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203

1203화 베르덴 – 3

세계적인 감정사───레논 버나드.

그 정체는 전(前) 이데란트 연맹장 테리웬과 함께 운명의 추종자였다. 테리웬은 베르덴이 처단했지만, 레논 버나드는 아직 행적이 묘연한 상태였다.

아무튼.

테리웬 연맹장이 용검 마그라스의 소재를 언급하며 참고인으로 레논을 소환했을 때 그놈은 세계 회의에서 세 개의 예언을 언급했다.
대략 400년 전에 살았던 바아렌 모루라는 시인이자 선지자가 남긴 것이라면서 말이다.

서녘에 걸린 칠흑의 관.
어머니의 차갑고 따스한 품에.
그 웅덩이에.
피를 머금은 용의 전신이 솟으리라.

이는 용검에 관한 예언의 전문이며.

금환일식의 날.
히아레마르 내해에.
용검이 나타난다.

이것의 해석은 이러했다.

그렇게 금환일식이 발생했을 때 히아레마르 내해에 거대한 섬이 솟구쳤고, 그 용검이 박혀 있는 가장 깊은 지하에서 옛 왕이 부활했다.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으나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국 운명대로 흘러간 것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개시해 사건의 흐름을 형성하는 힘…… 아무래도 결과를 먼저 드러냄으로써 인과에 간섭하는 권능으로 보인다. 인과를 고정하는 운명에 어울리긴 하군|

베르덴은 자신이 결론지은 제1시도의 편린을 입에 담았다.
이자벨라, 알파, 베타, 또한 제1사도의 해당 능력을 알고 있는 녹시아스까지도 입을 다물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베르덴의 이해자는 그가 얻은 정보를 공유받아도 제재를 받지 아니한다───새로 제정된 이 규칙에는 베르덴의 발언권과 이해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그러니까 베르덴에게서 들었다고 해서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다는 것.

만약 이자벨라가 여기서 한마디만 잘못 언급하면 그 즉시 금기의 제재를 받는다.
금기마다 처벌 수위는 다르지만, 다른 중요한 것에 비해 사소한 내용이라고 해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혹은 더 나아가 발언한 문장 자체로 인과의 흐름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다만, 그걸 굳이 추종자를 통해 세계 회의에서 언급했던 것을 고려하면 여러모로 제약이 있는 듯하다. 간단히 예를 들어 최대 다수에게 들려줘 그 예언을 믿게 하든가, 아니면 신경 쓰게라도 하든가 하는 식으로|

베르덴은 금기의 일부를 공유하고는 자신의 견해로 마무리 지었다.

|앞으로 과거의 예언들을 염두에 둬야겠군. 어쩌면 예언을 부정해 다수가 믿지 못하게 만들면 파훼될지도 모르니|

그가 충고했다.

|모두 유념하도록|

베르덴의 이해자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일단 녹시아스에게 하려던 질문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전에 이것을 이자벨라가 이해하려면 먼저 진실부터 알려 줘야 했다.

|이자벨라|

“응?”

베르덴은 갑자기 주제를 바꿨다.

|악마는 본래 인간이기도 했다|

* * *

운명의 창조에서 탄생한 녹시아스는 당연히 영혼에 대한 금기와 종극에 찾아올 종말에 대해서 알고 있고, 알파와 베타도 이미 들었으니, 청자는 이자벨라밖에 없었다.

“악마의 기원이…… 뭐?”

이자벨라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세간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렇게 표정이 다채로운 여인이었다.
당연한 것이다.
키퍼───아세트로 올딘이 행운의 선율가의 은퇴 소식에 충격을 받았을 정도로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의 감정이 풍부하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까.

우주의 종말.
영혼의 탄생 배경.
최후의 땅.

베르덴은 유려하게 설명을 마쳤다.

알파와 베타가 평소처럼 아주 작은 손으로 박수를 쳐 베르덴에게 고생했다고 말하듯 찬양할 법도 했지만 지금은 점잖게 침묵을 지켰다.

