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2화 올다르크 – 1
알파와 베타, 그리고 베르덴이 과거 행적을 밟으며 찾고 헤맸던 초대 마도왕─올다르크 루인 아케나드가 등장했다.
심지어 그 장소는 베르덴의 근거지 중 하나인 블랙 아워의 대전당이었다.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베르덴도 대악마의 피난처를 경유해 간신히 잠입할 수 있었던 대전당의 공간 왜곡 보안이 소리 소문 없이 무력화됐다.
공간계 초월자인 쉐오른 장로도 발각되지 않고서는 들어올 수 없을 텐데.
내부의 보안 체계도 무반응이었다.
초대 마도왕이기에 당연한 결과겠지만 베르덴은 그 방법이 궁금했다.
어떤 마법적 원리를 이용한 걸까.
베르덴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염원했음에도 과거에 남은 그림자만 겨우 좇을 뿐이었는데. 초대 마도왕께는 그저 의지의 문제에 불과했군요.”
+그대의 결실이다+
<신격화> 상태를 상시 유지하지 못하는 베르덴과 다르게 루아스교의 신인조차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제된 존재감.
+이곳은 우리를 담기에는 비좁군+
올다르크가 뒷짐을 졌다.
+조금 걷겠나?+
마다할 이유가 있으랴.
* * *
서대륙, 서해(西海).
쏴아아…….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 소리가 서로 간의 공백을 채웠다. 바닷새들이 창공을 갈랐고, 때때로 지저귐이 귓가를 스쳤다.
수평선 너머까지 광활한 푸른 바다 위에서 늑장을 부리는 구름과 태양.
청명한 해안가를 따라서 두 사람의 발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제6사도는 대비책에 가까웠다+
올다르크가 서두로 삼은 주제는 옛 왕이었다. 다시 말해 아칸드가 짊어진 여섯 번째 사도의 사명에 대한 자세한 내막.
‘이 대화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주도권이 없으면 효율을 중시해야 한다.
무지를 이유로 초대 마도왕이 대답하기만을 기다릴 여유는 없으니.
‘사명에 관한 이야기라면 금기는 여기서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이겠지.’
베르덴은 지금까지 손에 넣은, 파편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단서들을 최대한 끌어모으며 지성을 극적으로 발휘했다.
문을 두드리듯이 계속해서 대답을 끌어내는 것이 베르덴의 몫이었다.
“대비책이라면, 아칸드가 수거한 영혼들로 애초에 운명을 완성할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역시 사명을 언급했는데도 금기는 반응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고, 그대도 없었다면 가능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운명의 사도들도 그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지+
올다르크가 앞서 걸었다.
+이 전쟁의 목적은 그대가 부순 운명의 수레바퀴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영원한 순환이 구축되려면 반드시 운명의 굴레가 전제돼야 한다. 수레바퀴는 가장 거대한 톱니바퀴이자 동체(胴體)다.
베르덴이 그런 기틀을 파괴했으니 ‘당신’은 다시금 기반을 수리할 필요가 있었다.
베르덴이 물었다.
“운명은 재건되었습니까?”
올다르크가 답했다.
+재건되었다+
……!
숨을 삼켰다.
제6사도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과는 별개로 필사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는데 끝내 저들이 목적을 이루었단 말인가?
베르덴에게는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올다르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재건은 필연이었다. ‘당신’을 죽이지 않는 한 결국 어떤 식으로든 복원될 수밖에 없었지. 베르덴,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그 수레바퀴에 영혼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순환을 이을 동력이 ‘당신’이 상정한 것보다 수급되지 않았다.
베르덴의 노력을 긍정하는 결과였다.
+그대는 잘해 주었다+
올다르크가 공로를 치하했지만 베르덴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관리자였다면 순수한 칭찬으로 받아들여 진심으로 기뻐했겠지만, 초대 마도왕 본인을 똑같이 대할 수는 없었다.
겉모습은 같아도 둘은 다른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초대 마도왕의 행적에는 베르덴이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 여럿 있었기에, 그의 호평을 단순히 듣고 넘길 수 없었다.
