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05

1105화 대공세 (1)

아칸드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이 다양한 기물들이 놓여 있는 지도를 내려다봤다.
그중에서 핵심은 크세리온 제국의 사령관들과 세계 연합의 토벌군단장들이 사문의 존폐를 두고 대립하고 있는 구도였다.

그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탁.

새로운 정보를 토대로 지도가 갱신됐다.

본래라면 곧바로 판단을 내렸어야 하지만 시타델의 알현실은 고요했다.
그렇다.
아칸드는 테르네티아 연방에 놓은 베르덴 기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두운 눈빛에 확신이 아닌 의문이 서렸다.

‘이건 무슨 수인가.’

베르덴이 대륙 어딘가에 있는 본부에서 기어나와 느닷없이 최전선에 등장했다.
괴리감이 느껴졌다.
여태껏 아칸드의 수를 받아치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 심지어 곳곳에서는 공간을 넘나들기까지 한다.

7대 마도왕의 동력원으로 공간을 애써 안정시키는 것도 머잖아 한계에 임박할 텐데, 이는 강수의 범주를 넘어선 과감함이었다.

무릇 지략가라면 한낱 감에 의존하지 않고 근거에 기반해 행동해야 하는 법.

운명 파괴자라면 더욱 그렇다.

절대자의 길을 걷고 있기에 ‘당신’과 올다르크처럼 책임을 짊어지고 있으니까. 타당한 이유 없이 지키려 하는 것을 모조리 도박수에 걸 정도로 무모한 판단을 내릴 리 없다.

‘베르덴은 상황이 변했다고 인식했군. 왜.’

베르덴을 먼저 움직이게 만들 요소는 절대로 많지 않았는데…… 개중 하나로 최근 아칸드가 던진 은밀한 수를 꼽을 수 있었다.

‘네크바엘의 존재.’

시타델에서 출격한 사룡을 세계 연합에서 알아차린 건가. 확실히 그걸 인지했다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다만 아칸드는 납득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그렇게 확단할 수 없었다.

하나는 실리.

베르덴이 현시점 테르네티아 연방으로 가서 얻을 수 있는 명확한 이점이 있는가?
군단을 조력하는 걸 제외하면 자신을 미끼로 삼아 네크바엘을 유도하는 게 고작이다. 어긋난 판단까지는 아니나, 연합이 가장 경계하고 있을 사룡에 대한 선제 대책으로 미흡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보의 출처.

당대의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단서조차 없이 사룡의 존재감을 깨닫기는 어렵다.
그 경우는 아예 배제해도 좋다.
그렇다면 베르덴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룡의 행방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나의 제국에서 정보가 샜다…….’

아칸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시타델을 관조해 보아도 정보가 유출될 만한 요소는 전무했다.

‘그 가설은 한없이 비약적이군.’

루네시카의 영혼 조각에 모종의 수를 썼을 경우의 수도 상정했으나.
순수한 파괴에 능한 베르덴에게 그럴 능력은 없을뿐더러 아칸드의 충직한 하인은 단 하나의 티끌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다시 말해…… 베르덴은 네크바엘 때문에 행동에 나선 것이 아니다. 네크바엘과는 무관한 다른 내막이 있다.’

우득.

아칸드는 이미 사망한 제6사령관의 기물을 가볍게 으깼다.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그것이 이내 펜드렌 호수 부근에 떨어졌다.

정체불명의 기물.

베르덴이 출진했다는 소식과 함께 펜드렌 호수에서 ‘미확인 전력’이 확인됐다.
경지는 알 수 없으나, 중규모 언데드 군단의 반응이 삽시간에 사라진 것을 보아 못해도 초월자급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파악하지 못한 전력이라.’

아칸드는 생각에 잠기면서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깨를 작게 들썩였다. 뭔지는 몰라도 베르덴이 꺼내든 패는 명백히 아칸드의 생각을 벗어나 있었다.

“나에 의한 전쟁은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세계의 반석에 오른 자가 이리도 쉽게 변화를 강제하는군.”

베르덴이 모든 대륙에 대대적인 공세를 전개했다.
전략의 근거는 정보가 아닌 확신.
아칸드가 무엇을 하든 다수의 사문을 동시 공략할 수 있다는 판단의 발로이니, 전쟁의 초입에 어울리는 눈치 싸움은 막을 내린 셈이다.

