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6화 제6사도 (10)
임의로 좌표를 지정해 최대로 중력을 집중시키고, 중력이 자리한 공간을 끝도 없이 압축시켜 부피를 0에 가깝게 수축시킨다.
간단한 원리지만, 그로부터 탄생한 마법의 궁극은 단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결코 가볍지 않았다.
상공에 뚫린 단 하나의 구심점.
그것이 비틀렸다고 느낀 순간 구체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흐름에 삼켜졌다.
공허한 소용돌이였다.
초위 마법으로 부숴야 하는 거대한 섬의 파편들이 와류를 따라 길게, 또 길게 늘어졌다. 빛이 왜곡됐다. 물리적인 법칙을 벗어난 듯한 살풍경이었으나 그것은 사실 순수한 인력의 결정체였다.
우주를 사랑하는 천문학자들은 일찍이 이 천체에 대해 이름 지은 바 있다.
별의 최후───블랙홀(Black Hole).
마도로 빚어낸 죽음의 다른 형태가 지독한 갈증을 호소했다. 일순간 끔찍한 인력이 뻗어 나가면서 폭압을 동반했다.
“허억……!”
“컥…….”
지상에 자리한 연합군은 저항할 수 없는 부유감에 숨이 턱 막혔다. 잠깐이지만 발이 떴다가 가라앉았다. 오금이 저려왔다. 누군가는 영혼이라도 빼앗긴 것처럼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나 멀리 있는데도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저 암흑 공동에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기에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이, 이 마법은.”
젠티르 마탑주는 간신히 하늘에서 눈을 떼 쉐오른 장로를 보았다. 틀림없다. 역사에 기록된 예의 초월자 중 한 명.
공간의 지배자, 말살의 쉐오른, 쉐오른 케르노든, 케르노든 가문이 배출한 7위계 초월자…… 그 본인이 분명했다.
‘말도 안 돼. 죽었다고 알려진 지가 언젠데.’
초월자는 수명의 한계에 가까워지면 모습을 감추는 경우가 있다.
초대 마도왕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래서 일반적으로 십수 년 이상 실종되어 소식이 끊긴 초월자는 사망했다고 판단했고, 그로부터 시간이 더 지나면 사망자 명단에 기록했다.
그런 의미에서 쉐오른 케르노든은 이미 초월자의 평균 수명을 초월했다.
젠티르 마탑주가 책에서 그의 기록에 대해 접했을 때가 5살 무렵이었다. 잿빛의 파괴, 정체불명의 함대. 죽은 초월자의 등장…… 그녀는 혼란의 연속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세상은 대체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그때 쉐오른 장로가 즉시 스태프와 더불어 마도를 거두었다.
콰아아아아앙!
반드시 파괴해야 하는 잔해를 태반 이상 삼켜버린 마도의 블랙홀이 자기 자신마저 포식하자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새까만 구멍의 테두리에 닿은 것은 가루도 남기지 못하고 물리적으로 소멸했다. 빛이 왜곡에서 빠져나와 직선으로 나아갔다.
하늘을 덮고 있던 방대한 잔해 더미 중간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나도 여전히 멀었군.’
두근…… 두근…….
심장 박동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잠시 전반적인 규모를 제어한 것만으로도 쉐오른 장로의 심신에 무리가 왔다.
전력으로 전개했다면 사실상 잔해 대부분을 소거할 수 있을 터였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아 그럴 여건이 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영향력이 깊게 스며들었다간 인력에서 탈출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자칫하면 아군이 전멸할지도 몰랐다.
심지어는 공간을 완전히 지배해도 취급에 주의하지 않으면 초위 마법 <무간>에 쉐오른 장로까지도 휘말릴 수 있었다.
‘그래도, 이로써 활로는 확실히 열렸다.’
베르덴은 허공에 작은 대지를 구축해 시타델 위에 있던 연합군을 지켰다.
아드리안, 이자벨라, 레그리트, 아세트로 등도 더는 자신들이 요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는 생존자를 구출해 물러났다.
아래에서 초월자들의 힘이 산발적으로 뻗어 올라가 남은 잔해를 쳐부쉈다. 단 몇 분 사이에 연합군이 남은 전력을 모조리 투사했다.
제라클 황제가 웃으며 팔을 벌렸다.
