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30화.
무법지대의 왕.
혹은 군림하는 자라고 불리는 자들.
그들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어봤다.
능히 10대 길드 마스터급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닌 존재들로, 실제 10대 길드 마스터들조차 그들과 구태여 싸우지 않는다고.
‘무법지대에는 10대 길드 마스터만 5명이 있는 셈이지.’
무법지대가 그 깽판을 치고 다니면서도 단체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실제로 라온도 신생 10대 길드 마스터가 된 라이하스를 상대로 승리한 전적이 있지 않던가.
하나 네티즌들과 아재의 말을 토대로 볼 때, 그런 라온조차 왕들 사이에서 최약체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기에 내심 궁금했다.
과연 남은 왕들은 어느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을지.
‘10대 길드 마스터라고 다 같은 급은 아닌 것처럼.’
왕들 사이에도 격의 차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남은 네 명의 왕 중 셋을 마주한 소감은…….
‘기대 이상인데.’
라온과는 비교하기도 미안할 정도다.
단순히 스펙이 더 높고 더 강하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단연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능력치가 높아도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이 안 받쳐주면 능력치의 100%를 뽑아낼 수 없으니까.
‘라온이 그런 케이스였지.’
그나마 마법사 계열이라 사기적인 특성들 덕에 그 위치까지 오른 것일 뿐.
실제로 그 능력들이 통하지 않게 되자 그저 손맛 좋은 샌드백이 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들은 달랐다.
당장 처음 기습을 가했던 검사만 봐도 그렇다.
‘저 속도…… 상당한 실력자야.’
속도는 사람이 통제하기 가장 힘든 요소다.
현대인이 게임적 요소가 가미된 비현실적인 속도를 감당하는 건 버거운 법이었으니까.
아무리 보정이 들어간다곤 해도 100%를 뽑을 순 없었다.
그렇기에 속도가 주무기인 사람들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게 바로 얼마나 스펙상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감당해내는가였다.
괜히 고인물 게임이 된 뎀로크에서도 뇌제만 한 무도가가 나오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기습했을 때의 속도만 두고 보면 그 시절 뇌제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그렇다는 건 천마가 된 지금의 그녀보다도 빠르다는 뜻.
더불어 지금 이곳에서 저 검사보다 빠른 사람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데 검술에도 자신이 있어 보인다.
스스로 서양 검술의 일인자라 했으니.
‘뇌제 수준의 쾌검을 구사하는 검사라…….’
제공권을 통한 무력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검성의 방어냐, 그 이상의 속도냐.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공방이 될 것만 같았다.
다른 왕들은 또 어떤가?
뚜둑.
“비록 전력은 아니었지만, 보통은 이 정도에도 다 나가떨어지던데 이걸 막다니 정말 놀랐다고. 뭐, 그래도 피해가 없진 않아 보이지만 말이야.”
“기습한 새끼가 뭐 잘났다고 의기양양한 것 봐라. 뒤지게 패고 싶게.”
“그럴 순 있고?”
2M가 훌쩍 넘는 장신에 우락부락한 근육질 덩치와 굵직한 뼈대.
웃통을 깐 것이나 다름없는 방어구와 짧은 머리.
북유럽의 바이킹이 연상되는 외모와 걸맞게 그 파괴력마저 엄청났는지, 실제로 주먹을 막은 여제의 생명력이 꽤나 줄어들어 있었다.
주먹을 막는 순간, 그녀의 뒤로 퍼져나갔던 충격파가 꽤나 크다 싶긴 했다만 그걸 감안해도 이상했다.
막은 것으로 판정이 되면 딜이 안 박혀야 정상이었으니까.
‘설령 박힌다 해도 유효타 수준은 아니어야 할 텐데.’
아마도 막아도 피해가 들어가는 종류의 특성이나 고유 능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시그니처 특성이나 초월 특성일 수도 있고.
뭐가 됐든.
‘……꾸꾸 녀석한텐 카운터겠는데.’
대부분의 생명력을 제물로 바쳐 초근접전을 벌이는 꾸꾸로서는, 저 능력만큼 까다로운 게 없을 터.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덩치. 너도 한 방이 좀 자신 있나 봐? 아무래도 넌 나랑 놀아야 할 거 같은데.”
“음?”
평상시라면 굳이 나서지 않을 아재가 위협적으로 걸어 나오며 끼어들었다.
