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80

980화 죽음의 문 (4)

───여기는…… 어디야아…….

중추 신호기, 그러니까 정확히는 베타가 미확인 파장의 주파수에 맞춰 놓은 통신 팔찌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인간종인가.
아인종인가.
이형종인가.

베르덴이라고 해도 목소리만으로 종족을 판별할 순 없었다. 치지직, 치직, 치지지지직. 게다가 잡음이 상당히 심한 터라 성별도 분간할 수 없다.
다만 목소리에 깃든 감정이 무엇인지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 여기는…… 어디……?

점점 떨리기 시작하는 말꼬리.
불안과 두려움.

───아아아…… 아아아아아…….

베르덴의 촉각이 곤두섰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아아악!!!! 끄윽, 끄아아아아아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비명과 절규가 팔찌에서 쏟아져 나왔다.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잡음이 격해졌다.
골렘 연구 시설의 기류가 흐느끼는 고요에 잠겨 얼어붙는 듯했다.

───아…… 그렇습니까…….

이어지는 다른 누군가의 희미한 음성.

───여기가…….

그것은 환희와 공포가 뒤섞인 속삭임이었다.

───여기가……천국…….

이후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망망대해의 파도처럼 쉼 없이 굽이치는 수많은 목소리가 솟구치고 잦아들며 기괴한 소음을 만들어 낼 뿐이었다.

[파장이 전달하는 문장은 형태만 미미하게 다를 뿐 매번 핵심은 같았습니다. 특히 천국이라는 단어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천국(天國).

낯설지 않은 단어다.

루아스교의 경전에 천국이 무엇인지 개념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어떻게든 옛 왕의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 발악했던 어느 초월자가 직접 언급한 적이 있었다.

───설마, 내가 먼저 진실을 밝히는 게, 네놈들이 될 줄이야.

드라벤 르마르크.
옛 왕의 첫 번째 하인.

───루아스의 곁으로 가는 것을, 천국. 그렇지 못한, 것을 지옥이라고 하지. 빛의 교리를 통해 그렇게 널리 알려졌으나, 실제는 다르다. 아무리, 아무리 더러움을 씻어 낸다 한들───

놈이 동반 자살을 위해 누설한 단 하나의 사실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인간은, 천국에 갈 수 없다.

이는 금기의 경계를 저촉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넘어 버릴 정도의 기밀이다. 금기의 대가를 약화하는 베르덴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드라벤은 어느 정도는 공멸의 목적을 이뤘을 것이다.

‘천국. 이 시점에서 천국이라.’

베르덴은 팔짱을 낀 채 개조 중인 중추 신호기를 응시했다.

범대륙적인 대규모 언데드 출몰.
초월자 인형.
동대륙 남부의 이상 상태.
국제 분열을 야기하는 운명의 추종자.
…….

지금 발생하는 모든 기이한 사건의 중심에는 운명의 사도가 있다. 시체의 산 위에 앉은 군주, 옛 왕이 말이다.
중추 신호기에 잡힌 미지의 파장도 결국 옛 왕의 영향에서 비롯되었을 터.

‘옛 왕과 천국 사이엔 어떤 연관이 있는 거지?’

당연하게도 베르덴이 온갖 가설을 세워 봤자 답이 나올 리 없었다.
세상을 향한 의문이 이렇게 하나 더 늘었다.

[베르덴 폐하?]

“……진실에 매달릴 것도 없지.”

베르덴은 중얼거리며 알파와 베타의 프레임을 쓸었다. ‘당신’과 초대 마도왕을 둘러싼 의문에 대한 해답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힘에 의한 자유.
베르덴은 많은 선택지를 버려 가면서까지 반드시 이루고픈 이상이 있다.

“새로운 중추 신호기로 우리 권역을 다시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 늦어도 옛 왕이 재림하기 전에 기존 신호기를 전부 대체해야 하는데, 얼마나 걸리지?”

[골렘 생산 시설을 재조립하여 중추 신호기 생산 시설을 확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생산 과정에 새로운 설계도를 입력하면 개조된 중추 신호기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모든 중추 신호기 대체. 재료 부족. 기존의 중추 신호기를 회수해 재활용 가능.]

이전의 통신망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베타의 연구 덕에 통신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됐으니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 셈이다.

“알겠다. 바깥의 중추 신호기는 최대한 회수해 보마. 그동안 너희들은 최단시간으로 중추 신호기를 제작해라.”

두 인공 골렘이 외눈을 빛냈다.

초대 마도왕에게서 지성을 물려받은 것은 알파나 베타나 마찬가지지만, 어디까지나 골렘 연구 시설의 총괄 책임자는 알파다.

[확인. 명령 수행.]

오랜만에 미니 골렘에서 본체로 의식을 이동한 알파가 활약할 차례다.

* * *

“흐흐흠.”