“저를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이 아니라.
+결국 모두가 그렇지+
올다르크가 햇빛이 산산이 흩어진 눈부신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저마다의 이상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나 생각은 변하기 마련이다. 진실을 모르고 품게 된 꿈은 변질되고 말듯이+
“…….”
+우주를 통찰해 본 적이 있는가+
우주(宇宙).
시간과 만물을 포함하는 무한한 공간의 총체, 혹은 모든 천체를 아우르는 공간.
하늘 너머의 하늘을 인식할 수 있게 됐을 때 사회의 관심은 위로 향했고, 그렇게 연구자, 특히나 마법사는 호기심을 통해 이에 대한 학문을 정립했다.
천문학.
누군가는 마법적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하며 연구 주제를 찾으려고 하고, 누군가는 천체의 흐름을 읽어 앞날을 예측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우주가 함유하는 수많은 진리를 파헤치려 하니.
미지에 대한 공포를 논할 때 지성인의 절반은 깊은 심해를, 다른 절반은 하늘을 가리키리라.
베르덴이 순간 멈췄다가 다시 올다르크를 두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우주. 아마도 종극에 찾아올 종말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금기된 지식입니까?”
+위험하기도 하고, 은폐되기도 했지만 금지되지도 않은 비밀이다. 그저 전승될 수 없었을 뿐이지. 그대도 알다시피 약자의 세계는 늘 위태로워 작은 속삭임에도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니+
올다르크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하늘이 걷혔다.
말 그대로의 표현이었다.
‘공간계의 응용.’
마치 시야를 확대하기라도 하듯이 한순간 대기권을 뛰어넘더니 수많은 별빛으로 물든 끝없는 암흑이 머리 위를 뒤덮었다.
+대륙과 비슷한 환경을 가진 행성은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았다+
우주를 언급할 때면 어김없이 입에 오르는 주제가 하나 있다.
외계(外界)에 생명체가 있는가?
마법사들은 대개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간의 효율성은 무(無)에 가까운 셈이니까. 그들에게 비효율은 적이었다.
“저 우주에 지성체의 문명이 있습니까?”
+한때 무수한 문명이 우주 전역을 장식했지+
베르덴은 시선을 높이며 경청했다.
+다만 그들은 교류할 수 없었다. 서로 관측하거나 인지하지도 못한 채 각자의 세상에서 각자의 흐름을 영위하며 살아 숨 쉴 뿐+
“평행선처럼 말이군요.”
+올바른 비유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존재하되 조우할 수 없었다. 동일한 계(界)에 있을지언정 서로는 배경의 한 조각에 불과했지. 저기, 저 작은 별빛 하나와 같이+
그는 우주에 수놓인 점 위에 존재하는 무수한 선을 떠올렸다. 베르덴이 지금까지 경험한 세상을 닮은 또 다른 세상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생김새는 차치하고 지성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다른 문명과 대륙이라.’
베르덴은 우주에 대해 진심으로 깊이 고찰한 적은 없었다. 외계를 생각할 시간에 베르덴은 나아가는 데 몰두했다.
인식 세계가 넓어졌다. 개안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미지는 베르덴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진정한 세상은 그렇게나 넓단 말인가.’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항성들이 생명을 품었을지도 모르는 행성들을 비추는 황홀한 광경에 벽안이 이채를 발했다.
그 순간───별빛이 하나 꺼졌다.
‘……?’
베르덴이 미간을 좁혔다. 자신의 감각을 신뢰하나, 셀 수 없이 많은 별빛 중 하나가 느닷없이 없어진 터라 순간 눈을 의심했다.
잘못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따위 금방 머리에서 지웠다. 시선을 고정하고 빛이 사라진 곳을 의식하며 강하게 주시했다.
별빛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걷잡을 수 없었다.
베르덴이 인식하는 것보다 별빛들이 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내 암흑이 덮쳐 왔다. 우주가 공허해지는 것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이건 대체…….”
문득 침묵의 사막에서 마법 금지의 금기를 제정한 이슈르를 처단하기 위해서 초대 마도왕의 영창 마법을 시전했을 때가 뇌리에 떠올랐다.