동양인의 한계를 뛰어넘은 거구의 근육질이라,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곰처럼 위협적이었던 아재였건만.
지금은 머리통 하나는 더 작은 느낌이었다.
“오, 무기고의 주인. 소문은 많이 들었지. 일격으로만 놓고 보면 갓오세 최강이라지?”
“어, 맞아. 너도 파괴력에 자신 있어 보이던데 어디 나한테 한 번 보여 주지 그래.”
“기세등등한데. 최강의 파괴력이라고 불리니 어깨가 많이 올라갔어.”
수긍하듯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이는 아재를 보며 바이킹처럼 거대한 남자가 이죽거렸다.
“하지만 그래 봐야 영끌 아닌가? 네놈은 한 방 날리고 나면 넉다운 되는 조루 새끼잖냐. 반면 내 한 방은 지치지 않는다고. 남자라면 응당 끝까지 달려야지. 안 그래?”
“……뭐 인마?”
“귓구멍이 막혔나. 한 번 더 말해줘? 너 같은 루저 새끼는 날 감당 못 한다고. 차라리 여제가 더 재밌을 거 같은데 말야.”
“이 새끼가……!”
제대로 발끈한 아재였지만, 아재보다 더 빨리 반응하는 이가 있었으니.
“지X하고 자빠졌네. 누구 멋대로 감당하니 뭐니 하고 있어? 너 같은 새끼들을 내가 한두 번 보는 줄 아냐. 너 같이 덩치 믿고 까부는 것들이 꼭 발리고 나면 현실부정부터 하고 보더라고. 찌질하게.”
“……뭐?”
“이건 뭐 귀가 먹은 거야, 이해력이 낮은 거야? 도전자면 도전자답게 굴라고. 까불지 말고.”
악담을 퍼부을 때마다 유독 딕션이 좋아지는 건 기분 탓일까.
폭풍처럼 밀고 들어온 욕설에 순간 멍해져 있던 남자가 뭐라 반박할 틈도 없이, 그녀가 이번엔 아스트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재도 나와. 선빵친 놈을 왜 가져가?”
“……내가 낫지 않겠냐?”
“내가 질 거 같다 이거야?”
“아니 뭐. 그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내가 더 유리하긴 하잖냐. 저놈 같잖은 파괴력 믿고 까부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나한테 선빵 날린 순간 늦었어. 저놈은 내 먹잇감이야.”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마치 간식 하나를 두고 누가 가질지 기 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처럼 일말의 양보도 없는 모습.
일순 먹잇감 신세가 된 남자, 무법지대의 왕 ‘비요른’이 황당하다는 듯 툭 내뱉지만,
“이봐. 내 의사는 없나? 차라리 그냥 둘 다 덤비지 그래.”
“닥쳐. 넌 그럼 숨도 못 쉬고 뒤지니까.”
“허?”
단칼에 잘려나갔다.
그런 세 사람의 모습에 도현과 마주하고 있던 카르마일이 싱긋 웃어 보였다.
“이런. 저쪽은 아직 상대를 정하지 못했나 보네. 아, 내 이름을 말 안 해줬나? 난 카르마일이다. 무법지대의 왕 중 하나지. 너희로 치면 길드 마스터 같은 거라 보면 돼.”
“……원래 그렇게 말이 많나?”
“글쎄. 평상시엔 없는데 이럴 땐 좀 많아지긴 해. 내가 사연이 좀 있어서 곧 죽을 사람 말동무라도 되어주자는 게 내 신조다 보니, 게임에서도 습관처럼 그러더라고.”
농담인지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놈은 도발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터지길 기대하듯 악동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그 같잖은 도발에 도현이 피식,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전쟁도 치른 마당에 조만간 니들하고 엮일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그 순간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네?”
“우리도 몰랐지. 설마 너희가 이렇게 빨리 선을 넘을 줄은 몰랐거든.”
“선?”
“그래. 카이저.”
그 순간 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소를 거두고 목소리를 낮게 까는 순간, 장난스럽던 기류가 사라지고 기묘한 압박감이 전해진 것이다.
“라온, 그놈을 처리한 건 중요치 않아. 지가 전쟁 일으키고 지가 발린 걸 누굴 탓하겠어.”
“…….”
“하지만 이건 아니지. 왜 루팔로의 숲까지 기어들어 와서 이 사달을 내? 심지어 부수라고 놔둔 잔재를 두고 이곳을 찾아내다니…… 이럼 우리로서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서 말야.”