심해에서 온 귀족 루자크가 개인 수족관 안에서 날 생선을 우아하게 썰어 먹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보글보글 투명한 거품이 올라왔다.

바다 꼬끼리를 닮은 이형의 면상에다가 뒤통수에 회백색의 뇌가 죽은 듯 미동 없이 드러난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식사 예절이었다.

“탄력 있는 식감, 고소한 풍미, 소스가 필요 없는 비린내, 어제보다 더 뛰어난 신선도.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이 이상적이나, 때로는 이렇게 식자재 자체를 즐기는 것도 미식의 일환이 아니겠소?”
“고작 생선 하나에 요란한 감상이네.”

아직도 모험가 길드로 돌아가지 않고 에온에 신세지고 있는 흑해 테아렐이,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지식의 만찬회는 언제 개최돼? 베르덴이 돌아온 후에?”

서대륙에는 아직 베르덴의 복귀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통신과 공간 이동이 장애로 인해 정보 전달이 늦어진 탓이다.

“주빈의 부재도 만찬회를 지연하는 요소이기는 하나, 호스트께서 아직 아무런 말씀도 없는 걸 보니 만찬회의 구성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소.”
“왜?”
“순전히 호스트의 변덕이오.”

루자크가 나이프를 내려놓고 큼지막하고 표면이 거친 코를 쓸었다.

“이런 식으로 지식의 만찬회가 미뤄진 것이 몇 번 있기는 했소. 절대로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없는 일도 아니었지. 그럴 때마다 항상 만찬회의 질은 평소보다 높아지곤 했소. 이 지연된 시간에 비례해서 말이오.”
“…….”
“그리고 현재 만찬회가 지연된 기간은, 만찬회가 시작된 이래 최장(最長). 나로서도 뭐가 나올지 감도 안 잡힐 지경이오.”

루자크가 껄껄 웃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오. 식욕을 돋우는 최고의 조미료는 기다림이 아니겠소? 마침 대륙도 혼란하니 돌아오지 않을 현재를 즐기며, 지고한 아르카디옴의 풍경을 상상하며 지루함을 달래시오.”

그의 눈동자는 미식을 향한 기대감과 집착으로 일렁였다. 입안에서 새어 나오는 침이 수족관의 물에 녹아들었다.

“머지않아 호스트께서 다시 없을 진미(珍味)를 맛보여 주실 테니.”

심해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 * *

화르르르르르륵───!

감정에 따라서 거세게 타오르는 마법의 불길이 부패한 시체를 태운다. 기본적으로 언데드는 빛의 신성력과 화염에 취약하다.

“후우.”

임시 보헤미른 마탑주, 로벨린이 마도를 거두며 마력을 가라앉혔다.

“다음 이동 지역은 어디죠?”
“이텔 왕국입니다만…… 로벨린 님, 일단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최근에 너무 무리하게 움직이고 계세요.”

보헤미른 마탑 장로회의 이티움. 결국 그 장로로 임명된 스피넬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로벨린을 만류했다.

지난 사흘 동안 여덟 번의 토벌이 이루어졌다.

수십 마리의 언데드에 불과할 때도 있었지만, 수천 마리 규모의 언데드를 상대해야 할 때가 두 번이나 있었다.

보헤미른 마탑, 에온, 아티슨 마탑, 마지막으로 헬리온 마탑으로 구성된 37인 토벌대이기에 전력에 문제는 없고, 인원이 적은 만큼 신속하게 언데드의 움직임에 대처할 수 있었다.
장로급이 한둘이 아니니 특수 개체가 나온다고 해도 대처가 가능하리라.

스피넬이 말을 이었다.

“로벨린 님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토벌대 합류에 찬성했지만, 이렇게 매번 최전선까지 나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언제나 주지하셔야 합니다. 로벨린 님은 보헤미른 마탑의 주인이라는 걸.”
“임시, 죠.”
“로벨린 님…….”

로벨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사태 때문에 미뤄지고 있는 듯하지만 마탑 서열이 갱신되면 보헤미른 마탑은 최하위로 전락할 거예요. 기정사실이죠. 게다가 저희 마탑엔 동력원도 없고, 최고위 마도사의 수도 턱없이 부족해요. 에온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보헤미른 마탑은 수년 이내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 테죠.”

결과적으로 보헤미른 마탑을 몰락시킨 장본인은 신성이지만, 스피넬은 그에 대해 감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보헤미른 마탑은 인체 실험을 저질렀다.

용서받지 못할 대역죄.

발로크 베시아스와 이전 이티움의 업보는 현재의 마탑이 감당해야 했다. 마법계 총회의에서 그 대가를 경감해 준 이가 신성이었다.
과거와 현재의 보헤미른 마탑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으로…….

허울밖에 남지 않은 보헤미른 마탑을 집어삼키기 위해서일까?