“내 생애 가장 장엄한 비로다.”
이윽고 하늘을 지나 땅에 드리운 낙하물이 전장을 장식했다. 작은 크레이터가 생기거나, 건물이 떨어져 언덕이 파였다.
다양한 보호막 아래에 모인 이들은 머리를 감싸며 마지막 충격에 대비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그렇게 치솟은 흙먼지가 연합군 진영을 감싸 안았다.
* * *
쿠구구구…… 지진은 곧 가라앉았다.
흙먼지가 자욱했지만 누구도 억지로 이를 걷으려 하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편안했다.
전쟁에 지치니 이조차 아늑하게 느껴졌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하루가 반복되다 보니 신체와 마음 둘 다 안락함을 갈구했다.
시타델이 파괴되어서 그런지 주인 없는 땅의 모든 언데드가 쓰러졌다.
터벅, 터벅.
카스티안은 짙은 황사가 내려앉은 것 같은 대지를 걸었다. 그가 품은 [루기나 혼]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시타델의 도심 잔해에 반쯤 묻힌 옛 왕이 보였다.
“……형님.”
카스티안이 [루기나 혼]을 겨누었다.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베르덴의 <기억 공유>를 통해 [루기나 혼]을 얻게 된 것이, 그리고 죄인들이 탄생한 것이 초대 마도왕의 안배라는 건 이해했다.
창의 힘을 발동하면 그들이 설계했던 대로 형제는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상관없다.
카스티안은 약 800년 전에 듣지 못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납득할 수 없으면 함께 죽으리라. 여기서부터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었다.
“왜, 전쟁을 일으킨 겁니까.”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다…….”
아칸드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카스티안 앞에 섰다. 이전의 위엄은 사라지고 최후를 코앞에 둔 만신창이의 인간이 거기에 있었다.
“구원이라니…….”
“그게, 옳다고 믿었다…… 이 희생으로 점철된…… 차가운 우주에서…….”
아칸드의 눈동자는 이미 빛이 꺼졌다. 붉은 눈물이 볼에 말라붙어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카스티안이 곧 입술을 떼었다.
두 번의 전쟁에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내막이 있다는 것쯤은 이해했다.
“아칸드 형님.”
카스티안은 굳이 묻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가장 듣고 싶었던 대답을 바라며, 아칸드에게 물었다.
“형님은 저희를 사랑하셨습니까?”
“언제나.”
아칸드가 즉답했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희생이었다.”
“…….”
카스티안은 눈물을 흘렸다. 그의 가슴에 박혀 있는 아티팩트에 저장된 크세리온 제국의 영혼들도 증오를 가라앉혔다.
무려 800년 동안 이어진 복수심이 진정됐다. 그저 이 답을 듣기 위해 카스티안은 여기까지 온 것일지도 몰랐다.
카스티안이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 어째서…… 어째서 저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어째서 저희에게…….”
“카스티안.”
아칸드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는, 잿빛을 좇아라.”
“형님……?”
“명심해라. 올다르크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걸.”
카스티안이 강하게 밀려났다.
“살아남아라, 동생아.”
화악────흙먼지가 광풍에 떠밀렸다.
사방이 확 트였다.
시야를 회복한 세계 연합이 옛 왕을 노려봤다. 그의 명운이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힘을 경험한 이상 방심할 수 없었다.
“폐하……!”
“연합장께서…….”
그런 무거운 긴장감 속에서 베르덴이 옛 왕을 향해 거침없이, 또 보란 듯이 전진했다. 알파는 베르덴의 어깨에 앉아 있었다.
쿵.
베르덴이 약 세 걸음의 간격을 두고 아칸드와 마주 섰다. 카스티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쟁의 끝을 볼 의무가 있었다.
두 수장의 뜻이 깃든 시선이 교차했다.
후욱!
아칸드가 부러진 용검을 삽시간에 뻗자, 베르덴은 검붉은 창날이 번쩍거리는 [인테리스]를 그 자리에서 사선으로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우렛소리가 터졌다.
아칸드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머리를 잃은 육신은 곧 무릎을 꿇었다. 손에서 떨어진 용검이 낮은 비명을 질렀다.
죽음의 왕이, 죽음으로 세계에 굴복했다.
