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5화 마도 축제 (7)
마도 축제의 중반부 무대는 10대 마탑 중 5개의 마탑이 차지했다.
초반부보다는 시간 구성이 훨씬 여유로웠다.
초반엔 평소의 마도 축제보다 발표자가 많았기에 오전과 늦은 밤까지 활용해야만 했다.
지난번 마도 축제가 도중에 중단되어 선보이고자 했었던 여러 마법적 연구와 이론이 세월 속에서 쌓인 탓이다.
자금 부족으로 허덕여도 악착같이 4년을 기다린 약소 세력이 적지 않았다. 자신의 결실이 최대한 많은 주목을 받길 원하는 건 당연했다.
그만큼 마도 축제는 마법계에 있어 아주 귀중한 무대였다.
특수한 상황임을 감안해 마도 축제 기간을 이번 한정으로 9일에서 12일로 늘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반대로 가차 없이 거부되었다.
그래서는 초대 마도왕의 궁극을 기리는 9위계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효율과 손익 등 특히 합리성을 중시하는 현대 마법계라고 해도, 마법계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감히 손대지 않았다.
중반부의 주 무대는 낮에, 또 저녁 식사 이후에 각각 한 번으로 사흘 동안 진행된다. 초반부와 다르게 순서는 무작위로 결정되었다.
마도 축제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과연 마도 축제의 처음과 끝을 잇는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역시 10대 마탑의 저력이란…….”
에스퍼렌사 공작가의 이카르 드 에스퍼렌사가 마도 축제 중반부를 참관하며 끄적거렸던 수첩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 안은 5개 마탑의 발표 내용으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한 명의 마법사로서 모든 걸 기억하기 어렵다면 메모는 기본. 이를 마탑 순위로 정리하자면 요약본은 이러했다.
종합 서열 10위 – 오스테아 마탑은 외부 환경에 따라서 색과 저항력을 변형시키는 이형종, 그 껍질을 활용한 탐사 전용 로브의 설계를 일부 공개했다.
일명 조화의 로브.
예시로 산성 증기나 맹독 안개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직업상 그런 종류의 험지에 갈 일이 많은 연금술 학계와 모험가 길드 소속 마법사가 감탄하며 눈을 빛냈다.
특히 정보가 부족한 일부 지역을 탐사할 때 어떤 환경에 닥치든 별도의 대비 없이도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해지는 셈이니, 그 잠재적인 가치는 애써 설명할 것도 없었다.
이카르 바로 옆자리에서 들렸던, 어쩌면 조화의 로브가 마경 탐사 및 정벌의 필수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법사들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종합 서열 9위 – 헬리온 마탑은 전격계 마법으로 자기장을 형성해 순식간에 금속 자성체를 쏘아 보내는 새로운 공성 병기를 제시했다.
더 나아가 수십억 엘크를 투자해 제작한 간이 장치로 실물까지 선보였으나…….
공성 병기급 위력을 내려면 이론적으로 심각하게 복잡한 마법진 설계가 전제될뿐더러.
현 마법 기술력으로는 제작이 불가능한 수준의, 고내열 및 고내압 특성을 지닌 거대한 발사체가 필요 불가결하다는 설명이, 이에 관심을 가진 마법사들로 하여금 깊은 아쉬움을 자아내게 했다.
종합 서열 8위 – 라리안 마탑은 정신적으로 영구 손상을 입은 사람을 장시간에 걸쳐 회복시키는 고유 마법을 선보였다.
라리안 마탑주인 다채의 자일론 마인의 마도에서 비롯된 위계 마법이었다.
간단히 말해 정신계를 연결한 다음, 마치 찢어진 상처를 봉합하듯 한 땀 한 땀 망가진 정신을 치료하는 방식이었는데.
본래 4년 전 마도 축제에서 가능성을 보여 주는 걸로 그쳤어야 했을 이론을 4년 동안 역량을 집중해 완성한 것이다.
상대의 정신계를 부수는 마법이 아니라 치료하는 마법이라니?
라리안 마탑치고 꽤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종합 서열 6위 – 화산섬의 마탑은 대지의 온도를 상승시켜 고정하는 매직 아이템을 공개했다.
기온은 환경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 다시 말해 특정 범위의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거기까지 닿으려면 대기 기온을 비롯하여 여러 자연 변수를 제어할 수단이 있어야 한다. 당장은 실현하기에 요원하다.
고작 몇 년 연구하는 걸로는 어림도 없을 터.
