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25

825화 세계 회의 (9)

제라클 황제가 이번 대의제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기립했다. 좌중의 시선들이 모였다. 위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통치자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붉은 드래곤이 날아오고, 고작 며칠 동안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네. 정확히는 그렇다고 알려졌지. 어디까지나 인간인 내게는 역사의 기록이니. 하지만 오늘 여기 모인 참석자 중에는 그때의 시대를 살아가며 그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한 존재들도 있을 걸세.”

초월자는 수명이 끝날 때가 되면 스스로 죽음을 공표하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명확하지 않은 실종을 선택한다.

둘 다 보기 어려운 일이다.

초월자 숫자는 극소수의 극소수인 데다가 현재 한 초월자가 세상에서 활동하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100년을 크게 웃돌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선 다크워튼 마탑주, 마스터, 아티슨 마탑 번외 장로, 7대 마도왕, 아르나크의 검, 키퍼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그들은 실제로 적룡이 남기고 간 파괴의 흔적을 본 적이 있었다.

서약자도 100년 활동에 가까워지고 있다.

레프라기움 마탑주와 대행자는 누구도 그 나이를 알지 못하고 언제 초월자가 되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둘이 마법계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인 건 약 150년 전이었다.

마탑의 동력원이 한창 활약하는 시기.
마법이 상용화된 시대.

섭리자와 대행자는 최소 2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이상 살아온 걸지도 모른다, 라는 추측이 마법계에선 다소 지배적이었다.

……꽈드드득.

흑요 등급 모험가, 마의 공포가 모든 걸 부술 듯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존재감을 내보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의 투구를 들춰 본다면 표정이 극도의 분노로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모험가 길드 본부장과 흑해는 어깨 너머로 그런 모험가를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금 제라클 황제에게 귀를 기울였다.

“강대한 드래곤이 도시를 불태우는 동안 인류는 무력했네. 급조된 토벌대는 잔혹하고, 또 철저하게 유린당했고, 기껏 제대로 대응책이 갖춰진 순간에는 드래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 애초에 그 대응책이 제대로 통했을지도 의문이었고 말일세. 그러니까 오랜 세월에 걸쳐 비로소 구축된 사회는 언제나 존재했던 자연의 법칙에 짓밟힌 것이지.”
“…….”
“그건 단순한 재앙이었을까? 홍수, 지진, 가뭄, 해일처럼 일종의 천재지변처럼 그러려니 받아들여야만 하는 재해일까? 누군가 내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네. 인류가 항거할 수 없는 천재지변 따위는 없다고.”

제라클 황제가 강하게 말을 끊었다.

초월자들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마울러마저도 그랬다.

초월자가 진정 비범한 존재라고 인정할 수 있는, 초월자가 아닌 인간이 있다면 제라클 황제는 그중 한 명이었다.
아르나크 황제의 권좌는 국가 통치자들의 정점과 다를 바가 없다.

“홍수는 증발시키면 되고, 지진은 진동 자체를 무력화하면 되며, 가뭄엔 비를 내리게 하면 되고, 해일이 덮쳐 오면 그 해일째로 부수면 그만이지. 이 건도 마찬가지일세.”

짙은 남색 눈동자가 세계를 훑었다.

“적룡이 막강하다고 해서 그 공포에 벌벌 떨기만 할 건가? 언제가 다시 적룡이 습격해 와 감히 우리의 세상을 불태워도 체념하며 순응할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네.”

제라클 황제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참석자들도 그의 사고방식이 어떤지 직간접적으로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아르나크 제국은 내게 패배주의를 가르친 적이 없으니까.”

극도로 오만한 눈빛이다.

제라클 황제에게 굴복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굴복을 종용하는 상대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무릎 꿇게 만드는 것.

그건 곧 아르나크 제국인의 기상이었다.

“기회는 기다리는 자에게만 오는 게 아니네. 먼저 다가가는 자에게 오기도 하지. 내가 그러했듯이. 이에 나는 이 자리에서 제안하는 바이네.”

그가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적룡, 사르칸드라의 토벌을.”

제라클 황제가 불끈 손을 움켜쥐면서 팔꿈치를 수직으로 굽혔다.

“마경의 정벌을.”

* * *

마울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미쳤나.”

마울러처럼 직설적인 표현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다른 참석자들의 생각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험가 길드 본부장이 물었다.

“그 말씀은…… 마경을 개척하겠다는 뜻입니까?”
“내가 말하는 건 ‘정벌’일세. 개척은 후의 일이지.”
“둘 중 무엇이든 간에 마경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 동일하군요.”
“황제.”

흑해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마경이 뭔지는 알지?”
“당연히.”

엘프가 거주하는 대수림을 제외하면 인류가 감히 정복하지 못한 미개척 지대가, 전 대륙을 통틀어 두 곳 존재한다.

