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87

1187화 제6사도 (11)

제2차 초월자 전쟁이 종결됐지만 곧 일사불란하게 수습이 시작되진 않았다. 끝내 옛 왕은 완전한 죽음을 맞았고, 모든 사문은 폐쇄됐다.
시간은 다시 대륙의 편이었다. 이제 더는 급할 것이 없었다.

“여기는 주인 없는 땅이다! 연합장께서……! 세계 연합장께서 옛 왕을 참하셨다!”
“옛 왕이 처단됐습니다. 반복, 반복합니다! 옛 왕은 처단됐고, 시타델은 붕괴됐습니다!”
“크세리온 제국의 수도, 침몰 확인.”
“우리가…… 승리했다.”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정보원들은 통신 장치를 통해 바쁘게 세계 연합의 승전 소식을 대륙에 전파했다.

세계 연합 본부는 시타델의 공습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지만, 마도국의 조사국장이 아티팩트를 제때에 발동한 덕분에 각국의 고위 정보원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아직 건재한 연합의 정보망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제 기능을 다했다.

<소멸>

옛 왕의 시신은 망화로 화장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보란 듯이 학살자의 말로를 전시해 위업을 기리는 용도로 쓸 법도 하지만, 베르덴은 물론 그럴 계획이 없었다.
에온의 제1계명이란 지성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 것. 아칸드는 죽음으로 심판받았다. 그러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화르륵…….

사람들은 시타델의 수많은 잔해와 언데드 시체가 널린 전장 한복판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옛 왕을 지켜보았다.

그 주변만큼은 고요했다.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지만 누구도 이를 표출하지 않았다. 일부는 멍하니 있다가 서서히 잠에 들기도 했다. 이번 전쟁에서 겪은 고통과 희생이 검은 화염에 삼켜지는 듯했다.
죄의 근원이 타오르니.
희생자들의 울분도, 복수심도 재가 되어 어딘가로 흩날리리라.

“…….”

카스티안과 안데스도 말없이 지난 800년의 인연을 정리했다.
혈연이자 악연이었던 운명을…….

이자벨라가 암녹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경에 있다가 탈출하니 결전이 코앞이었던 터라 솔직히 말해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여운이 그리 길지 않았다.

‘이제 큰 문제 하나 해결한 건가.’

제2차 초월자 전쟁은 과거가 되었으니 결국 새로운 현재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마경.’

베르덴에게 마경, 그러니까 마해에 관해서 보고할 게 많았다. 적룡 사르칸드라의 장난감을 비롯한 살아 움직이는 왜곡된 변화와 진화의 온상지.
그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부순 크세리온 제국과 다른 의미로 인세(人世)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미개척 지대였다.

만약 그것들이 풀려난다면…….

‘나도 모르게 가주처럼 생각하게 되네.’

베르덴과 함께 다니며 이자벨라도 습관처럼 최악을 상정했다. 사랑하면 닮는다고 하던가. 그녀는 그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자벨라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음?”
“…….”

아드리안은 옛 왕의 끝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안고 있었던 벤디에와 눈을 마주쳤다.

벤디에는 시타델의 지하 공간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언데드 군을 상대했다. 베르덴이 결전을 벌이는 동안 내내 말이다.
동대륙 남부에서부터 전장이 쭉 이어졌으니 부상도 부상이나, 특히 피로가 심각해 시타델이 붕괴했을 때 여러모로 감각 기관이 엉망이었다.
그런 그녀의 상태를 간파했기에 아드리안이 직접 구출한 것이다.

“안 내려오고 뭐 했지?”
“전쟁의 끝을 지켜보는 데 방해될까 봐, 그만 때를 놓쳤습니다.”

벤디에가 지면에 내려섰다.

“감사합니다.”
“그래.”
“아드리안 님!”

에네트가 달려왔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아드리안의 팔을 잡았다. 물론 전 스승인 벤디에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괘, 괜찮으십니까? 몸이…….”
“그럭저럭. 너는.”
“예, 보다시피 큰 부상은 없습니다.”

특유의 호박색 눈동자가 걱정에서 이내 안도감으로 물들었다. 아드리안에게 닿아 있는 손에는 부드러움이 감돌았다.

벤디에가 내심 감탄했다.

‘그 에네트가 저런 얼굴이라니.’

아드리안을 향한 에네트의 연심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세간에서 맹용(猛勇)이라고 불리던, 거검을 다루며 상대를 힘으로 쳐부수던 옛 제자의 여성스러운 반응은 상당히 새로웠다.
또한 아드리안이 에네트를 밀어내지 않는다는 점이 생소함을 더했다.

벤디에가 시선을 내렸다.