신성의 뜻이 무엇이든, 아이러니하게도 보헤미른 마탑을 죽인 것도 신성이었고, 호흡기를 붙여 준 것도 신성이었다.

로벨린이 말했다.

“사소하든 중대하든 보헤미른 마탑은 움직여야 합니다, 스피넬 장로. 악착같이 공적을 쌓아 올려야 마탑으로 남을 수 있어요. 그렇기에 마탑주로서 가장 자질이 부족한 제가 솔선수범해야 되는 거고요.”
“…….”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누구에게도.”

임시 마탑주의 책임감인가.
혹은 다른 무언가인가.

로벨린은 죽어야 한다면 가치가 있는 죽음이어야 한다는 듯 전면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적어도 스피넬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어린 나이에…….’

로벨린이 임시 마탑주에 적합한지 논의할 때 가장 반대했던 스피넬은, 그런 로벨린을 진심으로 마탑주로 따르고 있었다.
만약 로벨린이 죽어야 한다면 스피넬은 기꺼이 그 자리를 대신하리라.

그날 밤이었다.

보안 마법진과 매직 아이템으로 경계를 대신한 토벌대가 잠에 들었을 무렵, 로벨린은 언덕 위 나무에 기대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심신이 피폐하군.”

올다르크가 물었다.

“베르덴 때문인가?”
“베르덴…….”

로벨린은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도 그저 앉아있었다. 바로 옆에서 기척이 느껴져도 눈동자를 굴리지도 않았다.
마치 그녀는 독백이라도 하듯이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베르덴이 고대의 초월자들에 맞서다가 의식을 잃었대요.”
“8위계로 상승함과 동시에 신위(神威)의 편린을 내보인 결과다. 초위 마법을 연속으로 발동한 반동의 결과이기도 하지. 초위 마법은 본래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니.”
“베르덴이 피투성이가 되면서까지 싸울 때 저는 가르간트에 있었어요. 상황 파악도 못 하고 그저 마도 축제를 보냈죠…… 옛날처럼.”
“무지(無知)는 면죄부도 아니고, 죄목도 아니다.”
“저한테는 큰 죄예요.”

로벨린의 붉은 눈동자가 달을 비추었다.

“그런데 무슨 상황인지 알았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죠. 특이 형질을 보유한 5위계 마도사 따위가 초월자 앞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단 일격에 죽어 버릴 텐데.”
“그대는 후회하고 있군.”
“너무…… 멀어졌어요.”

그녀가 자조했다.

“당연한 일이겠죠. 베르덴이 가장 도움을 바랄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했으니까. 베르덴이 가장 고통받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
“베르덴이 인체 실험을 당했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았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그대는 발로크에게 살해당했겠지, 혹은 함께 인체 실험을 당했거나.”
“적어도 베르덴을 위해서 죽거나 고통받을 수는 있었어요. 그때는…… 그때는 약했던 베르덴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었죠.”
“…….”
“근데 이제는 아니에요. 베르덴을 위해서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베르덴을 위해 죽을 수도 없죠. 이렇게 약한 제가 죽어 버리면 베르덴이 슬퍼할 테니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베르덴에게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웃기죠? 죽는 것조차 민폐라니.”

올다르크가 짧은 수염을 쓸었다.

“베르덴에게 있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네, 라스카벨 고아원에서처럼…….”
“그를 사랑하는가?”
“그런 감정이 뭔지 몰랐을 때도 고개를 돌리면 베르덴의 얼굴이 옆에 있었어요. 그게 당연했어요. 피가 이어지지 않은 가족이었죠. 보헤미른 마탑으로 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계속…….”

로벨린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억눌러 온 감정이 새어 나왔다.

“지금 베르덴은 정말로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어요. 가족으로서도, 여인으로서도, 동료로서도, 부하로서도, 친구로서도 제가 끼어들 틈은 없죠. 그럴 용기도, 자격도 없고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녀의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제 수명이 정말로 짧았으면 좋겠어요. 자연사는, 베르덴조차 어찌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저를 구하려고 마음 쓸 일도 없이 제 죽음을 받아들이겠죠.”
“그게 진심은 아닐 텐데.”
“저는…….”

로벨린이 중얼거렸다.

“나는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올다르크는 그런 로벨린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손을 내밀었다. 로벨린은 올다르크의 존재에 의문을 느끼지 못한 채 그 손을 바라봤다.

“다가올 ‘죽음의 전쟁’ 앞에서 베르덴의 세력은 아직 미약하다. 그러니 그대에게 힘을 주마.”
“힘……?”
“운명전이 재개되기 전까지 그대에게 살아남을 가능성을 줄 수 있는 힘이지.”

올다르크가 말을 덧붙였다.

“이 ‘마법 체계’를 갈고 닦는다면 그대는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운명이 무너진 시대.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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