옛 왕이 참수됐다.
모두가 그것을 보았다.
“우리 모두에게 비극을 안긴 크세리온 황제, 옛 왕, 폭군, 아칸드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은 세계 연합에 의해 심판되었다.”
“…….”
“이로써 크세리온 제국은 멸망했다.”
베르덴이 선언했다.
“전쟁은 끝났다.”
지금 이 순간 누가 대륙의 패권에 가장 가까운지 확정되었다. 어떤 세력이 대륙의 정상인지 두 눈으로 확인되었다.
그것은 초대 마도왕의 전설로 이루어진 아케나드 마도국도, 인류 최대의 나라인 아르나크 제국도, 세계 종교인 루아스교도, 신비주의의 레프라기움 마탑도, 초원의 수인 대부족도, 대수림의 엘프도, 화산 지대의 드워프도 아니었다.
에온이 세계의 제일이다.
또한 초월자들은 시타델을 파괴한 베르덴의 알 수 없는 격을 떠올렸다. 그 힘이 실존하는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야흐로 마법의 시대.
베르덴이 현시대의 정점이다.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갖춰라.”
일상.
그리운 단어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깨어났다. 언데드가 없다. 그제야 연합군이 무기를 내던지거나 떨어뜨렸다.
무거운 갑옷까지 벗어 던졌다. 그 이상의 해방감이 그들을 흠뻑 적셨다. 옛 왕과 사룡의 영향력이 사라져 밝아진 세상이 평화를 알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집이다! 집에 간다!!”
“사, 살았다……!!!”
모두가 승리를 부르짖었다. 너무도 고단했던 터라 절로 눈물이 흘렀다. 어서 집에서 자고 싶다는 욕망이 무엇보다 앞섰다.
에온의 열두 번째 위상인 알데반이 소리쳤다.
“베르덴 폐하, 만세!!”
“고결한 태양이시여!!”
베르덴! 베르덴! 베르덴! 베르덴! 베르덴!
그리고 베르덴의 이름이 이 전쟁의 종막에서 울려 퍼졌다. 군림자 라테온이 주저앉은 채 목청이 터져라 그를 연호했다.
모험가 파티인 만하의 겔톤도, 도살자 갈리아크도 합세했다. 방주의 테온과 로크도 함께했다. 이야말로 에온의 위상이었다.
“나…… 상황이 얼추 정리되면 가주랑 함께 고향에 가야겠어.”
이자벨라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부끄럽다는 듯이 손끝을 서로 부딪쳤다. 베타는 어깨에 있었다. 그녀는 아직 그토록 찾고 있던 동생인 제나아가 바로 근처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집부터 지어야지.”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아드리안은 아주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베르덴을 보고 있었다. 주군이 최고다. 세상은 머지않아 주군의 것이 되리라.
“…….”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스터 벤디에가 아드리안에게 공주님 안기 자세로 품에 안겨 있었다. 아드리안은 베르덴에게 주목하느라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한 듯했다.
그때였다.
“……베르덴.”
성녀 에르세티아가 그를 부르며 다가왔다. 함성이 잦아들었다. 그녀의 몰골은 숱한 전투로 엉망이었지만 여전히 찬란했다.
네르가, 카인, 엘로리스가 사도로서 빛의 광신자를 경계했다. 수틀리면 즉각 네르가는 빛의 신앙자들을 모조리 죽일 작정이었다.
베르덴은 스스럼없이 그녀를 맞이했다.
“성녀 에르세티아.”
“…….”
빛의 신인은 베르덴의 신격을 느꼈을 것이다. 바로 간파하지는 못했어도 결국 눈치챘겠지. 다만 베르덴은 그들이 여기서 이단 신앙을 운운하며 적대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녀가 있기에 이단 성전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광신자니까.’
광신자는 맹목적이다. 그러니까 본인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에르세티아는 그 신성력을 인지했음에도 베르덴을 신으로 볼 수 없다.
빛의 여신의 실물을 본 적도 없는데 실재하는 다른 신의 존재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덕분에 오랜 죽음으로부터 이렇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감사합니다, 베르덴.”
에르세티아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위축된 듯 눈가를 살짝 떨었다. 신을 코앞에 두고도 신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 부정의 마음.
이른바 현실 도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