를 구분하지 않는 무형의 칼날이 빛을 난도질했다.

‘광신자 노인과 빛의 인간이 속해 있는 집단은 말을 두루뭉술하게 하는 경향이 크다. 신화의 구절처럼.’

대화로는 소득이 없으니 직접 부딪쳐 정보를 쌓을 수밖에 없다. 모든 면에서 탐색한다. 그것이 모험가의 방식이므로.

후웅.

루가르트의 오른손에서 기이한 일렁임이 번뜩였다. 팔을 늘어뜨리자 저항없이 근처의 식물과 대지가 검에 베인 듯 갈라졌다.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일순 호수 위를 가로질러 빛과의 거리를 영(零)으로 수렴시킨 것이다.

“언제나 하루를 지켜보고 있나니.”

제1사도가 가만히 속삭였다.

“답은 그 안에 있습니다.”

루가르트의 일격이 빛을 집어삼켰다. 마치 뭉툭한 칼날에 걸린 근육과 피부처럼, 그 궤적을 따라 초원이 찢어졌다.

동시에 사도의 영역이 붕괴되듯이 걷혔다.

“……!”

루가르트는 시타델 변방에 있었다. 직후 초월적인 감각이 위화감을 포착했다. 그가 처음으로 인지한 건 시간의 변화였다.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빛의 인간과의 조우는 체감상 기껏해야 4분 남짓에 불과했으나, 대륙에서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흘러 있었다.

‘시간 감각을 속였다고?’

이런 방식의 기만은 처음이었다.
발목을 제대로 잡혔다.

“이런.”

루가르트는 옛 왕과의 전투에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감각이 두 번째로 느낀 것은 존재감이었다.

초월자가 아닌…… 그의 머릿속에 담긴 단어 따위로 설명할 수 없는───다른 차원의 격.

“이게 베르덴의……?”

루가르트가 격의 주인이 누군지 깨닫자마자 시타델 전체에 균열이 일어났으니.
광활한 잿빛이 모든 것을 덮었다.

* * *

거대 도시 가르간트 다음으로 규모가 큰, 역사상 두 번째로 거대한 도시인 시타델이 고고도에서 추락하는 광경은 불길 같은 전의도 상실케 했다.

하늘섬이 가까워질수록 형상화된 중력이 이 세계를 송두리째 짓누르는 듯했다.

쿠오오오오.

무거운 파공음이 온몸을 전율시켰다.
깊고, 또 끈적하게.

“아……아아…….”
“말도 안 돼…….”

병사들이 언데드 군단과 싸우다 말고 그저 멍하니 하늘을 응시했다.

위대한 초월자들이라면 하늘섬을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분명히. 저건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상상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시타델이 지상에 닿으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했다. 절멸이었다. 상공에 머물고 있는 비행정들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끄, 끝났다.”

묘왕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주저앉았다.
회피 불가.
어디로 도망치든 생존할 수 없다고 위험 본능마저 체념했다.

죽음이 온다…….

필연적인 멸망이 온다…….

보헤미른 마탑의 주인만이 계승하는 로벨린의 고대 아티팩트나 계외의 마도처럼 일시적으로 이 물질계를 벗어나 충격을 무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그들의 운명은 확정된다.

“흐, 흐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누군가는 살기 위해서 달렸다. 살 수 없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멀리 도망치는 것밖에 없었다. 남들보다 아주 한시라도 더 오래 살고자 하는 건 희망과 생존의 속성이었다.

편리한 공간 이동은 해답이 되지 못했다.

장거리 <전이>가 아니라면 주인 없는 땅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반드시 시타델의 추락 여파에 휘말려 시체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몇 분 이내에 그 정도 공간 이동이 가능한 존재와 아티팩트는 극소수의 극소수다. 집단 <전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보호막 전개, 아, 아니, 추락 속도! 추락 속도부터 줄여야 해! 하다못해 요격을 시도해서 저 섬의 규모를 조금이라도 깎아야……!”
“그걸 누가 모르겠나! 당연한 것 말고 그걸 가능케 할 방법을 떠올리게! 방법을!!”
“몰라……! 나도 모르겠다고!!”

혹자는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으려고 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마탑의 장로들이 패닉에 빠졌다. 그들이 자랑하던 이성은 재해 앞에 철저하게 무용지물이었다. 대처할 수 있는 위기가 아니었다.

마법계를 이끄는 마탑의 주인들조차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달리 방도가 없겠습니까……! 메드란트, 당신은 에온의 위상이잖습니까! 신성께서, 베르덴 폐하께서 따로 말씀 없으셨습니까……!”
“…….”
“뭐라도 말해 보시오! 오스테아 마탑주!!”

메드란트 케덴은 심중에서 여러 계산을 시도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또, 베르덴은 이에 대해 언질하지 않았다.

혼란은 침묵 속에서 몸집을 키우곤 용기와 의지를 갉아먹었다.

“일단 추락 지점에서 벗어나라! 외곽으로 후퇴하여 유동적인 방어진을 펼쳐라! 결코 맞서지 말고 순응해 충격의 최소화를 도모하라!”
“화, 황제 폐하……!”
“빛의 루아스시여, 부디 광명으로 가련한 자들을 구원하소서!”
“무구한 광명으로 이들을 지켜 주소서……!”
“루아스시여! 루아스시여!!”

제라클 황제는 끝까지 삶의 의지를 보이며 군단을 지휘하려고 했고, 빛의 신앙자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해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보완했다.

“아…….”

성자 레온하르트는 더 이상 전투를 속행할 수 없는 몸으로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성검이 비스듬히 전장에 꽂혔다.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교황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렸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물에 잠긴 듯이 불분명했다.

