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80화.
무변자(無變者).
직역하자면 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뜻.
‘스읍, 천변에 붙을 이름은 아니지 않나?’
그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 도현은 아리송한 기분이었다.
천의 형태로 변화하는 천변(千變)의 특징을 생각하면 이보다 안 맞는 뜻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야 그럴 게 아예 반대되는 뜻이니…….
‘솔직히 그게 아니어도…… 뭔가 허접해 보이지 않나?’
최초의 신화급 인첸트 아이템으로 부여한 능력이라기엔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폭발할듯한 기대감이 들었던 처음과 달리, 막상 이곳에 도착했을 즘엔 차분함을 되찾은 것은.
‘신화급이니 당연히 안 좋지야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인챈트니까 기대한 것보다 평범할 수도 있어.’
흔히 말하는 기대 컨트롤을 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에 기반해서.
‘왜곡된 숲의 몬스터가…… 그라비타였나? 괴랄한 맷집에 무리 지어 다니는 게 특징이라 했으니 시험하기 딱 좋겠네.’
하나 막상 몬스터들을 상대로 시험해본 순간, 도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한 건지.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전설+’마저 전설과는 하늘의 땅 차이인데, 아예 그 위의 등급이 평범할 리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갓오세에서 ‘신화급’이 가진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어디 처음이니까 가볍게 한 번…….’
스윽-
도현이 자세를 잡고, 천변(千變)을 가볍게 휘두르며 능력을 발동한 순간.
콰아아아아–!!!
“……어?”
시야를 뒤덮는 강렬한 이펙트가 터져 나왔고, 그 뒤에 펼쳐진 참사가 바로 지금 보는 광경이었다.
원 샷 원 킬.
그걸 한 개체도 아닌, 수십 마리의 몬스터에게 행한 것이다.
‘……그라비타의 맷집은 어지간한 중간 보스 이상이라지 않았나?’
누군가 보면 버그라고 할 법한 상황.
예상을 뛰어넘은 위력에 순간 도현도 당황했지만 금방 수긍했다.
방금 발동된 능력을 생각하면 이런 위력도 당연했던 탓이었다.
그도 그럴 게…….
[무변자(無變者)가 발동됩니다.]
[현재 무구와 상관없이 다른 포식한 무기의 효과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현재 무구인 하얀 사자의 설화(雪華)검에 적용할 무기 효과를 선택하십시오.]
…….
‘뭐? 이런 미친…….’
무변자. 변화하지 않는 존재.
그 이름답게 무변자 옵션이 붙은 천변은 더 이상 변화할 필요가 없었다.
굳이 무기를 바꾸지 않아도, 천변에 저장된 무기들의 모든 효과를 발동할 수 있었으니까.
[‘암벽을 뚫은 궁수의 활’의 옵션 ‘괴랄한 사격’을 선택했습니다.]
[‘진(眞) 하얀 사자의 노래’에 ‘괴랄한 사격’의 효과가 더해집니다.]
[괴랄한 사격 : 직선 궤도의 장애물을 뚫고 나아가는 화살을 날린다. 뚫을 수 있는 사물의 종류와 범위는 착용자의 근력에 비례한다. (쿨타임 : 10분)
‘아, 잘못 골랐…… 어? 이게 된다고?’
심지어 근접 무기와 원거리 무기를 가리지 않고 전부!
설화검의 고유 검술인 진(眞) 하얀 사자의 노래.
그것에 암벽을 뚫은 궁수의 활의 효과인 괴랄한 사격과 역천기의 기운까지 담기자, 상상을 초월한 위력이 발휘되었고.
크르르……!?
콰아아아!
그게 지금 펼쳐진 광경이었다.
‘솔직히 효과 자체는 좋은데, 무기가 아쉬워서 못 쓰고 있던 건데…… 이러면 그간 사용하지 못했던 능력들 다 써먹을 수 있는 거잖아?’
최근 들어 천변의 활용도가 낮아지고 있는 추세였다.
예전에는 무기들의 성능이 다 비슷비슷해서 여러 무기를 바꿔가며 싸웠지만, 설화검을 얻은 후론 그럴 수가 없던 것이다.
여기엔 설화검의 성능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무래도 검술 숙련도가 제일 높으니까.’