“……침입자들과 한 편인가. 유저면서 왜 그들 편을 드는 거지? 그래 봐야 너희한테도 불이익일 텐데.”
“이봐, 카이저. 애당초 지금의 갓오세가 우리 빌런들의 편이 되어준 적이 있나? 불이익은 너희한테나 해당되겠지. 우리에겐 새로운 세계가 필요해.”
“무슨 뜻이지?”
“빌런들 중엔 현실에서도 좋지 않은 취급을 받는 이들이 많지. 혹은 그런 경험을 했거나 뭐 사상이 남들과 조금 다르거나 등등. 보통 우린 여기서라도 그 욕구를 풀고 싶어서 게임을 한단 말이야? 그런데 이 X같은 세상이 게임에서조차 법이고 나발이고 들먹이며 마음대로 못하게 하네? 이게 즐겁겠어?”
“너희가 게임에서 현실과 다른 재미를 찾듯이, 우리에게도 필요해. 아무도 막을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우리의 낙원이 말이야.”
그리고 그걸 위한 첫걸음을 자신들이 여는 것이다.
10억 명이 플레이하는 갓오세라면 몇 년이고 그 인지도를 이어 나갈 테고, 그때 가선 자신들은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들이 되어있겠지.
어쩌면 빌런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남자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이 비열한 것들. 주군, 저는 저런 이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참회가 되지 않는 악질적인 자들. 사회를 좀먹는 병균 같은 자들입니다.
-옳소! 한 마디로 실컷 범죄 저지르고 다니고 싶다, 이거 아냐. 지들 세상에서 하면 되지 왜 우리 세계 와서 깽판 치려 그래?
-리자리자!
가디언들에겐 게임이란 말이 유저들이 이곳 세계를 뜻하는 단어로 해석되는 걸까.
거품을 물며 항의하는 녀석들을 보며 도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주느라 귀가 썩는 줄 알았네. 신념이 있는 척, 뭐 세상에게 배척받은 척. 적어도 여기선 너희가 스스로 배척받았다고 생각은 안 해봤나 보지? 여기서마저 빌런이 된 건 너희가 고른 삶이잖아? 아니면 그런 삶을 즐기나?”
“이해를 못했나 보네. 이런 삶도 부정 받지 않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거다. 너희를 위한 게임은 많지만, 우리를 위한 게임은 없으…….”
“아, 듣기 싫어. 거참, 그럼 너희가 게임을 개발하던가. 그만 징징거리고 들어오기나 해봐.”
한없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도현을 응시한다.
그건 살의였다.
뼛속까지 차가워지는 응축된 살기.
하나 빌런 상대 전문인 도현에겐 한없이 익숙한 눈빛이었기에, 멈추지 않고 태연히 비꼬았다.
“그리고 그런 거면 병력이라도 더 끌고 오던가. 겨우 셋으로 되겠어? 이쪽은 넷…….”
-우리도 있다구, 주인!-음!
“여섯…….”
-리자!? 리자!
“……일곱인데 말이야.”
단순히 수로만 쳐도 2:1을 해야 하는 상황.
가디언들을 빼놓고 계산해도 왕 하나는 둘을 상대해야 했다.
하나 녀석은 오히려 웃어 보였다.
같잖다는 듯이.
“누가 그러지? 셋이 왔다고.”
“뭐?”
“아아, 우리도 처음엔 셋인 줄 알았는데…… 이곳에 있더라고. 그 남자가.”
“……그 남자?”
그 물음에 답한 건 카르마일이 아니었다.
쿵, 쿵.
카르마일이 아닌, 도현의 뒤쪽.
사람이 내는 소리가 맞나 싶을 만큼 무거운 발소리.
쿵.
점점 가까워지던 소리가 어느 순간 멈추었고, 뒤를 턱짓하는 카르마일의 모습에 슬쩍 고개를 틀어 곁눈질한 도현은 볼 수 있었다.
스으으-
붉게 타오르는 가면을 뒤집어쓴.
검붉은 날개가 펼쳐져 있는 형체 모를 무언가를.
“소개하지. 검은 악몽, 라온. 그 머저리가 있던 자리의 본래 주인. 비록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한때 왕이었던 남자.”
“아시온.”
아시온.
과거 세간에서 그를 통칭하는 이름은 따로 있었다.
-붉은 악마.
붉은 악마, 아시온.
자취를 감추었던 전(前) 무법지대의 왕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