‘어머니…… 세리아…….’

초월자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가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이들은 모조리 죽어 버리고 말 텐데.

티르 마을에서나 지금이나…… 농부일 때나 성자일 때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강해져도 아무도 지킬 수 없다.
결국 최악이다.

성검은 비극의 결핍을 채운다.

“아하…… 하핫…….”

정복(역병)의 묵시록에 이어 옛 왕과 치른 일전은 레온하르트에게 두려움을 심었다. 절망적인 무력감에 극심한 자살 충동이 일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아니었으면 당장 성검으로 목을 찔렀을 것이다.

더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때 저해의 거인이 양팔을 활짝 벌리며 광소했다. 성직자들의 기도로 피어오른 빛에 의해 그의 그림자가 아주 길게 늘어졌다.
그것이 레온하르트까지 뒤덮으면서 차가운 어둠을 선사했다.

[기도하라. 그리고. 목도하라.]

네르가의 외눈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절대적인. 위상을.]

“고결한 태양이시여……!”

침묵의 사막에서 온 이들이 신앙을 보였다. 기도의 태도가 루아스 교국의 것과 뭔가 달랐다. 그들은 눈을 감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팔을 뻗었다.

네르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기도하라! 목도하라!]

카인과 엘로리스가 그 옆에 서서 검을 가슴 앞에 세웠다.

[우리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를.”

기이한 공명음이 확산했다.

시타델이 잿빛에 휩싸였다. 대부분은 감히 느낄 수 없었지만 초월적인 존재들은 생소하고 가늠할 수 없는 신비한 격을 감지했다.

“옛 왕…… 아니, 베르덴인가?”
“뭐야, 이거…….”

이그나시아가 주춤했다. 초월로는 해석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마력의 와류에 정신을 빼앗겼다. 턱끝에 맺힌 식은땀이 떨어진 순간이었다.

회색빛 섬광이 폭발했다.

────────!

세상이 잿빛으로 가득했다. 대륙에서 색이 사라진 것 같은 풍경이 망막에 새겨졌다. 비명과 함성이 그때 오갔지만 잿빛이 색깔만이 아니라 소리마저도 앗아간 것인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행동도, 생각도, 감정도 모든 것이 멈췄다.

오직 시타델이 여러 계(界)로 분열된 끝에 조각나는 광경만이 이어졌으며, 그 안에는 대재앙이 무너졌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절망적인 과거가 변화의 현실을 거쳐 희망이 생긴 미래가 되었으니.

시간의 흐름이 피부로 느껴진다.

쿠구구궁! 쿠구궁!

주인 없는 땅의 색(色)이 돌아오며 막대한 굉음과 폭음이 의식을 일깨운다. 시타델이었던 것이 무수한 잔해가 되어 추락하고 있다.

환상과 같은 장면 한구석에서 자색의 검기가 점과 점을 이었다.
아드리안과 이자벨라가 파편 사이를 오가며, 일정 규모 이상의 잔해를 부수고 있는 것이다. 곧 지상에서 새로운 명령이 주어졌다.

“시타델이 파괴됐다!”
“……!!!”
“하늘의 잔해를 요격하라!!”

죽어 있던 신경이 되살아났다.

<다중 대지 화살>, <다중 화염 화살>, <다중 빙결 화살>, <화염구>, <본 스피어>, <어스 스피어>, <어스 자벨린>, <락 블래스터>, <크리메이트>, <작염구>, <골육의 창>, <글레시어스>, <섬뢰>, <레위의 암석>, <부정의 빛>…….

그 수많은 위계 마법이 불규칙적으로 상공을 향해 날아갔다.

콰과과과과과과광!
콰아앙! 콰아아아앙!
콰과과과과!

마법적 방공망에 노출된 작은 잔해들이 깎이거나 더 작은 조각들로 분쇄됐다.
마도에 의한 고유 마법, 빛의 기적, 엘프의 마법, 드워프의 병기, 인간의 기예 등은 위험한 잔해들만을 집요하게 요격했다.

시타델의 파편은 일제히 떨어지지 않았다.
각각 속도가 달랐다.
무겁고 거대한 일부는 위에 자리했고, 나머지는 그 아래를 폭넓게 채웠다.

그러니까 가장 멀리 있는 치명적인 잔재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가장 가까이 있는 차갑지 않은 우박이 전장을 강타했다.

“머리! 머리 숙여!!”
“우아아악!”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충격이 연쇄되어 지축이 흔들렸지만 충분한 요격을 거친 뒤였기에 각 파편의 무게는 크지 않았다. 고위계 장막은 거뜬히 견뎌 냈고, 저위계 장막은 파괴되었어도 경미한 부상자만 속출할 뿐이었다.

문제는 작은 ‘섬’에 준하는 파편들…….

초월자들은 초월기와 초위 마법, 또한 신의 기적을 준비했다.
서로 간섭돼 위력이 상쇄되거나 궤도가 틀어질 수 있기에 순차적으로 전개해야 했으니, 그들이 눈치껏 순번을 결정하던 그때였다.

“찰나의 인력(引力)에 주의하게.”

……!

쉐오른 장로가 갑자기 선수를 치며 스태프를 높이 들었다. 공간의 밀도를 조율하는 마도 <조허(操虛)>와 중력이 한계에서 교차한 질량의 결합체.
그의 하나뿐인 초위 마법이 현대에서 재현되었다. 마법계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마법 중 하나.

시공의 붕락.

<무간(無間)>

지면에서 멀리 떨어진 하늘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검은색 구체가 현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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