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04

904화 마도 축제 (6)

“그거 놀랍네요.”

이자벨라가 베르덴을 대신해 직접 와인병을 들고 일어섰다. 메이아 앞에 멈춰 선 그녀의 형안이 고요히 명멸했다.

“신비주의의 총체인 레프라기움 마탑에서 갑자기 조언이라니.”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당연히 있죠.”

천천히 와인잔이 채워졌다.

“메이아, 당신. 우리 가주에게 우호적인 편은 아니잖아.”

메이아가 표면적으로 감정을 내색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있다.
여자의 감이다.
지난 세계 회의에서 베르덴을 응시하는 메이아의 눈빛과 지금 베르덴을 대하는 태도에는 보이지 않은 벽이 있었다.

거부감인지.
경계심인지.

적대적이지는 않은 것 같지만 느낌상 호의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런 초월자가 난데없이 찾아와 조언 운운하니 수상할 수밖에.

“……계획을 수립할 때는 보통 이상적인 결과를 목표로 두고, 그에 초점을 맞추어서 하나둘씩 과정을 설계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변수를 통제하거나 예측해 성공률을 최대한 높이죠. 신성, 당신이라면 공감할 이야기일 겁니다. 여태까지 해 왔던 방식일 테니까.”

메이아가 와인을 아주 살짝만 맛보고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자벨라는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팔짱을 꼈다.

“그렇다면 계획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자 피해야 할 요소는 무엇일까요.”

베르덴이 답했다.

“통제할 수 없거나 예측할 수 없는 변수겠지.”
“그게 당신입니다, 신성. 덕분에 지난 수백 년간 계산한 인과가 비틀렸어요. 제가 레프라기움 마탑에 들어가기 전에 존재했던 연구까지도. 애초에 노리고 한 일이 아니니 원망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달가워할 이유도 없죠. 이 불확실성이 끝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알 수 없으니.”
“그래서.”

베르덴이 말을 끊었다.

“그 조언이란 게, 테오도르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냐.”

울프레드를 코앞에 둔 테오도르의 표정이 한껏 경직됐다.
녀석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무대가 고요해졌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또 무엇을 보여 줄지 숨죽이며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건 이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고였다.

마수의 흉포함은 날것 그 자체.

베르덴이 나선다면 늑대의 이빨이 닿기도 전에 처리할 수 있지만.
테오도르는 지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로, 자칫하면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메이아가 말했다.

“당신은 운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의미?”
“시작과 끝을 지배하는 운명은 단순히 무작위로 생겨난 게 아니에요. 운명의 수레바퀴가 몇 번이고 가상 미래를 만들어 내고, 이를 기반으로 각 존재에게 가장 어울리는 인과를 결정해서 부여한 것이 운명이라는 개념이죠. 결정된 인과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치는 변수를 없애는 과정에서 운명이 무너졌지만, 어쨌든 운명은 각 존재와 조화를 이루는 삶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녀가 아래를 가리켰다.

“테오도르의 운명은 본래 어땠을까요. 그에게 어울리는 인생은.”

운명과 운명의 수레바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정말로 조언할 생각이라는 듯 민감한 주제를 기꺼이 입에 담았다.
그 태연한 모습에 이자벨라만이 아니라 베르덴도 조금은 당황했다.

[운명. 중요하지 않음. 무가치.]

그때, 알파가 단호히 지적했다.

[이제 운명은 없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것에 심력을 소모하는 건 불필요한 행동입니다.]

베타도 가세했다.

메이아는 초대 마도왕의 두 피조물과 잠시 눈을 마주쳤다. 파랗게 빛나는 골렘의 외눈은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메이아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당신도 알다시피 테오도르의 소환 마법은, 소환 마법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아요. 마력으로 만든 마수 모형에 자신의 정신 일부를 주입한, 난이도가 극악할 뿐인 분신 마법. 그래서 운명도 없겠다, 가짜 소환 마법이 진정한 소환 마법으로 착각당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섭리자가 손을 쓴 거죠.”
“섭리자가 무슨 자격으로.”
“소환 마법을 구사하는 소환사로서. 그도 결국엔 한 명의 마법사니까요. 자신이 구사하는 마법 계열에 자부심을 가진.”

……!

그 말은 소환 마법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름 아닌 최초의 마탑의 서고를 수중에 넣은 베르덴조차 소환 마법에 관련된 정보를 접한 적이 전혀 없었다.

“운명전이 발발하기 전에는 여러 종류의 마법이 있었습니다. 위계 마법과 영창 마법. 당신이 아는 건 그저 일부에 불과해요. 아무튼.”

울프레드가 야만적인 이빨을, 테오도르에게 점차 가까이한다.

