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01

801화 스탠바이 (4)

주검의 영광의 두 번째 하인이 뒷짐을 진 채 은신처를 거닐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투명한 유리 너머에 총 수십 명분에 달하는, 저마다의 신체 조각이 진열된 고대의 장식장이 비쳤다.

“역시 랑데르크가 없으니 허전하긴 하네. 역대 하인을 통틀어 우릴 실망시키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녀석인데 말이야. 케실루스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나았으려나.”

세 번째 하인과 네 번째 하인이 없으니 공간이 조용하다.

케실루스 차에렌은 랑데르크보단 비교적 말수가 적었지만 그래도 말주변이 있는 편이었는데, 벨디른 공화국에서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터라 다시 떠올릴 때마다 상당히 아까웠다.

노화로 사망하지 않는 이상 몇 번이고 부활할 수 있는 특이한 마도를 개척해서 여러모로 인상적인 흑마도사였는데 말이다.

“랑데르크와 케실루스. 둘 다 크세리온의 영광의 기사로 서임받아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야말로 불멸의 수혜에 어울리는 하인이지.”

크세리온의 영광───주검의 영광의 근간인 옛 기사단을 떠올린 첫 번째 하인이 고대의 대륙 지도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로써 모든 신체 부위의 소재가 파악됐다. 부활 의식까지 앞으로 한 걸음이군.”
“그 한 걸음을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두 번째 하인이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놈들 덕분에 크세리온 황제 폐하의 신체를 찾을 수 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지만 계속 신용할 수 있는 거야?”
“중요한 건 목적은 다를지언정 피차 가는 길이 같다는 거다. 우리는 과거에 끝내지 못했던 의식을 완성하기만 하면 돼.”

위대한 주검이 부활하는 순간 대륙은 유린당할 것이다.

역대 최강이라고 칭송받는 성녀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네크로맨서도, 행동 원리가 불분명한 섭리자도, 현 아케나드 마도국의 영광을 이끄는 7대 마도왕도, 대륙의 경비 노릇을 하는 마스터도, 가장 국력이 강하다는 아르나크 제국도…… 묘하게 마찰이 잦은 신성도.

대륙의 군림하고 있는 모든 존재는 그날 초월자 전쟁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참패하여 죽음 앞에 굴종하리라.

“하지만 머리를 확보해 놓고 우리에게 넘기지 않고 있잖아. 대계를 이루기 전에 일단 놈들부터 정리하는 게 맞지 않아? 비공식 초월자가 몇 명이나 있지는 않을 거 아니야.”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그리고 루아스 교국에 있는 신체 부위를 탈취하려면 전력을 최대한 온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주도권을 가진 건 놈들이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에 안 들어.”

두 번째 하인이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첫 번째 하인이 자그마한 머리 모형으로 지도 바깥을 툭툭 두들겼다.

“그자들이 곧 위대한 주검의 머리 위치를 공개할 거다. 그때야말로 우리가 지난 시간 동안 준비한 모든 걸 쏟아부을 때다.”
“그건 기대가 되네.”

두 사람이 시선을 높였다.

천장에 고정된 거대한 구체가 은은하게 명멸한다. 그 안에서 인간의 얼굴을 닮은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시대 간의 균열로 현대에는 설화가 전해지지 않은 6대 전설.
그중에서 실물이 목격된 적 없다는 첫 번째 전설, 영혼을 다루는 욕망 – 아니무스(Animus)가 본격적인 기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기는 빨라도 세계 회의 이후려나. 그런데 일단 회의는 관망할 거야?”
“현 세계의 정상들이 모이는 자리다. 그러니 빠질 수는 없겠지. 정보 확보의 필요성을 떠나서.”

첫 번째 하인이 명령했다.

“가르간트로 가라, 루네시카.”

두 번째 하인───크세리온 호위 기사단의 부단장인 ‘루네시카 안테르노아’가 장난스럽게 예를 갖추었다.

“예, 단장.”

