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화 대공세 (7)
테르네티아 연방 토벌군단의 선발부대가 무사히 사문에 진입했다.
세렌디아는 [명인의 존저]에 저장된 마력을 소모해 아르보르의 생목이라는 거대 수목을 불러내어 자연의 영역을 활성화.
초록빛의 물결이 점차 확산한다.
울창한 초목이 뒤얽혀 언데드 군단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고, 사문을 폐쇄할 본대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엘, 프……!]
[카아아아아악!]
망자가 조악한 괴성을 질렀다. 생명에 대한 증오가 식물을 뜯어냈지만 그것은 그보다 빠른 속도로 틈새를 메우기를 반복했다.
고위계 마법도 그 벽을 태우지 못했다. 아르보르의 생목에 원거리에서 공세를 가했지만 워낙 거대한 터라 무너뜨리는 일은 요원해 보였다.
가디언 엘프 중 한 명이 멈칫했다.
대자연의 끝없는 재생력이 쇠퇴의 종착지에 들어선 이형종 무리를 가로막고, 엘프가 아닌 다른 인간종을 보듬는 광경…….
약 4세기 전에 발발한 이종족 전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기에.
“더러운 놈들……! 뒈져! 뒈져! 뒈져!”
“끄아아아악!”
“큭, 데스 나이트 아종 확인! 마탑! 어서 마탑 장로 불러!”
“게리! 안 돼애애!”
“아크 리치 토벌 완료.”
[아아아아아아───아───!]
적의 좌표를 확인한 마력 입자포들이 다시 전장을 강타했다.
비행정들도 가세했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앙!
이렇듯 에온의 휴대용 통신 장치는 전쟁의 양상을 긍정적으로 바꾸었다.
후방 관측자들이 전장을 넓게 주시하며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면, 현장 지휘관들은 이를 참고해 즉각 판단에 반영했다.
전쟁은 순조로웠다.
변수가 있었고, 피와 시체도 늘어갔지만 연합군은 목표하던 사문에 도달했다.
과연 사문을 닫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기는 하나 베르덴의 세계 연합은 패배를 상정하고 조직되지 않았다.
물론…… 제2차 초월자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건 사문의 폐쇄 여부 따위가 아니다. 무대의 주역들은 그들이 아니다.
지상의 소음이 하늘까지 닿았다.
하늘도 다시 소란에 잠길 때가 온 것이다.
* * *
서대륙──펜드렌 호수.
이그나시아의 정신체를 통해 테르네티아 연방에서 활약하고 있는 베르덴, 그 본체는 호수의 밑바닥에서 이형체들을 저주했다.
‘펜드렌호 사문은 제4사령관이, 테르네티아 연방의 사문은 제2사령관이 지키고 있다라. 이로써 아칸드의 측근들이 거의 전장으로 나온 셈인가.’
제1사령관은 위치 불명.
제2사령관은 중앙 대륙 남부.
제3사령관은 동대륙 남부.
제4사령관은 서대륙 남부.
세계 연합이 최우선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판단한 사문들을 비대칭 전력이 틀어쥐고 있다.
‘어쩌면 제1사령관은 마경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속단하지는 않았다.
베르덴 자신이라면 마경의 환경으로 토벌군단의 행동을 지연시키면서, 최고 전력을 유기적으로 지휘해 세계 연합에 혼란을 주려 했을 테니까.
……머릿속에 어둑한 안개가 자욱하다.
베르덴이나 아칸드나 패를 꺼내되 전모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당연할 것이다. 서로가 염두에 두는 전쟁의 결말은 완전히 다를 테니.
피차 암흑 저편에 수를 둬야 하는 형세.
베르덴이 그 어둠 너머의 어둠으로 수를 두기 전에 판을 그렸다.
그렇게 결단을 내리고, 새로운 명령을 하달하려고 하는 순간 통신 장치가 먼저 반응했다. 동대륙에서 온 연락이었다.
───베르덴, 사룡의 위치를 파악했다.
“……!”
