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54화.
그건 비단 아르니스 제국의 군세만이 아니었다.
—–!
와아아아아아–!
제각각 동쪽과 서쪽을 포위하고 있던 사르기스와 프라텔의 군단 또한 함성을 내지르며 전장으로 투여되었고.
[대 신성(神聖)마법 ‘심판의 날’이 발동됩니다.]
[심판의 밧줄이 대상의 악행을 확인합니다.]
[14,241건의 악행이 확인되었습니다.]
[심판을 진행합니다.]
“이 무슨 끔찍한 악행들인가…… 과연 영웅이 옳았던 것인가.”
“라이르 성기사단의 힘을 보여주어라!”
“은인을 도와라!”
심지어는 브리온의 신관들과 라이르 기사단 또한 그 진형에 합류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검을 뽑은 건, 다름 아닌 르베드 경.
—!
해일을 갈라내었다는 일격을 가하자,
한 줄기 빛이 번쩍이며 전방을 반으로 가르는 참격이 날아갔다.
준 칠강이라 불리는 자다운, 압도적인 검술.
“르베드 경! 당신이 대체 왜……!”
“다른 새끼들은 그렇다 쳐도, 넌 성기사잖아! 라이르 신을 모시는 입장이면서, 신을 배신해도 되는 거야!?”
“……배신한 적 없다. 그저, 깃털 패를 주며 맺은 약속을 이행할 뿐.”
억울함에 항변하는 유저들을 향해, 르베드는 무심한 시선으로 그리 일갈할 뿐이었다.
개시는 리오르가 열고.
그 뒤를 이어 르베드 경이 첫 활약을 벌이자, 질 수 없다는 듯 곳곳에서 활약상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하얀 마탑주가 마도공학식 병장술(兵裝術) – 백색연산포대(白色演算砲隊)를 전개합니다.]
[다층 연산진에서 생성된 마탄들이 궤도를 바꾸며 사방에서 적을 관통합니다.]
“오, 이런 식으로 발동되는군요. 조금 더 보완할 구석이 필요할지도…… 자, 실험할 게 많으니, 부디 오래 버텨주세요, 사도들이여.”
“니X, 씨X럴! 이건 아니지!”
“집행자가 이긴다며. 무조건 이긴다며!! 집행자가 정배라며!”
온갖 특이한 마도공학을 활용한 마법을 구사하는 하얀 마탑주와,
번쩍-! 촤아악!
“리오르 폐하께서 길을 여셨다!”
“폐하를 따라라!”
1황자 때부터 뛰어난 무를 자랑하던 리오르의 거침없는 선봉 돌파로부터 이어지는 리더쉽과 천만 군단이라는 압도적인 전력.
괜히 제국의 황제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 가히 대단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도현의 시선은, 다른 곳에 더욱 쏠렸다.
“저희는 엄연히 따져 큰 전력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가장 유리한 진형을 선점해놓을 수는 있지요. 최대한 제국이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게 도울 겁니다.”
“예, 성주님!”
“자자, 시작해보죠. 사르기스의 은인, 카이저 님을 위하여!”
“위하여!”
자신들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정확히 할 일을 찾아 명령하는 모습.
이전의 그 미숙했던 제이 루드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능수능란한 지휘력이었다.
제이 루드델이 성주임을 밝힌 이후.
사르기스에 한바탕 피바다가 불고 꽤나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더니…….
찡긋.
눈을 마주친 제이 루드델이 가볍게 윙크하는 모습에, 도현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째 삼촌인 진 루드델을 닮아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역시…….
[프라텔의 성군, 길베룬이 ‘천성광륜대진(天星光輪大陣)’을 전개합니다.]
[밤하늘을 기운을 담은 초대형 마법진이 전장을 뒤덮습니다.]
“세상에…… 이게 마법진이라고?”
“무슨 마법진 규모가 이래!? 100M가 넘게 펼쳐져 있잖아!”
-이 무슨 경이로운 마력량인가……! 인간의 몸으로 혼자 이 정도의 대형 마법진을 구사한다니!?
