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00

800화 스탠바이 (3)

블랙 아워의 대전당에서 오랜만에 메드란트 케덴과 멜라드 타스티엔이 통신 장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대면했다.
이렇게 자리를 가진 건 다름 아닌 오스가르의 보고 때문이었다.

“설마 오스가르의 정체가 발각될 줄이야. 그 정보가 샐 틈은 없었을 텐데. 에온에 병합된 이후론 더욱이.”
“정보가 새었다기보다는 그 초월자에게 특별한 정보력이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겠지요. 우리도 들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골치 아파졌군.”

멜라드야 상관없지만, 메드란트에겐 치명적인 상황이다.

세간에서 메드란트는 오스테아 마탑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사이어티의 창설자이자 에온의 열두 번째 위상이 아니라.

이 유착 관계가 밝혀지면 다른 마탑들이 좌시할 리가 없다.
마탑 체제의 배신자로서 낙인찍히는 것쯤은 전혀 두렵지 않으나, 향후 모든 활동에 장애가 생기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었다.

정치적인 공세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나 베르덴은 10대 마탑 체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조직을 끌어안았다는 이유로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거고.
심지어 그것이 세계 회의란 무대에서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파장은 수습이 불가능할 만큼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터였다.

‘게다가 그걸 오스가르에게 찾아가 굳이 언급한 걸 보면, 필시 에온을 협박할 수단으로 쓸 작정이겠지.’

동대륙에서 손을 떼라는 요구.

에온의 권역 지정을 철회하라는 말도 안 되는 강요이지만, 설령 받아들인다고 해도 주도권은 여전히 빼앗긴 채다.

약점을 잡혔다.

갑작스러운 초월자 세력의 등장과 그 적대적인 태도에,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메드란트는 여러모로 근심이 깊었다.

“……?”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마땅한 우려를 보이며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멜라드가 오늘따라 조용하다. 이제 보니 그녀는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메드란트가 물었다.

“설마 묘안이 있는 건가?”
“비슷합니다.”

멜라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결정되었던 신성의 행선지가 어디였는지 알고 계시겠지요.”
“유니아와 카인에게 들었다.”

본래 베르덴 일행이 침묵의 사막으로 이동했던 건 아드리안과 이자벨라만 알고 있었다. 에온이 아닌 방주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이라서 함구할 필요가 있었기에.

하지만, 그 기밀은 이자벨라가 엘프와의 협력 관계를 이끌어 내면서 자연스럽게 에온의 위상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베르덴이 침묵의 사막의 투하르란 국가에서 현지인을 데려오기도 했으니, 이젠 사실상 극비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 침묵의 사막에서 신성이 경이로운 발견과 업적을 이루었다더군요.”

그렇게 이어진 멜라드의 설명에 메드란트가 이내 눈을 부릅떴다.
웬만한 사안으로는 침착함을 잃지 않는 그조차 더 이상 앉아 있지 못하고 테이블을 강하게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뭐?”

* * *

“그러니까……이, 이, 이, 이게 그 엘릭서라는 말씀입니까?”

알더니스가 그저 전설이나 다름없는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심지어 무려 두 병이나 있는 엘릭서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연금술의 궁극이 눈앞에 있는데 어떤 연금술사가 점잔을 떨고 있겠는가.

아카데미 시절을 통틀어 처음 보는 알더니스의 순진무구한 모습에, 이자벨라는 남몰래 기억 골렘을 작동했다.

리토가 껄껄 웃었다.

“명확한 표본이 있으니 앞으로의 실험 방향은 이미 정해진 셈이지! 마탑? 국가? 초월자? 우리만 제대로 하면 연금술 학계에서 어느 누구도 에온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다.”
“리산드로의 열매까지 포함한다면 아예 연금술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르죠.”
“그렇지!”

엘릭서나 리산드로의 열매나 아무리 아껴 써도 용량은 한정되어 있다. 게다가 중대한 실험을 하게 되면 소모는 더욱 커진다.
아끼지 않아야 할 때 아끼는 건 실패 확률을 크게 급증시키므로.

물론 리토 바르슬란, 이자벨라, 알더니스는 향후 충분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성공은 필연이다.
그렇게 믿고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거의 평생 갈고닦은, 또 타고난 재능에 기반한 스스로의 연금술을 신뢰했다.

리토가 등을 돌렸다.

“아, 너희들은 세계 회의 준비해야 하니까 알아서 하고. 나 먼저 시작하마. 투하르에서 이자벨라하고 간단히 실험하던 게 있었거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같이하시죠.”

알더니스가 재빠르게 일정을 계산하고는 리토의 어깨를 잡았다. 당장이라도 엘릭서를 연구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흘렀다.

“저는 잠시 일이 있어서 1시간 뒤에 보조하러 올게요.”

이자벨라는 슬쩍 대전당의 연구실을 빠져나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페르네에게 따로 부탁해 손에 넣은 가르간트의 시내 지도를 <염동력>으로 허공에 넓게 펼쳤다.

‘[이비네스]는 아티팩트기는 하지만 매일 입고 다니는 로브라서 조금 식상한데. 그럼 뭐 입고 가지? 그리고 일정은…….’