주변의 칠흑 같은 어둠에 어울리는 고요가 그들을 에워쌌다.

“악마가 인간에게서 비롯되기라도…… 했다면…… 설마.”

이자벨라가 떨리는 손을 베르덴의 손등에 얹었다.

“그, 그럼 내 가족들도…… 악마로 변해서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하녀장 마리엔느.
정원사 카버.
남동생 카엘.

보헤미른 마탑에 잔혹하게 살해당한 그들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자기 탓에 죽은 이들이 운명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재료가 됐든, 다섯 번째 세계에서 도망치다가 고통과 압력에 영혼이 뒤틀려 악마로 변이했든…… 무엇이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자벨라는 자신이 철이 들기 전에 병사한 부모도 생각했다. 그리고 고향 마을에서 살다가 죽은 친절한 이웃도 문득 떠올렸다.

[가족들이 악마로서 재탄생했을 가능성은 낮다.]

이에 녹시아스가 말했다.

[그리고 설령 악마가 됐다고 해도 네 기억과는 다를 테지.]

다섯 번째 세계의 인력과 차원의 압력에 대부분의 악마는 원형이 뭉개지니…… 전생(前生)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악마는 극소수다.

인류와 같은 수준의 지성을 갖춘 존재도 소수에 불과하다. 악마 군단장처럼 고등한 지성체가 탄생하는 비율은 인간에게서 초월자가 출현하는 비율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운명에서 도망치고, 세계의 틈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온전히 기억과 자아를 유지하고, 이 첫 번째 세계인 대륙에 도착한다───라는 기적적인 재회의 확률은 얼마나 될까.

대악마 녹시아스가 당장 결론을 주었다.

[헛된 기적을 바라지 마라.]

태초 이래 개인의 모든 행운을 끌어모아도 그것은 어렵다. 더군다나 세 명이다. 부모를 더하면 다섯이고, 이웃을 더하면 더 많다.
그 모두에게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당신’이 운명을 버리고 악마들을 자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

두근.

이자벨라가 절망감에 흔들린 그때였다.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

“……가주?”

|희망은 있다|

베르덴이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고 녹시아스에게 턱짓했다.

설명해라.
신의 뜻대로.

[악마는 교묘하고, 교활하고, 악랄하기도 할지언정 절대로 거짓을 약속하지 않는다. 이는 거짓된 운명의 부산물로 탄생한 것에 대한 근원적인 반발이지. 모든 악마가 악마인 이상 예외는 없다.]

녹시아스는 차가운 소년의 모습으로 이자벨라를 응시했다.

[이는 이페아카른의 천성(天性)이기도 하다.]

“그 말은…….”

[거짓 없는 악마의 계약은 강제되지 않는다. 계약을 거부했다고 죽이지도 않는다. 모든 계약은 서로 간의 진심 어린 합의가 전제된다.]

녹시아스가 다리를 꼬았다.

[생각해 보아라, 이자벨라 데이로스. 이페아카른이 제니아 데이로스에게 계약을 권할 때 무엇을 약속했을 것 같은가. 어떤 대가를 속삭였길래 네 동생이 음습한 촉수 놈과의 계약을 진심으로 수락했을까.]

제니아는 못 본 사이 다 커 버렸지만 그 마음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베르덴을 만나지 못했던 시절의 이자벨라 자신처럼 제니아도 저택이 불타던 그날의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가족의, 부활.”

[그 비극의 현장에 이페아카른이 있었다.]

과거 마도국의 귀족이었던 데이라스 가문의 참사를 대악마가 지켜보았다. 이자벨라와 제니아가 울부짖던 그 옆에 악마의 형상이 있었다.

[이페아카른은 제니아 데이로스를 구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죽은 가족을 부활시켜 주겠다는 계약을 받아들이기까지…….]

녹시아스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해했나?]