* * *

오직 빛의 정의만이 혼란을 바로잡는다.

구덩이 아래에 있는 언데드 무리 한가운데에서 빛이 폭발했다.
움직이는 시체들은 변변찮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전신이 으깨지면서 사기 한 줌 남기지 않고 흩어졌다.

“빛이 함께하길!”

건틀릿에 부여된 고밀도의 신성력이 좀비의 얼굴에 드리웠다.

온몸이 썩어 문드러졌지만 아마도 우연히 손을 꼭 잡고 있는 서로 연인이거나 부부였을 좀비들의 표정은, 눈부시도록 환한 광명에도 불구하고 그저 공허하고 어두웠다.

퍼어어어엉!

삼정의 추기경, ‘정의(正義)의 그레고르반’이 오직 힘과 믿음으로 대지와 대기에 스며든 죽은 자의 오염을 깡그리 지워 버렸다.

이곳의 어떤 언데드도 교국에서 가장 체격이 큰 성직자의 기적을 거부하지 못했다.

팔라딘의 정점.

성녀가 아니었다면 성갑 [아르미넬]의 주인이 되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만큼 그의 몸과 마음은 신성하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그레고르반이 허리를 크게 비틀어 땅을 후려치는 순간, 그 아래에서 솟구친 광원이 사방을 정화했다.

“아…… 모든 빛의 시초인 루아스 신이시여, 이 땅에 영광의 구원을 내려 주소서.”

구덩이로 쏟아지는 햇빛 아래, 그레고르반이 우뚝 서서 기도했다.
더할 나위 없이 경건한 모습에 삼정의 추기경, ‘자선(慈善)의 세르파니아’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 바보 같은 근육만 아니었다면 모든 성직자의 귀감이 되었을 텐데.”
“뭐랏?!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세르파니아! 이 신앙으로 꽉 찬 근육이야말로 루아스 여신을 향한 믿음의 증거일진대! 행동하는 정의만이 빛에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법이네!”
“알았으니까 추기경이면 추기경답게 채신 좀 지키세요! 나의 주, 루아스시여. 부디 그레고르반에게 자비를……!”

그레고르반이 양 옆구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자 등 근육이 날개라도 되는 것처럼 넓게 펼쳐졌다.
비명을 지르는 제복 너머로 근육의 결이 훤히 보인다. 그 추기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창피한 모습이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세르파니아는 곧장 기도를 올렸다.

옆에서 고유의 기적을 발현하고 있던 삼정의 추기경, ‘인내(忍耐)의 데엘로’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방금 성자께서 마지막 대규모 언데드 무리를 정화하셨다. 당장 사태의 종식 선언을 해도 문제는 없겠어. 세 번째 하인도 처리했으니 피울음 역병도 내년 초에는 완전히 사라질 테지.”
“올해를 넘기기 전에 원흉을 없앨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예상외로 조력자들의 도움이 컸어요.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지금부터지만요.”

세르파니아의 팔찌들이 서로 부딪쳤다.

“첫 번째 하인과 두 번째 하인. 그 두 초월자의 위치는 특정했나요?”
“고요하다. 놈들은 이번 사태에서 직접 움직인 적이 없어.”

주검의 영광의 수뇌부는 뒤에서 암약할지언정 앞에서 대놓고 준동할 수 없다. 전력을 드러낸 순간 대륙 어디에 있든 교국에서 포착해 추적을 이어 나갈 수 있기에.
만연의 랑데르크가 도주를 포기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어둠은 감히 빛을 침범할 수 없다.

“랑데르크의 역병으로 대륙의 인류를 볼모로 잡아 교국의 발을 묶고, 그 뒤편에서 랑데르크의 목숨보다 중요한 걸 손에 넣었다. 위대한 주검의 머리는 이미 빼앗겼다고 보는 게 타당해.”
“결국 망각으로 영원히 봉인하는 건 실패하고 말았네요.”
“위대한 주검을 지킨 하인 본인들이 이때까지 연명할 수 있을 거라고는 선대 성인들도 예상하지 못하셨을 거다.”

