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43

943화 선택지 (1)

주인 없는 땅 어레인에선 마도 축제의 뒷정리가 한창이었다.
가르간트나 루아스 교국 등에서는 축제의 끝이 허무했고 참담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아주 화려한 대미를 장식했다.

대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가르간트의 국제 신문에 아직 게재되지 않은 터라 무지한 일반인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없었다.

“운명이 전쟁을 위해 준동하는가.”

점술가의 손녀, 아이샤는 어레인의 성벽에 서서 하염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앳되었으나 눈빛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천진난만한 듯한, 성숙한 듯한, 연륜이 깊은 듯한 분위기가 순진무구한 연둣빛 눈동자에서 신기루처럼 함께 일렁였다.

블랙 아워 대전당에서 미친 듯이 웃는 황금의 죄인이, 도시 달레힌에서 베르덴을 기다리는 죽음의 죄인과 초대 네크로맨서가, 모험가 길드 본부에서 회복 중인 망국의 죄인이.
아크를 관리하는 방주의 지도자, 루가르트가.
아크를 수호하는 인공 골렘, 감마가.
드래곤을 증오하는 방주의 선장, 재액의 토벌자, 데미안이.
보검과 혈통으로 대대로 얼음 속 거인을 봉인해 온 방주의 선장, 북부의 감시자, 에레스 아인드겔 프로하스가.
인간을 선별하는 방주의 선장, 세계의 주시자, 다리시아 스텔라가.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고자 하는 글러트니의 수장, 발리온 프레이아가.
최후의 저항자에 가장 가까운 레프라기움 마탑의 섭리자, 데우스 위덴이.
아르카디옴에 몰두하고 있는 흑해, 테아렐이.
…….

아이샤는 ‘저항’ 쪽에 한참 눈길을 두다가 침묵의 사막으로 의식을 향했다.
저항과 운명 둘 중 하나를 택하지 않은, 살아남은 두 대악마처럼 도망쳐 숨거나 빌붙지도 않은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존재를 주시했다.

“이챠.”

아이샤가 작은 몸으로 몇 번 발돋움해 성벽의 끄트머리에 올라섰다. 기이하게도 주변엔 병사 한 명 없었다.
서늘한 봄바람이 불어 소녀의 머리카락과 치마가 나부꼈다.

“아, 아이샤 님? 내려오세요! 그런 곳에 올라가면 위험해요!”

방랑의 무나딤이 뒤늦게 아이샤를 보고 황급히 달려왔다.

그런데도 아이샤는 내려오기는커녕 제자리에서 반 바퀴 돌았다. 뒷짐을 지고 성벽의 절벽을 등진 그녀가 방랑의 무나딤에게 속삭였다.

“마법사님한테 갔다 올게요. 할머니가 걱정하실 테니까 제가 어디 좀 놀러 갔다고, 언니가 할머니한테 잘 말해 주세요. 알겠죠?”
“네? 대체 어디를…… 아이샤 님!!”
“다른 사람한테도 비밀.”

방랑의 무나딤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손을 흔든 아이샤의 몸은 이내 천천히 기울어 성벽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머리가 섀하애졌다. 당장 무나딤이 성벽 너머로 고개를 확 내밀었다.

“어?”

아무도 없다.

성벽 하부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과 풀만 있다.
아이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그 순간 뭔가가 온몸을 관통하는 감각에 방랑의 무나딤이 주저앉았다. 머리와 신경이 벼락에 맞은 듯 저릿했다.

“허억……?!”

갑자기 선지자의 재능이 깃든 피의 흐름 자체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사막의 신이 죽은 이후로, 아이샤를 처음 대면한 이후로 조용했던 예지력이 무언가로부터 자극을 받아 날뛰기 시작했다.
일순간.
셀 수 없이 무수한 장면이 스쳐 지나가고, 막혔던 숨통이 트임과 동시에 크게 술렁였던 마음과 육신이 진정되었다.

방랑의 무나딤은 차가운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크게 숨을 헐떡였다.
하얀 구름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이건, 아이샤 님의 힘…… 일까?’

방금 무엇을 봤는진 방랑의 무나딤의 능력으로는 분간할 수 없었지만, 선지자 특유의 감각이 그녀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세상이 변할 ‘가능성’이 높다.
침묵의 사막이 그러했던 것 이상으로.

방랑의 무나딤은 그 형언할 수 없는 여운에 잠겨 일어설 생각도 못 했다.
그때 경박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바로 옆에서 짧은 비명이 귀를 찔렀다.

“와악……! 아, 크흠. 아, 미안합니다. 그, 여기에 사람이 누워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한 바람에, 실례했습니다.”