사룡 네크바엘.
아칸드와 동급의 위협으로 간주된 존재가 마침내 감지됐다는 희소식이었다.
“어디입니까.”
───중앙 대륙.
라인델은 네크바엘이 어떤 경로로 이동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베르덴의 표정이 굳어 갔다.
네크바엘이 현재 진행 중인 전장 중 하나에 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었으나…… 놈이 향하고 있는 장소는 예상했던 후보에 없었다.
‘하나, 네크바엘이 도대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자명하다.’
베르덴은 여전히 수 킬로미터 아래의 깊은 물속에 잠긴 채 말을 이었다. 새로운 정보를 얻었으니 그를 토대로 새로운 판단을 내려야 했다.
“펜드렌호 사문에 비대칭 전력이 필요합니다.”
성녀 에르세티아는 무리한 성창 폭격 때문에 회복 중에 있고, 7대 마도왕 반젤리스는 공간 안정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베르덴은 사문에 진입할 수 없다.
벤디에는 동대륙 남부에서 제3사령관을 견제하고 있다.
안티아스는 대학살의 수인을 추적하고 있다.
반토레온은 사룡에 대비하고 있다.
마의 공포는 마경으로 향했고.
가레스의 <대악마화>는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쓸 수 없다.
데우스는 마렌 왕국에 열린 사문을 사실상 혼자서 감당하고 있으며, 게다가…….
지금 당장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은 라인델뿐이다.
───대공세의 시작으로 공간 이동이 거의 한계에 임박했을 텐데.
“예, 곧 셧다운이 발생할 겁니다. 하지만 감수해야 합니다. 테르네티아 연방과는 달리 펜드렌호는 상성이 좋지 않습니다.”
테르네티아 연방에는 최대 규모의 군단을 투입한 만큼 아드리안과 레온하르트를 필두로 제2사령관을 상대할 수 있는 강자들이 모여 있다.
다시 말해 별도의 비대칭 전력이 지원하지 않아도 승산은 있다.
반면에…….
펜드렌호 토벌군단은 전력이 현대 병기에 치중되어 있다. 각자의 경지는 다소 미력하다.
테아렐이 선전한다고 한들 사기를 내뿜어 주변의 개체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제4사령관을 상대로는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죽음의 개념을 이해한 그가 놈의 마법을 봉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델하룬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였다.
───세계 연합에 속한 비공식 흑마법계 초월자가 펜드렌호에 나타났다고 들었다.
“…….”
───흑마법은 깊이 팔수록 정신계를 넘어 영혼의 학문에 가까워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혼이 깃들지 않은 육신을 다루는 마법에 자연스럽게 통달하게 되고 말지.
라인델은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음에도 비공식 초월자를 베르덴이라고 단정했다. 그 판단의 근거는 직감으로 충분했다.
베르덴은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지만, 애초에 라인델은 그럴 여지도 주지 않았다.
───묻겠다, 베르덴. 정말로 너는 사문 내부에 영향을 행사할 수 없나?
베르덴은 흑마법사의 눈빛을 띠며 말했다.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펜드렌 호수의 요소들을 활용한다면…… 다만, 아직 이론뿐입니다. 반동은 차치하고, 통제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거면 충분하겠지.
치직.
일순간 라인델과의 통신에 잡음이 일었다.
인위적인 혼선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손님이 왔군.
베르덴이 눈을 크게 떴다. 손님? 크세리온 제국이 다크워튼 마탑을 노렸다는 건가? 그가 사고를 빠르게 가속하며 대응하려 했다.
───존재감으로 보건대 제1사령관인 듯하다.
“즉각 지원을…….”
───불필요하다. 여태까지 미확인된 적이 제 발로 모습을 보였으니 도리어 환영해 주어야 옳겠지. 그러한 이유로 펜드렌호의 지원은 내가 아닌 네가 맡아야 할 것 같군. 공간 이동을 조금 더 아낄 수 있겠어.
라인델은 연합 본부의 도움을 거절했다.