“가족들의 영혼이 이페아카른에게 있다는 거잖아.”

[네가 기억하는 가족을 기대한다면 불행 중 다행인 셈이지. 본래 가야 할 곳으로 갔다면 진즉 수레바퀴와 하나가 됐을 테니까…… 하나, 불행은 결국 불행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제니아 데이로스는 이페아카른에 대해 너에게 뭐라고 했지?]

“……아무것도.”

[이페아카른은 계약이 지닌 제약을 지렛대 삼아서 계약자들을 부리는 데 능하다. 놈은 결코 그 주도권을 놓지 않을 것이다. 데이로스 가문을 잡고 있기만 해도 우리의 신에게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니.]

이자벨라 자매는 가족들의 영혼을 외면할 수 없고, 베르덴은 이자벨라를 버릴 수 없다. 이페아카른에게는 유례없는 경사가 난 셈이었다.
수십 년 전에 주구로 삼았던 인간이 운명 파괴자와 사실상 직접적으로 연결될 거라곤 감히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영혼을 포기하면 간단하겠지만…….]

|이자벨라의 가족은 내가 책임진다|

베르덴이 그의 말을 단칼에 일축했다.

|그러니 마음에도 없는 말로 짓궂게 굴지는 마라, 녹시아스|

베르덴은 기둥이었다. 에온이라는 가문의 가장이며 가주였다. 종극에 찾아올 전 우주의 종말이 대수인가. 종말이 도래한다고 해도 이자벨라는 베르덴의 곁에 있으면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신참이면서 텃세 부리지 마십시오.]

[녹시아스. 혼나.]

[뭐? 감히…….]

알파와 베타가 툭 한마디씩 더 얹었다. 올다르크의 창조물다운 싸가지. 녹시아스는 속으로 부들부들 떨며 수긍했다.

[주의하겠습니다, 신이시여.]

|그럼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하도록 하지|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슬슬 대화의 끝이 보였다.

|강대한 영혼을 재료로 사용할수록 운명의 완성을 앞당길 수 있다면…… 초월자들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거지?|

초월자는 타고난 저항자라 운명의 눈엣가시지만 그 경지만큼이나 영혼 또한 아주 강하기에 운명의 우수한 재료이기도 했다.
초대 마도왕이 초월자 개념을 설계할 때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을 터.

[모든 초월자는 스스로 굴복하지 않는 이상 운명의 수레바퀴와 합일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재료로 썼다간 극심한 반발이 일어나 애써 구축해 둔 개념에 균열만 생길 테죠.]

|그럼……|

[저도 이론적으로만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제가 알고 있는 전부이지만, 신께서 생각하신 대로입니다.]

녹시아스가 이번에도 베르덴을 위해서 답을 아끼지 않았다.

[초월자는 운명에 의해 소모되지 않습니다. 본인이 바라지 않는 한.]

그렇다면 죽은 초월자의 영혼은 다섯 번째 세계로 떨어져 어떻게 되는가? 지금까지 이 대륙에서 사망한 초월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베르덴 일행은 또 하나의 의문을 떠안았다.

* * *

녹시아스가 그간 축적해 온 세력을 에온에 들였고,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정보를 얻었다. 리버레아스에 온 목적은 달성했다.

베르덴 일행이 대전당의 최심부로 복귀했다.

결과적으로 일행의 숫자는 같았지만 구성원은 조금 달라졌다.
침묵의 사막에서 발견한 그림자 악마를 안전하고 편안한 리버레아스에 두고…… 최고위 악마를 데려온 것이다.

“스읍───후우…… 아, 실례했습니다. 신이시여, 아니, 베르덴 님. 이 세계의 공기를 만끽하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라 한심한 꼴을 보였습니다, 후후.”

타락의 군단장 – 베리엘.

완벽하게 인간 여성으로 위장하니 악마임을 간파할 수 없었다. 베르덴도 애써 집중하지 않으면 영락없는 인간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녹시아스의 직속 연락책으로서 이제 에온의 권역에 머물게 되었다.

