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81

981화 죽음의 문 (5)

공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이상 기존에 설치된 중추 신호기를 회수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윗분의 계획에 어떤 차질도 없도록 회수 과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어명입니다. 에스티리아 왕국 내에 있는 모든 중추 신호기를 가져오세요. 시간이요? 정해진 기간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최대한 빨리!”
“특명이다. 현재 사용 가능한 비행정을 모조리 기동해 중추 신호기를 회수하라.”
“에온의 신성께서 복귀하셔서 에온의 대륙 간 공간 이동진을 완성하셨다. 지금 즉시 중앙 대륙에도 중추 신호기 회수 명령을 전달해.”

왕도 레티아에서 하달된 페르네와 에스퍼렌사 공작, 그리고 레바나의 군령이 대기 중인 기동 전력을 움직였다.
왕국 전역으로 비행정 함대와 마법사 부대가 뿔뿔이 흩어졌다.

중추 신호기는 왕국 밖에도 있지만 일단 가까이 있는 것부터 처리하는 게 순리다.

페르네가 침을 꼴깍 삼켰다.

‘분위기가 꽤 심상치 않아.’

평화로워 보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러 세력이 신속히 조기 대응에 나선 덕분이다.
마경과 서대륙의 언데드, 동대륙 최남부의 이상 현상 등 그 경계에서 미처 막지 못한 위협이 범람하는 순간 작금의 일상은 무너질 터.

그레이에서 온갖 정보를 다루며 악착같이 살아온 경험이 겪어 본 적 없는 비관을 전망했다.

‘정말로, 정말로 800년 전의 초월자 전쟁이 다시 일어날지도…….’

왕성 에스노렌의 테라스에서 도시 전경을 바라본 페르네의 피부에 소름이 쫙 돋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수년 전 에스티리아 왕국 3왕자의 세력인 조합의 모략에 끝장날 뻔했던 그녀의 정보상 인생을 구해 준 사람이 앞에 있었으니까.

그분이 돌아왔다.

페르네가 손바닥이 아릴 정도로 석재 난간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래, 올 테면 오라지.’

왕국을 보아라.

수십 년 전 정복 전쟁을 주모해, 벨디른 공화국과 리비안트 공국과의 오랜 냉전을 유지하여 에스티리아 왕국을 망하게 하던 선대 국왕.
선대 국왕의 왕위를 계승하려고 피 튀기는 왕위 다툼을 벌인 1왕자, 2왕자, 3왕자.
왕비의 심장을 가공하고, 엘프 납치 등등 수많은 잔인한 행각을 벌인 왕국 최강의 마도사이자 궁정 마법사단장인 레오닐 베르타나스.
그 외 기타 등등.

막아선 자는 박살 났고.
방해되는 자는 짓밟혔다.

전부 직접적으로 손을 쓰지 않았어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공국에서 넘어온 한 명의 마법사의 힘에 국가의 명운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 그는 전 대륙의 판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옛 왕?
대륙 절반이 불타?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짝!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페르네가 양손을 모아 기도했다. 처음으로 만났던 그분의 이전 가명까지 입에 담아서.

“애셔 님……! 베르덴 님만 믿을게욧……!!”

이 또한 믿음이리라.

* * *

‘베르덴…….’

남부 국경선에 머무른 칼리아는 성벽을 순찰하며 습관처럼 그 이름을 되뇌었다.
순찰이라기보다는 사색에 잠기느라 서성거리고 있다는 표현이 맞았다. 그녀의 지위가 지위인지라 진짜 순찰하거나 보초를 서는 병사들과 지휘관의 입술은 바짝바짝 말랐다.

한참을 걷다 성가퀴 위에 팔꿈치를 괸 칼리아가 멀리 시선을 던졌다.

동대륙 남부에서 날아와 추락한 로니아 왕국 비행정의 선체 일부가 보였다.
이미 칼리아 일행이 수차례 확인을 마치고 나서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그 주변에 진을 쳐 철통 경계를 서고 있다.

‘무인 비행정, 시체 없는 핏자국. 못해도 백 명이 넘게 살해당했다는 것 외에 이렇다 할 단서는 사실상 없었다. 물리적으로도, 마법적으로도.’

카란스와 에온의 열두 번째 위상, 알데반이 직접 확인한 결과였다. 블루는 뭔가 있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달리 뭔가를 특정하지 못했다.

‘……이렇게 답답한 적은 처음이군.’

에스퍼렌사 가문의 가훈은 정도(正道).