───초월자는 특별한 이상을 추구하기에 언제나 멀리 봐야 하지. 그러나, 결국에 걷지 않으면 제자리일 뿐이다.
큰 그림을 구상하는 것도 좋으나 붓을 대지 않으면 그대로다…… 미래를 전망하되 바로 앞에 있는 것부터 확실하게 처리하라는 조언.
“맡기겠습니다.”
───추후에 연락하지. 통신 종료.
알 수 없는 간섭음이 커지는 도중 통신 장치 간의 연결이 끊어졌다. 크세리온 제국이 다크워튼 마탑을 봉쇄한 것이다.
‘라인델이 홀로 상대하겠다고 결정한 이상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네크바엘에 이어 제1사령관이 확인되며 아칸드를 제외한 나머지가 대륙에 강림했다.
그러니까 연합이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셈이다. 베르덴은 라인델의 조언을 이해하고, 또 받아들였다.
통신 채널을 중앙 대륙에 맞추었다.
“사룡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 알파를 통해 연합의 전력들과 함께 대처하도록. 제국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대답은 곧 돌아왔다.
───그러지.
사룡에 대한 대처도 일임했으니 베르덴은 잡생각을 지우고 펜드렌 호수에 집중했다.
‘사문은 나를 거부한다. 그렇기에 마법적인 간섭은 사문이 내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게 핵심.’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의 대리인을 보내는 것.
화아아악…….
베르덴이 상승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토벌군단의 모든 함대가 사문에 진입했고, 베르덴의 저주를 받은 이형체들이 사문을 지키고 있었다.
돌변한 동족들을 공격하던 제국의 이형체들이 이내 베르덴을 올려다보았다.
‘나의 대리인을 구축하려면 육체와 육체의 동력이 될 감정이 필요하다.’
베르덴이 호수를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마도 창술, 마도 영창, 마도 신위, 새로운 별 등 8위계에 도달하고 나서 구축한 힘 중 하나가 현현했다.
가면이 가린 마안에서 역천의 마법진이 일시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의식 마법.
마안의 즉발성을 봉인하는 대신 ‘시간’으로 마법을 변질시키는 마법적 제의(祭儀)가 거행되었다. 동시에 마도 영창이 시작됐다.
“육체는 이형의 것으로.”
찬란한 흑마력이 주도하는 흐름을 따라 펜드렌호에 무지막지한 규모의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모든 사물이 휩쓸리는 와중에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형체들의, 지성이 완전히 떠나가 버린 시체 파편이 점차 모이기 시작했다.
수십 일 동안 얼마나 많은 이형체가 토벌됐을까.
이형체가 동족의 잔해를 집어삼켜 하나가 되기도 했지만, 펜드렌 호수에 부유하거나 가라앉은 크고 작은 이형의 잔해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시간이 흘렀다.
이형체들이 베르덴을 노렸으나 저주받은 동족들이 그들을 붙들었다.
시간이 흘렀다.
뼈, 장기, 피부…….
그것들이 소용돌이에 이끌리다가 한데 모여 엄청난 크기의 유기물 덩어리를 이루더니, 우드드득! 서서히 압축되었다.
더 이상 압착되지 못하는 지경에 도달하자 그것은 커다란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다.
시간이 흘렀다.
베르덴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사아악!
공간 절단으로 목 부근을 일부 베어 강제로 출혈을 일으켰다. 짧게 분출한 피는 베르덴의 손길을 따라서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감정은…… 나의 것으로.”
베르덴의 피를 머금은 유기 조직체의 표면이 순간 움찔거렸다.
시간이 흘렀다.
두근.
그것이 맥동했다. 베르덴의 혈액은 혈관이 되었고, 핏속에 담아 낸 베르덴의 어두운 감정은 행동 본능의 근간이 되었다. 그것은 인간형에서 다시금 변형되더니 괴수의 형태를 띠었다.
베르덴의 마법적 감각이 고조되었다.
‘계산했던 것보다 위험하다.’