주검의 영광을 창설한 첫 번째 하인과 두 번째 하인이 800년이 넘도록 숨이 붙어 있다. 그것이 현 사태의 원인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까마득한 과거를 잊지 않고 살아가니 망각될 리가 없다.

“으하하핫, 그래서 무슨 걱정인가? 신체가 전부 모이지 않으면 위대한 주검은 절대로 부활할 수 없고, 그 신체 부위의 무려 절반을 이미 우리 루아스 교국이 확보했는데.”

그레고르반이 가장자리를 붙잡고 구덩이에서 올라왔다.

“하물며 위대한 주검이 다시 세상에 부활하면 또 어떤가? 과거와 현대는 다르네. 오히려 교황 성하, 새로운 성자, 그리고 역대 최강의 성녀께서 봉인으로 그쳐야만 했던 위대한 주검을 완전히 처단하실지도 모를 일이야. 나는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하네! 그렇지 않습니까, 성자이시여?”
“……예.”

성자 레온하르트가 성검 [루엔스]를 허리에 찬 채 숲에서 걸어 나왔다.
아직 루아스교 최대 전력의 위치에 어색해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나 그 존재감만큼은 이미 성인의 반열이었다.

레온하르트는 체내에서 끓어오르는 신성력을 다스리며 그레고르반에게서 배운 가르침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앳된 성자를 가르치는 건 성자와 교황, 그리고 추기경의 책무였다.

“모든 것은 빛의 인도를 따라.”

얼마 전까지 농부였는데도 이제는 제법 기도의 태가 나온다. 추기경들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 동안 레온하르트는 사적 감정을 삼켰다.

‘로니아 왕국.’

티르 마을 사람들을 태워 죽이고……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죽이라는, 대대적인 방역 명령을 내린 로니아 국왕이 일국의 왕이랍시고 세계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잔인하게 죽어 나간 불쌍한 이웃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필사적으로 모두를 구하려고 했던 롤랑 아저씨의 최후까지도.

‘반드시, 책임을 묻겠어.’

지금 레온하르트는 가르간트로 향하는 날만을 고대했다.

* * *

이번 피울음 역병과 언데드 사태에서 본격적으로 방주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후보들은 언제나처럼 대륙 각지에서 활약했다.

아직 시련을 한 번도 극복한 적 없는 올해의 신입 후보들이 역병에 걸리기도 했는데 물론 방주에서 치료를 도왔다.
후보를 보호하여 시련에 도전하도록 돕는 것이 방주의 의무이기에.

어쨌든.

방주는 최대한 시야를 넓혀 대륙의 모든 상황을 주시하려고 노력했다. 언제나처럼 인류가 빼앗기고 착취당하는 역사를 반복되지 않도록.

현 방주의 지도자가 하늘섬을 둘러싼 세상을 굽어보았다.

‘주검의 영광.’

자신과 직접 마찰을 빚은 적은 없지만, 대략 800년 전에 있었던 초월자 전쟁 중반에 방주와 연관된 적이 있었다.

본래 세간의 전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방주의 원칙이나, 크세리온 황제가 과열시킨 전쟁의 규모와 수준이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인류 자체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을 만큼.

방주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대륙 연합군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물론 당시에는 하늘섬도 없었고, 후보의 성장을 위한 시련 체계도 명확하게 잡혀 있지 않아서 전력은 지금보다 훨씬 약했지만.
그래도 방주라는 집단에 어울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방주 또한 크나큰 피해를 보면서 초월자 전쟁은 막을 내렸다.

크세리온 황제는 루아스교와 다크워튼 마탑에 의해서 여섯 부위로 쪼개진 끝에 옛 왕으로서 봉인되었고.
훗날 황제의 호위 기사단의 생존자들은 옛 왕을 위대한 주검이라고 칭하며 주검의 영광이란 집단을 창설했다.