칼리아는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관철해 왔다. 공명심도 강했다. 여태껏 왕국에서 처리한 범죄자의 숫자가 이를 증명했다.
그렇게 여러 사건을 해결했던 그녀도 발만 동동 굴러야만 했다.

남쪽으로 인원을 파견할 수도 없다.
본인이 직접 갈 수도 없다.

───내가 직접 가겠다. 너희는 권역을 지켜라.

소규모 비행정 한 척만을 가지고 간 아드리안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로니아 왕국 쪽에 어떤 상황이 벌어져 위상들과 연락이 두절됐고, 마울러의 갑작스러운 남하(南下)를 계기로 아드리안이 상황 파악에 나섰다.

이제 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뒤를 쫓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지금은 단거리 및 장거리 공간 이동이 어려워진 데다가, 기마는 물론이거니와 비행정을 이용한다고 해도 거리가 너무 먼 까닭이다.

‘베르덴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저 로니아 왕국의 비행정에서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베르덴의 이적(異跡)을 알기에 칼리아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렀다.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 사태 이후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베르덴을 마음 한편으로 걱정하면서.

“저게 로니아 왕국의 비행정인가.”
“그─”

……?!

바로 옆에서 느껴진 기척에 칼리아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간 단련한 기감으로도 알아채지 못하고 간격을 허용했다.
암살자라면 치명적이다.
새하얀 기운을 운용하며 휘두른 팔꿈치가 허공을 갈랐다.

아무도 없다.

툭.

직후에 잿빛의 건틀릿이 뒤에서부터 칼리아의 어깨를 감쌌다.
그녀의 검붉은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감히 누구 몸에.’

이런 식의 접촉을 허락한 사람은 그녀의 일생에 한 사람밖에 없다. 재빠르게 허리춤의 단검을 역수로 잡아 어깨 너머로 내질렀다.
놀라운 반사 신경이었지만 그 일격조차 가볍게 손가락에 잡혔다.

“전보다 검기가 예리해졌군.”
“……!”
“늦어서 미안하다, 칼리아.”

베르덴이 단검을 놓아주며 아침 인사를 건네듯이 칼리아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던 미형 그대로의 얼굴. 달라진 게 있다면 잿빛의 로브를 비롯한 외관의 일부뿐.

“베르덴?”
“형제여!”

반짝!

카란스와 블루가 베르덴이 일부러 드러낸 마력을 감지하고 달려왔다. 당연히 알데반도 날아와 베르덴 앞에 착지했다.

“아……!! 폐하의 귀환을 경하드리옵니다!!!”

알데반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성벽 바닥에 부복했다. 에온의 위상 중에서도 그의 충성심은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그래도 울 것까지야.’

결국 보다 못한 베르덴이 대기를 조작해 알데반을 강제로 일으켰다. 그러는 동안 카란스가 그의 마력을 깊게 인지했다.

‘허억……!!’

끝을 알 수 없이 방대한 마력은 여전했으나 그에 깃든 존재감이 달라졌다.
어떻게 형용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위대한 어머니와 한층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계수의 의식을 치른 가디언 엘프로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위대한 아버지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냥 형제라고 불러라.”

카란스가 무슨 뜻으로 그리 말했는지 알겠지만, 베르덴은 자식이 있기는커녕 혼인도 안 한 상태에서 부모로 취급받을 생각이 없었다.

반짝! 반짝! 반짝!

블루가 마력의 빛과 파멸의 빛을 번갈아 가면서 내며 베르덴의 머리 위를 빙빙 돌았다. 베르덴에게서 탄생한 정령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그의 경지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내 힘으로 형태를 빚어 구체화할 수 있게 된 것 같구나.”

반짝!

“그 이상은 아직 무리인 것 같지만.”

블루에게 신성력을 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는 하다. 물론 시기상조다. 베르덴도 이제 막 신의 힘을 손에 넣은 신생 신이므로.

여전히 베르덴에게 오른쪽 어깨를 잡힌 칼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몸은…… 괜찮은가? 알파는?”
“보다시피. 알파는 베타와 함께 있다.”

베르덴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눈길이 추락한 비행정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본 칼리아가 재회의 기쁨을 뒤로하고 상황을 보고했다.

“수차례 조사했지만 고갈된 동력원에 얽힌 살점, 그리고 여러 핏자국만 남은 선체 외에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했다. 여기까지 온 끝에 동력이 완전히 고갈돼 추락한 듯한데, 조종사도 없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야.”

기온, 기류 등 선체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 요소는 많다.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해서 일직선으로 나아갈 순 없는 것이다.
경로는 물론이거니와 고도까지 변화해 조종사의 존재가 필요 불가결하다. 칼리아도 비행정을 조종할 줄 알기에 잘 알고 있었다.