8위계의 최대 출력에 준하는 마력량을 소모해야 할뿐더러, 마법을 완성한 순간 최소한 흑마법과 마안은 당분간 쓰지 못할 터.
베르덴이 구축하고 있는 대리인은 그 정도의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감당할 가치가 있다.’
베르덴은 천문학적인 흑마력을 일으키고는 그것을 겨냥했다.
시간이 흘렀다.
무투계 초월자가 각성과 함께 본능적으로 초월기를 깨닫기도 하듯이 마법계 초월자도 극히 드물게 그러한 사례가 발생한다.
8위계의 초위 마법.
드라벤 르마르크와 루네시카 안테르노아가 한계에 봉착해 닿지 못한 경지의 흑마법이, 베르덴의 무한의 마도를 통해 완성되었다.
“깨어나라.”
베르덴이 속삭였다.
“나의 근원이여.”
시간이 흘렀다.
쩍.
거대한 외눈이 번뜩였다.
* * *
동대륙의 다크워튼 마탑.
그것을 둘러싼 조용하고 어두운 숲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탑의 앞마당에 해당하는 장소에 언데드가 서 있었다.
[마탑에서 생명 반응이 희미. 지금은 전무. 죽음을 이해한 초월자답지 않은 연민이로다.]
“그러는 편이 서로에게 낫지 않겠나.”
라인델은 초대 네크로맨서의 스태프로 무심하게 바닥을 짚었다.
“방해가 될 뿐이니.”
제1사령관이 라인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렇게 극히 희미한 감정을 인지했다.
[환희 그리고 결의. 세계 연합의 지원군을 부르지 않았구나.]
“너를 상대하고 있는 동안 세계 연합에는 그만큼의 여유가 생기지. 그럴진대 왜 지원을 부르겠나. 어차피 바라는 구도이거늘.”
[어째서 기뻐하는가.]
“변화가 즐겁기에.”
라인델이 격을 해방했다. 생명에 죽음을 선서하는 특유의 존재감이 일대를 잠식했다. 안 그래도 어둡던 숲이 더 어두워졌다.
[…….]
제1사령관은 잠시 침묵하고는 곧 다른 사령관들을 압도하는 사기를 내뿜었다. 그는 죽음의 묵시록보다도 죽음에 더 가까웠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날카로운 건틀릿에 하얀 기운이 맺혔다.
[난, 크세리온 제국의 제1사령관. 기근의 묵시록, 제르마엘.]
그가 짧게 손을 내밀었다.
[유언은?]
라인델이 대답했다.
“시작하지.”
* * *
중앙 대륙의 마렌 왕국.
레프라기움 마탑을 필두로 한 포위망은 날마다 좁혀졌다. 차마 군단이라고 할 수 없는 규모였음에도 사문에 꽤 근접한 상태.
과연 압도적이다.
포위 부대의 구성원들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전황에 낙관할 수밖에 없었다. 사상자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나아간 거리에 비하면 사소한 피해였다.
무력 및 종합 서열 1위의 마탑이 지휘하는 전장에 패배 따위는 없다! 지금까지의 전장은 그들에게 그런 확신을 갖게 했다.
한편…….
베르덴에게서 새로운 소식을 전달받은 레프라기움 마탑주───섭리자───데우스 위덴은 작은 승리에 대해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이제부터 다가올 위협은 언데드 군단과는 비교를 불허할 것이므로.
“과연, 내가 거슬린다는 건가.”
4대 고룡 중 청룡 탈리시아.
그것의 시체로부터 재탄생한 사룡 네크바엘.
‘당신’의 사도나 다름없는 강함을 자랑하는 존재가 오고 있다. 마렌 왕국으로 향하고 있다. 필시 데우스를 처단하기 위해서.
“운명의 사도다운 판단이군.”
데우스는 머지않아 벌어질 사도급과의 전투에 대비했다.
그러면서 전장의 범위를 예측했다.
최소…… 마렌 왕국, 전체.
고룡을 상대하며 국가를 보전하는 건 데우스에게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