이자벨라는 베르덴과 단둘이 갖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했다.
아주 심혈을 기울여서.

* * *

───침묵의 사막에 국가가 있었다니…….

로벨린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통신 장치 너머에서 들려온다.
아주 오랫동안 위험한 미개척 지대로 손꼽혀 온 지역이 이미 개척되어 있었다는 건 그녀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마치 세상의 비밀을 엿본 듯했다.

아니, 엿본 건가?
아무튼.

로벨린은 솟아오르는 궁금증에도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는 대신 평범한 인사말을 건넸다. 사실 그게 본심이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네. 초월자라고 해도 무적은 아니니까……. 아, 이건 너한테 할 말이 아니었네.

“그건 그렇지.”

작년부터 올해까지, 초월적 존재를 무려 넷이나 묻어 버린 베르덴은 초월자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물론 그러한 이치는 베르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일라 원장님은 언제 보게? 세계 회의 끝나고 나서?

“신경 쓸 게 많아서 그럴 생각이다. 뭐, 급한 것도 아니니까.”

본래 어린 시절을 보낸 고아원에 적당히 기부만 하려고 했는데, 피울음 역병을 비롯하여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알데반이 고아원을 사실상 통째로 주인 없는 땅으로 옮겼다.
고아원은 어레인 중심가 부근에서 보호 중이라고 따로 보고를 받았다.

“이렇게 됐으니 기왕이면 같이 대면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세계 회의가 끝나면 보헤미른 마탑에 정식으로 초대장을 보내지.”

───어? 아, 알았어. 일정 조율해 놓을게…….

“가르간트에서 보자.”

베르덴이 통신 장치를 끄자마자 공간을 연속해서 뛰어넘었다. 그렇게 주인 없는 땅의 달레힌의 성채에 도착했다.

복도 구석에 우뚝 선 경비 골렘을 윤이 나도록 닦고 있던 피네가 눈을 크게 뜨고는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베르덴 님!”
“수고해라, 피네.”
“에헤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과거 베르덴이 달레힌에 오자마자 구해 주었던 소녀는 가끔씩 초월자와 마주치는 일상에 적응한 어엿한 하녀가 되었다.

영주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음……? 아, 오셨습니까, 페하!”

달레힌의 대리 영주…… 이젠 사실상 진짜 영주인 듀말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자리를 마련하고는, 그 자리에서 따뜻한 차를 탔다.
인간 사회에 물들대로 물든 뱀파이어는 인간과 다른 게 없었다.

베르덴이 상석에 앉아 등을 기대었다.

“이형종들은 어떻지?”
“에온의 마법사를 통해 보고드렸던 대로 적응은 이미 마쳤고, 지금은 도시 관리 업무를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수면이 필요 없어서 효율적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저와는 다르게 외부에 훤히 밝힐 만한 외관은 아닌지라 성 안쪽에 있는 별도의 생활 공간을 크게 내주었습니다.”

달레힌에 지능이 꽤 높고, 인간 사회에서 생존을 허가받은 이형종이 많아진 건 마그누스 은행장의 제안 때문이었다.

그것은 능력 있는 이형종들에게 관심이 있다면 소개해 주겠다는 권유였는데, 베르덴의 기준점에는 종족이 없기도 하고 마그누스 은행장의 저의가 궁금했기에 이를 받아들였다.

듀말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극진히 모시라고 하신 그분에게도 따로 공간을 만들어 드렸는데, 지금 불러 드릴까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어느샌가 집무실에 들어온 안데스가 베르덴의 대각선 좌측 자리에 앉아 살점 하나 없는 손뼈를 모으고 있었다.
깜짝 놀라다 못해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듀말이 얼어붙었다.

베르덴이 물었다.

“지내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당연히 전혀 없네. 자네 덕분에 한가롭게 도시 한가운데에서 풍경도 구경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저 좋을 뿐이야. 근처에 이형종도 많으니 뭔가 동질감도 느껴지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일련의 대화에 듀말이 침을 꼴깍 삼켰다.

‘폐하께서 존대하시다니. 역시나 예사 언데드가 아니셨어. 내가 아는 언데드와는 다르게 산 자에 대한 증오가 전혀 안 보이셔.’

감히 낄 자리가 아니다.

듀말은 뱀파이어의 몸놀림으로 소리 없이 허리를 숙이고는 수백 마리의 박쥐로 흩어져 창문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재주가 많은 뱀파이어로군.]

“도시 운영에 재능이 있더군요.”

베르덴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나머지 두 명의 죄인은 언제쯤 대면할 수 있겠습니까?”

[죄인들도 각자 준비하는 일이 있네.]

안데스가 턱뼈를 달싹였다.

[정확한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자네가 세계 회의를 마친 뒤 가까운 시일에 죽음의 죄인과 망국의 죄인이 찾아갈 걸세. 어차피 당장 만나는 건 자네도 애매하지 않나? 내 자세히는 몰라도 공무가 많은 것 같던데.]

“그렇긴 합니다.”

[아직 황금의 죄인의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으니 조금 기다려 주게. 애석하게도 곧 그 순간이 올 테니. 한데 용건은 그것뿐인가?]

