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26

826화 세계 회의 (10)

‘저 새끼가……?’

아드리안이 아무렇지 않은 척 냉정한 표정을 지켰지만, 난데없는 황제의 정치질은 정치를 잘 모르는 그에게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베르덴도 내심 헛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이유를 묻지 말라고 했나.’

제라클 황제가 첫 번째 대의회에서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알았다면, 하다못해 몇 분의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여러 방면에서 검토했을 텐데…….
이제 의사 결정까지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몇 초밖에 남지 않았다.

외통수다.

강제로 손을 붙잡은 상대와 수갑까지 채워진 형국이다. 수갑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이미 바다로 던져진 셈이다.

마경 정벌이 통과되면 통과되는 대로 기각되면 기각되는 대로 에온은 아르나크 제국과 함께 마경 개척의 선두로 나서야 한다.

나중에 무를 수는 없다.

이렇게 세상이 보는 앞에서 초월자란 작자가 한 입으로 두말했다가는 에온의 체면은 땅으로 떨어질 테니까.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찬성할 생각이긴 했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마경을 정벌하고 싶다는 건가.’

그 이유가 업적 때문이든 다른 사정 때문이든, 제라클 황제가 하필 지금 마경 정벌을 외치는 건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아르나크 황가의 혈통에 특별한 점이 있는지는 모른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도 없고, 설령 있다 한들 달라질 것도 없다.

베르덴이 알기로, 아르나크 제국 황족의 수명은 통상적인 범주에 속한다. 지위와는 별개로 결국에는 인간인 것이다.

수십 년만 더 지나도 제라클 황제는 이 자리에 설 수 없다.
수명 때문에.

섭리자는 마경 정벌 안건이 부결되면 다음 세계 회의에서 다시 발의하라고 말했지만…… 문제는 다음 세계 회의가 언제 열릴지 모른다는 점.

특히 이렇게 인간, 수인, 엘프, 드워프───모든 인간종이 한자리에 모인 건 약 3세기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제라클 황제에게 이번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정 마경 정벌을 원한다면 당장 뭐라도 실행에 옮겨야 옳았다.

‘어쨌든 당했군.’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에온뿐만 아니라 아르나크 제국 또한 같이 힘을 보태야 하니까. 에온만 피를 봐야 했다면 베르덴도 상당히 불쾌했을 터였다

아마도 이게 제라클 황제의 정치력이겠지.

스윽.

제라클 황제가 손을 완전히 들기 전에 베르덴이 손을 올렸다. 그러자 아드리안도 주저하지 않고 찬성표를 더했다.

“에온은 제국과 함께하겠다.”

베르덴의 선언에 장내가 술렁였다.

에온은 신생 초월자 세력이나 그 가파른 위세에는 대륙도 긴장할 정도다. 근데 그 막강한 힘이 아르나크 제국을 지지한 것이다.

“에온의 숭고한 결의에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겠네.”

제라클 황제가 보란 듯이 감사를 표했다.
역시 능청스러운 사내였다.

“모두 표결을 시작하라.”

에온과 제국의 선택에 이어서 섭리자가 투표 절차를 주재하자, 다른 참석자들도 하나둘씩 분명한 입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찬성표와 반대표가 갈린다.

혹자는 오른팔을 움찔거렸다. 혹자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감췄다.
눈치를 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

섭리자의 눈동자가 좌에서 우로, 다시 우에서 좌로 움직인다. 그렇게 3초가량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결정을 번복하는 이는 없었다.

결과가 정해졌다.

“찬성 27표, 반대 22표. 대의제로 발의된 마경 정벌은 부결되었음을 선포한다.”

대의제는 전체 3분의 2 이상의 참석자가 찬성해야 통과된다. 정족수의 반수만 넘으면 되는 소의제와는 규칙이 다르다.

‘상원에서 10명, 하원에서 12명. 가결까지 6표가 모자란다. 하원은 예상 범주 내지만, 의외로 상원에서 반대가 많았어.’

베르덴이 손을 내리며 참석자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그는 그들이 반대를 올린 이유에 대해 추측했다.

‘루아스교는 결국에 마경 정벌을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것 같고…… 레프라기움 마탑도 그와 비슷한 생각인 건가. 적어도 섭리자와 대행자는 지금 마경을 건드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나 보군. 그건 마스터와 서약자도 마찬가지란 거겠지.’

