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1화 여섯 번째 (4)
다른 세대들은 향유할 수 없는, 특정 세대들만이 살아가는 시간대가 있다. 지식인들은 이를 시대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저마다의 시대에는 그 시대를 풍미하는 존재, 혹은 존재들이 있었다.
8세기 전에는 초월자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은 옛 왕.
6 ~ 7세기 전에는 군단의 대악마 몰가른을 토벌한 루아스 교국의 네 명의 신인.
5세기 전에는 초대 마도왕.
4세기 전에는 아르나크 5대 제국 황제.
3세기 (이종족 전쟁 초기 ~ 중기) 전에는 델하룬의 여제.
그리고.
3세기 (이종족 전쟁 말기) 전에는 최초의 모험가.
당연하게도 이들 전부가 시대의 최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르나크 5대 황제는 73세의 나이로 서거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선정 기준은 어디까지나 대륙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다.
인간, 혹은 인간 출신의 초월자.
그들에 비해서 엘프, 수인, 드워프는 터전이라는 개념이 강했다. 또한 엘프와 드워프의 숫자는 인간과 비교해 훨씬 적었다.
지배 욕구도 그러했다.
이렇듯 세계적인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할 욕망을 갖추지 못했으니 인류를 대신해 시대를 대표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물론 작금의 시대에는, 수인 대부족에서 가장 위대한 생물로 일컬어지는 수왕 안티아스가 있기는 하지만…….
본디 시대란, 다음 시대로 접어들어야 비로소 평가할 수 있는 것.
그렇기에 8위계급 강자가 다수이며, 역사적으로 초월자의 숫자가 가장 많은 현대를 상징하는 존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말인즉슨.
베르덴이 마주한 루가르트는 예전에 평가가 끝난 인물이었다.
최초의 모험가는 모험가와 무관하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역사를 바꾼 위인을 이야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사내였으므로.
‘예상은 하고 있었어도, 본인이 이렇게 정체를 밝히니 느낌이 다르긴 하군.’
이기적인 드워프를 성채에서 끌어내리고.
방관하는 엘프를 대수림에서 나오도록 만들고.
야만적인 수인을 강제로 눌러 앉히고…….
최초의 모험가는 무력을 위시한 협상으로 기존의 갈등에 더해서 여제의 수왕 살해로 수년 째 지속되던 이종족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다른 종족을 힘으로 압박해 이종족 평화 협정을 맺다니. 믿을 수 없다. 하나 그보다 경악스러운 것은 그의 ‘고고한 성정’이었다.
이종족을 향한 개인의 증오심을 억누르고 모두를 위한 대의(大義)를 택했으니까.
괜히 모험가 길드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교육하는 아카데미를 비롯한 대륙 곳곳에서 그 업적을 기리는 동상을 세운 것이 아니다.
인격적으로 루가르트의 위상을 따라오는 자는 아마 없으리라.
방주의 지도자를 떠나 최초의 모험가는 베르덴의 존경을 얻기에 충분했다.
“초월자라고 해도 온전히 살아서 감당키 어려운 시간이었을 텐데. 마치 현시대의 초월자처럼 심신이 정정하시군요.”
“자연스러운 연명은 아니지. 그것도 나의 비밀 중 하나고.”
루가르트가 깊은 흥미를 내비쳤다.
“네가 가진 패로, 내 패를 거기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지 궁금하군. 아직 즉위식을 치르지 않은 선장과 모든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시기상조겠지만.”
“시기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체적인 삶을 바라나? 그렇다면 내가 시기를 정할지 말지는 너에게 달렸다.”
루가르트를 따라서 베르덴도 와인으로 혀끝을 적셨다.
맛이 깊다.
마그누스 은행 산 레드 와인과 동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최초의 모험가는 평소 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하더니.
사소하긴 해도 역사서에 실린 기록이 사실임이 증명된 셈이었다.
“순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먼저 답하겠다.”
베르덴에게 질문 기회가 주어졌다.
분위기는 일상처럼 가볍게.
주제는 무겁게.
“역시 아크는 초대 마도왕이 만든 겁니까?”
“넌 이미 그렇게 결론 내렸군. 하긴 거대 하늘섬은 자연적으로 탄생하거나 유지될 수 없는 구조를 띠고 있으니 당연하겠지. 그 외에는 이런 하늘섬을 설계할 만한 존재가 달리 떠오르지 않기도 하고.”