아드리안의 부상을 확인했다. 가장 큰 것은 다리가 한번 절단된 듯한 흉터. 그의 몸속을 파고든 나무뿌리, 아마 엘프와 연관된 힘이 억지로 그 신체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통찰했다.
아마도 결전이 벌어지기 전에 옛 왕의 용검에 잘린 듯했다.

‘후유증이 크겠어.’

아드리안의 현 항상성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누가 밀면 망가진다. 안 그래도 심각했는데 방금 자신을 포함한 연합군을 구출하고, 잔해를 처리하느라 무리한 대가다.
그런데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있으니 망나니라는 과거의 멸칭이 무색했다.

관심이 가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

유리온에게 단언했듯이, 벤디에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결혼을 한다면 말이다.

‘유리온…….’

폐쇄되는 사문에 갇힌 이들이 떠올랐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크지 않았다.
언령의 기사단이 유리온과 맺은 계약은 사라지지 않았으니 그는 칼리아 일행과 함께 어딘가에 살아 있을 테니까.
단언하건대 머지않아 찾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좋은 생각만 해도 좋으리라. 온전치 않은 초월자를 취하게 만들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술을 에네트에게 준다든가.

골똘히 상념에 잠긴 벤디에.
밝은 얼굴의 에네트.
담담한 척하지만 아프고 힘들어서 식은땀을 흘리는 아드리안.

“이상한 조합이네.”

[그렇습니까?]

“느낌이 좀.”

이자벨라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는 떠들썩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베타가 그녀와 동행했다.

‘가주는 그새 어디로 간 거지.’

그러다 가주의 소꿉친구인 로벨린이 보이길래 선뜻 걸음을 옮겼다.

톡톡.

그때 누군가가 이자벨라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주 마음을 놓고 있었던 탓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해 내심 움찔 떨었다.

“누구…….”
“이자벨라 언니.”

이자벨라는 아무래도 친근한 이미지는 아닌 터라 그녀를 언니라고 호칭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변 사람 중에는 유니아 정도일까.
왠지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뒤를 돌아봤다.

후드를 벗은 제니아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언니, 오랜만.”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었다고 알고 있던 여동생이 눈앞에 있었다. 보헤미른 마탑의 크로든에게 가족이 몰살당한 뒤 십수 년 만의 재회였다.
어느새 어엿한 성인이 되었지만 결코 몰라볼 수가 없었다.

“제니아?”

이자벨라는 뇌가 정지했다.

* * *

거인 네르가는 여전히 본모습을 유지한 채로 세계 연합군을 굽어보았다. 운명의 추종자로 확신한 이들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아주 은밀하고도 자연스럽게 죽일 심산이었다.

“외눈 거인이라니…….”
“흑마법을 쓰던데.”
“다크워튼 마탑과 관련된 존재인가?”

[…….]

네르가의 진심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기한 듯 그를 구경했다.

그곳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엘로리스가 물었다.
불투명한 마법적 장막이 소리를 차단했다.

“새로운 힘은 어떤가요? 카인.”
“머리로는 아직 생소하지만…… 원래 가진 것처럼 편안하기도 합니다.”

카인은 <희생의 권능>을 의식했다. 사도가 된 이상 그도 신성력을 발현할 수 있지만, 마력으로도 권능을 다룰 수 있었다.
사도 네르가가 흑마력으로 <저주의 권능>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루아스교는 카인과 네르가의 힘 자체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동대륙 남부에 있던 이들은 죽은 카인이 돌아온 것을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을 하긴 했지만.

“결국 근간은 마력이기에 가능한 걸 테죠. 특이한 사례입니다. 보통 성직자는 다른 힘이 없어야 신성력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선배라서 가능한 걸까요.”
“옛 왕도 신성력을 제외하고 자신만의 기운을 갖고 있다고 했으니, 아마 그게 가능한 신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기와 마력을 밀어내다 못해 아예 삼켜 버리는 막대한 신성력을 가진…… 제 시대에 활동했던 신들에게는 불가능한 이적입니다.”
“그렇군요.”

카인은 희생의 개념을 관조하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엘로리스 님은…….”
“엘로리스라고 불러 주시길.”
“아, 네. 엘로리스는 신성력을 사용했는데도 달리 주변에서 알아차린 기색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한 겁니까?”
“신전에 있을 때 두 개의 신성력을 동시에 운용해 보니 신앙자 특유의 감각으로도 단정할 수 없을 만큼 불분명해지더군요. 일종의 교란입니다. 믿음에 기반한 성직자는 곧은 성질이 있어 혼란을 느낄지언정 어떤 종류의 혼란인지 특정하지 못하거든요. 물론 장시간 사용하면 발각되니 단기전에만 유용한 수법입니다.”