마경 정벌을 굳이 급하게 논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 초월자들로부터 반대표를 끌어낸 주된 이유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티슨 마탑주는 찬성표를 올렸으나, 인드렌은 반대표를 던졌다. 관제하는 인드렌은 급격한 변화를 아주 싫어한다.
피가 이어져 있어도 저 둘의 성격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

마그누스 은행장도 은행장답게 보수적인 편이라 인드렌과 비슷한 이유로 마경 정벌에 반대 의사를 보인 듯하다.

‘마울러 입장에선 마경이랑 맞닿아 있으니까 꺼릴 만했고, 적대 관계인 내가 마경 탐사에 자원을 쓰는 상황이니 찬성할 이유도 없었겠지. 역시 교활한 면모가 있어.’

하원에서는 중앙 대륙의 국가들과 서열 중위권 마탑들이 반대 입장의 다수를 차지했다.

루아스 교국을 비롯한 상원의 눈치를 본 것도 한몫했을 테고, 나름대로 손익을 따져 본 끝에 실질적 이득이 없다고 본 계산도 작용했겠지.

뭐, 이유야 많을 것이다.

‘그중엔 디아문 마탑도 반대.’

디아문 마탑주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반타룬은 마울러 쪽에 붙었고, 알버트는 베르덴의 영향력을 받고 있는데.
아무래도 마경 정벌에 대한 논쟁에서 알버트가 밀린 모양이었다.

알버트가 차마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베르덴은 딱히 기대하지 않았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무튼.

‘고작 몇 표가 부족해서 기각되긴 했지만 그래도 의미가 없지는 않군. 수인, 엘프, 드워프 전부가 찬성 의사를 보였으니.’

수왕도 장난스럽기보다는 진지하게 흥미를 품은 기색이었다.

모든 인간종이 연합한다면…… 잘하면 마경 탐사를 대규모로 실행해 마경 정벌을 해야만 하는 단서를 얻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라클 황제는 겉으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나, 애초에 부결을 예상했다는 듯 어떤 면에선 여유로워 보였다.

사실상 세상의 반응이 어떤지 보고, 마경을 향한 전선에 에온을 데려다 앉히는 것이 당초 목적이었단 뜻이었다.

이그나시아가 턱을 괴었다.

“기껏 재밌는 안건이 나왔는데 이걸 반대하네. 에이, 재미없다.”

솔직히 말해서 49명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대의제가 부결되었을 때 ‘역시 안 되는군’ 하는 건조한 반응이 다였다. 감정적인 충돌이 일어날 것도 없었다.

그런데…… 한 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쾅!

흑요 등급 모험가, 마의 공포가 상원 테이블을 박살 냈다.

* * *

모험가 길드 본부장과 흑해 사이로 건틀릿이 내리꽂히며 굉음이 터졌다.

모험가 길드 측이 차지하고 있던 원형의 테이블 일부가 무너졌다. 회의장 전체로 뻗어 나간 대기의 파동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모험가 길드 본부장, 흑해, 완벽한 모험가, 불굴의 이닉토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의 공포───재액의 토벌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방주의 선장들도 내심 고개를 저었다.

“…….”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회의 참석자도 아닌 호위의 돌발 행동에 몇몇 초월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형언할 수 없는 긴장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섭리자가 담담하게 물었다.

“투표 결과에 불만이 있나?”
“너희들은…….”

마의 공포가 테이블 잔해를 짓밟고는 회의장 중심으로 내려왔다. 발소리가 묵직하다. 성대가 난도질당한 듯한 기괴한 음성에 하원의 참석자들이 흠칫 떨었다.

마의 공포가 고개를 들었다.

“마경이…… 적룡이…… 두려운가……?”

투구의 방향이 하원을 넘어 상원으로 향했다. 그 안에 깃든 시선은 마경 정벌에 반대한 참석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놈을…… 찾기만…… 해라…….”
“…….”
“적룡…… 사르칸드라는…… 내가…… 죽이겠다…….”

마의 공포는 마경 정벌이 싫다면 마경 탐사라도 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것도 세계 회의 참석자 전원에게 말이다.

마울러가 표정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저 새끼도 미쳤군. 뒈지려고.”
“부탁도 아니고 명령이라니. 저 말투부터 고쳐야 하겠는데.”
“세계 회의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일세.”

서약자와 인드렌도 참지 않고 약간의 노기를 띠었다. 루아스교의 신인들은 고요히 마의 공포를 내려다봤다.

그때, 반젤리스가 개입했다.

“흑요 등급 모험가, 마의 공포, 본명은 알려진 바 없음. 홀로 마경을 자주 드나드는 특이한 모험가라고 들었다. 가슴에 맺힌 사연이 있으니 마경에 집착하는 거겠지. 나도 마경 정벌에 찬성했으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다.”
“…….”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표결권도 없는 자네가 끼어들 일은 아니지.”