아칸드가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차례대로 크세리온 제국의 기물들을 두었다.
각 전장에서 어떠한 그림이 그려질지 떠올랐다.

베르덴의 수.
아칸드의 수.

상대에게 휘둘리거나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전장. 모든 것이 승패의 가능성에 직결되는 필연의 도입부.

“운명 파괴자가 대공세를 시작했다.”

아칸드가 마지막으로 사룡의 기물을 대륙 어딘가에 배치했다.

“맞이하도록.”

제2차 초월자 전쟁은 본격적인 혈투가 난무할 중반에 접어들었다.

* * *

테르네티아 연방의 서쪽에는 바다가 있으며, 바다 너머에는 서대륙이 있다.

국가 간의 끝없는 교류야말로 경제 발전의 핵심인 현대에서는 비행정과 공간 이동진을 통한 물류 이동이 활발하지만, 항구를 경유하는 해상 무역로야말로 유서 깊은 경제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다.

티셰리 항(港).

연방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항구는 일련의 사태로 인해 공허했다. 일견 숨이 끊어진 시체처럼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사문의 등장으로 완전히 방치된 도시는 갈매기나 쥐 같은 동물의 안식처로 변모했다.

그곳에 무려 수백 척의 군함이 입항했다.

“언데드 반응은 전무하군요.”
“그하하하, 이거 작정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니 고대 제국도 알아차리지 못하는군. 해상전은 영 귀찮았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아카데미 교장, 일마리온.
레기온의 로드, 그리즈월.

아르나크 제국, 발데라 왕국, 바림티엘 협국, 10대 마탑, 화산 지대의 드워프 그리고 일마리온처럼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연합 함대가 서대륙에서 출발해 중앙 대륙에 당도했다.

붉은 화산의 클랜장이자 화산 지대를 대표하는 드워프, 아르쿨의 우렁찬 목소리가 텅 빈 항구 도시를 떨게 했다.

“시체 놈들이 득실거리는 땅에 도착했다!!!”

이종족 전쟁 이후로 화산 지대에만 처박혀 사는 고지식하고 이기적인 난쟁이들이 세상의 흐름에 끼어들었다.

“전쟁 병기를───하역하라──────!”

하역하라!

드워프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니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와 함께 대형 선박들이 싣고 온 드워프제 무구들과 공성 병기들이 대륙 위로 옮겨졌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균일한 형상과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양산품.

절개를 지닌 망치──그하룬이 화산 지대를 떠나기 전까지 완강하게 반대했던 풍경. 드워프는 창작물을 양산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전통이 결국 아르쿨에 의해 무너졌다.

창조와 금속의 종족이 전쟁을 부르짖었다.

* * *

테르네티아 연방의 동쪽에는 대수림이 존재하며, 또 연방과 대수림 사이에는 커다란 강을 중심으로 한 정글이 있다.

그 정글은 엄연히 대수림으로 분류되지 않는 터라 아무나 넘나들 수 있지만, 워낙 험지라 이를 원활하게 누빌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말이다.

무수한 그림자가 풀잎을 스쳐 지나간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림자들이 딛고 지나간 나뭇가지에는 일절 흔들림이 없었다.

정글도 숲이며 자연.

대자연의 주민에게는 활주로나 다름없다.

팟────!

냉혹한 샛바람처럼 순식간에 정글에서 빠져나온 엘프들이 질주한다.
곁에서는 정령들이 반짝거린다.
언데드가 발견된 순간 쏟아지는 화살들이 더러운 몸체를 박살냈다. 커다란 시체 골렘이 그들을 막으려 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옆을 지나쳐가는 카란스에게 토막 났다.

유격전에서 엘프를 따라올 종족은 없다.

대자연으로부터 힘과 무기를 얻기에 물자의 조달이 필요 없으니, 자연에 멸망이 찾아오지 않는 한 그들은 무력해지지 않는다.

숲에서 숲으로, 다시 숲에서 숲으로…….

세계 연합에 소속된 엘프 집단은 불리한 평지만을 피해서 진군했다. 날쌔고 유연한 기동력은 장애물이 많은 장소에서 빛을 발한다.

“웩! 악취가 장난이 아니네.”

그러다가 제법 규모가 큰 언데드 군단을 조우하면 정지했다.
우회해도 좋지만, 자칫해서 후방이 막히는 위험은 사전에 제거하는 편이 수월했다. 어차피 전부 없애는 게 목적이기도 하고.

대수림의 눈 – 메르퀴엔이 묻는다.