엘로리스는 신앙의 전문가였다. 운명전이 발발하기 전에 샛별의 신으로부터 힘을 받아 샛별의 사도가 된 존재.
몇 마디 말만으로도 그녀가 신인(神人)이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제 해후할 차례군요. 좀 어색한가요?”
“……조금은요.”

하늘에서 보랏빛이 감도는 은발이 크게 찰랑거리며 날아들었다.

“카인!!!!”
“큽.”

유니아가 무슨 <화염구>처럼 날아오더니 카인을 들이받았다. 뒤로 쭉 밀려나며 쓰러지지 않도록 버틴 그가 숨을 내쉬었다.

“위험하잖아.”
“되살아날 줄 알았어.”

유니아가 펑펑 울었다.

“다시 살아날 줄 알았다고!! 그리고 누가 나 대신에 죽으라고 했어!!”
“미안.”
“나보다 어린 게!! 위계도 낮은 게!!”
“쌍둥이인데 뭔…….”
“그래도 동생은 동생이지, 씨이.”

유니아는 금방 눈물을 닦고 진정했다. 카인이 다시 살아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예견했던 일 앞에서 변화무쌍한 감정은 해안으로 밀려든 파도처럼 빠르게 가라앉는 법이다.

“선배한테 힘을 받은 거지?”
“…….”
“대충 다 보이거든. 애초에 악신의 잔재와 고대의 사도인 엘로리스만 생각해도 이미 답은 나온 거니까. 확증이 조금 부족했을 뿐이지.”

그녀는 미지를 밝힌 마법사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날카롭게 눈을 떴다.

“선배가 신으로 진화한 거지?”
“지, 진화?”

무슨 아인종이나 이형종도 아니고…… 초월자 – 신 진화론에 카인은 난감했다. 그도 직감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신앙적 지식은 탄탄하지 않아 신이 뭔지 타인에게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

“…….”
“아하핳, 아하하하하!”

카인은 슬쩍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엘로리스는 지극히 마법사다운 사고방식이라면서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이와 같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말에 약한 편이었다.

“……나중에 선배한테 물어봐.”
“응? 그러지 뭐.”

유니아가 주변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선배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

카인이 주인 없는 땅을 가리켰다.

“저 아래에.”

* * *

시타델의 잔해는 단순히 크레이터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연합군이 요격했지만, 그들에게 닿지 않은 파편들은 최대한 무시했다.
시타델의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잔해가 아주 넓게 확산하고 있으니 효율적으로 화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전장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도심을 업은 여러 섬이 추락했다. 무게 중심이 쏠리며 거꾸로 처박힌 것이다.
기존의 지반은 붕괴되었고, 그 틈새를 섬의 표면이 깊이 파고들었다.

알파가 외눈을 빛냈다.

[스캔 완료. 특정 건물. 강도 및 경도. 비정상.]

거대한 파편과 땅 사이에서 당연히도 압쇄되었어야 할 건물은 흠집도 나지 않았으니, 그것들이 감내해야 할 충격량은 온전히 지상에 가해졌다.
천장과 바닥이 역전됐다는 점을 제외하면 시타델 일부가 주인 없는 땅에 남은 것이다.

거꾸로 된 지하 도시.

그것이 베르덴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었다.

‘게다가 이런 장소가 한둘이 아니다.’

전장을 중심으로 일대에 불규칙적으로 크고 작은 지하 도시가 생겼다.
아무리 견고하다고 해도 신의 마법을 견딜 수 없을 터였지만, <명계>를 시타델의 지반에 최대한 집중한 탓에 잔존한 것이리라.

터벅, 터벅.

베르덴은 알파와 함께 지하 도시를 탐사했다. 그가 곧장 이곳으로 발걸음한 이유는 하나였다. 관리자가 이쪽으로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는 관리자를 찾았다.

“스승님.”
“……베르덴.”

관리자는 사람을 안고 있었다. 아티슨 마탑주인 펠디안느였다. 당장 확인해 보니 기절했을 뿐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왜 펠디안느가 여기에. 아니, 인드렌이 시타델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인드렌과 동행하고 있었던 건가.’

그럼 인드렌은 어디에?

그리고 관리자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가 진지하게 어둠 속을 노려보더니 순간적으로 백색 스태프를 뻗어 빛을 확산시켰다.

스스슥.

뭔가가 지나갔다.
베르덴의 안력으로도 잡지 못했다.

“여긴 ‘당신’의 힘으로 구현된 장소다. 파괴됐지만 아직 전부가 사라지지 않은 듯하구나.”

관리자가 웃었다.

“그러니 밝혀 내야 하지 않겠는가.”

탐색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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