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31화.
붉은 악마, 아시온.
전(前) 무법지대의 왕이자, 초창기 무법지대의 설립 멤버.
당시에는 무법지대를 들으면 붉은 악마부터 떠올랐다 할 정도로 악명이 자자한 남자였다.
가히 빌런의 상징과도 같았던 존재.
일 대 백을 이겼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한다던가.
‘지금에 와서는 최강에서 물러났다곤 하지만…….’
분명하게 한때 최강의 빌런으로 정평이 났던 자였다.
그런 그가 돌연 왕 자리를 두고, 행적을 감추었을 때 유저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대체 왜 사라졌지?’
일반적인 유저는 물론 빌런들마저 아쉬워했고, 또 의아해했다.
최전성기를 달리던 상위 랭커.
10대 길드와 제국의 법에 밀려 숨어 지내던 빌런들의 희망이었던 자가 사라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 사람들은 여러 추측을 했었다.
칠강(七江)에게 찍혀 은둔생활을 해야만 했다던가, 현실에서 암에 걸려 죽었다던가.
하다못해 복장을 바꾸고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설까지.
다양한 추측이 오갔으나 끝내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결국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행방조차 발견 못 한 게 반년이 다 되어간다던가.’
이젠 붉은 악마보다 검은 악몽이란 이름이 더 익숙했고, 그보다 카르마일과 다른 세 왕의 이름이 더 유명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유저들의 경우, 아시온의 이름조차 모르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와서 아시온이 나타난다고 한들, 더는 최강의 빌런이 아닐 거라고.
그를 최강이라 칭하기엔 너무도 많은 강자들이 나타났으니까.
때문에 도현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대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그가 행적을 감춘 이상 조우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한데 지금.
쿠웅.
예상을 뒤엎고, 붉은 악마 아시온과 조우하게 되었다.
“카이저.”
“…….”
기괴할 정도로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낮은 저음.
저게 정녕 사람이 내는 목소리인지, 지옥 끝에서 서식하는 악마가 내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생김새는 또 어떠한가.
족히 190cm는 되어 보이는 키.
붉은 악마라는 명칭처럼 전신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으며, 양옆으로 넓게 펼쳐진 붉은 날개는 마치 불사조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았다.
“무법지대와 전쟁을 벌였다지. 뒤의 녀석들과 함께.”
“맞아, 저 녀석들이야 아시온.”
“……카르마일.”
씨익 웃으며 끼어든 카르마일의 말에, 아시온이 무심하게 그를 돌아보았다.
저들이 같은 편이 맞는 건가 의심될 만큼 무심하고 정 없는 눈빛이었다.
괜히 옆에서 보고 있던 도현이 흠칫할 만큼.
하나 카르마일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가 지금 여기에 왔다는 건, 예전처럼 우리와 뜻을 함께한다는 대답으로 여겨도 되겠지?”
“대답 좀 해줄래? 적을 앞에 두고 무시받는 게 좀 무안한데.”
“……무법지대는 패배하지 않는다. 그 철칙을 어겼더군.”
“미안한데 그건 우리가 어긴 게 아니야. 라온, 네 후임으로 들어온 그 빌어먹을 놈이 멋대로 전쟁을 벌이고 멋대로 패한 거지.”
“내가 있었던 시절엔, 무법지대는 결코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다.”
“그때와 지금이 같아?”
“다를 것도 없지. 여전히 모든 이들의 위에는 멸살, 그가 있으니. 그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패배는 용납할 수 없다.”
“그러는 사람이 홀연히 모습을 감출 건 뭐람. 아, 참.”
흔들림 없는 아시온의 모습에 투덜거리던 카르마일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돌연 홱 고개를 돌려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거 아냐? 저기 있는 카이저가 뎀로크 시절 그 멸살보다 위에 있었다는 거.”
“……들어본 것도 같다. 하지만 그건 오래 전 일. 그때의 멸살과 지금의 멸살은 많이 다르지. 게다가 저 남자는 한참 늦게 시작한 자. 이제 와서 그와 승부가 될 리가.”
……아니, 이 새끼들이.
졸지에 가만히 있다가 불똥이 튀어 얻어맞는 상황에 도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여기서 갑자기 난 왜 까?’
자신이라고 뭐 늦게 시작하고 싶어서 한 줄 아는가.
그저 국가의 부름에 충실하게 응했을 뿐이었다.