“섭리자로 인해서, 울프레드는 분신으로 그치지 않고 실체를 얻었어요. 물론 테오도르의 자아 일부가 기반이라는 건 여전하죠. 분리된 정신이 깃든 마력 모형 그리고 분리된 정신이 깃든 실제 육체. 차이가 뭔지 알겠나요?”
“무슨 도플갱어 같네.”

이자벨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둘이 싸운다?”
“소환사와 소환수가 서로 동일한 의식을 지녔고, 동급의 실체를 갖고 있으니 누가 우위인지 가름해야 합니다. 소환사가 주도권을 쥐면 계약 성공, 반대면 계약 실패. 마법사가 자아(自我)로 자신만의 소환수를 빚는, 아주 먼 옛날에 존재했던 소환 마법의 계파 중 하나죠.”

정적이 생각보다 장기간 지속되자 관객석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펠디안느는 사회자로서 개입하지 않고 테오도르와 울프레드의 살벌한 대치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베르덴이 턱을 쓸었다.

“승리하면 그 소환사라는 게 되는 건가?”
“테오도르는 자신의 마법적 경지에 따라서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를 얻게 돼요. 패배하면 소환수에게 죽거나 크게 다치곤 하나, 당신이 지켜보고 있을 테니 위험할 일은 없겠죠.”

메이아가 손등으로 턱을 괴었다.

“소환사와 소환수 간의 줄다리기는 물리적으로 승패가 갈릴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신적인 요소가 더 커요. 일단 소환수에게 겁을 먹는 순간, 승산은 아주 희박해지죠.”
“…….”
“여러분이 보기에 테오도르가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을 것 같나요? 주목을 받는 것만으로도 긴장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저 어린 마법사가.”

무대 위 테오도르의 입술이 벌벌 떨렸다.

“아무리 운명의 실이 끊어졌다고 한들, 인생을 바꿀 만한 무언가를 경험하지 않는 한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게 돼요. 운명이 없음에도 결국 운명대로.”

그녀는 테오도르의 운명적 결말을 알고 있다.

“테오도르의 심약함은 타고난 것이니 지금으로선 심리적으로 사나운 소환수를 압도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고, 마법적 경지도 낮아 소환수를 쓰러뜨릴 방법도 없죠. 이렇듯 운명을 벗어났다고 해도, 당신들처럼 운명 자체를 거스르는 삶을 사는 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제가 첫 번째 조언을 하───”
“앉아!!!!!!!!!!!!!!!!!!!!!!!!!!!!!!”

테오도르의 우렁찬 목소리가 무대 전역에 울려 퍼졌다.
시선이 쏠렸다.
메이아가 눈을 부릅떴다.

테오도르가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의지를 쏟아 냈다.

“앉!!!!!!!!!!!!!!!!아!!!!!!!!!!!!!!!!!!!!!!!”

목소리가 떨렸지만 울프레드를 노려보는 눈빛이 살아 있다. 분명히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럴수록 그는 눈에 핏대를 세웠다.

마법계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일까.
경외하는 초월자가 보고 있기 때문일까.
자신에게 기대를 건 교수님과 조교님이 있기 때문일까. 자식을 보겠다고 먼 길을 온 부모님이 있기 때문일까.

유약함을 이겨 내야 했다.
적어도 지금은.

선장 즉위식에서 느꼈던 중압감에 비하면 이딴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쿵!

테오도르가 침으로 번들거리는 그 이빨에 아예 이마를 부딪쳤다.

“울프레드.”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물어볼 테면 물어보라는 듯이.

“앉아.”

[…….]

테오도르의 돌발 행동에, 울프레드가 나지막이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곧 이빨을 감추며 허리를 낮추었다.

“엎드려.”

울프레드가 엎드렸다.

“굴러.”

울프레드가 낮게 으르렁거리다가 옆으로 한 차례 굴렀다. 다시 일어나라는 명령에 녀석이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울프레드, 짖어!”

[카아아아아아아아아!]

로어 울프 특유의 포효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강타했다. 충격파의 여파가 사방으로 퍼져 어수선한 분위기를 환기했다.

확신이 생겼다.
주도권을 잡았다.

테오도르는 에라 모르겠다, 절벽에 몸을 던지는 심정으로 관객을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발표를 재개하겠습니다.”

그렇게 소환 마법의 설명이 시작됐다.

지난번에 베르덴에게 설명했던 것보다 이해하기 쉽게 간소화됐으며, 테오도르 본인이 준비했던 것과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직전의 퍼포먼스 덕분인지 발표의 흡입력은 더욱 강해졌다. 마법사들은 한참 어린 마법사의 말에 홀린 듯 귀를 기울였다.

알파가 옆으로 시선을 던졌다.

[첫 번째 조언. 뭐.]

“…….”

메이아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한숨을 내쉬며 평정을 찾았다.