“베르덴 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바칠 수 있으니 부디 험하게 부려 주시길.”
“그래, 잘 부탁하마.”
“부탁이라니. 그런 과분한 말씀을…….”
“케이먼, 우리는 따로 바깥에 볼일이 있다. 그러니 먼저 올라가서 베리엘을 안내하고, 위상들에게 소개해 주도록.”
“알겠습니다…… 베, 베르덴 님.”

케이먼은 아직도 얼이 빠져 있는 듯했다.
조만간 정신 차리겠지.

케이먼과 베리엘이 이 최심부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이자벨라가 말했다.

“당분간 베리엘 때문에 떠들썩하겠네. 로메르가 보면 특히 사족을 못 쓰겠는걸.”
“분명 그렇겠지.”

알파와 베타도 동의했다.

[로메르 꼴불견. 베타. 내기?]

[받겠습니다. 로메르가 베리엘에게 꽃을 선물하며 수작을 부린다에 1억 엘크를 걸겠습니다.]

[로메르. 초면부터 술 권유. 2억 엘크. 덤벼?]

[3억 엘크로 올리겠습니다.]

[확인. 애송이 동생. 덤벼.]

참고로 여색을 밝히는 외로운 늑대───로메르는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손가락들이 날아가고, 또 심장 부근에 칼이 들어와 죽을 뻔하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목숨을 건져 치료를 받았다.
녀석이 베리엘 같은 악마스러운 미인을 보면 어찌 반응할지는 뻔했다.

“잠시 어레인에 다녀오자.”
“고아원에 갈 거구나.”

전쟁 내내 방문하지 못했으니 원장님을 못 본 지 꽤 됐다.

“챙길 수 있을 때 챙겨야지.”

* * *

피울음 역병이 발발했을 당시 라스카벨 마을에서 어레인으로 이주한 고아원에는 새롭게 어레인이라는 명칭이 더해졌다.

“어머, 베르덴! 로벨린하고, 이자벨라까지……! 어, 어서 들어오렴, 어서!”

현관에서 베르덴 일행을 맞이한 마일라는 기쁨을 조금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그들의 소매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베르덴 오빠야다!”
“이자벨라 누나아!”
“로벨린 언니!”
“알파! 알파하고 베타도 왔어!”
“알파는 내 거야!”
“베타! 베타, 우리 그거 해 주라!”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마일라 옆에서 아기새처럼 재잘거렸다.

[알파와 베타. 놀이 담당. 본디 희생은 자처하는 것. 알파를 따르라.]

[이동하겠습니다.]

알파는 어느 여자아이 머리 위로 올라가 군림하며 지휘했고, 베타는 아주 계산적이고 안정적으로 아이들로 저글링하며 자리를 옮겼다.

“모두 괜찮은 거지? 그치? 다친 데는 없는 거지?”
“네, 원장님.”
“저도 그렇고, 가주도 보다시피요.”

베르덴과 로벨린만이 아니라 두 인공 골렘과 이자벨라 등도 종종 어레인 고아원에 얼굴을 비추었기에 어색함은 없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마일라는 그들의 얼굴과 손을 몇 번이고 더듬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베르덴에게 이곳은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나는 버려진 자들의 신이 된 걸까.’

그 배경은 역천 이전부터 이미 형성돼 있었을지도 몰랐다. 운명이 아닌 그저 우연한 숙명. 호스트가 아직 입증하지 못한 필연론.

베르덴은 고아였다.

베르덴은 버림받았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든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든 그저 혼자였다. 그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무력하고 쓸모없는 베르덴을 품에 안아 기꺼이 책임을 지고 키워낸 보호자가 있었다. 평범하고 연약하지만, 희생을 자처할 줄 아는 마일라라는 여인, 원장님…… 나의 어머니.

“너무 고생했어, 베르덴.”

버려졌으나 구원받았다.
베르덴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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