“하나 더 있습니다.”

화아악!

베르덴이 [아르케오]에 봉인해 두었던 존재를 해방했다. 그림자 악마가 어둠 위로 둥둥 떠다니는 눈동자를 굴렸다.

[사막에서 붙잡은 그 악마로군.]

“계속 봉인해 두기에는 아티팩트가 아까워서 그런데, 혹시 부담이 되지 않으신다면 이 녀석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악마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낼 게 많기에 수중에 둘 생각이었다. 방생했다가 애꿎은 피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악마라 해도 눈만 마주치면 눈물을 펑펑 흘리는 녀석을 처리할 수도 없고 말이다.

안데스의 힘이라면 만에 하나라도 루아스교에게 발각될 일은 없으리라.

[물론 부담 따위는 안 되네. 악마를 관리하는 건 처음이지만 잘 돌보겠네. 내 그림자에 숨어 있으면 들킬 일은 없을 테지.]

그림자 악마가 쭈뼛거리며 베르덴을 슬쩍 돌아봤다. 또 눈물이 떨어진다. 그러다가 베르덴의 뜻을 이해했다는 듯 조용히 안데스의 그림자로 숨어들었다.

‘무슨 강제로 고아원에 맡겨진 애도 아니고…….’

베르덴은 고아원에서 여러 번 구경했던 상황을 애써 떨쳐 냈다. 설마 악마한테서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말랐다.

“이제 저는 가르간트로 출발하기 전까지 명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급한 용무가 생기면 듀말을 통해 전해 주십시오.”

[경지를 갈무리하려는 건가. 알겠네.]

안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그나저나 침묵의 사막에서 넘어온 자들은 어떤가?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달라 적응하는 데 있어 난항을 겪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베르덴이 다시 은은한 차향을 즐겼다.

“잘 지내고 있더군요, 생각보다 훨씬.”

* * *

베르덴 일행과 함께 <게이트>를 넘어 투하르에서 주인 없는 땅으로 이동한 자들은 문화 교류의 목적을 위해서 대륙의 것을 배웠다.

침묵의 사막보다 훨씬 더 풍족한 자연을 만끽한 인간과 수인은 대부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

페일이 작게 미소 지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사임스. 보다시피 말투가 좀 어눌하지만, 저와 오래 일해 온 만큼 보고 듣고 배운 게 많습니다. 제법 괜찮은 스승이 될 수 있겠지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투하르에서 온 아리온 바르슬란이라고 합니다.”
“사임스. 입니다.”

리비안트 공국에서부터 정보사 페일의 최측근으로 활동해 온, 온몸에 붕대를 두른 사임스는 아리온의 안내인을 맡았다.

“그러니까 그림을 잘 그리는 투하르 반란군 출신이라고?”
“그, 이자벨라 님이 예술계 인재도 인재라고 하셔서요. 여기요.”
“……오, 손재주가 좋긴 하네.”

배교자 라미샤는 케이렐에게 그림을 보여 주거나 그려 주며 호감을 쌓았다. 라미샤의 실력은 당장 국제 신문에 넣거나 정보와 관련해서 다루어도 모자람이 없었다.

한편, 방랑의 무나딤은 남과 어울리기보다는 대부분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평생 투하르 신조를 피해서 사막을 방랑해 왔던 그녀에게 이리 생기 넘치는 겨울의 풍경은 그 자체로 축복이었기에.

‘확실히 세상은 넓구나…… 너무 좋다.’

방랑의 무나딤은 어레인 성채의 정원을 거닐며 그 광활한 사막조차 얼마나 좁은 것이었는지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때였다.

“할머니, 여기 미레스 언니한테 부탁해서 차 가지고 왔어요!”
“정말 고맙구나, 아이샤. 그래도 어레인 영주님의 비서님을 되도록 귀찮게 하면 안 된단다. 많이 바쁘실 테니까.”
“네, 할머니!”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 손을 잡고 천천히 정원을 걷고 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방랑의 무나딤이 멈칫했다.

‘잠깐…….’

뭔가 익숙한 얼굴이다.

생각해 보니 목소리도 생소하지 않았다.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다.

‘……! 틀림없어.’

방랑의 무나딤이 예언으로 보았던 붕괴된 도시, 그 중심에 서있던 정체불명의 이방인 소녀가 바로 눈앞에 있다.

───선택하세요.

소녀의 목소리가 내면에서 울려 퍼진다.

동시에 방랑의 무나딤과 아이샤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그저 그뿐이었는데 머릿속과 시야가 순간 아득해졌다.
그렇게 다리가 완전히 풀려 버린 방랑의 무나딤이 풀썩 주저앉았다.

“허억, 헉, 허억……!”
“괜찮으세요, 언니?”

아이샤가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런 아이샤의 밝은 연둣빛 눈동자 너머에서…… 방랑의 무나딤은 한 명의 선지자로서 차원이 다른 예지적 존재를 목도했다.

어째서.

어째서 베르덴이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

세계 회의 D – 12.

그리고.

베르덴이 며칠 동안 폐관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상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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