저레벨 구간이면 모를까, 지금 도현의 스펙에서 데미지 1%의 차이는 유의미하다.
1%도 그럴진대, 격차가 10%를 넘는다면 말이 필요 없는 일.
사실상 방패나 활을 사용할 때를 제외한다면, 고정으로 설화검을 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는데…….
‘지금 들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설화검. 즉, 검술 숙련도를 받는다.’
그리고 무변자(無變者)를 통해 발동된 옵션의 효과 또한 온전하게 검술 숙련도의 영향을 받는다.
효과를 가져왔을 뿐, 들고 있는 무기는 검이니까.
어찌 보면 말장난이자 궤변이라 할 수 있는 일.
하나 시스템은 이것을 인정했다.
‘……뭐야, 쿨타임이나 리스크도 없어?’
……심지어 딱히 큰 제한도 없다.
극한의 자유를 부여한다는 영무의 결의 설명처럼, 조건이나 리스크 없이 편하게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미쳤는데? 와, 이게 신화급 인챈트인가?’
괜히 신화급이 아니었다.
이쯤 되니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소모성 아이템인 인챈트석조차 이만한 영구 효과를 얻었는데, 과연 신화급 장비는 얼마나 사기적인 성능을 보여줄까?
‘메인 퀘스트 난이도 높아진다고 뭐라 할 게 아니었네.’
뎀로크와 갓오세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공식인 게임.
역시 어려운 길에는 그만한 보상이 있는 법이었다.
‘음음. 역시 인생은 쉽게 살면 안 되는 법이지. 아, 어디 또 대륙 퀘스트 하나 안 떨어지나?’
-……주인, 표정이 뭔가…… 음. 아니야.
-리자…….
-크흠.
군침이 도는지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고개를 젓는 지하드였지만, 도현은 가뿐하게 무시했다.
그보다는 다른 게 우선이었다.
“흐음, 그나저나…… 이러면 앞으로의 전투 방식이 많이 바뀌겠는데.”
검을 들고 있음에도, 방금처럼 화살의 옵션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다.
당장은 포식한 원거리 무기가 활밖에 없으니 옵션의 쿨타임을 생각하면 전투 중에 단 한 번 정도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변수 창출하기엔 충분해. 상대 입장에선 생각지도 못할 테니까. 나중에 지팡이나 표창 같은 원거리 무기를 포식하면 선택지도 더 넓어질 테고.’
심지어 그 공격은 전부 검술 숙련도 버프를 받은 위력으로 들어갈…….
‘……잠깐만,’
말 그대로 옵션만 가져온 거라 숙련도의 영향을 받는다면…… 데미지도 설화검의 공격력이 적용돼야 맞는 거 아닌가?
‘아무리 괴랄한 사격의 데미지가 뛰어난 편이긴 해도 한 방 컷은 좀 이상하긴 했지…….’
하지만 만약 천변의 뻥튀기 될 대로 된 공격력이 적용된 위력이었다면?
충분히 설명이 된다.
지금의 도현은 이전보다 단순 계산으로 2배는 강해졌으니 말이다.
물론 무기 공격력만이기는 하지만, 이것저것 따져도 1.5배는 확실하게 넘을 거다.
‘이건 조금 더 실험해보면 알 테고…… 다른 활용법이 있는지도 좀 알아봐야겠네.’
게다가 무변자의 진짜 강점은 위력 따위가 아니다.
무궁무진한 활용도와 변칙성.
육안으로 보았을 때 무기가 바뀌지도 않으니, 상대 입장에선 언제 어떤 타입의 무기 효과가 발동될지도 몰라 대처하기도 까다롭다.
그리고 이건 거리 조절과 타이밍, 그리고 심리전에 자신이 있는 도현에겐 최고의 무기였다.
‘지금이라면…… ‘그 녀석’이랑도 붙어 볼 만하지 않을까?’
잔뜩 피어오르는 자신감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며 의욕이 샘솟았다.
갓오세를 시작하면서 단 한 번도 붙지 않은 녀석.
아직은 안 된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피했던 녀석을, 지금이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새로 얻은 능력의 전부를 파악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씨익.
‘어디 그럼 능력부터 완벽하게 파악하고, 날 한 번 잡아 볼…….’