프라텔의 성군, 길베룬이었다.
방대한 마력을 타고났으나, 감당할 수 없는 마력량을 통제하지 못해 비운을 맞이해야 했던 국왕.
하나 결국 모든 걸 바로잡은 그는, 이제는 더없이 훌륭하게 마력을 통제하고 있었다.
-호오, 가히 용에 버금가는 마력량이로군.
용언을 시전하던 드라카르마저, 순간 멈칫하고 감탄할 정도.
마력을 제대로 다룬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대마법사의 수준이니, 과연 기록된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방대한 마력을 타고난 자다운 자질이었다.
하나 길베룬은 그저 눈을 감은 채 담담하게 마법진을 완성할 따름이었고.
[프라텔의 성군, 길베룬이 ‘천성광륜대진(天星光輪大陣)’을 발동하였습니다.]
[‘별광의 세례’가 적진 전역에 쏟아집니다.]
[영역에 있는 모든 적들에게 별의 기운이 담긴 세례를 쏟아내어 강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천성광륜대진의 효과 ‘성군의 가호’가 아군 전역에 깃듭니다.]
[영역이 유지되는 동안 대항자들의 마력과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이내 형성을 마친 길베룬이 천천히 눈을 떴다.
와아아아아아아-!!
“……안젤라, 보고 있소?”
용맹하게 싸우는 전사들을 보며, 그가 낮게 되뇌듯 중얼거렸다.
“드디어 은혜를 갚을 날이 왔소. 그러니 부디……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구려.”
눈에 여러 감정이 담긴 것도 잠시.
이제 그는 프라텔을 이끄는 국왕이자, 대륙에 셋뿐인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자.
다시금 마법을 준비하는 길베룬의 눈빛은, 대마법사로서의 현명하고 단단한 눈으로 바뀌어있었다.
쿠구구구구- 쿠웅-!
줄곧 가만히 있던 거인들이, 나서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요, 요툰하임이 참전한다!
-이런 젠장……!
-결국, 저들이 나서는가…….
그러자 일부 이종족들이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탄식했다.
바하르곤과 요툰하임.
두 왕좌의 주인들에 대해 아는 이종족로선 두려움에 질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바하르곤이 그 거대한 덩치와 강력한 브레스를 지니고도, 최강의 생물이 아닌 마법의 종주로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요툰하임을 위하여—!
……순수 무력에선 요툰하임이야말로 최강이니까.
콰아아아아아앙-!!!
무언가 큰 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일제히 손에 든 전곤(戰棍)을 내려찍었을 뿐인데.
엄청난 굉음이 퍼지며, 마치 세상의 멸망이 재현되기라도 한 듯이 지면이 갈라지고 솟구쳤다.
쿠웅.
일격에 재해를 일으킨 그 길을, 한 거인이 걸었다.
드러난 상체에 흉터가 가득하고, 벼락처럼 불거진 근육은 마치 산맥을 억지로 인간의 형상으로 빚어낸 듯 거대하다.
구릿빛 피부 위로 패인 상흔 하나하나가 오래된 전장의 훈장처럼 남아 있었으며.
흐트러진 백발 아래 드러난 두 눈은 광포함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짓눌러 복종시키는 왕의 위엄이 담겨 있었다.
쿠웅- 쿵-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대지가 비명을 지른다.
꿀꺽.
무너진 지면을 밟고 걸어오는 모습은 전사라기보다, 전쟁 그 자체가 형체를 얻어 걸어오는 듯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존재감.
[두 번째 왕좌의 주인, 거왕(巨王) ‘그로탄 요툰하임’과 조우하였습니다.]
[요툰하임의 거인이 전쟁에 참여합니다.]
-오랜 잠에서 깨워주어 고맙구나, 전사여.
“…….”
-너를 요툰하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니, 위대한 선조들의 영혼이 그대와 함께할 것이다.
거왕(巨王), 그로탄 요툰하임.
고대 시절 모두가 두려워하고, 신들마저 경계한 거인이 오랜 잠에서 깨어 전쟁에 참여했다.