루가르트가 수긍했다.
“아크를 제작한 것은 초대 마도왕, 올다르크 루인 아케나드다. 아마도.”
“아마도라면.”
“나는 초대 마도왕이 아크를 구축하는 광경을 본 적이 없기에 아크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아크를 받았을 뿐이지. 그 순간은 인상적이었던 만큼 짧게 느껴졌지.”
잊을 수 없는 모험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방주를 배신한 발리온 프레이아를 놓치고 몇 년 뒤의 일이었지.”
루가르트의 빛나는 황갈색 눈동자에 약 300년 전의 과거가 드리웠다.
“초대 마도왕이 나를 찾아온 건.”
* * *
이종족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셀 수 없이 많은 피가 흐르고 시체가 생겨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전쟁 중기에는 점차 교전이 잦아들면서 평화의 조짐을 보였다.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은 일상을 보낼 정도로 진정된 것이다.
당시 루가르트는 20대의 젊은 검사이자, 방주의 후보였다.
소중한 사람들과 세상을 거닐며 수많은 모험을 했고, 여러 난관을 극복해 강해지면서 인류를 위한 각오를 점점 더 키웠다.
충실한 삶이었다.
내일 죽을지언정 후회하지 않도록 하루를 허투루 보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평화를 되찾기 직전…… 델하룬의 여제가 당대의 수왕을 죽였다.
종전 협상은 즉시 결렬됐다. 꺼져 가던 전쟁의 불씨가 미친 듯이 타올랐다. 인류는 여제를 돕지 않음으로써 끝까지 평화 의지를 보였다.
당연히 많은 대가를 치른 끝에 여제를 찢어발긴 수인들은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다.
새로운 수왕이 등극했다.
이종족 전쟁은 전례 없는 난전으로 재개됐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전선까지 데리고 가. 이 성문을 내가 막을 테니까.
───루가르트!
───어서!
루가르트도 참전했다. 참전하지 않고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여러 마을이 멸망하고 도시는 함락되었다.
국가의 수도와 왕을 잃어버린 시민들은 다양한 죽음을 겪었다.
홀로 성문에 서서 수백 명의 수인을 막아 낸 루가르트의 시야는 피로 물들었다.
코앞에는 수인족의 시체들이, 저 앞엔 미처 성문 너머로 들어가지 못한 인간의 난도질당한 시신들이 가득했다.
지옥.
그 풍경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몇 번이고 사선을 넘나들면서 보다 많은 사람을 구하려고 했고, 또 구했다. 그 과정에서 방주의 ‘차기 선장’으로 정해졌지만 루가르트가 할 일은 여전히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든 평화를 되찾아야 했다.
희생자가 더 늘기 전에.
그러나───전쟁의 말로를 대변하듯, 결국 모든 걸 잃어버린 루가르트의 몸과 마음도 잔혹한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죽음보다 더한 절망이 숭고한 방주의 사명감을 압도했다.
───대체, 난 무엇을 위해서…….
수십 발의 화살에 온몸이 꿰뚫린 인간을 품에 안고 루가르트는 하염없이 흐느꼈다.
자살 충동이 검끝까지 실렸다.
그러나 약속 때문에 자살하지 못한 그는 전쟁을 떠나서 그냥 걷기 시작했다. 그래, 걸었다. 발이 땅에 붙어 있는 순간까지.
누가 가로막든.
주변에서 무슨 일어나든.
발길이 어디로 향하든.
이윽고 침묵의 사막에서 모습을 감춘 루가르트는 실종되었다. 그가 있든 말든 이종족 전쟁은 계속 많은 삶을 앗아 갔다.
몇 년이 지났다.
루가르트가 다시 등장한 무대는 델하룬과 마경의 경계선이었다. 주변에는 수인에게 포위당한 인간의 성채가 하나 있었다.
바로 그날.
낡고 망가진 갑옷과 로브를 걸친 루가르트가 전쟁에 재참전한 순간이었으며…… 방주의 후보자로 복귀한 하루였다.
세상은 새로운 초월자를 맞이해야 했다.
───인류를 위해.
델하룬 수복.
고작 몇 개월 만에, 홀로 수인 대부족의 전사들을 중앙 대륙으로 몰아낸 그는 인류 연합국으로 향해 세력의 전권을 취했다.
강제로 말이다.