침묵의 사막.

마경.

그중에서도 마경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괴한 토착 생물과 자연환경 등 뭐 하나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침묵의 사막은 끝없는 메마름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말려 버리지만, 마경은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으로 공포를 심어 준다.

괜히 마경이라 불리겠는가?

나름 명성을 떨치던 고위 모험가들조차 최초의 모험가를 따라잡겠다며 불굴의 도전 정신을 불태웠지만, 그들 대부분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나마 초입에서 위기를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렇게 소수로는 방법이 없음이 증명되었다.

그럼 다수는 어떨까?

마경이 미개척 지대라고 분류되기 전에 몇 번의 개척 시도가 있었다. 국가가 움직였다. 국가와 국가가 협력을 맺었다.
미지로 가득한 땅을 손에 넣기 위해서 막대한 자원과 강대한 인력을 투입했다.

결과는 실패, 실패, 실패, 또 실패.

마경은 무참하게 인류의 노력을 집어삼켰다.

개척대 태반 이상이 괴멸한 것도 개척 의지를 꺾기에 충분했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건 생존자들의 반응이었다.

무언가에 기생당한 어느 생존자는 낄낄 웃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머리와 사지가 180도 돌아가면서 사망했다.

정신이 파괴되어서 나온 한 생존자는 루아스교의 고위 기적을 받았음에도 머리가 하얗게 센 채 평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임종을 맞이했다.

괴생명체에 팔이 물어뜯긴 채 마경을 탈출한 국가급 전력의 개척대원은 무사히 치료를 받았으나 며칠 뒤 자살했다.

이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극히 일부의 개척대원만이 제정신으로 마경에서 나올 수 있었다. 현존하는 마경에 대한 정보는 거기서 얻은 것이다.
마경의 심부에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지역, 나중에 명명하길 마해가 있다는 것도 말이다.

인류는 수백 년에 걸쳐, 개인의 탐사를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4차 마경 개척까지 감행했으나 그 모든 시도는 좌절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미개척 지대로 구분해 발을 들이지 말 것을 후대에 권고했다.

적룡, 사르칸드라를 끝끝내 추격하지 못한 것도 그래서였다. 마경에 들어갔다가 전멸당하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으니까.

마법으로 시대가 급격하게 발전한 지금도 마경 개척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수왕이 어깨를 들썩였다.

“크크크큭, 과연. 마경 정벌이라…… 거저 황제의 위를 손에 넣은 건 아닌가. 순수한 인간 중에도 야수 같은 자가 있었군.”
“마경은 델하룬 남부에 이어져 있다. 근데 내 허락도 받지 않고 그딴 걸 안건으로 올려? 정신 나간 것도 아니고.”
“마울러.”

리반데일 대공이 팔짱을 낀 채 강하게 한마디 던졌다.

“발언에 주의해라.”
“협박하냐? 제국의 번견이.”
“오, 싸운다.”

쿵.

섭리자가 딱 한 번의 손짓으로 두 초월자 간의 마찰을 제지했다.
이그나시아가 아깝다며 칭얼거렸다.

아직 첫 번째 대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마경을 향한 세상의 공포는 이해하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개척을 시도했을 때와 지금은 그 시대가, 그리고 그 인재가 다르지. 참고인을 세우겠네.”

제라클 황제의 주장을 뒷받침할 조력자는 바로 무모한 지식인, 퀘론 렉클로스였다.
혼자서 마경을 넘어 마해까지 들어가 적룡의 꼬리 비늘을 가지고 돌아온 뒤 마법계 총회의에서 공개한 장본인.

평소처럼 어수룩한 모습으로 짧게 자기소개를 마친 퀘론은 몇 번 목을 가다듬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 그러니까 단독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적룡을 토벌할 전력만 갖춰진다면, 마경을 정벌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예전보다는 훨씬 훨씬 높죠.”

서약자가 턱을 쓸었다.

“근거가 뭐지?”
“제가 얼마 전에 마해까지 겨우겨우 도착했지만, 당초 목표했던 마해 탐사에 실패하고, 곧바로 마경을 탈출하다가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참에 지금까지 모은 마경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봤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마경 지도?

“아아, 물론 전체 지도는 아닙니다. 제가 평소에 다니는 길 위주로 작성한 거죠. 저 혼자서 만든 것도 아니고요. 제 생명의 은인이신 올딘 님께서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셨어요, 하하하.”

그게 사실이냐는 시선에 키퍼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퀘론이 품속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상당한 두께였다.

“그리고, 저 이상으로 마경 탐사 경험이 많으신 흑요 등급 모험가님의 조언으로 이 ‘마경 생물 도감’을 집필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괴생물까지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죠. 마경 생태계가 워낙 복잡해서 완성이라고 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만, 그래도 그곳의 기류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어느 정도는요. 모르고 당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드는 것이죠.”