“조종사가 도중에 내렸다면?”
“내려……? 방금 말했듯이 조종사 없이 비행정이 곤두박질치거나 솟구치지 않으려면 환경이 도와줘야 한다. 운의 영역이지. 운을 아예 배제하고 생각했을 때, 그게 가능하려면 조종사는 저 추락 지점과 가까운 곳에서 하선했어야 했어. 한데 비행 경로 주변에서 어떤 타인의 자취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 그 운마저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있었겠군. 너희의 관찰력을 속일 수 있는.”

비행정을 직접적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베르덴의 <마력 감지>와 통찰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실마리를 찾아냈다.

고갈된 마석 동력원.

그 내부를 이루는 균일성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블랙 아워의 대전당이나 마탑에 가져가서 정밀 검사 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었을 정도로 아주 미약한 흔적이었다.

‘이러니 모를 수밖에.’

카란스는 엘프라서 자연 마력에 민감하지만 가공 마석에는 문외한이다.
블루도 그와 다를 바 없다.

마법 공학에서 희미한 차이는 곧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법.

‘비행정의 핵심 동력원은 자연스럽게 고갈되지 않았다. 강제로 과열된 거지.’

마력 자체보다는 마법.
원소계 마법이다.

그중 베르덴인 확신하고 있는 원소 속성은 ‘전격 계열’이다.
누군가가 전력(電力)으로 비행정의 동력 전체를 장악해 움직였다. 그리고 하선한 이후에도 자동으로 계속 움직이게 해 두었을 터.

“……로니아 왕국에 전격계 마도사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로니아 왕국 소속이 아니란 의미겠지. 누군가가 이미 왕국 국경을 지나간 것은 자명하나, 정보가 거의 없으니 애써 수색할 필요는 없다. 괜히 인력만 낭비될 테니까.”

미상의 변수까지 고려하며 자세를 낮추고 행동할 여유가 없다.
이미 문제는 코앞에 산적해 있다.

베르덴이 말했다.

“주인 없는 땅과 로아프라를 잇는 대륙 간 공간 이동진을 완성해 두었다. 알파와 베타는 새로운 중추 신호기를 제작하는 중이고.”

……!

“곧 권역 내 통신망이 다시 개방될 거다.”

베르덴은 남쪽을 주시했다.

“그 이후에 로니아 왕국으로 향한다.”
“네가 직접…….”

베르덴이 돌아오자마자 난잡한 상황이 정리되어 가는 듯했다. 안심된다. 언제나 앞을 보면 베르덴의 등이 있었다.

쪽.

칼리아가 [아인베르]의 소매를 잡고는 베르덴의 목에 입을 맞췄다. 그의 힘겨운 고뇌와 노력, 그리고 책임감을 향한 그녀 나름의 격려였다.

“그, 이자벨라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황급히 베르덴의 시선을 피한 칼리아가 헛기침했다.

세계 회의 개최 전 가르간트에서 베르덴의 볼에 입술을 맞추었다는 이야기…… 칼리아는 거기까지는 부끄러웠기에, 이게 한계였다.

“피, 피하지 않았군.”

베르덴이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는데 피하지 않았다, 칼리아 드 에스퍼렌사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기쁠 뿐이었다.

카란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들은 저게 덜 부끄러운 건가?”

알데반이 마도사이기 전에 인간 어른으로서 차분히 대답했다.

“뺨 정도가 어린아이의 영역이라면, 목은 성인의 영역이지…….”

반짝!

블루가 명멸했다.

* * *

중앙 대륙, 주인 없는 땅과 라그벨 왕국 사이의 어딘가.

투확───콰과과광!

엘프들이 숲속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정령 마법과 화살을 사출했다. 엘프 정예를 지휘하는 메르퀴엔이 쏘아 보낸 화살이 폭풍이 되어 언데드를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렸다.

“이런 데 언데드가 있네. 언데드는 저기 마경하고 아래쪽에서 나오고 있는 거 아니었어?”

이자벨라가 형안을 드러낸 상태로 말했다.

“최근에 아티슨 마탑이 전 세계적으로 언데드가 탄생할 확률이 높아진 것 같다고 발표했어. 이 상황이 오래된 건 아니라 확실하진 않지만.”

본래 이런 조사는 다크워튼 마탑에서 해야 하는데 공간 이동이 막히기 전에도 그쪽은 이상할 정도로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뭘 하길래.’