외로운 늑대, 로메르.

초면에 멋모르고 칼리아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가 베르덴에게 한 소리 듣고는, 한동안 단련에 집중하며 조용히 지내 왔던 청춘의 전사.
그는 이번에 즐거운 마도 축제를 보내며 여태껏 억누르고 있었던 이성을 향한 의욕이 다시 솟아오른 상태였다.

당황은 잠깐.
멋대로 움직이는 입.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들다가도, 아무런 잡념도 떠오르지 않기도 하죠. 저는 그래요. 그래서 종종 바닥에 누워서 하늘을 구경하곤 합니다. 밤이든 낮이든.”
“……?”

방랑의 무나딤은 투하르에서 태어났고, 대륙에서 정말로 흔하지 않은 외모를 가진, 그야말로 이국적인 미인이다.
로메르는 방랑의 무나딤의 출신이 어디인지 전혀 몰랐지만 그녀가 어레인에서 지내기 시작할 때부터 은근히 관심을 가졌다.

우연히 미인과 단둘이 마주쳤다.
이 기회를 놓칠 외로운 늑대가 아니었다.

로메르가 느닷없이 검집에 팔뚝을 올리고 성벽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잘생긴 얼굴을 살린 은은한 미소와 함께.

“여기보다 하늘이 좀 더 아름다운 장소가 있는데, 괜찮다면 안내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

* * *

거대한 나뭇가지들이 갈라져 쭉 뻗어 나가는 뿌리 부분, 생명의 거목의 몸통 꼭대기에는 엄청난 크기에 걸맞은 공간이 있다.
수십 명이 뛰어다녀도 차고 넘치니, 한 명이 편히 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스스스슷.

생명의 거목이 작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생성해 잠든 베르덴을 위한 안식처를 만들었다.
무한한 마력으로 성장한 생명의 거목에게 있어 베르덴은 아버지와 같았다. 녀석이 베르덴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관리자가 다가섰다.

이자벨라가 드레드미어의 고삐를 쥐고 한 발짝 물러섰다.

“자리를 비켜 드릴까요?”
“오히려 가까이 오거라.”

관리자가 마력을 손에 집중했다.

“감각으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그대의 눈이라면 겉으로나마 볼 수는 있을 테니까.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다면 마력의 흐름에 주목해라.”
“아, 네! 관리자님.”

이자벨라의 왼쪽 금안에 변형된 역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형안이 베르덴을 직시했다.
드레드미어도 귀를 쫑긋거리며 슬쩍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시작하지.”

관리자는 망설임 없이 베르덴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관리자의 존재를 유지하는 마력도 베르덴의 마력을 근간으로 한다.

키론다르가 풀려나고 이슈르의 운명이 저지되어 관리자의 의무가 진즉 끝났음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는 초대 마도왕이 설계했던 분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관리자에게는 영혼이 있고.
베르덴 덕분에 분신의 근간이 본체로부터 일부 독립했으니.

마법적 존재로서 이미 개척된 길의 중심을 걸을 자격은 충분하다.

마도 <근원(根源)>

관리자의 청금색 눈동자에 담긴 두 색이 조화를 이루더니 녹색의 눈이 현현했다. 푸른 마력이 녹색의 마력으로 변모했다.
초대 마도왕의 고유 마도였다.
과거 침입자였던 베르덴과 마법전을 벌였을 당시 불완전한 초위 마법을 시전하며 한순간만 개방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마력도 충만할뿐더러 존재 자체가 안정적이었다.

쿠오오오…….

전 세계의 흐름이 이곳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아드리안처럼 난폭하기 그지없어 굽힐 줄 모르는 드레드미어조차 겁을 먹었고, 이자벨라는 압도되어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꿀꺽.

‘7대 마도왕의 마도와는 뭔가가 달라. 내 이해를 아득히 벗어났어. 이런 거대한 힘을 가진 관리자님이, 분신이라니.’

단 한순간이라도 적대하고 싶지 않다.

초대 마도왕이 얼마나 차원이 다른 초월자였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마도를 목도하니 역으로 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형안으로 근원의 기류를 관찰할 수 있을 뿐이지, 베르덴처럼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때, 환하게 피어나는 녹색의 광채.

파아아아아아앗.

관리자의 근원이, 베르덴의 심장과 일시적으로 동화되었다. 뿌리를 알면, 나무와 열매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지니.
베르덴의 몸이 현재 어떤 성장통을 겪고 있는지 관리자에게 전해졌다.