그에게 대항한 초월자와 마탑주에게 남은 건 압도적인 패배였다. 각국의 정상들은 더는 입을 열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렇게 연합국의 수뇌부를 장악한 루가르트는 주저 없이 대륙 곳곳을 누볐다.
───이, 이것 놓아라!!!
───…….
───어떻게, 어떻게 여제보다, 더한 자가 하필 이 시기에……!
드워프가 자랑하는 성을 정면 돌파해 클랜장들을 밖으로 끌어냈다. 세계수의 관리자들을 제 발로 직접 대수림 밖으로 나오게 했다.
대부족의 새로운 수왕을 무릎 꿇리고는 대화에 참여하라고 강요했다.
이것이 종전의 요약이었다.
패도(霸道)인가.
왕도(王道)인가.
루가르트의 성향을 무엇으로 규정할지는 여전히 역사가들은 말들이 많다. 하지만 둘 중 무엇이든 간에 아무래도 좋았다.
평화가 도래했으니까.
루가르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모험가 길드라는 걸 창설했다. 범세계적인 토벌 조직을 세워, 인류를 지키고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아인종과 이형종에 의해서 소리 소문 없이 죽어 가는 희생자의 수가 대폭 줄었다.
이종족 전쟁의 주인공이자 모험가 길드 창설자인 루가르트는 자격과 공로를 인정받아 방주의 선장으로 선택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방주를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순탄한 지도자 생활은 아니었다.
세상은 항상 시련과 난관으로 즐비했고, 재액의 토벌자였던 발리온 프레이아가 글러트니의 시체를 갖고 방주를 배신했으니…….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지만, 루가르트는 고작 한 끗 차이로 발리온의 숨통을 끊어 내지 못한 것을 계속 후회했다.
한때 후회 없이 살아가던 사내는 후회로 점철된 삶을 보냈다.
그런 시기에 초대 마도왕과 만났다.
───그대가 현 방주를 이끄는 자로군.
난데없이 방주의 본거지에서 가장 은밀한 곳에 나타난 존재. 즉각 대응하려고 했으나 루가르트의 전의는 곧 사라졌다.
뭔가 눈에 익었다.
그렇다.
불청객의 인상은 마도국을 비롯한 마법계에서 본 동상과 판박이었다.
무엇보다도 무투계 초월자의 본능이 아주 강하게 속삭였다.
……이길 수 없다, 고.
최초의 모험가를 겸하는 대륙 최강자라는 이명을 평소 과분하다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애써 부정하지 않았던 그는 당혹스러웠다.
자신으로 하여금 승리보다 패배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마법사라니? 인상이 어떻든 간에 그런 존재가 달리 더 있을 리가 없었다.
───올다르크, 마도왕?
───방주를 위해 줄 것이 있다. 따라오겠나?
초대 마도왕의 제안은 갑작스러웠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꿈 같은 기이한 만남. 루가르트는 태생적으로 모험가였다.
직후 공간 이동으로 초대 마도왕과 함께 전이한 곳은 바로 우주와 대륙의 경계에 떠 있는 듯한 거대한 하늘섬이었다.
───이건…….
───아크(Ark). 이제부터 방주의 중심지가 될 장소다, 방주의 지도자여.
초대 마도왕은 아크와 엑소디움을 직접 안내하며 여러 설명을 덧붙였다.
루가르트가 아크의 주인이 된 것도 이때였으며, 방주의 적격자를 판별할 수 있는 세상의 눈을 받은 것도 바로 이때였다.
머리가 따라가지 못했기에 멍하니 그를 뒤쫓기만 했던 루가르트는, 초대 마도왕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거의 2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종족 전쟁에도 개입하지 않았으면서 방주를 위해 모습을 드러내다니.
루가르트가 단호히 질문했다.
───대체 무슨 이상을 추구하는가, 올다르크 루인 아케나드.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모든 의문을 하나로 함축한 질문이었다.
초월자의 진의는 이상에 담겨 있다.
───내가 그대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건 단 하나뿐이다.
청금색 눈동자가 명멸했다.
───아크를 지켜라.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그것이 루가르트에게 초대 마도왕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 * *
“방주가 아크를 본거지로 삼은 데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으니, 너와 나만이 아는 비밀인 셈이군.”
루가르트가 습관처럼 규칙적으로 와인을 마시며 말을 이었다.
“초대 마도왕은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주하기 앞서 아크를 돌아볼 때마다 그의 존재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날 찾아왔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자취를 완전히 감추더군.”
