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0화 급진전 (6)
모험가 길드 본부는 중앙 대륙과 동대륙 사이, 정확히는 대수림과 동대륙 남단 중앙에 있는 바다 위에 세워졌다.
동서남북이 해양으로 둘러싸인 섬은 그 자체로 천혜의 요새였다.
“…….”
테아렐은 언제나처럼 절벽 끄트머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다를 응시했다.
철썩거리는 파도가 절벽에 부딪쳐 계속해서 부서졌고, 중천에 뜬 태양의 빛살이 수면 위에 반사되었다.
이따금 해양 생물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장관을 만들어 냈지만 테아렐에겐 수천, 수만 번이나 보아 온 지루한 광경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
테아렐의 독특한 감각이 반응했다.
바다가 흔들린다.
남들에겐 성난 파도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그녀의 관점은 달랐다. 뭔가 술렁이고 있다. 무언가가 바다를 술렁이게 만들고 있다.
이와 비슷한 기분은 몇 번 정도 느껴 봤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속 깊이 자극한 것은 평생을 통틀어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초월자가 되기 전이라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고.
두 번째는 초월자로 각성한 직후라 때를 놓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다시 그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테아렐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언제가 됐든 간에 미리 각오한 대로 움직이기로 결단했다.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마도 <태해(太海)>
쏴아아아아…….
흑해의 차갑고 깊은 마력이 주변 바다의 흐름을 제어했다. 모든 파도가 가라앉은 바다는 호수처럼 평온해졌다.
수면 아래에 있는 생물들이 일제히 테아렐을 바라보았다.
“가시는 겁니까.”
모험가 길드 본부장, 살베르 웬디시르가 가까이 다가오며 묻는다.
테아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기회가 또 올지 몰라.”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바닷속 심해의 환경을 견딜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곳은 인류의 어느 누구도 닿지 못했으니. 당신께서도 거기까지 시험해 본 적이 없으시고.”
“후우, 하, 후.”
고요한 세상에서 심호흡하는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한 테아렐이 조용히 웃었다.
“그래서 가는 거야.”
다른 초월자들에 비해 행보가 조용하다고 해도 테아렐 또한 초월자다. 어느 누구도 그 이상을 꺾을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살베르가 한 번 더 만류하는 대신 격려의 인사를 건넸다.
“잘 다녀오십시오.”
“응.”
“몸조심하시고.”
테아렐이 해안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톡.
물 한 방울이 튀기는 소리와 함께 바다에 침입한 테아렐이 해류를 조작했다. 아래로, 더욱 아래로…… 그녀를 둘러싼 수심이 빠르게 깊어졌다.
하늘의 빛이 멀어지고.
지하의 어둠이 가까워진다.
테아렐이 홀로 심해로 향했다.
* * *
……아득히 먼 옛날부터 바다는 공포의 상징으로 군림해 왔다.
대륙보다도 광활하고, 그 깊이는 가늠할 수 없으며, 대수림과 함께 대자연으로 일컬어지는 하나의 커다란 권역(圈域).
그 안의 해양 생태계는 인류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바다에서 비롯된 산물은 인류에게 축복과도 같았기에.
하지만 반대로 바다는 그만큼 인류에게 절망과 미지를 선사하기도 했다.
인간의 함대를 궤멸한 정체 모를 이형종, 어느 날 사라진 해양 도시, 통째로 가라앉은 섬 등 수수께끼와 같은 기록이 역사에 일부 남아 있듯이.
바다에 삼켜진 것은 어디로 가는가?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나?
긴 세월 동안 바다에서 실종된 사례들이 모이고, 또 모여 인간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신화나 괴담으로 이어졌다.
괴물이 있다!
바다의 신께서 분노하셨다!
징조를 조심하라!
옛사람들은 바다를 의인화했다. 폭풍이 몰아칠 때면 바다가 노여워한다고 여기고 제물을 바치거나 기도를 하고는 했다.
파도가 자신과 이웃 그리고 가족을 끌고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주 헛된 짓은 아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안식을 얻는다면 충분한 가치는 있었으니까. 지성체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인 것이다.
{그 또한 하찮은 지성의 한계지.}
호스트가 장엄한 복도를 앞서 걸으며 머리를 저었다.
{이렇듯 육지의 지성체는, 제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상을 근거 없는 감성으로 이해하려고 드는 경향이 있다. 바다에서 벌어진 자연스러운 상황에 갖은 원인을 붙여 개인적인 비극을 합리화하는 것도, 신성력이 발현되지 않는 토착 신앙을 믿는 것도 그 예시라고 볼 수 있지.}
“…….”
{셸브론이 왜 오늘 처음 만난 너희들에게 미세한 적의를 보였을까. 간단한 이유다. 아르카디옴의 주민 사이에는 대륙의 지성체를 미개하다고 치부하는 사상이 퍼져 있고, 셸브론은 그 사상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덴은 이곳에 오자마자 만난 따개비 인간을 떠올렸다. 확실히 셸브론의 말투와 행동은 어딘가 얕보는 듯 건방졌다.