죄인들을 이끄는 초대 네크로맨서가 현 다크워튼 마탑주와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적은 없었다.
심지어는 황금의 죄인과 죽음의 죄인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뭐, 그래도 가주에게 해가 되는 짓은 하지 않겠지. 큰 도움이 되는 거면 몰라도.’

이자벨라는 다크워튼 마탑에 대한 생각을 지우며, 금색 눈동자를 기반으로 한 형안에 마력을 더욱더 집중했다.

며칠 전에 포착한 극히 미세한 물결.

본질을 시각화해도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것이 아주 조금 더 선명해졌다. 주인 없는 땅 국경선을 2할 넘게 뒤져서 얻은 게 이것뿐이었다.

하늘 높이 있는 건지…….
땅 아래 깊숙이 박힌 건지…….

발원지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감이 전혀 들지 않으니, 뭐랄까.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쫓는 것 같았다.

‘아, 미치겠네.’

시야에 정말로 조금씩 일렁이는 무형의 파동에 신경증이 걸릴 지경이었다.

“또 언데드잖아? 게다가 한 마리. 강한 개체는 안 나오나.”

메르퀴엔이 심심하다며 가볍게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활시위를 튕겼다.
마력이 실린 나무 화살이 직선을 꿰뚫었다.

휙, 파악!

화살이 휘어져 지면에 박혔다.
외부의 간섭.
메르퀴엔이 마력의 흐름을 감지하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왜 막아?”
“잠깐만.”

이자벨라가 앞으로 걸어가 언데드───숲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좀비를 노려봤다. 좀비가 느릿하게 머리를 들었다.

[어브…… 어버…….]

좀비는 달려들지 않고 제자리에서 멍하니 부패한 입을 달싹였다.
이상했다.
본래라면 산 자를 향한 격렬한 증오를 내비치며 공격했어야 정상인데.

[어브어…….]

이자벨라는 눈꺼풀 하나 깜짝하지 않고 좀비를 들여다봤다. 그 공허한 눈동자를, 그리고 그 내부에 감춰진 것을.

잠깐이지만 새하얀 안개 같은 것이 보였다.

“……영혼.”

여태까지 확인한바 기본적으로 언데드에게는 영혼이 발견되지 않았다. 지성을 가진 고위 개체들도 그러했다.
초대 네크로맨서, 황금의 죄인, 죽음의 죄인 등을 제외하면 말이다.

‘자연 발생 언데드. 아무리 봐도 특출난 점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개 좀비가 영혼을 가진 거지?’

공간 이동을 저해하는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서 탐색에 나선 끝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그렇게 생기가 없이 색이 바랜 눈동자에 빠져든 순간이었다.

푸확!

“……?! 사악한 자매여!”
“뭐야, 갑자기?! ”

이자벨라의 왼쪽 눈동자에서 새빨간 핏물이 터져 흘러내렸다. 엘프들이 다가오는 걸 손을 들어 만류한 그녀는 신음조차 내뱉지 않았다.
크게 당황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은 이미 겪어 봤기에.

‘보인다.’

좀비의 영혼과 닿아 있는 문제의 희미한 파동. 그를 통찰할 듯이 시선을 거두지 않자, 곧 어두운 틈새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홉 개의 균열.

마치 그 너머에 죽음이 있는 듯한 기이한 입구의 형상이…… 그곳에서 확산된 파동이 일부 언데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게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건가? 그럼 언데드가 매개체? 이 좀비를 없애면 되나?’

이자벨라는 안구의 통증 따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던 도중 좀비가 다시 입을 움직였다.

───나, 열심히, 살았는데.

좀비의 이마에서 떨어진 썩은 살점이 눈가에 진액을 남겼다.
눈물 자국처럼 보였다.

───천국은, 어디……?

이자벨라에게 영혼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 * *

서대륙의 아케나드 마도국.

“이것이 사실인가.”
“예, 폐하, 확실한 정보입니다.”
“허.”

7대 마도왕───반젤리스 루인 아케나드가 한 장의 서신을 읽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보국에서 올라온 최신 보고였다.

“일련의 사태로 어쩌면 이런 결정을 내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작정했군. 광기 어린 혈기. 성자도 결국 초월자란 건가.”

정보의 핵심은 이러했다.

<루아스교, 대규모 이단심문부대. 성율성단(聖律聖團) 재창설>

수백 년 전 군단의 대악마를 토벌하는 데 성공한 1차 대성전에서 활약한…… 악마 숭배자와 그들과 관련된 모든 인간을 처단한 루아스교의 최악, 그리고 최강의 무력 조직이 부활했다.

<성율성단장, 성자, 레온하르트>

성자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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