다만 궁극적인 미래만 보면 세기의 발명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장로가 아닌 그 화선섬의 마탑주가 직접 발표한 것으로 보아, 국소적인 생태계 지배가 그리 먼 미래가 아닐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화염계 원소 마법으로 파괴에 특화된 화산섬의 마탑이 저런 마법적 물건을 제작하다니…… 이 또한 의외의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종합 서열 5위 – 젠티르 마탑은 세포 단위로 유기물을 얼려, 생명을 살아 있는 채로 동결 보존하는 새로운 연구를 발표했다.
중반부에서 가장 난해한 이론이었다.
얼어붙으면 부피가 팽창하는 체내 수분을 전부 제거하고.
어떤 온도에서도 부피 변화가 없는, 생명 유지 수단으로 물을 완벽히 대체한 특수 마력수를 주입한 다음, 자그마한 결정 변화조차 일어나지 않을 정도의 급속 냉동으로 몸의 내부와 외부를 일순간에 얼리는 방식이라고 하는데.
빙결 마법만이 아니라 인체 공학까지 심도 있게 아우르는 연구라, 이카르는 반의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인간의 냉동 보존이, 젠티르 마탑의 장기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쯤은 마법사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톡톡.
이카르가 오랫동안 사용한 만년필로 개인 수첩을 두드렸다.
마법도시 비렌테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인 에스퍼렌사 공작이 선물로 준 펜이었다.
“8년 만에 마도 축제가 열린 만큼 마탑의 활약이 압도적이군요. 10년 뒤에 또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감도 안 잡힐 지경입니다.”
“허허허! 마법사이자 마도사로서 마법의 시대를 몸소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련님이 부럽군요. 이 세상을 좀 더 오래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함께 오래 살면 되지 않습니까.”
에스퍼렌사 공작가의 가신───역풍의 에드몬 로드리너가, 이카르와 마주 보고 마도 축제에 대해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디아문 마탑과 보헤미른 마탑이 마도 축제의 주 무대에 오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막강한 저력을 지니고 있으니, 적어도 다른 마탑에 비견되는 연구를 발표했을 텐데. 물론 잘잘못을 떠나 마법계의 시각으로만 본다면 말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쯧쯧.”
종합 서열 7위 – 디아문 마탑은, 여전히 내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탑주가 없어 통솔되지 않으니, 디아문 마탑의 여러 중요한 마법적 연구는 진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각 연구의 지휘권을 두고 파벌이 신경전을 벌인 탓이다.
알버트냐, 반타룬이냐.
신성이냐, 마울러냐.
양측 파벌 모두 초월자 세력을 배후에 두고 있기 때문에, 수장이 죽거나 그에 준하는 결정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은 결론이 나기 어렵다, 라고 마법계는 보고 있다.
그리고…….
종합 서열 4위 – 보헤미른 마탑은 이번 마도 축제 무대에 설 권리를 박탈당했다.
마법계 총회의에서 발로크 베시아스의 집권 아래 대규모 인체 실험을 자행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4년 전에는 동력원 폭주 사태로 인해 마도 축제의 중단 원인이 되고, 연구를 진행하기는커녕 직격타를 입은 마탑을 복구하느라 전념했으며.
그로부터 4년 후에는 마법계 중대 금기를 위반해 최초로 마도 축제에 설 자격을 빼앗겼으니, 앞으로의 입지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극도로 불안정해졌음을 시사했다.
“보헤미른 마탑은 그 과오를 뒤집을 만한 성과를 보이지 않는다면 아주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암흑기를 보내게 될 겁니다. 아주 오랫동안. 현 임시 보헤미른 마탑주의 역할이 무겁게 되었지요.”
“그래도 어떤 변명도 없이 혐의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처우에 순응하는 걸 보니, 자정 능력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베르덴 폐하께서 현재 보헤미른 마탑에 따로 관심을 두고 계신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베르덴 폐하께서는 보헤미른 마탑의 정화자라고 할 수도 있지요. 더러운 부분을 들어내고, 그 내부를 깨끗이 하고자 하시니. 폐하께서 오직 인체 실험만을 끄집어내고 방치하셨다면, 보헤미른 마탑은 지금쯤 뼈대만 남아 있었을 겁니다.”
에드몬이 정갈한 수염을 쓸었다.
“마탑 종합 서열이 언제 다시 정해질지는 몰라도, 보헤미른 마탑의 위치가 바닥으로 처박을 거라는 건 자명하니까요.”
보헤미른 마탑의 동력원이 소실됐고.
디아문 마탑주가 사망했으며.
암월의 꿈으로 인해, 한계 위계 이상으로 경지를 높일 수 없다는 절대 명제가 깨지며 마법계의 균형이 크게 뒤틀렸다.
아무리 대단했다고 하더라도 진보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것이 마탑이다.