“평지인데 그냥 무시할까? 아니면 내가 처리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세계수의 관리자 – 세렌디아가 마력을 발현하면서 숲의 경계를 나섰다. 휘하 엘프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세렌디아는 평소처럼 드레스가 아닌 은빛과 녹빛이 조화를 이룬 의복을 착용한 상태였다. 매끈한 바지가 가장 큰 특징이었다.
관리자 전용의 전투 복장.
그녀의 허리춤엔 세계수의 가지로 제작된 목제의 쌍검이, 등 뒤에는 세계수의 뿌리에서 비롯된 대궁이 자리했다.

[엘프……!]

지성을 보유한 지휘관급 개체가 있는지 천 단위의 언데드가 엘프의 생기를 인식하고 괴성을 쏟아 내면서 파도처럼 굽이쳤다.

“위대한 어머니시여.”

세렌디아가 부드럽게 한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강하게 움켜쥐었다.

숲이 격동했다.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지진이 발생한 대지에서 무수한 뿌리가 한꺼번에 솟구쳤다. 두께가 약 2m에 달할 정도로 억센 그것이 언데드 군단을 덮쳤다.

뿌리에 뒤얽힌 뼈와 부패한 살점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더니 그대로 으스러뜨리며 빛이 닿지 않는 땅 아래로 끌고 내려갔다.

명을 다한 유기체는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섭리일지니, 죽은 자의 울음소리는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생기 넘치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겉모습은 얌전한 엘프가 따로 없는데, 막상 하는 짓은 베르덴처럼 과격하단 말이지. 관리자들의 복귀 명령도 무시해 버리고.”

메르퀴엔이 팔짱을 끼고 머리를 나무에 기댄 채로 히죽거렸다.

“처음으로 대수림 밖에서 날뛰는 기분이 어때?”
“뭔가 시원하네요, 후련하달까요.”

세렌디아는 언데드에게 관리자의 마법을 행사하는 감각이 낯설었다.
낯설기에, 또 신기했다.

“위대한 어머니께서 베푸신 자연의 은혜에 감사를. 카란스, 위치 보고를 부탁합니다.”
“예, 누님.”

카란스가 통신 장치를 기동했다.

세렌디아는 무해하고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짧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사기가 깊게 스며든 땅에 새로운 자연이 태어나 오염을 흩어버렸다.
마치 새살이 돋아나며 썩은 부위를 내쫓는 듯했다.

통신을 마친 카란스가 말했다.

“계획에 차질은 없으나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형제의 전언입니다.”

메르퀴엔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 안 그래도 빠듯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니야?”
“그래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겠지요.”

세렌디아가 진군 명령을 내렸다.

“조금만 더 서두르죠.”

* * *

테르네티아 연방의 남쪽 극단은 대륙의 북부처럼 기온이 매우 낮은 편이다. 계절과 무관하게 한기가 항상 맴돌 정도로.

흰 눈에 덮인 지형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곳에는 미처 연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생존자들이 숨어 있었다.

“기어코 언데드가 여기까지……!”
“달려! 어서 달리라고!”

초대규모 언데드 사태가 발발하자마자 남쪽으로 피신한 그들은 대륙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연합이 조직되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고립돼 정보를 전혀 접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좀 흐르자 생존자 캠프에서는 소수 인원을 파견해 정찰을 도모했다. 언데드들의 동향을 파악할 겸 혹시라도 살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운 좋게 네 번 중에 한 번꼴로 새로운 생존자들을 찾아내긴 했지만, 꼬리가 길었는지 결국 수천 마리의 언데드에게 발각당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기동력이 높은 언데드 기수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대로는 전부 죽는다.’

금 등급 모험가 출신의 아버지는 결국 안고 있던 아들을 내려놓았다.

“시간을 끌어 볼 테니까 이대로 쭉 가! 남쪽으로!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아빠!”
“여보, 어서!”
“……미안해, 미안해.”

어머니는 반문하지 못하고 울부짖는 아들을 안고 남쪽으로 달렸다. 사내는 그들의 뒷모습을 향해 한껏 웃어 보이고는 검을 들었다.
기로 신체를 강화하며 생존자들에게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직면했다.

“하, 날씨까지 안 좋군.”

시야가 맑지 않다.

눈보라가 몰아친 건 언제부터일까.

“허억, 헉……!”