“…….”
“초대 마도왕의 발자취를 쫓았다. 그리고 마침내 몇몇 흔적을 단서로 삼아 기이한 구조물을 발견했지. 현 에스티리아 왕국의 동부 늪지대에서.
베르덴이 그러했듯이 루가르트도 타원형의 푸른 사파이어───알파가 초대 마도왕에게 보낸 신호로 골렘 시설과 연결된 유적을 당도했다.
다만 그는 유적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달리 이유가 있습니까.”
“후보도 아닌 방주의 지도자가 방주와 관련해서 대륙에 간섭하는 건 방주의 이념에 어긋나니까, 라는 게 이유지만, 솔직히 말해 겁을 먹었지.”
루가르트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리며 등받이에 깊게 몸을 기댔다.
“선뜻 아크를 방주에 넘긴 것을 보니, 혹시라도 나로 인해서 초대 마도왕이 준비하는 안배에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려웠다. 오만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여겼지. 지금도 그렇고. 게다가…….”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초대 마도왕을 찾는 것은 나의 역할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늪지대 유적을 초대 마도왕의 무덤이라고 칭하고, 고대의 시련으로 분류한 다음에 그 역할이 허락된 자를 기다렸다.”
“…….”
“그게 바로 너다, 베르덴.”
네 명이 시련에 도전했고, 세 명이 사망했으며, 한 명은 극복해 초대 마도왕의 <아케인>과 로브를 계승했다.
다시 말해 베르덴은 루가르트가 오랫동안 기다린 존재였다.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군.”
루가르트 또한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핵심을 찔렀다.
“알파와 베타. 인공 골렘의 창조주는 역시 초대 마도왕인가?”
루가르트는 위대한 혈통의 후손조차 알지 못하는 초대 마도왕의 일면을 접했다. 대답하지 않아도 인공 골렘의 기원은 이미 간파당했다.
베르덴이 철저한 계산하에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정황상 유적 지하에 있는 정체 모를 공간 이동진 너머에서 찾은 모양이던데. 과연 내가 들어가지 않은 게 정답이었군. 알파와 베타가 너를 그토록 따르는 걸 생각하면.”
루가르트는 알파와 베타의 기원에 대해서 더는 묻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결론에 만족한 게 전부였다.
어느새 와인잔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이렇게 가벼운 와인으로 소비하기에는 안주가 아깝구나. 새로운 와인을 꺼내 오지. 이렇게 된 김에 장소도 바꾸는 게 좋겠군.”
루가르트가 일어나서 장식장에 보관된 와인 한 병을 통째로 꺼냈다.
베르덴도 몸을 일으켰다.
“달리 적당한 장소가 있습니까?”
“방주의 보관소.”
루가르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여섯 번째 선장의 렐릭도 정해야 하니.”
* * *
유선형 관에 새겨진 홈, 그 내부를 채운 마력이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관 전체가 푸른빛으로 휩싸였다.
이윽고 주변의 어둠에 완전히 걷히는 순간 빛이 종적을 감췄다.
철컥, 키이이이잉───
기계가 작동하며 관이 열리기 시작했다. 허공에 뜬 덮개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내부를 드러냈다.
쿵.
갑자기 안쪽에서 나온 회색의 팔이 관 모서리를 붙잡았다. 이와 동시에 주변에 마력이 다시 은은하게 일렁였다.
[하아아아암.]
바깥으로 나온 ‘골렘’이 길게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냥 골렘이 아니었다. 그 외형은 천연 골렘도, 인공 골렘과도 차원이 달랐다.
이르자면 인간형 골렘.
얼굴은 없었으나, 그 회색빛의 몸체는 완벽하게 여성을 본떴다. 팔과 다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절 부위가 인체의 기능을 온전히 재현했다.
[……응?]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스트레칭을 하던 골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깨어날 때가 아니잖아.]
뭔가 이상하다.
오류인가?
골렘은 독자적으로 상황을 판단해 문제 해결사를 찾았다. 삐빅. 삐비비빅. 팔뚝에 떠오른 3차원 푸른색 막을 재빠르게 조작했다.
곧 상대와 ‘통신’이 연결되면서 코앞에 ‘화면’이 떠올랐다. 마력이 레프라기움 마탑주, 데우스 위덴의 상(像)을 구현했다.
───오랜만이군, 감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