퀘론이 천천히 한 바퀴 돌며 보란 듯이 책장을 엄지 끝으로 빠르게 넘겼다.
촤라라락.
매우 섬세한 그림들과 빼곡한 글귀들이 잇따라 지나갔다. 마지막 책장이 넘어간 직후 이목이 다른 곳으로 쏠렸다.

“…….”

모험가 길드 측의 호위를 맡고 있는 마의 공포가 굳게 서 있다. 목에 걸린 흑요 플레이트가 조명 빛을 반사했다.
그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적어도 고개의 방향만큼은 퀘론 렉클로스를 끝까지 따라가고 있었다.

모험가 길드 본부장과 흑해, 그리고 다른 흑요 등급 모험가들이 대체 언제 퀘론과 만나서 그런 걸 만든 거냐고 눈빛으로 물었으나, 보다시피 마의 공포는 미동조차 없었다.

“허, 마경을…….”
“질문 있습니다.”

아연해하는 인드렌과 다르게 호기심으로 가득한 미소를 지은 아티슨 마탑주가 물었다.

“제가 자세힌 몰라도 마경은 물리적으로 환경이 변화하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길을 제대로 찾을 수는 있는 겁니까?”
“그 변화에도 패턴이 있습니다. 가짓수가 많기는 하지만 적응하면 마경을 미로처럼 여길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걸 초입자가 분간할 수 있을까요?
“아, 그것도 문제없습니다.”

퀘론이 방긋 웃었다.

“제가 길잡이를 맡을 테니까요.”

* * *

그리 강하지도 않은 힘으로 앞장서 마경을 안내하겠다고 말하면서, 저렇게 행복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될까.
전에도 생각한 거지만, 역시나 괜히 무모한 지식인이 아니었다.

‘……마경.’

침묵의 사막을 정복한 베르덴은 아직 정복하지 못한 광활하고 위험한 그 미개척 지대에 붙은 명칭을 곱씹었다.

제라클 황제의 마경 정벌 선언은 솔직히 말해서 놀라웠다. 마경을 정벌하겠다는 발생 자체가 놀라운 게 아니라, 의도는 다를지언정 베르덴의 목적과 일부 부합했기 때문이었다.

마경 개척.
적룡의 토벌.

오히려 베르덴이 바라는 바였다.

‘하원은 불안해하고 있지만, 상원은 흥미롭다는 반응이 많군. 나쁘지 않다. 정벌까지는 아니더라도 마경을 본격적으로 탐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의의가 크니.’

무엇보다도 마의 공포와 키퍼, 그러니까 재액의 토벌자와 균형의 조율자가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사안이다.
게다가 아르나크 제국 측에는 레그리트, 미지의 탐색자도 있다. 그녀의 얼굴은 투구에 가려져 있었지만, 흥분한 건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방주의 명령보다는 개인적인 결정인 듯싶지만, 방주의 선장 셋이 포함됐으니 마경 정벌이 아주 터무니없는 건 아닐 터였다.

“마경은 말로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북부도 그 드래곤의 위협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정정한다.

방금 북부의 왕이자 북부의 감시자인 에레스가 긍정적인 발언을 하면서 방주의 선장이 한 명 늘었다.
그건 베르덴에게 깊은 설득력을 남겼다.

애초에 베르덴도 찬성할 작정이었다.
황제와 거래했으니까.
그렇다면 방주의 선장 다섯이 참여하는 셈이다. 각각의 지위, 그리고 전력만 해도 온 대륙을 뒤흔들고 남을 수준이다.

“황제가 생각 이상으로 진취적이군요.”
“황제답긴 하군.”

아드리안과 대화를 나눈 베르덴은 이미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렸다.

그때, 제라클 황제가 말했다.

“당연히 지금 당장 마경을 정벌하겠다는 말뜻은 아니네. 먼저 신중하게 탐사부터 진행할 계획이지. 성공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
“…….”
“불안해할 것 없네. 탐사든 정벌이든 언제나 제국이 앞장설 테니까.”

제국의 위세와 명성은 마경에 대한 공포도 조금 지워 버릴 정도로 대단했다. 제라클 황제의 말에 담긴 무게감은 타인의 마음을 강하게 자극했다.

섭리자가 묻는다.

“지난 마법계 총회의에서 퀘론 렉클로스는 용의 꼬리 비늘만이 아니라 마경 경계 부근에서 악마들의 갈기갈기 찢긴 시체와 모종의 악마가 마경으로 향한 흔적을 발견했다. 이에 대한 내용도 마경 정벌에 포함된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면 세계 회의에 상정하지 않았을 걸세. 이건 제국만이 아닌 인류와 세상의 일. 그리고 인류가 나서는데 어찌 루아스교를 제외할 수 있을까.”
“…….”