어머니도 모험가 출신이었지만 결혼하고 은퇴한 지 오래라 신체 능력이 현역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떨어진 상태.
저항하는 이들을 피해 옆으로 우회한 상위 언데드 기수를 따돌리기는 어렵다.

타그닥, 타그닥, 타그닥.

‘특유의 발굽 소리. 본 캐벌리어……!’

위험도는 금 등급.

혼자서 어찌하기 어려운 난적이다. 게다가 아들을 데리고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니는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아들을 내려 두고 목숨을 던지는 수로 일격에 승부를 보는 것이 답일 터.

아들과 같이 죽거나.
아들과 함께 살거나.

그렇게 각오하고 움직이려는 순간 뭔가가 그녀의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쩍!

도끼였다.

투척 도끼가 본 캐벌리어에 박혔다. 박힌 걸 넘어 멀찍이 날려 버렸다. 저 작은 도끼에 어찌나 강한 힘이 실렸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뭐…….”

어머니는 뒤돌아보며 당황하다가 고개를 바로 하자, 눈보라 너머에서 하나둘씩 일렁이는 그림자들을 보고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두려움에 사무쳐 아들을 꽉 끌어안으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복장이 전혀 통일되지 않은 거친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

모자(母子)를 힐끗 바라본 자들이 곧 사나운 미소를 짓더니 짐승처럼 함성을 질렀다. 그들이 모자가 왔던 길을 반대로 질주했다.

눈보라 너머에서 테르네티아 연방에서 볼 수 없는 야만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아.”
“…….”

울음을 그친 어린 아들이 우측을 가리켰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어머니는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거기엔 야만과는 거리가 먼 청년이 있었다.

마수의 털로 장식된 두꺼운 망토.
청색의 갑옷.
화사한 금발과 벽안.
서릿발을 흩뿌리는 보검.

“생존자들의 안전은 확보했습니다.”

대륙은 평평하지 않고 둥글기에 북쪽으로 나아가면 남쪽이 나온다. 즉, 북극의 프로하스와 남극의 연방은 같은 성질의 한기를 공유한다.

“이대로 밀고 올라가겠습니다.”

프로하스 토벌군단장 – 에레스 아인드겔 프로하스.

프로하스 국왕과 북부의 감시자를 상징하는 열한, [니비스]는 북부의 냉기가 닿는 모든 곳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유 아티팩트.

프로하스의 사문을 봉인한 에레스가 대군을 이끌고 테르네티아 연방의 사문으로 진군한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중앙 대륙 남쪽이 얼어붙었다.

* * *

언데드가 아무리 많아도 동서남북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밀고 들어오는 세계 연합군을 막아 내는 건 어렵다.
그걸 인정한 것인지 틈틈이 앞을 가로막던 놈들이 후퇴했다. 사문을 중심으로 하여 몰려들더니 개미 떼처럼 군집을 이루었다.

트리톤이 아연실색했다.

“뭐 이리 무지막지한 숫자란 말인가.”

헬리온 마탑의 정찰용 매직 아이템을 보내 사문을 식별하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언데드로 이루어진 장성(長城)을 넘어야 한다.

베르덴이 말했다.

“며칠 뒤에 도착하면, 사면에서 깎아내다가 균열을 내 사문의 입구를 확보한다. 돌입 선봉은 아드리안과 레온하르트. 그 안에 무엇이 있든 본대가 자리를 잡을 공간을 만들도록.”
“알겠습니다, 연합장님.”

레온하르트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리안은 매직 아이템 너머로 보이는 초대규모 언데드 군집을 응시했다…… 그 안에 특이한 언데드가 하나 눈에 띄었다.

사령관 개체.

놈은 매직 아이템 너머 아드리안의 시선을 감지한 듯 대놓고 사문으로 물러났다.
마치 들어올 테면 들어오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 새끼가.”

아드리안이 저 시건방진 언데드 사령관을 표적으로 정했다.

* * *

한편, 서대륙 남부의 펜드렌 호수.

그곳의 사문은 호수를 오염시키고, 그 오염된 물에 닿은 자들을 언데드와 인간의 경계에 머무는 이형으로 변이시킨다.

아르나크 제국 함대가 포격해 오염된 이텔 왕국의 해상 도시는 멸망했지만…… 애석하게도 펜드렌 호는 너무도 넓으며, 자원이 풍부한 터라 여러 해상 도시가 존재했다.

이미 오염의 영향이 닿은 도시가 몇 개 있다.