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카디움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이래도 내가 불리해 보이냐? 내 눈엔 반대로 보이는데.”
-…….
혼란스러웠다.
도현의 비아냥에 대꾸하지도 못할 만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바하르곤까지는 괜찮았다.
놈들의 수 자체는 많지 않기도 하고, 심연의 강자들이라는 변수가 있었으니까.
-놈들이 아니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밀리는 건 저쪽이 될 게 분명하였다.
절대적인 세력의 차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하지만 요툰하임까지 개입했다면…… 확신할 수 없어진다.
요툰하임의 거인들은 하나하나가 압도적인 힘을 지닌 전사들.
개개인의 힘이 인간들 사이에서 권왕(拳王)이라고 불리던 그 노인을 상회한다.
그렇다면 거왕(巨王)은?
[심연의 강자, ‘파멸의 주인’이 거왕(巨王) 그로탄 요툰하임과 격돌합니다.]
-심연에 영혼을 판 더러운 자여, 요툰하임 앞에 무릎 꿇으라.
[네 놈은…… 내가 죽이겠다…… 군단이여 저자를 파멸시켜라……!]
최소한 심연의 강자급…….
그중에서도 순수 위력만 두고 보면 가장 강력한 파멸의 주인과 맞치기를 하면서도 결코 밀리지 않고 있었다.
콰아아앙-!
……아니, 오히려 밀어붙이고 있다.
파멸의 주인의 철퇴와 거왕의 전용 무기인 거령패곤(巨靈覇棍)이 부딪힐 때마다, 듣기 괴로우리만큼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크윽…… 어서 나를 도와라…….]
그럴수록 파멸의 주인이 버거워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간들의 배신이 그리 타격이 컸던 걸까.
카디움이 줄곧 유지하던 위엄을 벗으며, 분을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크흐흐…… 크하하하! 죽음의 기운이 이보다 짙을 수가 없군. 일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카디움!]
-닥쳐라! 더러운 심연의 찌꺼기가.
[크큭…… 여유가 없어졌군. 조급한가, 추락한 신이여.]
-역겨운 것들, 더러운 것들. 이 씹어먹을 것들이 감히, 이 나를…… 나를 능멸해?
불멸의 주인의 비아냥에 몇 차례나 더 감정을 표출하던 카디움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애써 진정하곤 말했다.
다만, 그의 검게 물든 눈은 오직 도현을 향해있었다.
-……불멸의 주인이여. 동맹을 제안한다.
[호오, 이건 놀라운데…… 신좌를 잃는 한이 있어도, 우리의 손을 잡지 않던 네가 동맹을?]
-저자는 결코 살려둬선 안 된다. 언제고 내 원대한 목표를 방해할 자야.
[흐음…….]
-그러니, 지금. 확실하게 조각을 빼앗아 신좌를 되찾고…… 신들을 강림시킨다.
[크큭…… 아무렴 상관없겠지. 좋다, 그러나 내 목표는 신살의 그릇을 완성한 저놈의 검 그 자체……. 완성된 그릇이 날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는…… 동맹을 취소한다.]
-……그러도록.
그런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던 도현이 헛웃음을 내뱉은 건 그때였다.
-……웃는가? 실성이라도 한 거냐.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머저리를 보듯, 불쾌해하는 카디움의 반응에도 도현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웃고 나서야 멈춘 도현이, 천천히 놈들을 훑어보았다.
그 무심한 눈길에는 어떠한 공포도,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내가 계속 걱정하던 건 너희가 아니야.”
확신이라고 표하기도 민망한…….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내뱉는 자의 눈빛이었다.
“불리하던 세력의 차이였지. 내가 너희를 죽이기 전에, 모든 대항자들이 패배하면 안 되잖아?”
도현의 주목적은 운명의 조각을 사수하는 것이겠지만.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면 대전쟁 메인 퀘스트를 패배로 기록하게 된다.
도현 혼자서 저들 모두를 상대로 이길 순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이기고 있는 건 이쪽이지, 너희가 아니라.”
이젠 이 둘에게만 집중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놈들과 부딪힌 것으로 전력은 이미 파악됐으니까.