“변화와…… 변화가 맞물렸군.”
“맞물렸다뇨?”
“8위계로 오르는 것만이 전부였다면 이미 의식을 되찾았을 거다. 상승의 격에 적응하고, 힘을 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런데 그 흐름에, 다른 흐름이 정면으로 개입했구나.”

관리자는 마도를 계속 유지하며 기억에서 정보를 끄집어냈다.

“사막의 신인 이슈르는 신적 존재로서 완성되기 위해서 수십 년 동안 신전에 틀어박혔고, 새로운 격을 손에 넣었었다. 결국에는 완전해지기 전 베르덴에게 패배해 사멸했으나, 그 격은 근본적으로 베르덴보다 우위에 있었지. 그것은 강함의 차이가 아니라 본질의 차이였으니.”
“사막의 신…… 그게 베르덴의 상태와 연관성이 있는 건가요?”
“이슈르는 격을 얻는 과정에서 체온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을 지칭하는 투하르 대신전의 용어를, 사막어에서 대륙 공용어로 해석하면 이렇게 부를 수 있지.”

그가 눈을 감은 채 소리 없이 호흡하는 베르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열(神熱), 이라고.”
“그 말씀은…….”
“그래, 지금 베르─”

관리자가 멈칫했다.

‘이 정보가 내게 있었나?’

신열과 그 격.
아주 희미한 위화감이 스쳤다.

본체로부터 받은 모든 기억을 돌이켜 본 관리자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있었다. 위화감은 금방 사라졌다.

“베르덴은 신격을 얻고 있다.”

이자벨라가 눈을 크게 떴다.

‘가주가…… 신(神)?’

그녀는 너무도 당황스러워 입만 뻥긋거렸다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신이 된다니. 가, 가, 가주가 그런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요?!”
“본인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애초에 신이라는 건 원해서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원하지 않아도 될 수도 있는 극소수의 존재니. 흐음, 아무래도 베르덴을 생각보다 오래 살펴봐야 하겠구나.”
“가주한테 나쁜 일이 생기진 않겠죠, 관리자님?”
“깨어날 시점은 알 수 없으나, 두 가지 사실만은 단언할 수 있다. 하난 베르덴의 목숨에 어떠한 지장도 없을 거라는 것.”

관리자가 말을 이었다.

“다른 하나는 베르덴의 내면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는 것이다.”

본체의 기억이 그렇게 답했다.

* * *

파도가 출렁인다.

그에 따라 몸이 조금씩 흔들렸지만 시야에 비친 공허한 하늘은 미동도 없었다. 편안한 마음에 멍하니 바다에 몸을 맡겼다.

벽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신을 자각한 건 한순간이었다.

“……?!”

베르덴이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파도가 얼굴에 적셨다. 감각이 빠르게 되살아났다.
주변을 확인했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광활한 바다가 수평선 너머로 이어져 있었다.

‘현실…… 은 아니군.’

베르덴은 바다 전체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마력에 인지했다.
그건 베르덴의 마력이었다.

‘나의 내면인가?’

베르덴은 아무렇지 않게 상황을 파악하곤 감각의 범위를 넓혔다. 미지의 섬이 멸망하는 광경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왜 자신의 내면에 빠져든 걸까.

베르덴은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최우선 순위라고 판단했다. 시험해 보니 마법을 쓸 수 없었기에 함부로 이동하지 않았다.
일단 어디로 향해야 할지 정하기 위해서 베르덴은 주변 바다를 계속 살폈다.

“음?”

자그마한 뭔가가 바다에 떠밀려 가까워졌다.
익숙한 외형이었다.

“……알파?”

베르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미동도 없던 알파가 반응했다. 미니 골렘. 그제야 베르덴을 인식한 녀석이 짧은 팔을 휘저었다.

[베르덴 폐하.]

참방참방!

알파의 프레임으로는 원활하게 바다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베르덴은 당장 헤엄쳐서 표류하고 있었던 알파를 구출했다.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알 수 없음. 여기는 어디? 베르덴 폐하의 마력이 사방에 가득함.]

알파도 딱히 아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내 정신계인 것 같은데, 의식이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보가 없다. 당장 마법도, 마도도 쓸 수 없다는 것 외에는.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차에 너를 발견한 거고.”

베르덴은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재차 둘러봤다.

“……가만히 있어 봤자 딱히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아서 무작정 움직여 보려고 하는데. 알파, 네 생각은 어떻지?”

[베르덴 폐하와 알파는 일심동체. 적극 동의.]

외눈을 빛낸 알파가 손길을 따라 베르덴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준비 완료.]

“뭐가 보이면 말해라.”

[확인.]

그렇게 알파를 태운 베르덴이 마력의 망망대해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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