테아렐이 지휘하는 펜드렌호 토벌군단이 공세를 퍼붓고 있을지언정 사문의 기능으로 인한 주변부의 피해는 막을 수 없다.

[함께…… 녹아내리자.]

“시이바아아알!!!”

이형체들이 호수 가장자리로 기어나온다.

부패한 점액질로 이루어진 보랏빛 슬라임뿐만이 아니었다.
기괴하게 뒤엉킨 혈관으로 이루어진 몸에, 기다란 목으로 머리가 이어져 있는 괴물. 일반적인 언데드와 궤를 달리하는 끔찍한 형상의 그것들이 부패한 악취를 뿜어대며 몰려들었다.

서대륙의 방어 전력이 대처하고는 있으나, 인구가 풍부한 도시들을 통째로 집어삼킨 놈들의 수는 감당키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콰과과과과과과광!
투콰아앙!

그래도 막아 냈다.

미리 설치한 공성 병기를 모조리 작동하여 육지로 올라오는 것은 차단했지만…….

“진짜 미쳐 버릴 것 같군.”
“시발, 시발……! 흑, 흐으으윽.”

수면 위로 반쯤 튀어나온 인간의 머리들이 그들을 주시했다. 익사체 같은 눈동자.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입 주변으로 기포가 부글거리고 있다.

공포란 이런 것인가.

‘두렵다.’

미스릴 등급 모험가조차 이런 이형종들은 경험하지 못했다. 괴물들의 기괴함에 이골이 났어도,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머리들은 산 자들을 눈으로 좇았고, 경계가 느슨해진다 싶으면 조금씩 수면 위로 몸을 드러냈다.

토벌할 수 있는 개체지만 언젠가 집어삼켜질 거란 상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저들의 일원이 되는 장면을 그렸다.
몸은 녹아내려 변이되고, 자신의 머리가 물 위에서 생명체를 좇는…….

울컥.

미스릴 등급 모험가는 심한 구역질이 났지만 속을 게워 낼 수 없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정신이 약화될 테니까.

‘버텨야 한다.’

그렇게 이형체들과 눈싸움을 벌이며 방어 전선을 지키고 있던 그때였다.

“추악한 광경이군.”
“……!”

낯선 음성에 즉각 물러나 검을 뽑았다.

난생처음 보는 칠흑의 로브를 두르고, 얼굴이 일절 드러나지 않는 기이한 가면을 쓴 누군가가 경계병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방어 부대에 속하지 않은 존재였다.

‘어, 어느 틈에.’

미스릴 등급 모험가는 거리를 빼앗겼고, 상대가 원했다면 자신의 목덜미에 검을 꽂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식은땀이 쏟아졌다.
죽음을 직감하고 어금니를 깨문 그가 지지 않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크세리온 제국에서 온 건가……!”
“그 반대다.”

항거할 수 없는 중압감이 그들을 짓눌렀다.

쿠구구구구구구……!

낯선 자가 어마어마하고 불길한 마력을 내뿜더니 가볍게 손목을 비틀었다.
호수 위의 머리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이형체들의 부릅뜬 눈동자들이 사방으로 튀며 오염된 호수 아래로 가라앉았다.

감이 좋은 마법사들이 덜덜 떨었다.

“흑, 흑마법…….”
“그런데, 위계가 대체?”

낯선 자의 행동을 본 미스릴 등급 모험가가 침을 삼켰다.
희망이 고개를 내밀었다.

“혹시 연합에서 오신…….”
“연합 본부.”

……!

세계 연합 본부에서 보냈다는 말뜻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세계 연합장, 그 직속!

누군지는 몰라도 대충 어떤 경지에 오른 존재인지 눈치껏 알아차렸기에 모험가는 즉각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초월자를 뵙습니다!”

세간에 드러나지 않은 비공식 초월자.
그것이 낯선 자의 정체이리라.

“펜드렌호 토벌군단을 지원하겠다.”

낯선 자는 말릴 새도 없이 거침없이 호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느샌가 그는 이미 오염된 호숫물에 닿아 있었다.
그렇지만 평범한 이들처럼 녹아내리기는커녕 되레 호수가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수 위로 기묘한 파문이 일었다.

“방어선을 유지하라.”

그 말을 끝으로 펜드렌 호수로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

스르륵…….

낯선 자───국제 사회에 대두된 적 없는 8위계 흑마법계 초월자로 위장한 베르덴의 본체가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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