도현의 심기가 불편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카르마일은 여전히 재미있다는 듯 재수 없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업적은 어디 안 가지. 재밌지 않아? 그런 카이저가 우리와 지독한 악연으로 엮였다는 게.”
“무엇보다 네가 행적을 감춘 목적.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자’의 편이 되어서 나쁠 거 없지 않겠어? 저놈을 잡으면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지.”
그 순간.
무관심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아시온의 눈빛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목적의식이 짙게 묻어나오는 눈이, 저 거대한 날개의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들끓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좋다. 받아들이지.”
“잘 생각했어.”
“단, 카이저. 저자는 내 먹잇감이다.”
“흐음, 내가 손 보고 싶었는데…… 뭐, 그렇게 해. 오랜만이니 양보해줄게.”
카르마일이 마지못해 수긍하자 아시온이 홱 고개를 돌렸다.
더는 대화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듯 미련 없이 돌아선 그의 시선은, 오직 도현에게 꽂혀있었다.
“……들어와라. 오랜만에 몸을 풀도록 하지.”
“허.”
마치 메인 디쉬를 먹기 전에 나온 애피타이저를 보는 듯한 태도에 도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몸을 풀어? 손을 보고 싶어? 아주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지X을 하네. ”
스윽-
“순서가 틀렸어. 손을 보는 건 너희가 아니라, 이쪽이야.”
천변을 쥐며 서서히 자세를 잡는 도현의 뒤로, 얘기를 듣던 동료들 또한 끼어들었다.
가장 먼저 끼어든 건 여제였다.
“하여튼 새끼들이. 주제 파악 못 하고 이빨을 들이미는 짐승들한텐 칼빵이 약이라니까.”
“……보통 매라고 하지 않나?”
“내 경험상 매보단 칼빵이 직격이더라고.”
“……?”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여제의 말에 살짝 멍해진 검성과 아스트.
반면 오히려 마주하고 있던 바이킹처럼 거대한 남자, 비요른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그렇지! 그거야! 건방진 놈들한텐 좋게 대해주면 안 되거든. 아주 기를 못 펴게 죽여놔야 말을 듣지.”
“내가 너한테 하려는 것처럼?”
“크흐흐, 아니. 내가 네년한테 하려는 것처럼이 맞지. 모처럼 죽이 맞을 것 같은 녀석이건만, 애석하게 되었군.”
여제의 숨 쉬듯 튀어나오는 도발에도, 비요른은 그저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머금을 따름이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린 여제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주둥이로 싸우냐? 닥치고 들어오기나 해.”
“네년이 날 상대하는 건가? 저기 덩칫값 못하는 현질러 말대로, 저놈이 날 상대하는 게 나을 텐데?”
“혓바닥이 길어. 왜, 자신 없어? 아님 네가 카르마일인지 카라멜인지 저 마른 놈보다 더 약한가?”
“그럴 리가.”
“그럼 닥치고 자세 잡아. 발라줄 테니까.”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여제의 말에 비요른이 못 당하겠다는 듯 양팔을 들어 올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여유로움을 드러내는 태도였지만, 그녀의 눈엔 보였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지르고 싶어 안달 나 있는 걸 애써 감추려는 저 눈빛과 태도가.
그리고 파괴가 일상인 그의 인내심은 짧았다.
“그래, 죽여주……!?”
콰아아앙!
비요른이 냅다 도약하며 주먹을 내지르기 무섭게,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여제가 마주 검을 휘두른 것이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비요른도 불이 붙었네. 이제 와서 내가 끼었다간 나까지 공격하겠는걸.”
“……에휴, 하여튼 꾸꾸 녀석 고집하고는.”
“뭐야, 저쪽도 싸우고 있잖아? 무기고의 주인, 너희 쪽 검술광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심지어 그건 여제와 비요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서로 검을 부딪치고 있는 검성과 서양검을 다루는 왕, 시르간을 본 아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달리 말하면 카르마일, 그와 아스트가 싸우게 되는 것을 뜻했다.
“괜찮겠냐? 나 감당하는 거.”
“좀 그렇긴 하네. 카이저나 다른 녀석들을 기대하고 왔더니 쩌리랑 상대하게 된 꼴이라니 말야.”
“허, 입만 산 건 너희 종특인가 봐?”
“글쎄…… 질 자신이 없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너한텐 말이야.”
그리 말하는 카르마일은 웃고 있지 않았다.
“무기고의 주인, 최강의 한 방을 가진 바벨론의 마스터. 너의 전투 방식과 특성을 익히 알고 있지.”