교황과 성녀는 말이 없었다. 그들은 마경 정벌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과거 군단의 대악마, 몰가른을 토멸한 1차 대성전 이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악마들 다수가 마경으로 향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안에 다른 대악마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도 예전부터 추측하고 있었고.

하지만, 섣불리 2차 대성전을 일으킬 순 없었다.

마경은 너무도 큰 장애물이다. 무리하게 토벌을 감행했다가 마경의 환경과 대악마의 계략에 당하면 그 피해는 어마어마할 터였다.

그래서 루아스 교국은 악마의 완전 멸절보다는 악마의 격리에 집중했다. 궁극적으로 놈들이 다시 인류 앞에 나타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런 루아스 교국이었기에 당장 황제에게 답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 세계 종교로서 고려할 게 한둘이 아니었기에.

“마경을 탐사하는 건 개인의 자유나, 마경의 정벌은 자칫하면 세계적인 문제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해당 안건이 대의제 투표에서 부결될 경우, 마경 정벌은 다음 세계 회의에서 재발의되어 통과될 때까지 엄격하게 금지한다. 받아들이겠나?”
“받아들이겠네.”
“알겠다.”

섭리자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적룡, 사르칸드라의 비늘에 대하여 제라클 디안 세레아노르 아르나크 황제는 마경 정벌을 제의했다. 다른 안건이 있다면 거수하라.”

제라클 황제가 핵심을 찔렀기에 다른 발의자는 없었다. 심지어 모험가 길드 본부와 키퍼가 관여해 있기까지 하니.

예전에도 그랬듯이 적룡을 내버려 두느냐.
이번에는 선제공격하느냐.

결국 첫 번째 대의회에서는 둘 중 하나로 결론 날 것이다.

“추가 안건은 나오지 않았으므로 마경 정벌을 세부 대의제로 채택하겠다. 참고인은 퇴장하고, 모든 참석자는 충분히 고민한 끝에 행동을 결정하도록.”

섭리자는 세력별로 자유롭게 논의할 시간을 주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그 시간마저 제한하지는 않았다.
하물며 공개 투표라서 익명성이 보장되지도 않고 말이다.

베르덴은 차분하게 참석자들을 구경하며 결과를 예측했다.

‘제안이 통과할 확률은 아마 반반.’

아르나크 제국의 영향력과 마경 정벌에 대한 거시적인 타당성을 고려한 결과였다.
루아스 교국의 4대 신인이 직접 발의한다면 모를까, 다른 세력이 이 안건을 입에 올렸다면 당장 부결되었을 터였다.

베르덴도 어떻게 될지 궁금했기에 기대감을 갖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섭리자도, 제라클 황제도 조용히 투표의 때를 기다렸다.

이윽고 약 2시간이 흘렀다.

모든 참석자가 찬반을 정했다고 판단한 섭리자가 회의를 재개했다.

“지금부터 세계 회의의 첫 번째 대의제 표결을 시작하겠다.”

이번에는 칸막이도 없었고, 투표함도, 투표용지도, 도장도 없었다.

오른손을 들면 찬성이고.
가만히 있으면 반대다.

그때였다.

“잠깐. 표결에 앞서 몇 마디 더 얹어도 되겠나?”
“짧게 하도록.”

약간의 발언 시간을 얻은 제라클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근엄한 모습으로 모든 참석자를 바라봤다.

“마경 정벌은 세계가 하나가 되어 임해야 하는 목표이자 숙원이네. 눈치를 보며 찬성표와 반대표를 던지는 그 각오만으로는 부족하지. 그러니 소신 있게 답을 내려 주게.”
“…….”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로 찬성 의사를 밝힐 참석자에게 ‘망설임 없는 진심’을 모두에게 보여 주길 부탁하고자 하네.”

제라클 황제가 단호히 목소리를 높였다.

“설령 마경 정벌이 부결되어도 아르나크 제국과 함께 마경을 탐사할 자, 마경을 탐사하는 데 있어서 기꺼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할 자, 언제가 되었든 마경 정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자!”

정적이 내려앉았다.

“제국과 같은 결의를 가진 자만이 나와 함께 손을 들어 주게.”

제라클 황제가 아주 천천히 오른손을 들기 시작했다.

“이에 응하는 참석자가 없으면 ‘아무도 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나 스스로 해당 안건을 폐기하는 바이네.”
“……?”

아르나크 제국은 세계 회의에서 단 하나의 안건을 상정하고, 에온은 이에 이유를 묻지 않고 반드시 ‘찬성’한다───그것이야말로 베르덴과 제라클 황제의 거래 내용이었다.

베르덴과 아드리안이 눈을 깜빡이며 제라클 황제를 쳐다봤다.

‘이 황제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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