“그런 사상을 가진 것치곤 지성이 높다는 느낌은 안 들었는데.”
[인정.]
{귀빈도 못 되는 지식인이다. 자신의 지적 수준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행동은 우매한 자들의 본성.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주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분간 못 하니. 사실 극소수를 제외한 지성체가 대개 그렇지.}
호스트는 한동안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지성에 대해서 논했다. 흔들림 없는 언변이나 지식의 깊이가 아르카디옴을 주도하는 자라고 자칭한 대로 혜안이 느껴졌다.
베르덴이 물었다.
“그럼 네 사상은 어떻지?”
{내게 있어서 육지의 지성체와 바다의 지성체는 다르지 않다. 그들이 타고난 지적 능력은 애써 논할 가치조차 없지. 제법 비상한 존재도 심층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수준이고.}
호스트가 반쯤 고개를 틀어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은 나와 대등하게 대화할 자격이 있다.}
베르덴의 오른쪽 어깨에 올라타 있는 베타가 몸체를 갸웃거렸다.
[저희 말고도 더 있습니까?]
{대표적으로 ‘당신’, 올다르크, 태초의 드래곤, 세계수, 기생의 대악마, 현룡. 그 외에도 지능이 월등한 존재는 있다. 너희들을 포함해서 내 기준을 충족하는 존재의 숫자는 태초 이래 열 손가락을 넘는 정도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마법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두뇌’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자신보다 배움이 부족하거나 지능이 떨어지는 상대를 경멸하거나 깔보는 경우가 비교적 흔한 편이다.
우월감의 충족은 본능에 가까우므로.
보헤미른 마탑에서도 그런 사상을 가진 마법사가 여러 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광경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당시 한계 위계가 1위계였던 베르덴에게는 경험담이었다.
‘호스트는 그보다 더하군.’
태고의 시대까지 포함해 고작 십수 명의 존재만 지성체로 인정한다니. 지성 차별주의가 도를 넘어서 아예 다른 차원으로 간 수준이다.
베르덴이 지금까지 겪어 본 여러 존재 중에서도 가히 별종이었다.
알파는 여전히 호스트의 문어 머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질문을 던졌다.
[마도왕 폐하는 어땠음?]
호스트는 과거에 이루어졌던 태초의 마법사와의 만남을 되짚었다.
{올다르크는 불합리의 극치였다. 독보적이었고, 감히 형언할 수 없었지. 이런 인간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건가?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지성체를 통틀어 올다르크의 선천성은 제일(第一)이지.}
“가장 위대한 재능…….”
베르덴은 관리자의 기억을 통해서 목격한 초대 마도왕을 상기했다. 상처 하나 없이 고대 신 세 명을 압살하는 순간이 뇌리를 스쳤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으니 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잿빛의 용과 ‘당신’은 어땠지?”
{잿빛의 용은 세상과 함께 탄생하면서 불멸성을 타고났다. 진화를 거듭한 부활. 그야말로 드래곤의 시초지. 잿빛의 용이 쌓아 올린 경험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호스트가 촉수를 쓸었다.
{반면에…… ‘당신’은 어중간했지.}
베르덴 일행이 내심 경악했다.
어중간하다니.
여태까지 접한 ‘당신’의 위상을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평가였다.
{‘당신’은 올다르크처럼 압도적인 재능을 타고나지도 않았고, 잿빛의 용처럼 멸하지 않는 신체와 영혼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여러 강자 중 하나에 불과했지. 심지어 순위를 매기자면 명백히 하위권이었고. 그러나 본디 존재란 선천과 후천을 통해 완성되는 것.}
호스트가 조금씩 발걸음을 늦췄다.
{그때 ‘당신’에게는 올다르크와 잿빛의 용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명감’이지.}
“사명감……?”
{‘당신’은 항상 순수했다. 마치 순백으로 빚어진 것처럼. 그렇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지. 궁극의 의지. 그로써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로 등극한 것이다.}
끈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놀랐는가? 그렇겠지. 너희에게 있어서 ‘당신’은 적이고 악일 테니까. 찬성자와 거부자. 이렇듯 운명은 새로운 이분법을 낳았다. 그러나 애초에 운명전에서 선악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전쟁에서 누구도 선하지 않았고 누구도 악하지 않았다.}
호스트가 멈춰 섰다.
{누가 옳은가?}
“…….”
{‘당신’이 옳았을 뿐이다. 승자의 특권으로. 다만 올다르크의 반격을 허용해 ‘당신’은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지. 그리고 기나긴 세월이 흘러 불가피한 정전(停戰)이 끝나 가고 있다. 한데 그 시기가 너무도 앞당겨졌다. 바로 애셔, 너로 인해.}
천천히 등을 돌린 호스트가 베르덴을 내려다봤다.
{올다르크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의 특이점이지.}
“특이점?”
{어떤 누구도 상정하지 못한 유일한 변수. 운명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세계의 반발일까, 아니면 운명마저 어찌할 수 없는 자유의지일까.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우연의 산물일까.}
그가 단호히 말했다.