반젤리스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권위를 무시하지 마라. 자네는 자격이 없다.”
“내게…… 존중을…… 받고 싶다면…….”

마의 공포가 가볍게 발끝에 힘을 싣자, 회의장 바닥이 갈라졌다.

“적룡을…… 찾아내라…….”
“아하하하하! 싸가지 없는 건 여전하네.”

이그나시아는 대놓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곧장 표정을 거뒀다.

“야, 재미없는 놈. 네가 강한 건 인정할게.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네가 명령하면 우리가 고분고분 따를 것 같니? 부탁할 거면 무릎부터 꿇어. 명령할 거면 덤비든가.”

마의 공포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내려와라…….”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그나시아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다른 초월자들이 보호하지 않았다면 하원의 참석자들에게 정신적 충격이 가해질 뻔했다.

“진짜 자신 있나 보네? 하지만 그 말은 바깥에서 했어야지. 내가 가르간트에 있는 한 누구도 날 죽일 수 없거든.”

이그나시아의 눈동자가 찬란하게 빛났다.
경계가 아른거린다.
현실과 가상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 무릎, 반대로 접어 줄게.”

이그나시아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몸을 일으켰고, 마의 공포는 무게중심을 옮기며 등 뒤에 얹힌 거대한 창을 붙잡았다.

그때였다.

“할 말은 다 했나?”

섭리자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삽시간에 기류를 뒤집었다. 알 수 없는 정신 간섭이 참석자들의 감정을 강제로 가라앉혔다.

이그나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건…… 어? 레프라기움 마탑주가 정신계 초월자였어?’

섭리자가 어떤 마도를 개척했는지는 지금껏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편린을 목도한 순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흥미가 쏠린 이그나시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분노를 잊고 말았다.
다른 초월자들도 그러했다.

“첫 번째 대의제가 끝나기 전에 감정적인 마찰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으나, 이 상황은 이견의 여지 없이 호위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이그나시아에게 별도의 책임은 묻지 않겠다. 다만 해당 호위를 대동한 모험가 길드 측 참석자들에게는 각각 두 차례의 경고를 부여하겠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받아들일게.”

모험가 길드 본부장과 흑해는 변명 없이 처분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리고 호위는 세계 회의를 방해한 죄를 물어 이곳에서 추방하겠다.”

회의장이 열렸다.

마의 공포는 군말 없이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멀어져 가는 그를 향해 흑해가 한마디 던졌다.

“이제 만족해?”
“…….”

마의 공포는 대답하지 않고 세계 회의장에서 나갔다. 이내 문이 닫히는 걸 본 로벨린이 조심스럽게 침을 삼켰다.

‘확실히 판이 달라졌어.’

첫 번째 소의제는 비교도 안 된다. 세계적인 중대 사안이 안건으로 논의되자, 이곳 회의장은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되었다.

아차 하면 무너질 것 같다…….

“이걸로 첫 번째 대의회를 마치겠다. 이그나시아, 수복을 부탁하지.”
“알았어.”

이그나시아가 턱을 까딱거렸다. 마의 공포가 망가뜨린 상원 테이블이 흐릿해지더니 완전히 새 걸로 재구현되었다.

“그럼 두 번째 소의회를 시작하겠다.”

정회는 없었다.

“두 번째 소의회부터는, 첫 번째 소의회나 대의회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의 감정적 마찰은 문제 삼지 않겠다. 나는 의장으로서 회의 진행에 중대한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개입할 것이다.”
“…….”
“이건 어디까지나 회의라는 걸 절대로 망각하지 말도록.”

섭리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순조로운 회의 진행을 위해서 마찰이 생기지 않을 법한 소의제부터 먼저 진행하겠다. 제의자는 거수하라.”

* * *

앞선 상황을 고려했을 때 당장 나서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지금이 바로 적기였다.

‘……베르덴을 위해서.’

스윽.

로벨린이 오른손을 들었다.

섭리자가 질문했다.

“무슨 안건이지?”
“암월의 위계 돌파로 인한 현 마법계의 혼란과 그 대책에 관한 안건입니다.”
“알맞은 주제군. 좋다.”

섭리자가 의장으로서 고개를 끄덕였다.

“보헤미른 임시 마탑주, 발언하라.”

첫 번째 회의에서 두 번째 회의로 넘어가며, 세계 회의는 이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려 하고 있다.

심각한 사태가 예상된다.

그 전에 로벨린이 발언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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