한쪽 입꼬리를 길게 올린 도현이 작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때였다.
띠링!
갑작스레 울린 경쾌한 알림.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월드 메시지에 도현의 얼굴이 멍해졌다.
[월드 메시지 – 공지한 시간이 되어 예정대로 길드전 업데이트가 진행됩니다.]
[잠시 후 강제 로그아웃됩니다.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주십시오.]
[5…….]
[4…….]
“……?”
……길드전 업데이트?
‘그게 뭔데?’
금시초문인 알림에 의문이 피어올랐지만, 시간은 빠른 속도로 흘렀고.
[업데이트를 진행합니다.]
[현재 플레이 중인 유저들은 모두 강제 로그아웃됩니다.]
[감사합니다.]
-주, 주인!? 갑자기 왜 흐릿해지고 있…….
-리자리……!
-주군!?
도현은 가디언들과 인사할 틈도 없이 갓오세에서 퇴출되었다.
* * *
[공식 길드전 업데이트 공지사항]
[갓 오브 세이비어에 공식적으로 길드전이 도입됩니다. 길드전을 통해 가장 뛰어난 길드를 가리십시오.
길드전은 여러 방면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각 길드는 저마다의 특색과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순위 경쟁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브타르텔에서 확인해주십시오.
점검 시간은 x월 xx일 오후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후략)]
갓오세 홈페이지 상단에 올라온 공지.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홈페이지부터 들어간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였네.”
갓오세의 운영이 워낙 독불장군처럼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아, 예고 없이 깜짝 업데이트를 해버린 건 아닌가 의심했건만.
시스템 창을 통해 말한 대로 사전 공지를 올렸던 게 맞았다.
‘……하루 전에 올린 것도 사전 공지라고 할 수 있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올린 건 올린 거니까.
전날 대륙 퀘스트 때문에 워낙 지쳤기도 하고, 보상이 무엇일지 정신이 팔린 탓에 못 보고 잔 게 문제였다.
‘잠깐만, 그럼 보상 시험해보기 전에 튕겼을 수도 있는 건가?’
아리드나와 앨로윈의 대화에 더 시간을 길게 썼다면, 보상을 확인하기도 전에 튕겼을지도 모를 일.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잠에 든 순간까지도 보상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는데, 오늘까지 확인 못 했으면 참지 못하고 샤우팅을 내질렀을 거다.
‘뭐, 지금도 찍먹 정도만 한 거 같아서 아쉽긴 한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아예 써보지도 못한 것보단 나으니까.’
그래서일까.
순간 오싹함에 닭살이 돋은 팔이 금방 기존의 피부로 돌아왔다.
침착함을 되찾은 도현의 관심사는 자연스레 화면으로 향했다.
[속보!) 실시간 길드전 업데이트 진행 중]
-작성자 : 도피는자휴
ㅈㄱㄴ. 길드전 업데이트 시작됨 ㅇㅇ
조만간 갓오세에 피비린내로 가득 찰 예정. 자기가 대형 길드 이상의 일반 전투원 소속 이상이다? 되도록이면 무조건 참여해라.
└ㅁㅊㄷㅁㅊㄷㅁㅊㄷㅁㅊㄷ
└큰 거 오냐? 큰 거 오냐? 큰 거 오냐?
└길드전 키야~! 갓오세에서도 드디어 길드전이 열리는구나. 가상현실게임으로 길드전 영상 볼 생각에 벌써 뽕이 차오른다.
└아, 대륙 퀘스트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와, 요즘 뭔 이벤트가 이렇게 많냐. 콘텐츠가 끊이질 않네.
└ㄹㅇㅋㅋㅋ 뭐, 우리 입장에선 볼거리 많아졌으니 좋지.
└그런데 왜 무조건 참여해야 함? 아직 정확히 어떻게 업데이트될지 제대로 알려진 거 없지 않나?
└그렇긴 한데…… 최초잖슴. 갓오세가 최초로 열린 콘텐츠에 신경 안 쓰는 거 봄? 보나 마나 보상 장난 아닐 듯.
└ㅇㅈ 솔직히 공성전이나 길드전이 MMORPG의 꽃인데, 그간 공식적인 길드전이 없던 게 이상했지.
‘다들 반응이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