확신이 담긴 수준을 넘어, 그저 사전에 적혀있는 사실을 전달하듯 고조 없는 어투.
“그래서 말하는 거야. 너와 난 상성이거든. 여제와 비요른만큼은 아니겠지만…… 같은 실력이라면 뒤집지 못할 만큼의 상성.”
“시르간 쪽도 마찬가지야.”
서양 검술의 일인자.
실제로 유럽 쪽의 역사 깊은 검술 가문의 자제로, 전무후무한 천재로 정평이 나 있던 그다.
다른 쪽은 몰라도 동양의 검술을 상대로 특히나 강한 게 그의 가문의 검술.
그와 더불어 그의 천재성과 가상현실이기에 가능한 움직임이 더해진 이곳에서, 그는 동양의 검객에게 패배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한 마디로 지독한 카운터 전이라는 소리였다.
그건 비단 동료들만이 아니었다.
[악연을 맺은 대상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플레이어 ‘아시온’ 님은 카이저 님과 악연 관계가 아닙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아시온은 엄연히 무법지대를 탈퇴한 자.
도현과는 어떠한 인연도 없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였기에 시그니처 특성이 발동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필 네 명의 상대 중 유일하게 악연의 장이 발동되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라니.
놈들 사이의 전투력 차이와는 별개로 도현에겐 최악의 상황이었다.
카운터 능력 지급이라는 사기 특성의 도움 없이 싸워야 하는 지금, 이곳에서 가장 스펙이 낮은 게 도현이었으니까.
“재미없게 되었군. 네 동료들의 같잖은 자존심 때문에 이리도 손쉽게 승패가 결정될 꼴이라니.”
쿠웅, 그리 말하며 한 발짝 다가온 아시온에게서 지독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저놈의 말이 맞았다.
논리적으로든 이론적으로든 틀린 말 하나 없는 평가.
“……웃어?”
하나 도현은 초조해하긴커녕 씨익 웃어 보였다.
“아, 미안. 어이가 없어서 말이야.”
“……뭐가 어이가 없지?”
“상성? 카운터?”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던 도현의 표정이 한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윽고 흘러나온 목소리는 그보다도 더욱 차가웠다.
“내가 그런 상대를 몇이나 만나봤을 거 같냐?”
전설급 스킬 하나 없는 검사.
그렇다고 강화가 잘 붙는 것도 아니라 장비 성능도 밀리고, 전설급 스킬 없는 검사라서 늘 불리한 싸움을 해왔다.
카운터? 그런 걸 논하는 게 의미가 없을 만큼 불리한 싸움을.
그 많은 싸움의 끝에 언제나 서 있는 건 도현이었다.
그리고…….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맞나 봐. 나도 난데 저 녀석들도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거든.”
한 방 빼곤 피지컬도 뭣도 없는 극강의 현질 아재.
수많은 강력한 즉발 스킬을 모두 배제하고 오직 검술만을 고집하는…… 심지어는 말투까지 사극체 컨셉을 유지하는 검객.
스스로 생명력을 불태우며 등을 보이는 법 없는 초근접전을 행하는 노빠꾸 광전사.
하나같이 나사 하나씩 빠진 이들인 만큼 파훼법은 수두룩했고, 극상성인 상대도 손에 꼽기 힘들 만큼 많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짓밟고 한 자릿수 랭킹을 유지한 게 도현의 동료들이었다.
“카운터? 상성? 그게 뭐 어쨌는데. 야, 게임에서 뭐가 제일 중요한지 아냐? 경험이야.”
뭐든 처음이 어렵지, 한 번이라도 불리한 상황을 이겨본 경험이 있으면 두 번은 쉬웠다.
그리고 그게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되면?
다섯 번도 손쉽게 하게 되고, 여섯 번 일곱 번…… 그리고 수십 번이 넘어가면 더는 자신이 없어진다.
질 자신이. 그건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할 터였다.
“지금의 녀석들은 내가 뎀로크 시절로 돌아가도 장담을 못하겠어서 말이야.”
“무슨…….”
알 수 없는 말에 아시온이 뭐라 말문을 떼던 찰나였다.
콰아아아앙!
도현의 말이 예언이라도 되듯.
뒤쪽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며 무언가 쿵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의 정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비요른?”
주먹을 뻗는 자세의 여제 앞에서, 바닥에 대 자로 뻗어있는 거구의 남자.
비요른이 멍하니 눈을 끔뻑이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