-……감히 허세를.
[그릇이여……. 아무리 자신만의 신살의 검을 완성하였다 해도…… 그건 불가능하다. 자만이 너무 심한 것 같군.]
자존심이 상한 걸까.
불멸의 주인마저 웃음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 도현으로선 자만을 부린 것도, 객관적인 판단을 못한 것도 아니었다.
좀 전까지 2:1의 구도에서 힘들었던 것은 ‘지금’의 도현이기 때문.
[뇌룡강림(雷龍降臨)에 어둠 두르기를 사용합니다.]
[타이틀, ‘어둠 파괴자’가 발동합니다.]
[뇌룡이 어둠 두르기에 영향을 받아 어둠 특성을 갖습니다.]
[어둠 특성의 효과가 추가로 적용되어 뇌룡과 흑룡의 기운을 동시에 지니게 됩니다.]
[용왕(龍王), 드라카르 바하르곤의 인정을 받은 것이 확인됩니다.]
[그의 온전한 힘을 빌려옵니다.]
……
[용왕(龍王), 드라카르 바하르곤의 흑룡으로서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흑룡의 힘 : 3]
파지직- 파직!
흑룡강림.
본디 신의 눈물이 없으면 조금도 버티지 못하였던 금단의 기술.
하나 그것이 이제는, 일반 전설 스킬처럼 편안했다.
몰래 빌리는 게 아닌, 정당하게 빌리는 것이기에 담긴 힘 또한 상승했고.
하나 이런 건 힘의 일부에 불과했다.
[전설 스킬, ‘운명의 부름’의 추가 부여 능력 ‘강명(強命)’을 발동합니다.]
[아직 감당하지 못할 자의 운명을 강제로 불러냅니다.]
[한 단계 높은 경지의 특성을 불러낼 수 있습니다.]
[현재 저장된 ★급 특성의 개수는 7개입니다.]
[현재 세 번의 초월을 겪은 것이 확인됩니다.]
[보유한 모든 특성을 불러낼 수 있습니다.]
“난 원래 2페이즈가 센 타입이거든.”
띠링!
[지고의 경지 [잊혀진 왕] ★★★★을 불러옵니다.]
[잊혀진 왕이 생전 이루었던 지고의 경지에 도달합니다.]
[플레이어 ‘카이저’님이 일시적으로 지고(至高)의 영역에 발을 들어섰습니다.]
[영역에 들어선 동안 고유 특성 ‘지고(至高)의 길을 걷는 자’가 활성화됩니다.]
[아득한 경지가 검에 깃듭니다.]
[지고의 경지가 파명검(破命劍)과 공명합니다.]
[자신만의 검술을 완성한 것이 확인됩니다.]
[특성 ‘투신(鬪神)’이 개화한 상태입니다.]
[조건을 충족하여 두 효과가 발현되는 동안, 지고(至高)의 경지의 끝에 도달한 힘을 발휘합니다.]
…….
-이게 무슨…….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이, 압도적인 힘이 느껴진다.
그에 경악한 카디움이 체통도 잊고 입을 떡하니 벌렸고.
[……그런다 한들 나는 불멸의 존재. 네놈의 그 특이한 검조차 나를 죽일 수는 없…….]
[거역의 서(書)가 적합한 힘을 탐색하기 위해 시전자와 대상에 얽힌 서사를 읽고 있습니다.]
[대를 넘은 지독한 악연이 느껴집니다.]
[반항의 연(緣)이 발동됩니다.]
[운명에 강하게 저항하여 상대에게 죽을 확률이 가능 높은 운명을 거스를 힘이 주어집니다.]
[심연의 강자 불멸의 주인의 ‘불멸(不滅)의 권능’에 저항할 힘을 얻습니다.]
[격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면역 세포를 온전히 무시합니다.]
“죽일 수 있을 거 같은데?”
[…….]
줄곧 죽음을 선사해달라 외쳤던 불멸의 주인이, 입을 다물었다.
더없이 선명한 죽음의 기운이 목전에 닿은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