{이런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존재의 탄생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마라, 애셔. 그것은 무지몽매한 지성체의 전유물이니. 너는 기록을 쓰는 자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현재만이 너를 대변한다.}
호스트의 발언은 베르덴 일행에게 생소한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대응할지는 간단했다. 괜히 아는 척하며 휘둘릴 이유는 없다.
“운명과 저항자. 너는 어느 쪽이지?”
{과연 내 지식은 어디에 치우쳐 있을까.}
호스트가 팔을 휘둘렀다.
{직접 보도록.}
저택의 벽면 한쪽이 변형되면서 바깥으로 이어진 계단이 만들어졌다. 계단의 끝은 바닷속 낮은 절벽 아래에 닿아 있었다.
직후 어둠이 물러나며 심해의 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백 명에 육박하는 기괴한 하객들이 절벽 끝을 구경하고 있다. 때때로 환호성을 보내며. 그곳엔 세 명의 지식인이 족쇄에 묶여 있었다.
방금 전 알파와 지적 충돌을 겨루었던 루자크도 그 안에 있었다.
{존재는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를 잡아먹음으로써 살아간다. 그리고 지식은 존재에 의존하지. 존재가 없다면 지식은 잊힐 뿐이니. 따라서 지식의 개념도 약육강식의 논리에 젖어 있다.}
호스트가 계단을 내려갔다.
쩌저적.
세 명의 지식인이 서 있던 절벽이 일부 갈라지며 내려앉았다. 그들이 제각기 비명을 지르거나 신음을 내며 바다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지식은 어디에 담기는가? 머리? 그것은 영혼의 개념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지성체의 1차원적인 관념이다. 지식은 몸과 영혼에 담긴다. 존재 자체에 지식이 깃들어 있는 것이지.}
베르덴 일행이 호스트와 적당히 거리를 둔 채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아까까지 느껴지지 않았던 처절한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안 돼, 안 돼! 제발……! 제발 떨어져! 먹지 마! 먹지마먹지마먹지마아!
───후우, 후……!!!
절벽의 절벽 아래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이윽고 베르덴 일행의 시야에도 그들의 모습이 비쳤다.
‘저건…….’
제각기 형태가 다른 새까만 존재들이 꿈틀거리며 혼란스럽게 뒤엉키고 있다. 그 숫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를 가득히 메울 정도.
절벽의 절벽 아래에 있던 것은 암흑이 아니라 무수한 생명체였다.
꽈드드드득!
까드드득!
그것들이 세 명의 지식인을 파도처럼 몇 번이고 덮치며 조금씩 뜯어먹고 있다. 그럴 때마다 지식인의 눈에서 총기가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길 반복했다.
{이 절벽이 지식의 경계이며, 이 아래는 지식의 매립지다. 지식을 과분하게 탐하다가 끝내 존재마저 잃어버린 망령의 땅이지. 저들은 죄인의 지식을 먹고, 자아를 되찾아 지식을 갈구하기를 반복한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절벽을 오르던 어인이 결국 발목을 잡혀 아래로 추락했다. 다른 지식인은 보이지도 않았다. 거기서 오직 루자크만이 온몸이 뜯기는 와중에도 절벽을 기어올랐다.
촤아아악!
“끄하아……!”
왼쪽 팔이 뜯기며 그 안에 담긴 지식들도 함께 떨어졌다. 루자크가 크게 휘청거리다가 정신을 다시 붙들고 절벽을 올랐다.
{지식의 경계를 감당하게 된 존재가 죄를 지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저렇게 살아남는 것이지. 음, 역시 귀빈답게 의지는 있군.}
다른 하객과 귀빈들이 열렬히 환호한다.
마치 축제 분위기였다.
환호성과 비명이 불협화음을 이루며 베르덴에게 괴리감을 안겼다.
“끅.”
마침내 루자크가 절벽 위에 팔을 걸쳤으나 힘이 거의 다했다. 그의 발목에는 지식의 망령들이 매달려 있었다.
귀빈 중 한 명이 다가갔다.
아름다운 인어였다.
“루자크, 살고 싶니?”
“당연한, 걸. 묻고, 있구려.”
“그럼 네 뇌 반만 잘라 줘. 어때?”
“하하하.”
루자크가 필사적으로 절벽을 붙든 채 웃었다.
“헛소리하지 마시오.”
“우웅,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알았어. 잘 가.”
인어가 지느러미를 꿈틀거리자, 바닷속의 분진이 일어나 루자크를 덮쳤다. 악착같이 버티고 있던 그가 끝내 미끄러졌다.
그 순간.
베르덴이 공간을 조작해 루자크를 붙잡아 절벽 위로 던졌다. 그와 함께 딸려 올라온 지식의 망령들이 베르덴과 눈을 마주쳤다.
지식의 망령들이 곧장 제 발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베르덴이 말했다.
“지식의 만찬회라고 하길래 고상한 줄 알았는데, 기대와 많이 다르군.”
{지식을 위해 서로 먹고 먹히는 것.}
호스트가 양팔을 펼쳤다.
{그보다 고상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