우주의 유성체를 대륙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귓가를 파고들었던 ‘당신’의 속삭임.
───이해했나요?
───이제 우리들만이 유일하다는 걸.
비로소 베르덴은 우주의 비밀이 무엇인지 깨닫고 말았다. 우주에 대해 설명하는 초대 마도왕의 어투는 전부 과거형이었다.
“……저희밖에 없는 겁니까.”
올다르크가 그제야 푸른 바다에서 공허한 우주로 시선을 옮겼다.
+이 대륙을 뭐라고 정의하는지 기억하는가+
“첫 번째 세계.”
+그렇게 불리는 까닭은 우리에게 처음이어서만은 아니다. 끝이 없으리라 여겨 왔던 우주의 영역에서도 처음이 존재했지+
태초의 땅.
+이 땅은 가장 오래된 세계이며+
종극에 찾아올 종말.
+가장 늦게 잠들게 된 세계+
올다르크가 드넓은 해안가에 재차 선명한 발자국을 남겼다.
+우리가 곧 시작과 끝이다+
* * *
우주는 생명으로 가득했으나 멸망과 재건을 반복한 끝에 오랜─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며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행성은 폐허가 되어 어떤 씨앗도 싹틔울 수 없게 되었고, 항성은 빛을 잃었다.
누구의 의도도, 잘못도 아니었다.
순리였다.
갓난아기가 노인이 되어 임종을 맞이하듯이 우주도 늙어 끝을 앞둔 것일 뿐.
만물은 탄생한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정보가 뒤섞였다.
허무에서 비롯된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주변에서 넘실거렸다.
“……그래서 영원한 순환을.”
이 대륙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이미 멸망했으며, 또한 결국에 이곳에도 불가피한 종말이 예정됐다는 사실에 베르덴이 이마를 짚었다.
운명. ‘당신’은 이 대륙만을 존속시켜 종말에 닿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추상적으로만 그려 왔던 종말의 진실한 형태를 알게 되니 아칸드가 추구해 왔던 구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는 희망이 있기에 미래를 기대하지. 그리고 종극에 찾아올 종말은 그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 가니, 지탱할 것이 없이 끝을 인식한 존재들은 삶의 의지가 붕괴되고 만다+
“…….”
+알게 되는 순간 자기파멸적 사고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지식이자 진실. 그래서 역사처럼 세상에 전승될 수 없었다. 여담으로 호스트가 이 점을 참고해 금기를 창조했지+
베르덴은 정신적 충격을 억누르며 사고를 거듭하고 거듭했다.
“대분기와 운명전은 언제 개전되었습니까.”
+그대가 상상하는 것보다 머나먼 과거에+
“그렇다면 ‘당신’은 그 옛날부터 종말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겁니까? 정해진 운명이 없는 이상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베르덴이 멈칫했다.
올다르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깨달았는가+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면 미래 또한 존재한다.
단지 정해지지 않았을 뿐.
우리는 그것을 가능성이라고 부른다.
“히안테.”
점술가 손녀인 아이샤에게 깃든 2대 전설이 망막에 스쳤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時制)는 대분기만이 아니라 운명전까지 지켜봤으며, 시간의 개념은 대륙의 탄생부터 눈을 뜨고 있었으니.
+이 대륙에서 가장 친절하며 자애롭고 순수한 신이 모두의 행복과 희망을 위해 앞날을 물었고, 히안테는 결국 대답하고 말았지+
“…….”
+운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모든 가능성이 종말로 귀결된다는 걸 깨달은 신은 신들에게 협력을 간청했으나 외면받았고, 끝내 광기에 빠져 대분기의 이면에서 암약했다.
악신과 선신들의 대립을 교묘하게 이용해 악신들을 먼저 절멸시킨 다음 운명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히안테가 ‘당신’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었던 씁쓸한 미소에 담긴 의미가 그것이었다. ‘당신’이 이렇게 미쳐 버린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긴 탓이리라.
베르덴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때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당신’의 요청에.”