“요즘 기조를 보면은 옛날처럼 마탑들이 대놓고 전쟁을 벌이지는 않겠지만, 물밑에서 여러 위험한 공작이 난무했을 테죠. 마법계 총회의와 세계 회의가 아니었다면 말입니다. 과연 마탑 간의 경쟁에 어떤 국면을 맞이할지는 차차 지켜보면 되겠지요.”
짝!
에드몬이 손뼉을 쳤다.
“아무튼! 이제부터 저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마도 축제의 후반부. 다름 아닌 아케나드 마도국과 에온의 공동 발표입니다. 설마 두 세력이 손을 잡다니, 이것 참 기대를 하지 말라고 목에 칼을 들이밀어도 안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허허허허!”
“사실상 이번 마도 축제의 핵심이니까요.”
그것은 이미 주 무대 밖에서 증명됐다.
가르간트의 거리와 광장.
에온은 새로운 종류의 골렘 부대를 투입했고, 아케나드 마도국은 과거 마도 축제에서 공개했던 기술을 되짚어 가듯 선보였다.
과거의 미래의 집합.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들이 펼칠 현실을 기대했다. 자신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다.
이카르와 에드몬은 너무도 할 이야기가 많았기에 의자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마도 축제를 즐기는 마법사가 으레 그렇듯이.
“마법사 아니랄까 봐…….”
칼리아 드 에스퍼렌사가 고개를 젓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곁에는 샤를로트와 에이든이 있었다.
“지금 마도 축제 후반부는 대중의 공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잘돼서 우리도 참석할 수 있으면 좋겠군.”
“부디 통과됐으면 좋겠어요.”
“베르덴 님을 한 번 뵙는 것보다 두 번 뵙는 게 더 좋으니까요.”
마도 축제 후반부에는 중간 일정이 비어 있는데, 이는 아카데미에서 위계 돌파에 대해 강의할 신성과 레프라기움 마탑주를 위해서 논의 끝에 따로 마련된 시간이었다.
마법사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가르침을 무상으로 설파하는 것이다.
참관에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았으니 두 남매도 물론 강의를 볼 수 있었다.
“개인 사정으로 가르간트에 오지 못하는 사람도, 어떻게든 베르덴의 강의를 보려고 필사적으로 오고 있다고 하던데. 후반부에는 유동 인구가 훨씬 많아질 거라는 전망이라고 들었다.”
“그럼 얼마나 많을까요, 칼리아 님?”
“세계 회의 이상일지도 모르지.”
북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활기의 거대 도시.
로아프라에서의 불법 노예 생활이 이제는 꿈으로 느껴진다.
암흑가의 권력자인 뤼잉 코스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이후 3년 동안 두 사람의 인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에드몬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는 에이든은 아카데미에 입학할 예정이고.
샤를로트는 뤼잉 코스타에게 잘린 성대를 치료해 준 성직자 카를로의 인도를 따라 정식 성직자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신성력도 제법 잘 다루고 있다!
참고로 로아프라의 안내인으로 전전하던 샘웰은, 베르덴과 갈리아크와 엮이고, 도시 라인즈에서 유명 주점의 주인으로 거듭났다.
셈웰은 자신의 과일 칵테일이 가르간트에서도 통하는지 확인해 보겠다며, 지금 마도 축제에 노점을 열어 장사에 힘쓰고 있다.
아주 호평 일색이라고.
서로는,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 서로 다른 삶을 만들어 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때 자신만의 정의를 관철하는 기사가 되는 것 외에는, 자리에도 결혼에도 관심이 없었던 칼리아가 그러했듯이.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다.
마도 축제 일곱째 날.
마침내 후반부가 시작됐다.
* * *
루아스 교국, 성소.
최고위 팔라딘이 드높은 빛의 계단을 한달음에 올랐다.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해 경비를 맡은 팔라딘들이 당황하며 반사적으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그는 성소의 문에 닿아 있었다.
최고위 팔라딘의 신성력에 성소가 반응했다.
쿠우웅!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굉음이 들려오며 성소의 외문(外門)이 개방됐다. 기척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것을 진즉에 알아챈 성녀가 그를 맞이했다.
“긴급 사태입니다.”
최고위 팔라딘이 황금빛 정십자가를 한 손에 쥔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중앙 대륙의 딘엘 왕국, 그 남쪽의 변방 도시인 골드힐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인’에 의해 완전 붕괴. 증언에 의하면 생존자는 팔라딘 셰인과 레나 주교, 두 명뿐이며…….”
목소리가 떨렸다.
“조제프 대주교께서 사망한 것으로─”
“성위의 대주교, 가.”
화아아아악!
성녀, 에르세티아의 의지에 따라서 4대 신물이 현현했다. 성창을 손에 쥔 그녀의 신성력이 성소를 뒤덮었다.
“골드힐의 좌표.”
신앙이 극도의 격노로 물들었다.
“당장 알아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