전쟁 이후 방주는 본 의무로 돌아가 전쟁으로 약해진 인류를 다른 종족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전력을 집중했다.

이는 방주의 지도자에게만 전해지는 방주의 역사 중 하나였다.

‘루아스 교국의 현재 전력은 역사적으로 가장 강할 텐데, 패잔병에 불과한 주검의 영광에게 고삐를 빼앗기다니. 평화에 취해 자만한 건가, 아니면 다른 변수가 있는 건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뭐가 어떻든 적어도 당장은 방주에서 주검의 영광을 처단하는 데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레그리트의 보고를 받았어도 그 결론에는 여전히 변함은 없다.

그건 루아스교의 의무니까.

방주는 가련한 인류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인류의 수호자가 아니라, 항상 인류라는 나약한 ‘종’ 자체를 위한 집단이다.
인류가 보다 강해지려면 반드시 시련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사실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있는 건 주검의 영광이 아니라 가르간트에서 개최될 세계 회의였다.

인간.
수인.
드워프.
엘프.

대륙 최대의 도시에 인간종으로 분류된 네 개의 종족이 한데 모인다.
이기적인 드워프, 방관하는 엘프, 야만적인 수인.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세 개의 종족과 인류가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이다.

시야 끝에 있는 구름이 갈라진다.
마치 검에 베인 듯.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만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현 세계의 상황은 다분히 혼란스럽다. 말했듯이 주검의 영광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마경과 침묵의 사막에서 각각 발견되었다던 적룡 사르칸드라의 꼬리 비늘과 투하르 신조, 최초의 마탑, 그리고…… 관리자와 세계수가, 그의 직감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마도왕,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목소리가 맴돈다.

───아크를 지켜라.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초대 마도왕이 아크를 보여 주며 마지막에 남겼던 말뜻이 뭔지 다시 헤아려 보던 그가 하늘섬의 몽환적인 풍경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쉐오른 장로.”
“말씀하십시오.”
“오늘따라 이곳이 답답하게 느껴지는군.”

와인 잔이 조용히 창가에 놓였다.

“잠시 내려가야겠다.”
“……!!”

방주의 윗분이 행선지를 결정했다.
가르간트로.

* * *

블랙 아워의 심층.

밀폐된 공간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베르덴의 주위로,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도 높은 마력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여러가지 상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붙잡은 생각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함이었다.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에 무한의 마도의 개념을 확장하면서 내 경지는 한 단계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다히트의 기억으로부터 소멸을 얻고 난 이후의 결전을 떠올렸다.

발로크 베시아스와의 마법전.
키론다르와 이슈르와의 삼파전.

모든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고 쐐기를 단호히 박아 넣어 승기를 거머쥐었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은 명확했다.

‘최대 전력에 이르는 속도가 너무 느려.’

영역을 활용한 힘을 최대치로 발휘하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급하게 흘러가는 전장과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처음부터 <로드 아케인>을 극성으로 시전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단언컨대 이슈르와 키론다르가 뭘 하기도 전에 공백을 남기지 않고 몰아쳐 그 존재를 아예 말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언젠가 자신보다 강대한 존재를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모든 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쓰러질 가능성이 높다.
가르간트의 광신자 노인에게서 치명상에 가까운 중상을 입었듯이…….

그러니 8위계를 목전에 둔 7위계 상위로서 모든 마법의 과정을, 현 경지와 조화를 이루도록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누구와 대면하든 그 자리에서 모든 힘을 개방할 수 있도록 말이다.

먼저 마도 <무한 - 망화(亡火)>부터.

다히트의 소멸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없애야만 위력을 높일 수 있다.
일례로 <개기식(皆旣蝕)>을 전개해 일정 이상의 사물이나 힘을 소멸시켜야 <월식(月蝕)>의 영역을 열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서 베르덴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한은 덜어도 더해도 변함없이 무한인데, 만약 심장에 깃든 무한의 마력을 ‘상시’ 소멸시킨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