+진심으로 그녀의 슬픔을 위로하되 해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종말을 굳이 거부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노인이 가족, 친구, 이웃을 제물로 바쳐 악신에게 기적을 기도했다. 제발 수명을 연장해 달라고.
추악하다고 느꼈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천수를 누리고도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 행동을 삶의 과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녀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영면(永眠)을 준비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고 여겼다. 세계수의 뜻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세계수는 순리에 의한 존재이니 나 이상으로 종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지+
올다르크가 걸음을 멈추었다.
+현재를 살아가자+
“…….”
+우리는 그 말로 그녀의 비애를 달랬다+
‘당신’은 결국에 설움을 이겨 냈으며, 다시금 본래의 선한 신으로 돌아왔다.
그래,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당신’이 무대 뒤편에서 대분기를 유도하여 방해되는 신들을 멸하고, 영혼의 개념을 창조하는 등 철저하게 운명이라는 답을 준비했을 거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다.
‘당신’은 그렇게나 선했기에…….
+마침내 그녀가 내게 진실을 이야기했을 때 나는 운명에 반대했다. 그러자 그녀가 내게 이렇게 묻더군. 영원한 순환 이외에 대안이 있는가?+
“…….”
+모른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됐다+
베르덴이 말했다.
“반복되는 세계는 죽은 세계와 진배없다. 그것이 운명에 찬성하지 못한 이유겠군요.”
+변화가 없으면 어찌 살아간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운명의 순환으로 마지막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려는 마음이겠지만, 내겐 더 잔혹한 종말로 보일 뿐이다. 모든 자유와 선택이 거세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올다르크가 서서히 목소리를 낮추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파도 소리만이 그들 사이를 맴돌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베르덴이었다.
“그래서.”
베르덴이 무겁게 손을 휘저었다.
올다르크가 했던 것과 반대 방향으로.
우주가 멀어졌다.
새하얀 구름으로 장식된 푸른 하늘이 절대자들과 재회했다.
“대안은 찾으셨습니까, 아니면 순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련의 시간을 경험한 뒤 더 이상 나 또한 종말에 순응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그녀에겐 명확한 해답이 될 수 없겠지만 그 또한 하나의 답이지+
올다르크가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러곤 베르덴에게 다가와 권유하듯 손을 내밀었다. 청금색의 눈과 푸른 눈이 허공에서 엇갈렸다.
+조금 더 멀리 가 보겠나?+
“어디로 말입니까?”
+미래가 될 과거+
올다르크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권역으로+
* * *
블랙 아워의 대전당의 응접실이 열렸다. 그 안에는 술에 취한 에스퍼렌사 공작과 취기가 조금 오른 로안 단장이 있었다.
[베르덴 폐하. 어디?]
“조금 전에 나가셨습니다만…….”
[확인.]
문을 닫았다.
베타의 머리 위에 올라간 알파는 복도를 가리키며 전진을 명했다.
[통신 장치를 사용하지 않으면 엇갈릴 수도 있습니다.]
[괜찮음.]
알파가 외눈을 빛냈다. 미리미리 약속하고 만나는 것보다, 이렇게 직접 돌아다니며 찾아내는 게 즐겁기 때문이었다.
[베르덴 폐하. 탐색. 재개.]
[확인했습니다.]
* * *
물감이 서서히 번지는 것처럼 주변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서해의 풍경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밀림이 대체했다.
이윽고 공간이 완전히 바뀌었을 때 베르덴은 혼자 밀림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방금까지 손을 잡고 있던 초대 마도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곳이 ‘당신’의 권역…….”
베르덴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차분히 호흡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륙과 동일한데 미세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무튼.
‘경지는 그대로군. 억압당하지도, 감시받지도 않고 있고. 내 존재감이 묘하게 불분명한 건 아무래도 초대 마도왕의 마법일 터.’
몸 상태를 관조한 베르덴이 [인테리스]를 소환하며 풀숲을 가로질렀다. 초대 마도왕이 다름 아닌 ‘당신’의 권역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그리고, 남쪽에서 거칠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았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작은 촌락이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