“첫 번째 조언은 ‘무질서’. 운명에서 해방됐다고 해서 모든 존재가 운명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며, 설령 삶이 달라졌다고 해서 운명보다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운명을 망가뜨린 당신은 그 의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녀가 조용히 기립했다.

“두 번째 조언은 ‘현실’. 무질서한 태고의 세상이 도래했으니 무엇이든 쉽게 예단하지 마세요. 최악을 상정하는 것과 최악을 맞닥뜨리는 건, 엄연히 차원이 다르다는 걸 항상 유념하길.”

이에 베르덴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수한 조언이라면 새겨듣겠다.”
“다른 조언은 섭리자에게 들으세요. 그럼 이만.”
“저러고 가는 거야?”

메이아는 본 용건을 전부 마쳤다는 듯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베르덴이 말했다.

“질문이 있는데.”
“답변할 생각은 없습니다.”
“네 번째 인공 골렘인 감마, 레프라기움 마탑의 동력원에 있는 사내의 정체, 운명의 사도들, 10대 마탑 동력원의 용도─”

메이아가 획 뒤를 돌아봤다.

“제 반응으로 정보를 얻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
“영악한 남자.”

메이아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보이고는 마저 길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자벨라가 메이아가 맛만 봤던 와인을 한입에 털어 넣곤 그녀가 방금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줬다.

“재수 없는 여자.”

당연히 메이아의 귀에도 들렸다.

‘그 남자에 그 여자.’

레프라기움 마탑 이인자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그렇게 끝났다. 머지않아 마도 축제 초반부의 밤이 막을 내렸다.

“아카데미의 천재 마법사, 테오도르의 소환 마법이었습니다!”

펠디안느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백 명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테오로드가 본격적으로 마법계에 이름을 알린 순간이었다.

소환 마법 발표, 대성공.

* * *

“이야, 잘했다! 잘했어!!”
“정말 대단했어!”

데일 교수가 테오도르의 허리를 끌어안고 높이 들었다.
이리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거 뭐였냐, 그거! 느닷없이 앉으라고 소리친 거! 나는 잠시 네가 미친 줄 알았다! 그런 건 또 언제 기획한 거냐?”
“아하하…… 그냥, 뭔가 인상적인 상황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테오도르는 눈동자를 굴리며 궁색한 해명으로 어물쩍 넘어갔다. 다행히도 데일 교수와 이리스는 사소한 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대체 뭐였지?’

울프레드가 통제를 벗어났다. 심지어 테오도르를 죽이려고 했다. 소환 마법의 원리를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기지를 발휘해 기적적으로 수습하기는 했지만…… 전혀 상정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던 터라 아직도 머리가 멍했다.

‘나중에 베르덴 님에게 여쭤봐야겠어.’

울프레드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울프레드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았다고 느낀 순간 오른쪽 손목 안쪽에 어째서 디스펜서의 마법진이 새겨졌는지.
울프레드와 내적으로 연결되는 듯한 감각은 또 뭔지.

테오도르에게 있어 그의 미지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베르덴이 유일했다. 물론 해답은 조금 나중에 얻어도 될 것이다.
지금은 기뻐할 때였으니까.

“이제 다 잘되겠죠?”

피치 못한 정세로 미뤄지고, 또 미뤄지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했던 소환 마법 발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큰 근심이 사라졌으니 한동안은 홀가분한 하루를 보내도 되겠지.

테오도르는 오늘을 기점으로 모든 게 다 좋아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마도 축제가 중반부로 접어들었다.

중위권 이하의 10대 마탑의 무대가 끝나고 나면 바로 후반부가 시작된다.
후반부의 두 번째 무대는 아케나드 마도국과 에온의 합동 발표였다.

“에온에서도 분명 비장의 한 수를 준비했겠지.”

반젤리스 루인 아케나드가 호기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앞에는 천에 덮인 꽤 커다란 구조물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간에 내가 그보다 못할 일은 없다, 베르덴.”

7대 마도왕은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리고.

“이제 진짜로 코앞이네.”
“그래.”

[응.]

[그렇습니다.]

유니아, 카인, 알파, 베타가 벽안과 푸른 외눈을 빛냈다.
그들 하나하나가 에온의 대표자였다.

유니아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누가 이번 마도 축제의 주인공인지, 제대로 보여 주자고.”

* * *

한편, 도시 잔트라.

“끄어어어어…….”

덩치 큰 사내가 비틀거리다가 이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주점 전체가 환호로 가득 찼다.

“으하하하하핫! 약해! 참으로 약하구먼!”

쿵!

드워프가 텅 빈 오크통을 내던지듯이 내려놓으며 수염을 훔쳤다.

“다음 상대는 없나!!”

지상 최악의 난쟁이는 인간들과의 주량 대결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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